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같은 문학 22 + 21회차 답변 선택

[반말주의]

안녕! 이제 부지런히 쓰기로 약속한 깨알 같은 문학이야! ㅋㅋ 또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났다, 휴...다들 자고 있겠지?

전국적으로 비가 내렸다 보니깐 뭔가 비내리는 장면을 떠올리게 되네. 깨알 같은 문학은 문학작품 전체 내용 요약 아닌거 알지?! 깨알 같은 장면 소개만 해준다...

지방의 귀족 혈통이지만, 별로 좋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난 한 소녀가 있어. 커다란 저택에 살고 있지만, 재산을 탕진한 술꾼 오빠가 학대를 일삼지. 종놈 비슷하게 들인 집시 소년이 하나 있는데, 소녀의 오빠로부터 신체적 학대를 받아내고, 소녀와 둘도 없는 친구처럼 자라나.

다 자란 여자가 된 소녀는 부잣집 청년의 청혼을 받게 돼. 그리고 받아들일 마음이 있어. 여자는 가정부와 이야기 하면서, 그가 돈이 많고, 잘생기고, 성품이 좋아서 사랑한다고 얘기하지. 그 지긋지긋한 환경에서 꺼내줄 수도 있고, 자랑스럽게 살 수 있게 해줄거라고도 해.

그런데 뭔가 마음 한 구석이 불편하다고 고백을 하는거야. 부자 청년과 자신은 같은 류의 사람이 아니라는 거야. 반면에 자신과 같이 자라난, 이제는 남자가 된 소년은 자신과 같은,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라고도 하지.

그런데 자신의 오빠가 집시 남자를 너무나도 낮은 위치로 격하시켜 놓아서, 만일 그와 결혼한다면 둘 다 거지 밖에는 될 수 없다고도 말해. (몰래 엿듣던 집시 남자는 이 시점에서 밖으로 뛰쳐나가버려.)

그리고 여자는 계속해서, 부자 청년은 마치 숲속의 초록색 잎처럼, 계절이 바뀌면 사라질 종류의 사랑이고, 집시 남자는 그냥 자기 자신이나 다름없다고 해. 자기 자신처럼, 평소에 막 좋아하거나 하진 않지만 숲의 바닥에 견고하게 위치해 있는 바위처럼 당연한, 그가 없으면 자신도 살 수 없는 그런 존재라고 하는거야. 그리고 덧붙여서, 부자와 결혼해서 집시 남자를 도와줄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하지. 그게 자신이 결혼하는 이유 중에서 가장 훌륭한 이유라고도 해.

집시 남자는 이미 밖으로 뛰쳐나간 상태였지? 안 그래도 우중충한 곳인데, 그 날 밤에는 유독 강한 바람이 불고 태풍이 불어. 비가 심하게 내려서 집시 남자가 곧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지만, 돌아오지 않아.

여자는 그가 어디 갔는지 몰라서 걱정을 하면서 밤을 새. 너무 마음 고생을 해서, 열병을 앓지. 그렇게 여자의 부잣집 남자와의 결혼 선택은 굳어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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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고딕 문학작품으로 알려진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의 유명한 한 장면이야. 그나마 마음에 드는 표지가 유독 드물어서 이거 찾느라 고생했네. 우중충한 언덕 그림이 많아서 그런가? 예쁘게 그릴 수도 있을텐데 말이야.

주인공 여자의 이름은 캐시, 집시 남자의 이름은 히스클리프야. 책을 안 읽은 형들도 어디서 들어본 것 같지 않음?

이 작품은 암울하고 음산한 기후와 배경, 그것을 닮은 캐릭터들을 그려내서 고딕이라고 얘기를 하기도 하는데, 집착적인 사랑을 키워갈 수 밖에 없었던 두 사람의 이야기야. 서로 같은 영혼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둘 다 선하지도 않고 남에게 피해도 줄 수 있는 사람들로 그려지지.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진 몽환적인 서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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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폭풍의 언덕 (1939)의 한 장면. 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멀 오버론

현실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하는 것은 진부하고 흔한 이야기지만, 주인공 여자는 일단 두 남자를 다 사랑은 한다고 말하되, 분명한 차이를 두지. 그럼 오늘 질문은 이거야.

비록 집시 남자가 여자의 얘길 다 듣지는 못했지만, 들었다고 하더라도 이미 알고 있지 않았을까? 만일 여자의 이야기를 다 들었다면, 그녀의 말대로 그녀는 자신을 진실되게 사랑한다고 수긍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현실을 인정하면서, 다른 남자보다 자신을 더 사랑한다고는 생각했을까? 또는 여자를 결혼으로 일단 "소유" 하게 될 부자 남자에게 뺏기는 감정이 더 강했을까?

그냥 이 문제에 대해서 자유롭게 의견 개진을 해주면 돼.

이제 질문을 할 때는...검색을 동원해야 하면 단답형, 자의적으로 답할 수 있는 의견...이렇게 둘 중에서 유형을 정해서 내야겠어. 지난 회차는 검색을 해서 낼 수 있는 의견이라 어려웠나봐 ㅠㅠ

자 이제 지난 회차 얘길 해야지. 지난 회차에서는,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토마스 만의 트리스탄의 인물들과 무슨 관계이고 그것에 대한 생각이 뭐냐고 물었었어.

사실 일일이 비교를 하면서 무슨 관계라고 하는 것보다는 생각 부분이 중요한데...이번엔 (소수지만) 다들 대단히 훌륭한 답변을 해줬네.
@sitha형은 단편 트리스탄과 트리스탄과 이졸데 전설 간의 유사성을 전반적으로 정리해줬고, @choim 형은 전설 속 트리스탄의 여러 모습을 단편의 캐릭터들이 표현한 것 같다고 했고, @simtole 형은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남녀 역할이 단편에선 바뀐 것 같다고 했지! 다 굉장히 독창적이라 놀랐어.

그런데 이번에는 @yourwisedentist 형의 답변을 선택했어! 답변에 소정의 보팅을 할게. (그리고 다른 형들한테도 약간씩 할게! 워낙 소수만 참여했고 다들 성의 있는 답변을 남겼으니까!) 선정한 이유는 이래.

단편 트리스탄의 저자 토마스 만은 항상 예술가와 생활인의 차이에 대해 고민했어. 예술가는 몸이 빈곤하고, 영혼이 살아 있어야 하는 인물이지. 꼭 돈을 못 벌어서 빈곤하다기보단...생활에서 활력을 느끼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범적인 생활인으로서는 예술을 할 수 없다, 나아가 두 종류의 완전히 다른 인간들이라고까지 생각했어.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인, 성공을 이루거나 이루어가는 생활인 vs 중2병에 걸린 것 같고 건강하지 못하며 비현실적인 예술인.

중2병이라곤 안 했지만, 사춘기라는 개념에 관심이 많았지. 사춘기 같이 집착적이고, 다소 유치하고 반항적인 정신이 없이 글을 쓸 수 없다는 그런 뉘앙스가 강하게 느껴지는 소설, 또는 그런 발언을 직접 하기도 했지. 그것은 이 작가가 본 "데카당스", 타락과 죽음에 처한 예술에게 그가 제시한 하나의 길이기도 했어.

그래서 단편 속의 초라한 작가 슈피넬은 영웅적인 인물 트리스탄과는 닮지 않았지만, 철저한 생활인인 남편과의 대조, 그리고 부인의 "영혼"에 대한 접근을 통해서 트리스탄적인 존재가 돼. 물론 거기에는 블랙코미디적인 요소가 다분히 있어. 예술인을 자처하지만 뭐 그리 대단한 예술을 하는 인물이었을까? 글쎄. 하여간 자조와 동정이 섞여 있는 시선이야.

@jeank 형은 남편에게 편지 보낸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지? 맞아. 어떤 사회 코드로 봐도 웃기는 짓이야. 여인의 남편은 슈피넬의 편지를 받고 아주 팩트폭행을 하면서 슈피넬을 몰아붙여.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한 장면이야.

그러는 동안 결국 부인은 숨을 거두고, 그가 야만인이라 부르던 남편은 울음을 터뜨리며 그녀에게 달려가지. 그리고 그녀가 남긴 튼튼한 사내아이, 그리고 육감적인 보모가 서 있어.

어찌됐든, 결국 그 남편은 행복하게 다시 살아갈거야. 하지만 이졸데를 잃어버린데다가 남편에게 팩트폭행을 당한 작가 슈피넬은? 단편은 그런 여운을 남기면서 끝나.

그래서, @yourwisedentist 형이 말한 "슬픔 속에서 태어난" 트리스탄의 이름 뜻이 아주 핵심적으로 느껴졌어. 맞아, triste-가 포함된 단어는 "슬픔"을 내포하고 있지. 그리고 "태어난"이란 말이 중요해. 세상의 모든 트리스탄들은 태생적으로 사업가 남편과 같은 인물과는 다른 사람인거야. 적어도 저자 토마스 만은 그렇게 "다른 두 종류의 사람"을 표현하고자 했어.

같은 종류, 또는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 따로 있다...폭풍의 언덕에서도 비슷한 주제가 흐르지.

그럼 이번 회차 답변도 기대할게. 하루만에 또 돌아올테니깐, 그때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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