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끄끄|| #8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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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은 허름한 외관과는 사뭇 달랐다. 아담하고, 청결하고, 정연했다. 올록볼록 무늬가 도드라진 하얀 벽지는 막 빨아 다림질하기 전의 시트처럼 뽀얗고, 진한 갈색 바닥은 아이스링크로 사용해도 될 만큼 반짝거렸다. 라벨의 방향이 가지런하게 진열된 각종 약제는 완벽주의를 지향하는 연출가의 지시에 따라 무대 위에서 정확하게 자기 위치에 선 배우처럼 보였다.

가게 주인은 손님용 의자 옆에 마치 무슨 부속품마냥 서 있었다. 예약 시간을 확인하면서 내가 오기 전부터 줄곧 그렇게 서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머리 스타일에는 별로 개의치 않는지, 그냥 짧기만 한 머리는 염색도 하지 않아 흰머리가 눈에 띄었다. 나이는 많아도 등은 꼿꼿하다.

의자에 안자마자 하얀 기운이 내 몸 전체에 씌워졌다. 타인이, 그것도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사람이 공손하게 소맷자락에 팔을 넣어주다니, 작은 어린애가 된 기분에 민망해서 한쪽 팔은 내가 밀어 넣으려고 했다. 그런데 상대 쪽 움직임이 더 빨랐다. 장소는 금방 아시겠던가요? 그렇게 물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랬더니 불쑥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은 것이다. 이곳으로 가게를 옮긴 지 15년이 되는군요, 그렇게. _본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에서

_오기와라 히로시,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


표지와 제목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읽게 된 책이다. 각기 다른 6개의 단편소설이 담겨 있다. 책의 제목인 ‘바다가 보이는 이발소’도 그중 하나다.
책은 각자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상처를 치유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책은 시종일관 담담히 이야기를 꾸려 나간다. 큰 굴곡도 없고 눈에 띄는 문장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감하며 몰입해 읽을 수 있었던 건 이 모든 사연들이 내게 혹은 누군가가 충분히 겪을 수 있는 일이라 그렇다.

불행은 화려하지 않다. 이 책처럼 조용히 그리고 불현듯 다가와 삶을 흔들어 놓는다. 그래서 불행한지 조차 모르고 넘어가고는 한다. 차후 삶을 돌아봤을 때야 생각한다. 아, 그때 참으로 불행했어,라고.
책에 나온 모든 상처가 결말에 이르러 모두 치유됐다고 할 수는 없다. 그대로 두는 것도 어쩌면 하나의 치유일 수도 있으니까.

일본 소설답게 감정표현이나 주변 묘사가 정밀하고 꼼꼼하다. 상처에 대한 치유법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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