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들면서 향토음식에 극적 사건이 일어난다. 광주 학살로 집권한 전두환 군사 정권은 1981년 여의도에서 '국풍'이라는 대규모 행사를 벌였다. 자신의 몸에 묻은 피 냄새를 국풍이라는 바람으로 날려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이 국풍 행사장에 전국의 유명 음식이 동원되었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 살고 있는 도시민들에게 고향의 음식을 코앞에 들이밀어 잔치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그 분위기에 휩쓸린 사람들이 자신의 살인을 잊기 바랐던 것이다.
국풍은 대한민국에 향토음식 바람을 크게 일으켰다. 충무김밥, 전주비빔밥, 나주곰탕, 춘천막국수 등등의 '지명+음식명'의 향토 음식이 국풍을 기점으로 한국음식의 주요 항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도시화, 산업화의 비정에 향토음식이 위안이 되었기에, 또 그 위안이 '살인의 추억'까지도 잊게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전두환 덕에 향토음식이 갑작스럽게 번창한 것이다._본문에서
_황교익, 한국음식문화박물지
어느 날인가 음식 관련 책을 잔뜩 샀다. 그 중하나다. 여러 음식을 황교익 식으로 잘 설명해 놓았다. 예전부터 음식에 관한 얘기를 좋아했다. 음식은 알게 모르게 많은 역사와 슬픈 문화를 담고 있다.
한 예로 전쟁 직후 먹을 게 없던 한국인은 미군 쓰레기통을 뒤졌다. 거기엔 케첩 묻은 빵이며 햄, 소시지, 먹다 남은 고깃덩어리가 남아 있었다. 이것을 한 솥에 넣고 끓였다. 이를 꿀꿀이 죽이라 불렀다. 쓰레기를 끓여 만든 음식. 이마저도 없어 못 먹었다.
60년대 들어 사정은 조금 나아졌다. 쓰레기통을 뒤지는 대신 미군에서 몰래 빼돌린 햄과 소시지로 요리를 했다. 부대찌개다. 부대찌개는 꿀꿀이죽에서 비롯됐다. 만약 우리나라에 전쟁이 없었다면 부대찌개도 없다. 부대찌개는 한국전쟁의 슬픈 산물인 것이다.
한국음식문화에 대해 비위생적이라는 얘기를 종종한다. 한 그릇 문화를 비판하는 것이다. 뭐, 그럴 수 있다. 입에 닿는 숟가락으로 한 음식을 먹으니까. 한국음식에 국물요리가 유독 많아 더 그럴 수 있다. 비판으로 그치면 좋겠지만 자국문화나 민족성, 역사까지 들먹이며 한국음식문화 전체를 미개하다 폄하한다. 도가 지나치다.
조선은 원래 독상 문화였다. 한 사람이 하나의 상에서 식사했다. 옛 문헌이나 그림만 찾아봐도 금방 알 수 있다. 밥상 위생으로만 따지면 서양보다 위다. 독상 문화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 이후 사라졌다. 한 그릇 문화는 먹을 게 없어 음식 하나를 가족이 나눠먹다 생긴 안타까운 문화다. 그 속내나 사연은 알지도 못하고 사대주의에 빠져 민족성을 운운하는 게 우스울 따름이다.
이 책에서는 다양한 음식이 나온다. 그 역사를 일일이 설명하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음식을 조금 더 알아 가는데 도움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