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구경하러 갔다.
그런데,
꽃이 기다리고 있다.
날 구경하려고.
작년 벚꽃이 필 무렵 마르케스의 백 년동안의 고독을 필사하기 시작했다. 나는 부엔디아 사람들의 이야기에 너무나 매혹된 나머지 손으로 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버렸던 것이다.
'하루 한 페이지'라고 분량을 정해 놓았지만 건너 뛴 날도 많았다. 사실 나는 시작만 잘 하는 사람이다. 즉흥적인 계획을 세우고 열정을 불태우다가 하루 아침에 이제 그만하기로 한 것들이 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필사의 즐거움은 올 봄까지 이어지고 있다. 총 460페이지인데 이제 264페이지를 지나고 있다. 오늘의 할당량을 채우면 벚꽃을 보러 나간다.
벚꽃은 날 기다리고 있다. 그러니 벚꽃이 마음껏 날 구경하도록 해줘야겠다. 벚꽃이 날 만지고 싶어한다. 떨어지는 꽃잎을 얼굴에 맞으며 걷는다. 사람들이 없어지면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도 한다. 그러면 벚꽃만화경 속에 들어간 기분이 든다.
특히 밤의 벚꽃은 비현실적인 공간으로 날 초대한다. 벤치 위에 누워 검푸른 하늘이 하강하는 것을 기다린다. 눈 앞에 순백의 꽃잎이 춤을 춘다. 벚꽃은 나를 본다. 그 순간 나는 밤하늘에 박제되고 벚꽃들이 찾아보곤 하는 별자리가 된다.
오늘밤에도 벚꽃 밑에 누워있다가 들어와야겠다.
생각의 단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