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알 같은 문학 28 + 27회차 답변 선택

[반말주의]

형들 안녕! 주말이라 돌아온 깨알 같은 문학이야. 오늘은 특정 작품이라기보단 한 작가를 소개해볼려고.

근데 그 전에 90년대 브릿팝 이야길 하나 해야겠다. 뜬금없지만 읽어보면 이유를 알게 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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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현상금 수배 포스터를 연상시키지만, 전통 있는 영국의 음악지(현 웹사이트) NME 표지(1995)

위 표지에 실린건 그 엄청나게 유명한 오아시스의 리드 싱어 리엄 갤러거(우), 그리고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많이 유명한 블러의 리드 싱어 데이먼 알반(좌)야. 아마 저때만 해도 엄청 투닥투닥하고 상대방의 음악을 비하하고, 언론에서도 괜히 그런 이미지로 부추기고...그러면서 오아시스가 얼마 안 되어 압도적으로 치고 나가서, 세계적으로 잘 나가게 될 줄 아직 몰랐을 때일거야.

이후에 블러의 한 멤버가 그랬었지. 전투는 블러가 이긴 것도 같았고, 그땐 몰랐지만 결국 전쟁은 오아시스가 이겼다고. 사실 둘이 스타일이 많이 달라. 일요일 저녁이니까 그래도 뽀송뽀송하고 기분 좋아지는 걸로 골라서 노래 하나씩만 올려볼까.

블러(Blur): To the End

오아시스(Oasis): She's Electric

블러가 초반에 영국에서 좀 더 우세했던 이유 중 하나로, 데이먼 알반이 훨씬 더 소녀팬 취향으로 생겼어서일거라고 생각해.

내 경우는 본업으로 자료 조사 하다가 90년대 팝 음악이나 문화 같은거 꽤 접하게 되거든. 그러는 와중에 블러 vs 오아시스 상황에 대한 당시 방송이나 그런거 많이 읽고 듣고 봤었지. 그러다가 듣게 된 건데, 영국의 어느 방송인가 잡지인가에서 대충 아래와 같은 '유우머" 멘트가 있었어.

"리엄 아니 (리엄은 글 못 읽으니까) 노얼이 도서관에 갔는데, 거기서 OO이라는 작가 책을 빌렸어. 그런데 딱 펼치자마자, 그 책을 먼저 빌린 데이먼 알반이 대출자 카드에 써놓은 글을 발견했지. <주인공은 끝에 농부랑 결혼한다.>"

일명 "스포일러"지. 서로 시시콜콜하고 쩨쩨한 걸로도 다투는 앙숙이니까, 저딴 걸 써놓고 책 읽는 재미를 떨어뜨릴 거라는 얘기야. 물론 둘 다 애초에 도서관 가서 책 빌릴거 같지는 않음.

위의 이야기에서, 오아시스가 도서관에 가서 빌린(걸로 되어 있는) 책의 작가 이름은 캐서린 쿡슨(Catherine Cookson)이라고 해. 두 밴드의 이미지에 절대 맞지 않는 잔잔한 영국 농촌을 배경으로 한, 뭐 말하자면 통속 소설을 많이 쓴 작가야. 농촌 문학? 전원 문학?이라고 할 수도 있겠네.

그런데 여기서 유추할 수 있는 하나의 사실이 있지. 블러랑 오아시스가 사이 안 좋다는 건 둘째치고, 소설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약이 오르려면, 애초에 반전이 아주 크게 있어야 하겠지. 다른 말로 하면, 반전을 알아버리면 내용을 보는 게 무의미해지는 그런 작품이어야 한다는 얘기야. 가령 '유주얼 서스펙트'나 '식스센스'처럼 결말을 알면 보는 재미가 떨어지는 영화들은 다 반전이 중요한 영화들이잖아. (개인적으로는 둘 다 그닥 놀라운 반전이라곤 생각 안하지만 말이야.)

그럼 캐서린 쿡슨이라는 작가의 작품들은 1) 농촌이 배경이다, 2) 반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정리할 수 있겠지. 거기에 더할 거는...많은 작품을 썼고 많이 영화화도 되었다는 사실이야. 물론 TV용 영화로, 영국에서 종종 방영이 되었겠지? 어쩌면 지금도?

나는 시대극을 좋아해서, 책은 딱 한 권 봤지만 영화는 찾아서 많이 봤다. 그리고 확신할 수 있었어. 아, 캐서린 쿡슨이 쓴 글에서는 반전이 정말 중요하구나...

한국에서도 전원을 배경으로 하는 그런 옛날 드라마들 있을거야. 영국에선 캐서린 쿡슨 작품이라고 하면 딱 그런 거야. 농촌 드라마의 배경이 된 소설! 그리고 이러한 캐서린 쿡슨 TV영화는 영국의 젊은 배우들의 등용문이 되기도 했어. 몇 명만 예로 들어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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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제타 존스, 잭 다번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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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미드 '로마'의 줄리어스 시저 역을 맡게 된 키어런 하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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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히 좋아하니까 큰 사진으로 넣은 숀 빈(맨 오른쪽). '왕좌의 게임'에 나온 모습과 너무 다르다ㅠ

책을 한 권 읽고 다수의 영화를 본 내가 추가할 수 있는 내용이 몇 개 더 있어.

1)농촌이 배경이다
2)반전이 중요하다
3)로맨스가 있다
4)로맨스의 주인공은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상황에 있고, 누구를 택하는지가 주로 결말의 "반전"이다.
5)책이든 영화든 몇 개 보다보면 그래도 좀 예상이 잘 된다

(농촌을 제외하면) 딱 전형적인 통속소설의 특징들이기도 하고, 요즘의 드라마랑도 다를 게 없는 특징이기도 해. 요즘은 주로 여자들이 시청하는 드라마가 많으니, 남자 주연과 그에 못지 않는 매력의 남자 조연이 있고 거기서 갈팡질팡하고, 시청자들도 편으로 갈라지기도 하고 뭐 그러잖아? 아닌가?!

그렇긴 한데, 요즘의 드라마들이 다 나름대로 멋진 사람들 중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이라면, 캐서린 쿡슨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좀 뜻밖의 인물과 이어지거나, 아 '쟤는 자주 나오긴 하지만 좀 아니다' 싶었던 인물과 잘 되거나, 뭐 좀 그런 편이야. 설령 예상 가능한 상대와 잘 된다고 해도, 먼 길을 돌고 돌아서 서로 만나게 된다고 할까, 좀 그래.

예시를 들어볼까. 아래는 캐서린 쿡슨의 The Dwelling Place(여기서는 은신처 정도로 이해하면 됨.)의 줄거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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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많은 동생들을 떠안게 된 10대 소녀 시시. 그녀는 집이 넘어가자 동생들과 뿔뿔이 흩어지지 않기 위해 동굴로 들어가서 집처럼 꾸미고 산다.
삶은 고달프고, 그녀를 좋아하는 마을 청년이 도움을 주지만, 현실적으로 이어지기는 너무 힘들다. 결국 청년은 그녀를 더 잘 도울 수 있도록 방앗간집 딸과 결혼한다. 방앗간집 딸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시시 문제로 종종 싸우게 된다.
시시의 어린 남동생들은 탄광에 가서 일하고, 여동생들은 부잣집 하녀로 들어가지만, 그래도 서로 도우면서 함께 살려고 최대한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지주의 자식들을 거스르게 된다. 누나인 딸은 천성이 못됐고, 남동생인 아들은 나약하다. 누나가 부추겨서, 남동생은 시시를 강간하게 되고 시시는 아이를 갖게 된다. 자식들의 악행을 본 지주는 아들에게 벌을 주기 위해, 해군에 입대 시켜서 멀리 보내버리고 딸에게는 외출을 금지한다.
시시는 아이를 낳는다. 마을 청년은 격분하지만,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된 그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다. 동시에 지주는 손자가 태어난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직접 키우도록 달라고 요청한다. 그리고 이런저런 일로 인해 결국, 시시는 아들을 내어주게 된다.
그 후 지주의 나약했던 아들이 변해서 돌아오게 되고, 시시로부터 아이를 뺏지 말라고 한다. 그리고 동생들과 아들을 데리고 다 같이 살 수 있는 좋은 집을 마련해주고, 사죄를 한다. 비록 시시가 그를 사랑하게 되거나 하지는 않지만, 결국 시시를 그토록 좋아했지만 현실로 인해 다른 여자에게 간 마을 청년보다는 죄를 뉘우친 지주의 아들에게 여지가 더 열려 있다.

요즘은 물론이고, 책이 나왔을 당시인 1971년인가?에도 논란이 있었을법한 전개이고, 아마 상당한 비난이 있었던 걸로 본 것 같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의 도움을 받다니?! 물론 좋은 집을 얻어준 것보다는, 아들과 함께 살 수 있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시시는 그를 용서하게 돼.

나는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만 봤는데, 시종일관 도움을 주던 마을 청년이 비록 현실과 타협해서 결혼을 해버렸지만, 결국에는 어떻게 일이 풀려서 주인공과 잘 되지 않을까 하는 느낌으로 전개가 되었어. 둘 다 안타까운 감정을 계속 가진 걸로 나왔으니까. 그러다가 결말이 가까워지면서, 갑자기 무슨...결말이 참 허탈하면서도 진짜 이상하더라고.

그러면서도 수긍이 갔던 부분은 캐릭터의 반전 그 자체였어. 계속 잘해주고 최대한 도와주고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시시와 동생들을 책임질 수는 없었기에 현실을 택한 남자, 그리고 큰 잘못을 했지만 사죄하고 실질적으로 책임을 진 남자는 물론 너무 극단적인 캐릭터들이야. 하지만 실제로 현실에서 우리는 "선한 캐릭터"이지만 마지막에 실망을 안겨주는 경우, 그리고 "악한 캐릭터"이지만 의외의 도움을 끝까지 주게 되는 경우를 만나볼 수도 있어. 내가 누구에게 그런 사람들이 될 수도 있고 말이야.

캐서린 쿡슨 식의 전개는 황당하고 어떻게 보면 캐릭터가 붕괴하는 것 같지만, 그 작가에게는 어쩌면 산다는 것 자체가 아이러닉하고 예측을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인생관이 있는 것도 같아.

(물론 그에 앞서, 마치 우리가 결말을 알기 위해 추리 소설을 읽듯이, 독자가 줄거리에 몰입하도록 하기 위해 반전의 재미를 심어놓는 것이 더 중요했으리라고도 생각해.)

그 외에도, 위의 줄거리에서 보듯이...선악 구분이 별로 없어. 이렇게 보면 정말 나쁜 놈인데 저렇게 보면 누군가에게는 둘도 없는 은인인 캐릭터라던가...부인에겐 정말 잘못했는데 의붓 딸에겐 유일한 희망이었던 캐릭터라거나...남편과 시어머니에겐 몹쓸 여자이지만 나름대로 정당화되는 여자라던가...

캐릭터들을 보는 시각에 따라 "아니 무슨 저런 X이..." 하게 될 수도 있고, 사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어. 통속 작가라지만, 이런 선악에 대한 구분이 흐릿한 것이 또 매력이야. 그걸 매번 아주 세련되게 해낸다고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오...현실적인데?'라고 생각하게 만들지.

그리고 캐서린 쿡슨 특유의 반전은 바로 이러한 흐릿한 선악 경계에서 나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누군가가 갑자기 다른 속내가 있었음이 드러나게 되고, 영 아니다,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 인물이 의외의 면을 보이기도 하니까. 그레서 결말이 반전이라고 생각이 되는 것이고 말이야.

어쨌든, 그래서 "주인공은 끝에 농부와 결혼한다" 식의 스포일러는 캐서린 쿡슨 애독자에게는 절대 용납이 될 수 없는 것이겠지? 그래서 경쟁자인 블러가 오아시스의 책에 그렇게 써두었다는 얘기가 나온 것일테고 말이야.

이번 회차에서는 그냥 편하게, 실제 인생에서 본 캐릭터 반전의 사례가 있다면 알려줘. 혹시 뭔가 특이한 사연이 있는 댓글이 있으면 골라서 보팅할게!

지난 회차에서는 10대 소년의 비밀일기인 수 타운젠드의 에이드리언 몰 시리즈를 이야기했었어. 그래서 여러 형들이 학창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서 이야기해줬는데...그 중 @susunhwa 형에게 보팅을 했어.

원래는 1인만 선택하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한 사연이 여럿 있었고, 이제 깨알 같은 문학을 1주 1회만 연재하니까...경우에 따라선 1인 이상 고를 수도 있을 것 같아. 그래서 그 외에 @kibumh, @energizer000 형의 댓글도 선택했는데, 시간이 지나서인지 보팅이 안 되니깐 댓글을 따로 남겨줘. 혹시 이번 회차 답변도 할거라면 그건 보팅 안 하고 남겨둬야 하니까, 다른 대댓글 아무거나 하나 남겨줘. 거기다가 할게...

그럼 이번 회차 답변도 기대해볼게, 형들. 남은 일요일 잘 보내고, 다음 회차까지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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