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미의 일상기록 #11

ddd.jpg우리 엄마 닮은 대문 감사합니다 @kiwifi

이곳에서 친해진 사람들과 노는 아주 작은 단톡방이 있다. 원래 그런 건 절대로 안 하기로 했었는데, 하여간 그렇게 됐다 (뻔뻔). 인원을 더 추가할 생각도, 덜어낼 생각도 없다. 잠깐. 덜어내는 건 한번 생각을... 일 때문에 이야기하게 된 1대 1 대화방도 소수 있다. 그중에서 제일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도 절대 말해주지 않는 것들이 있다. 학위를 딴 학교, 거주한 (구체적인) 나라와 도시, 현재 사는 곳, 잘 가는 곳, 그리고 포스팅에 내비치는 단서들을 종합하면 대충 나오지만, 정확한 연도나 나이 등.

이곳의 이웃들이 뭐 못 미덥거나, 신비주의를 고수하고 싶거나, 현실에서 원치 않은 조우를 하게 될까봐 따위의 이유에서는 아니다. 스팀잇은 언제든지 외부에서 조회할 수 있기 때문에, 나를 간접적으로 알거나 들어서 아는 사람이 우연히 보고 추론을 하게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아서이다. 직접 아는 사람이야, 뭐 그 사람 앞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만 쓸 테니까 오히려 상관이 없다.

어쨌든 위 정보들이 공개가 되면, 가능한한 모든 것에 대한 속마음을 내비치는데 걸림돌이 되는 시점이 분명히 오게 되어 있다. 가령 예전 친구들이나 인연들에 대해 있는대로 기술하는데 망설이게 된다거나. 게다가 얽혀있을 인맥의 세상은 매우 좁다. 그래서 그냥 선택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것, 느끼는 것을 그대로 쓸 것인가, 아니면 그런 것들을 쓰기 힘들게 만들 수도 있을 정보들을 흘릴 것인가. 내 선택은 당연히 전자.

얼마 전, 샌드박스 과제로 내 소개 제출을 했다. 항상 그렇듯이 마감 시간, 그것도 마음대로 뉴욕 기준의 마감시간에 맞춰서 즉흥적으로 썼는데, 딱히 계획은 하지 않았지만 내 10대 시절에 큰 영향을 미쳤던 한 잡지에 대해 쓰게 되었다.

해당 과제는 9월 4일에 샌드박스 계정으로 올라오게 되어 있는데, 뭐 영문이지만 올라온 후에는 서문을 추가하고 한글로 변환도 해서 올려볼까 생각도 하고 있다. 어차피 샌드박스 계정에 먼저 올라가기로 되어 있는 내용이기도 하고, 해서 그 내용을 다시 쓰기는 뭐하다.

그런데 잡지는 @idea-list의 오는 회차 주제이기도 하고, 포스팅으로 답하고 싶은 주제라고 얼핏 언급을 하였다. 그래서 잠깐 거론하자면, 아직 10대(13살~)에 채 들어서기 전에, 외국의 한 자선단체가 운영하는 골동품 가게에서 1950년대에 나온 한 문예비평 잡지를 수십 권 샀다. 말이 잡지지, 얇은 책 정도는 되는 두께의 흑백 문예지였고 그 형태도 거의 그냥 좀 크고 얇은 페이퍼백 책에 가까웠다. 아, 참고로 나는 패션이나 미용에 대해서는 그냥 일상을 관찰하거나 약간의 인터넷 검색을 했기 때문에, 그런 주제의 잡지를 참고한 적이 없다.

잡지란 당대의 독자들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만든 출간물이다. 이 점 자체가 특별하다. 출판사의 어떤 결정, 혹은 이미 부여된 권위에 의해 찍혀 나오는 고전과, 당대의 잡지를 통해서 처음 발표되는 희곡, 시, 단편 소설 등은 분명 다른 느낌이다. 기고한 사람들 또는 잡지에서 출판권을 사서 찍은 원고 중에는 포크너나 스타인벡, 존 치버 같은 아주 유명한 작가들의 글도 있었고, 현대의 기준으로는 약간 애매한 명성의 인물들이 쓴 글도 있었다. 굉장히 일상적인 글도 포함이 되어 있었다. 같은 글을 "고전 시리즈"의 책으로 보는 것과, "새로 나온 글"로서 보는 것은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내가 그 시대로 들어간 느낌도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잡지라는 것의 의미는 그러한 '동시대성'에 있지 않을까 싶다.

사실 그 잡지의 여러 글을 대략 나열하는 것보다는, 기회가 닿는대로 몇 가지를 중점으로 삼는 포스팅을 해볼 생각이다.

그 잡지의 편집장에 따르면, (비록 희망은 지속되었지만) 그때부터 이미 위대한 작가는 나오지 않고 있고, 비평이 한 장르가 되고 있으며, 비평가가 점점 전문화되고 있었다. 현대에 비해서는 다수의 비평가가 설 자리가 그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그런 비평지를 읽는 독자들은 한정되어 있으며, 따라서 각 잡지마다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다고 자각하고도 있었다. 각 잡지가 독자와 취향을 나누고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고 봐도 될 것 같다. 아마도 그러다가, 재정적 사정으로 인해 폐간이 되었겠지.

얼마 전에 한 마나마인 인터뷰에 제공한 아래의 사진도 그 잡지의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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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에 이 잡지를 보던 사람들은 현재 세상에 거의 없을 것 같은데, 나는 10대 시절에 그 잡지를 보고 자랐으므로 그들과 같은 추억을 공유한 셈이다. 잡지는 그런 타임머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앗, 이러다가 제출한 과제를 올리는 의미가 없어지겠군.

워낙 바다를 드나들다가 생긴 물집은 다 가라앉았다. 아무래도 어릴 때부터 구두도 막 신고 발을 너무 혹사시킨 것 같다. 이번에 물집 때문에 좀 돌보게 되었는데, 아직 손처럼 보들보들하진 않지만 그렇게 만들어야지.

이번 여름엔 너무 물에 잠겨 있는 시간도 많았고, 평소 먹지 않는 얄궂은 것들도 자주 먹게 되었다. 요리할 땐 꼭 창을 열어야 하는데, 더우니까 조리도 전혀 하기 싫고, 끼니를 큰 빙수로 먹는 일도 잦았다. 이번 여름은 여러모로 건강 망치기 좋은 계절이었다. 태풍이 어설프게 지나간 후로는 덜 덥지만 더 습해졌다. 지긋지긋한 여름이다.

내가 좋아하는 가을이 올해 확실히 있어야 할텐데 걱정이다. 생각해보면, 바다 근처인 내 집에서 느끼기에는 이번 초여름에 제법 시원한 날도 많았었다. 그런데 그런 날들을 충분히 귀중하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지나고 나니 후회가 되는...이런 것들은 되도록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은데.

테이스팀 돕는 일은 이번 주까지로 마무리가 된다. 이번에 "현실"에서 맡은 일 좀 끝내면 메디팀 영작을 주기적으로 해야겠는데, 아직도 8월 말이라니. 이래저래 하는 일이 많은데도 하루 하루가 이상할 정도로 길다.

외국에서 사춘기 시절을 보낼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리조트를 놀러가면, 낮에 하는 활동보다는 잠자는 시간이 더 좋다는 아이들이 있었다. 자기 전에 숙소를 같이 쓰는 애들끼리 조금 수다를 떨기는 했지만, 낮에 하는 활동보다 재미있다는 말에는 별로 공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는 잠자는 시간이 좋다는 감정이 조금 이해가 되는 날이 많았다. 뭔가 낮에 밖에 있거나 하는 것도 평소보다 힘이 드니까 그렇게 느껴진 것 같다.

어릴 때, 막 힘이 넘치고 야외 활동을 한창 즐길 시기에 그렇게 느꼈던 아이들은 대체 왜 그랬던 것일까. 나도 책을 볼 때는 그런 활동이 귀찮았지만 거긴 책도 없었던 데다가, 어차피 여행이나 뭐 비슷한 활동을 할 때에는 구경하고 노는 데 열중했다. 학교와 가족이 나를 무던히도 여기저기 끌고 다녔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들이 그러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런 기억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말하는 아이들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컸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애들이 어딘가 재미있고 어울리고 싶었지만, 항상 반대의 아이들이 데려가서 자기들 일원으로 삼곤 했었다. 보통 아웃사이더 애들이 끼고 싶어하면서 두려워하는 그런 그룹이었다. 거기 속해놓고도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은 나뿐이었을까,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전에도 어디선가 언급했던 것 같은데, 다수의 생각이나 취향에 아랑곳하지 않는 습관은 그때의 열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코가 꿰인 집단을 생까고도 아무 일 없이 평화로운 날들이 흘러가길 바라던 열망.

물론 본능적으로 그런 일은 가능하지 않으리라고 알고 있었다. 사춘기 아이들은 "버림 받는 것"에 민감하니까, 누가 자발적으로 떠나버린다면 자신들이 하찮아진 느낌이 들었을 것이고, 공격적으로 나왔을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런 일을 겪어보기도 했었다. 10대는 그렇게 피곤했다.

하여간, 어느 더운 여름에 그런 리조트로 단체 여행을 갔었다. 아마도 같은 계절이라서 오늘따라 그 생각이 나나 보다. 학교에서 엄청 인기 많던 금발 남자애가 있었는데, 나와 같은 숙소로 배정되어서 알게 된 한 여자아이가 걔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잠들 시간이 되면 그 남자애에 대해서 떠들어댔다. 아마도 그 짝사랑녀는 거기까지 놀러가서 잠자는 시간이 가장 좋다고 한 아이들 중 한 명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 경우는 같은 반도 아닌 그 남자애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었는데, 워낙 얘기를 듣다 보면 흥미도 생기게 마련이지 않은가. 그래도 그 남자애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워낙 입이 싸고 시끄러워서 별로 친해지려는 생각은 없었다. 귀찮으니까.

그러다가 한 사흘 째였나, 동굴 탐험을 갔다. 위험하지 않아서 선생들은 그리 가까이 있지 않았다. 나는 밖으로 창문처럼 뚫린 곳을 구경하러 갔는데, 그 남자애가 위험하다며 따라왔다. 사실 별로 떨어지거나 할 곳은 없었는데, 조심하라는 핑계로 뒤에서 양손으로 내 허리를 잡았다. 그것도 들어간 부분을 정확하게. 지금 같으면 그건 도발이다 너무 명확한 메시지인데, 가까워지고 싶지 않다면 화를 내거나 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그러나 어릴 때라서인지 조금 당황했고, 결국 아무 일도 없었던 척 태연하게 지나쳤다. 그 남자애 입장에서는 그 후에도 몇 번 더 친해지려는 시도가 있었는데, 언젠가부터는 뭔가 거절을 당한 사람처럼 굴기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나도 걔한테 관심이 없지 않았는데, 사실 동굴에서 그 애를 짝사랑하던 여자애의 목소리가 귓가를 잠깐 스치기도 했었던 것 같다. 별로 생각이 날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지만, 그러고 보니 그 짝사랑녀의 이름은 로라였다.

그 짝사랑녀 아니 로라와는 그 여행 동안에는 제법 친해졌다. 그리고 별로 놀랍지 않은 일이지만, 나중에 학교에서는 다시 멀어졌다. 로라는 전에 다른 일기에서 언급한 적 있는 린지라는 여자애의 절친이었다. 린지는 얼마 안 되어서 내가 사귀게 된 폴이라는 애를 좋아했고, 여러 가지 일들을 거치면서 린지의 친구들은 나를 참 싫어하게 되었다. 물론 로라도 포함, 아니 로라가 제일 미워하게 됐다.자기 때문에 내 첫사랑의 궤도가 바뀐 것도 모르고 말이지. 하여간, 10대는 그렇게 피곤했다.

자기 소개글을 쓰면서 그 잡지 이야길 할 줄 스스로도 몰랐듯이, 오늘 일기도 예기치 않은 내용들로 채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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