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주의]
안녕, 3일째 부지런하게 돌아오는 깨알 같은 문학이당. 오늘은 약간 다른 글을 갖고 왔어.
고전 문학이라고 할 만한 작품 중에서 특히 산문의 경우, 솔직히 안 읽어본 작품을 찾아보는 게 더 힘들긴 해. 그런데 그에 비해 시는 많이 읽어본 편이 아니야. 셰익스피어 소네트도 다 못 읽었다.
그런데 외우고 있을 정도인 시 구절이 몇 개 있지. 오늘은 그 중에서 하나를 소개하려고 해. 시 한 구절도 깨알 같은 엑기스일 수 있겠지? 매우 짧으니까 원문도 같이 올린다.
I sometimes hold it half a sin
To put in words the grief I feel:
For words, like Nature, half reveal
And half conceal the Soul within.
반쯤은 죄악으로 여겨질 때가 있네,
내가 느끼는 슬픔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말은 마치 자연처럼 반은 드러내고
반은 감춘다네, 내 안의 영혼을.
알프레드 테니슨과 그 가족
알프레드 테니슨의 In Memoriam A.H.H. 라는 시의 다섯 번째 연의 첫 구절이야. 테니슨에게는 A.H.H라는 이니셜의 이름을 가진 친구가 있었는데, 죽었어. 그래서 이 시의 제목은 A.H.H.를 추모하며...라는 뜻이지. 시라는 걸 따로 한글로 읽은 적도 없고 그래서 그냥 거의 어순까지 똑같이 두고 직역하다시피 했어.
이번은 별다른 설명 없이 넘어가겠어. 그게 나을 듯...일상에서 슬픔을 느낄 일이 잘 없어서 말이야.
이번 회차의 질문은, 그냥 슬픔에 대한 위의 구절에 대한 느낌에 대한 거야. 읽고 든 생각을 자유롭게 써줘. 그 중에서 그냥 눈에 들어오는 답변을 선택할게.
음...주제가 슬픔이니까, 내가 유투브에서 본 제일 슬픈 영상 하나 걸어둔다. 내가 폭력의 미학의 좋은 예시로 드는 영상이야. 그 내용은 개인적으로 정치적으로는 불가피했다고 보는 의견이지만, 그런 걸 떠나서 슬픈 영상이지.
폭력의 미학
배경 음악은 평소에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 중 한 명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곡 Morgen (내일) 이야. 주로 늦은 밤이나 새벽 동틀 무렵에 깨어 있다면 듣는 노래지. 사실 가사는 표면적으론 전혀 슬프지 않거든. 그러나 독일어이니 쉽게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럼 이제 지난 회차 답변 선택 이야길 할게.
영화 폭풍의 언덕 (1939)
지난 회차에서 든 장면에서, @zzing형, @ioioioioi형, @kimthewriter 형을 비롯해서 몇몇 형들이 너무 절절하게 주인공 히스클리프의 버림 받은 입장에 이입한 답변을 써줬어. 그래서 가장 슬픈 심정을 잘 묘사한 답변을 뽑을까도 생각했지, 순간적으로.
한편으로 @bookkeeper 형, @calist 형, @hee4552 형처럼 캐시의 사랑은 온전한 사랑이 아니다, 이기적이다는 의견도 많았어. @newiz 형이나 @napole 형처럼 상황을 탓하고 이해하거나 슬퍼했을 것이라는 답변도 있었지.
그래도 일단 핵심은 폭풍의 언덕의 여주인공 캐시가 주인공 히스클리프를 자기처럼 사랑한다며 동일시한다는 점이야.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특별히 설레거나 하지도 않고 당연히 그곳에 있는 존재라는 식의 이야기를 하지. 그래서 동일시의 개념에 착안한 @nosubtitle 형이랑 @choim 형, @yourhoney 형의 답변을 잘 들여다봤어.
동일시하기 때문에 굳이 그와 결혼하기보다는, 경제적 자유를 줄 수 있는 다른 남자에게 가서 "자기 자신"인 히스클리프를 돕겠다는 생각...어쩌면 진짜로 자기 자신처럼 생각하니까 가능한 발상일 수 있겠지. 내가 굳이 잘해주지 않아도, 노력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가장 잘 이해해줄 상대처럼 말이야.
그중에서 @nosubtitle 형이...그런 사랑을 현실화하려면 거슬리는 장애물이 결국 현실이니까, 그걸 바꿔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으리라는 얘길 해줬어. 생각해보니까 그런 사랑보다는 순간적으로 느끼는 매력 때문에 오히려 리스크를 짊어질 수 있을 것 같더라고. 그런 당연시되는 사랑은 더 귀중하겠지만 어떤 과감한 행동을 하게 만들진 못하는 것 같아. 그래서 그 답변을 채택하고 소정의 보팅을 할게.
실제로 히스클리프는 그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성공하고, 복수심을 품고 돌아오게 되지, 두둥. 물론 자기 자신처럼 사랑한다던 여자에 대한 복수를 생각했던 순간도 있긴 있었겠지만, 결국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복수심이야.
그럼 "슬픔을 말로 표현하는 것"에 관한 이번 회차 답변 기대할게. 다음 회차에서 봐.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