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 주의]
안녕, 주말마다 연재하기로 해놓고 또 잠깐(?) 쉬다 온 깨알 같은 문학이야. 요즘 바다-욕조, 바다-욕조 생활을 하면서 발바닥이 불어서 갈라지는 바람에, 어제 오늘 계속 걷기 좀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그래서 날씨 좋은 토요일인데도 글이나 쓰고 일찍 잘라고. 하루라도 빨리 낫게 발에 뭐라도 바르고 누워버려야지...
지난 회차가 오래 됐기 때문에 기억하기 쉽지 않을 거야. 그냥 자기 인생에서 만난 '반전' 캐릭터 이야길 해보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여러 사람이 달아준 댓글 중에서 크게 재미는 없지만 가장 애써서 작성한 @cowboybebop형의 답변을 선정했어. 여기서 댓글 내용 확인할 수 있음! 아, 카비형은 보팅 받을 댓글을 달아라...
오늘 이야기할 문학 작품은 유명한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추리 소설이야. 가장 유명하거나 뛰어난 건 아니지만, 그냥 오늘 문득 떠올라서 말이야. 아래 사진에 작품 제목에 대한 힌트가 있어.
사이프러스 나무
책의 제목은 슬픈 사이프러스(Sad Cypress)야.
왜 제목이 이럴까? 셰익스피어의 십이야(Twelfth Night)에 이런 구절이 있지.
Come away, come away, death, (죽음이여, 여기로, 이리로 와서)
And in sad cypress let me be laid (나를 슬픈 사이프러스 나무 사이에 눕혀줘.)
Fly away, fly away, breath (숨결아, 날아가 버려라.)
I am slain by a fair cruel maid. (아름답고 잔인한 처녀가 나를 죽였으니.)
제목과 그 출처가 되는 셰익스피어 극 대사에서 알 수 있듯이, 크리스티의 슬픈 사이프러스는 젊은 여성이 주인공이자 살인자로 몰리는 스토리야.
마치 스포일러처럼 "몰린다"고 말해버렸지만, 사실 스포일러가 아니야. 주인공인 이 젊은 여성이 실제 살인자가 아닌 것은 거의 자명하거든. 탐정 포와로는 이 여자의 억울한 상황을 풀어내고 진짜 살인자를 찾는 임무를 받게 되지.
추리소설이 거의 그렇듯이 여러 사람들이 살인 용의자의 면모를 갖고 있어. 독자는 그 중 어느 캐릭터가 진짜로 살인을 저질렀는지 나름대로의 추측을 해가면서 읽게 돼.
이번 [깨알 같은 문학] 회차에서는 실제 소설 내용과는 무관하게, 가장 범인일 것 같은 캐릭터를 골라보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 어차피 검색으로 알 수 있으니, 정답보다는 그냥 스스로 생각하기에 유력한 인물, 그리고 그 이유를 간단하게 적어주면 한 답변을 선택해서 원래 하던대로 소정의 보팅을 할게.
그럼 간단한 줄거리와 용의자들을 알려줄게.
엘레노어는 로드니와 친척 사이이고, 어릴 때부터 그를 좋아했어. 어른이 된 둘은 자연스레 약혼을 하게 되지. 엘레노어에게는 부유한 과부 고모가 있고, 그 고모가 아프기 때문에 머지 않아 막대한 유산을 물려 받게 되어 있어. 고모는 남편 쪽 친척인 로드니도 아끼기 때문에, 그 둘의 약혼을 매우 기뻐하지.
사실 엘레노어는 로드니를 굉장히 깊이 사랑하고 있어. 반면에 로드니는 좀 뭐랄까, 감정이 별로 없어. 그래서 엘레노어 역시 자신의 감정을 숨기고 다소 실리적이고 정에 이끌린 듯한, 우정 같은 약혼 관계를 연기하지. 로드니가 질려서 떠나버릴까봐 무섭거든.
그런데 고모에게는 메리라는 숨겨둔 딸이 있어. 몰래 낳은 자식이기 때문에 산지기 부부에게 맡겨서 키우도록 하지. 그러면서 유학도 보내주고 지원을 하는거야. 엘레노어와 로드니는 오랜만에 함께 고모를 찾아가고, 거기서 로드니는 메리에게 첫 눈에 반해버리게 돼. 로드니는 항상 엘레노어가 이성적이고 감정이 절제되어 있다고 좋아했었는데, 완전히 비이성적으로 감정에 충실하게 행동하게 되고, 결국 엘레노어와의 약혼은 깨지게 되지.
마침 그때 고모가 갑자기 돌아가시게 되는데, 유언장을 남기지 않아. 그래서 자연스레 가장 가까운 친척 엘레노어에게 모든 유산이 남겨지게 돼. 하지만 그녀는 이미 로드니를 잃었고, 그래서 고모의 저택을 처분하게 돼.
사건은 엘레노어가 저택을 떠나기 전에 일어나. 엘레노어와 고모의 간호사, 메리가 함께 집에서 점심을 하는데, 메리가 갑자기 죽는 거야. 사인은 모르핀이야. 사건이 일어나기 한 일주일쯤 전, 고모의 병환 때문에 집에 있었던 다량의 모르핀이 사라졌었거든. 그 모르핀을 훔칠 기회는 집안에 있던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었지만, 엘레노어는 약혼자를 뺏긴 상황이었고 함께 점심을 먹었기 때문에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가 돼.
그럼 다음은 등장 인물들이야. 아래 사진에서 왼쪽~오른쪽으로 본 순서는 탐정 포와로, 엘레노어, 로드니, 메리, 주치의, 간호사 1, 간호사 2, 고모, 메리의 짝사랑남...
포와로 TV 시리즈 중 슬픈 사이프러스 출연 인물들
그리고 나머지는 경찰, 판관, 변호사, 가게 주인 등 쩌리들이야. 전체 줄거리를 자세히 얘기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중요 인물들은 다 거론했어. 그럼 다음은 주요 인물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야. 이게 있어야 추리해볼 건덕지가 생기겠지?
엘레노어- 약혼자 로드니를 메리에게 뺏긴 상황이다. 메리, 간호사 1과 함께 점심식사를 하던 날 메리가 죽었다.
로드니- 메리에게 반해서 오랜 약혼녀 엘레노어와 이별한다. 엘레노어가 써둔 유언장에서 주요 상속인이다.
가정부- 전통성에 대한 고집이 있고, 메리가 가식적이며 로드니를 의도적으로 유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메리를 싫어한다.
주치의- 엘레노어의 고모를 오래 돌봐왔고, 엘레노어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녀를 버린 로드니에 대해 분개한다.
메리의 짝남- 메리를 짝사랑하는데, 상류층의 교육을 받은 메리가 이미 자신과 다른 수준임을 알고 있다.
간호사1- 메리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호감을 갖고 있으며, 메리가 죽던 날 점심 식사를 함께 했다.
간호사 2- 간호사 1과 같은 조건이지만 점심 식사 당시에 없었다.
소설에 나온 대로의 정답이 중요하진 않기 때문에 정보도 자세하게 일일이 알려주기보다는, 그냥 선별적으로 제공했어.
그럼 이번 회차의 질문은 이거야.
그냥 위에 나온 정보만 봤을 때, 위 인물들 중, 누가 메리를 죽였을까?
거듭 말했지만 소설에 나온 정답인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고, 주어진 정보에 기반한 창의적이고 기발한 답변을 택할게! 오랜만이어서 다시 찾아봐야겠지만 아마도 40퍼로 했던 것 같아. 깨알 같은 문학으로 가급적 다음 주말에 돌아오면서 발표하겠어.
참, 원래 퀴즈를 내는 것만이 이 시리즈의 목표는 아니었으니 ㅋㅋ 이 작품의 주제들에 대해 조금 써볼게. 슬픈 사이프러스의 주제는 사랑, 돈, 계급으로 볼 수 있어. 작품 초기에 로드니와 엘레노어는 수입이 적은데도 부유한 고모 덕에 돈을 아끼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오지. 둘의 관계가 흔들리면서, 엘레노어는 처음으로 시련을 겪게 되는 거야.
그리고 엘레노어는 감정을 숨기는 것이 로드니를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잃고 나서는 알 수 없게 되지- 그녀의 생각이 옳았던 것인지, 틀렸던 것인지. 엘레노어와 메리는 삼각관계 속에서 라이벌이 되지만, 계급이 다르기 때문에 엘레노어는 메리에게 감정 표출을 하지 못해. 엘레노어는 심지어 고모가 남겨준 유산에서 메리의 몫을 떼어 주기도 하는데, 메리가 밉지만 고모가 그것을 원했다고 생각하고 망자의 소원을 존중하는 것이 도리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지.
행동은 그렇게 했지만, 엘레노어는 메리를 죽이고 싶다는 강한 감정에 사로잡혀. 물론 실제 죽이진 않았지만 말이야. 메리와 함께 점심식사를 하는 동안에 그 감정은 최고조에 달했었고, 메리는 그 날 죽어버리지. 그래서 엘레노어는 자신이 정말로 무죄라는 자신감을 갖지 못해. 누군가를 죽일 만큼이나 미워한다면 그건 곧 살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성서의 가르침도 있지만, 아마 본연의 양심만으로도 그렇게 느낄 수 있나봐.
슬픈 사이프러스는 이 포스팅의 맨 처음에 말했듯이 아가사 크리스티의 가장 유명하거나 가장 좋은 평을 받는 작품은 아니야. 하지만 작가의 작품들 중, 미묘한 인간 관계에 대해서 특히 잘 다룬 쪽에 속한다고 생각해. 그리고 비록 여주인공 엘레노어와 라이벌 관계에 있긴 하지만, 메리는 전형적인 골드 디거형 캐릭터가 아니라 악의가 없는 매우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캐릭터라는 점이 흥미롭지.
참고로 이 소설에서 '진실'이 드러나는 과정은 거의 법정 씬에서 다뤄져. 나는 법정 드라마도 좋아하지만, 영상으로 옮길 경우 뭔가 탐정 포와로의 역할이 확 줄어들고, 아마도 박진감이 떨어진다고 느낄 사람들이 많겠지? 그래서 포와로 TV 시리즈에서는 연출을 상당히 다르게 처리했더라. 그건 새로 시작한 Jem tv 시리즈에서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다뤄봐야겠다. 그럼 다음 회차까지 안녕! 되도록 다음 주말 중에 돌아올게ㅠ
p.s. 나 음악 시리즈 이벤트도 하고 있는데, 내일 밤까지 열려 있으니 관심 있는 형들은 그것도 참가를 권해볼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