[독후감] 허리케인도 아니다. 화산도 아니다.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이곳엔 사람이 있다. - <살인 예언자 3: 오드 토머스와 악의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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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재난이 몰려온다. 허리케인도 아니다. 화산도 아니다. 자연재해보다 더 무서운, 이곳엔 사람이 있다.



출처: 교보문고

이 책의 주인공 오드(Odd)는 작은 가게에서 팬케이크와 프라이를 만드는 스물 한 살 청년이다. 오드에게는 남다른 재능이 하나 있는데, 그건 바로 죽은 이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엄청난 재난의 현장에 나타난다는 그림자 같은 존재 ‘바다흐(bodach)’도 오직 그의 눈에만 보인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바다흐’는 살육과 죽음의 향연을 즐기는 초자연적인 존재다. (바다흐 자체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거나 사람을 죽이지는 못한다. 다만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를 즐길 뿐.) ‘바다흐’가 보인다는 건 그곳에서 수십, 수백 명의 사람들이 곧 잔인하게 죽음을 맞이하게 될 거란 뜻이다.

1편 <살인 예언자 1: 오드 토머스 첫 번째 이야기>와 2편 <살인 예언자 2: 오드 토머스와 죽음의 여신>에서 활약했던 오드가 이번에는 수도원으로 들어갔다. 1, 2편의 모험을 겪으며 혼란스러워진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깊은 산 중에 자리한 외딴 수도원에 잠시 기거하기로 한 것이었다. 이곳에는 수도원과 수녀원 외에도, 수녀들이 돌보는 정신지체아와 신체장애아들 수십 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오드는 이 아이들이 머무는 방에서 ‘바다흐’를 보게 된다. 처음엔 하나. 그리고 셋. 곧이어 일곱.

설상가상으로 밖에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눈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외부와의 전화도 끊겼다. ‘바다흐’가 보인다는 건 아마도 몇 시간 안에, 길어야 하루 이내에 엄청난 죽음의 광풍이 몰아친다는 의미다. 재앙이 일어날 거라는 건 알지만 그 재앙이 뭔지 모르는 오드는 어서 그 원인을 찾아 없애고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 그건 지진일까? 폭발일까? 어느 미치광이 살인마가 이 눈보라를 뚫고 수도원까지 들어오게 되는 걸까? 오드는 곧 일어날 엄청난 재난이 뭘지 추리하기 위해 애썼다.


Here we have no tornadoes, no hurricanes, no active volcanoes, no killer bees.

We do have something more dangerous than all those things. We have people. (p. 24)

여기엔 토네이도도 없고, 허리케인도 없고, 활화산이나 벌도 없다.

하지만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위험한 게 있다. 여기엔 사람이 있다.

과연 제 시간 안에 알아낼 수 있을까. 그 재난을 막을 수 있을까. 엄청난 눈보라 속에서 자기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수십 명의 이 장애아들을 무사히 지킬 수 있을까.

책은 참 흥미진진하고, 마지막까지 긴장감도 높다. 미스터리/스릴러 소설을 좋아한다면 추천하고 싶다. 특히, 이 책이 재미있는 이유는 작가의 은근한 위트 때문이다. 낄낄거리게 웃긴 건 아닌데, 은근히 미소 짓게 만드는 위트가 상당하다. 게다가 곳곳에 깨달음을 주는 멋진 문장들도 숨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문장.

“When you laugh at yourself, you gain perspective. Then you realize that the mistakes you made, as long as they didn’t hurt anyone but yourself – well, you can forgive yourself for those.” (p. 239)

“스스로를 비웃게 되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요. 그러면 내가 어떤 실수를 했건 간에, 그 실수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거라면, 오직 나만 우스꽝스럽게 보일 뿐이라면, 실수한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되거든요.”

또한 앞서 1, 2편의 독후감에서도 언급했지만, 주인공 오드도 굉장히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주인공과는 거리가 먼데, 그만의 매력이 있다. 싸움을 잘한다거나 근육질도 아니고, 총싸움을 잘 하는 것도 아니다. 터프한 마초남도 아니고, 언변이 뛰어난 것도 아니다. 어떨 때는 답답하다 싶을 정도로 고지식하기도 하지만, 그 와중에도 유머와 위트는 넘친다. 정말로 순수하고 맑은 영혼의 소유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청년이다.

그런데 만약 오드가 내 주변 사람이라면, 나는 과연 그의 본 모습을 알아볼 수 있었을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려는 노력은 없이, 섣불리 그를 재단하지는 않았을까?

소설 속에 이런 부분이 있다.

“... After reading a twenty-page report on you, Mr. Thomas, I thought I knew everything about you, but as it turns out, I knew little of importance. By that, I do not mean only your... gift. I mean I did not know the kind of man you are.” (p. 298)

“토머스씨, 당신에 대해 적힌 스무 장 짜리 보고서를 읽고 나서 난 당신에 대해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어요. 헌데, 이제 보니 정작 중요한 건 하나도 몰랐더군요. 이 말은 당신의... 그 특별한 능력에 대해 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 말은,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몰랐다는 겁니다.”

스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남자에 대해서는 설명을 생략하도록 하겠다. 다만 그가 한 분야의 전문가이고, 만일 그의 동료들이 스무 장짜리 보고서를 작성했다면 그건 굉장히 정확하고 정교한 보고서일 것이라는 점만 알아두자. 그러니 그가 보고서를 읽고 나서 오드 토머스에 대해 완전히 알게 됐다고 확신했다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의 확신은 틀렸다.

그는 자신이 몰랐던 게 그의 특별한 능력 즉, 귀신을 보거나 재앙의 징조를 볼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게 아니라고 했다. 오드 토머스가 얼마나 순수하고, 고결한 사람인지를 몰랐다는 뜻이었다. 그렇다. 누군가에 대해 적힌 스무 장짜리 보고서를 읽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마음까지 보여주지는 못한다.

우리는 왜 다른 사람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하는 걸까? 정교하게 작성된 스무 장 짜리 보고서는 커녕, 카톡으로 돌아다니는 네댓 줄의 찌라시를 보고도 우리는 너무 쉽게 남을 판단하고 비난한다. 내가 알고 있는 그의 한 단편이 전부인양 오버하면서.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곳의 스티미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보일까 생각해본다. 그들이 내 안에 숨겨져 있는, 나도 미처 깨닫지 못한 좋은 면들을 발견해준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 저 남자도 생사를 오가는 모험 끝에서야 겨우 오드의 진짜 모습을 발견했다. 어쩌면 다른 이의 진면목을 발견하는 건 이렇게나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이 글은 딘 쿤츠가 쓴 오드 토머스 시리즈의 세번째 책 <살인 예언자 3: 오드 토머스와 악의 수도원>을 읽고 쓴 독후감입니다. 1편에 대한 독후감은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독후감] 살인을 막아라. 누군가는 죽는다. 단서는 그것 뿐이다. - <살인 예언자 1: 오드 토머스 첫 번째 이야기>

2편에 대한 독후감은 아래를 클릭해주세요.
[독후감] 인간은 선한가 악한가. 이 세상은 선한가 악한가. - <살인 예언자 2: 오드 토머스와 죽음의 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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