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팀시티] 총수 지원 탈락의 변

DQmSuTi9QZvKdYvoEgKSzDqJZFJdQKFtoDE1BdyLUQAAmia.png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시원찮은 이웃 풍류판관입니다. 저는 총수를 지원했고 장렬히 탈락하고야 말았습니다. 대신 연구위원직을 맡게 되었군요. 주된 업무는 스팀시티에 대한 법무 지원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로써 스팀잇에서는 변호사 일 나부랭이는 하지 않겠다는 제 결심도 무너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 맞는까요. 스팀시티 프로젝트 총수 뿐 아니라, 사실 삶 전반에서 되새겨보아야 할 중요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roundyround 님과 @hanyeol 님이 총수로 내정되어 있던 것은 하늘도 알고 땅도 알고 있었지만 전 잠시 동안이나마 그걸 모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읽었네요. 마감 한 시간 남은듯요. 일단 지원합니다! 지금 글 2개 읽었는데, 나머지 다 읽고 지원하면 늦을 거 같아서요!

마감 한 시간을 남겨두고 지원한 것도 그렇고 마법처럼 마법사 멀린님을 만난 것도 그렇고, 어쩌면 제가 총수를 하는 것 또한 운명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죠.

마법사님과 면접에서, 총수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마법사님의 질문에 저는 다음처럼 답했습니다.

저는 크립토커렌시에 대한 이해가 높지 않고 기획 업무를 해본 적도 없으며, 리더를 해본 적은 더더욱 없습니다. 즉 저는 다른 분들만큼 준비된 사람이 아니라 기대하신 훌륭한 성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에서 완전 백지장 같은 사람이니 기대하지 못한, 전혀 엉뚱한 결과물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모 아니면 도입니다! 망할 수도 있지만 대박이 날 수도 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한 번 이 자리에 욕심을 내보았으면 어땠을까, 어쩌면 먼 훗날 가장 후회하는 일이 되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어차피 월급으로는 절대 인생이 바뀌지 않습니다. 조직이 주는 안도감에 기대며 살 위인도, 시대도 되지 못 하고요.

저는 조직에서 성공한 사람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제 아버지는 큰 기업에서 부대표까지 해보셨고, 제 친척 중 한 분은 검찰 고위직에 계셨죠. 지인 중에는 S그룹을 거의 일으키다시피한, 지금 병석에 있는 모 회장에게 삼촌 소리를 듣던 S그룹 퇴직 임원 모임의 이사 분도 계십니다.

그랬기에 조직의 직함이라는 것이 결코 자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회사 내 파워 게임에서 밀려 지금 수모를 참고 나올 날만 기다리고 계시고, 황제 검사라는 소리를 듣던 영화 주인공 같던 제 친척 분은 영화 속 악당 마냥 감옥에 가게 되었습니다. S그룹을 거의 세우다시피 한 그 분은 책 한 권에도 자기 업적이 온전히 기록되어 있지 않으며 나이가 100살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없습니다.

반면 지금도 동사무소를 가면 9급 공무원들에까지 90도로 인사를 하는 어떤 중소 기업의 사장 분은 나이가 90세가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할 일이 있고 찾아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어차피 언제인가 떠날 세상 온전히 자기 것이 원래 어디 있겠냐만은 조직에서의 자리라는 것은 더 수명이 짧더군요. 100세까지 산다는 이 시대에, 50대에 잠깐 반짝할 가능성 정도만 있는 자리를 보고 살아야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의 꿈을 대신 이뤄주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그런 점에서 총수 자리에 좀 더 의욕을 보였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물론 부모님은 반대를 했을 겁니다. 살아보면 다 별 거 없다, 학창 시절 배포가 크고 호탕하게 생활한 친구보다 큰 일은 하나도 못할 것처럼 소심하게 꾸준히 자기 일만 파고들던 친구가 지금 보니 가장 잘 살고 있더라는 식의 이야기들을 하셨을 겁니다. 또한 벌써 사업을 해서 만회할 수 없을 만큼 실패한 동년배 친구들, 과장스레 자신의 성과를 드러내기 좋아하고 수십억이라는 돈이 아무 것도 아닌냥 으스댔지만, 정작 필요한 시점에 자기에게 투자 좀 해달라는 乙의 입장을 쉽사리 드러냈던 제 친구들은 요즘에는 결코 조직에서 나오지 말라는 조언을 왕왕 하곤 합니다.

무엇이든 High Risk, High Return이겠죠. 무엇이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은 사실 뻔합니다. 문제는 인생은 한 번이라는 것입니다. 투자라면 큰 리스크를 지지 않고 안정적인 종목을 여러 개 보유해서 누적 수익률을 높이는 게 답입니다만 인생은 한 번이기 때문에, 그 리스크를 지지 않으면 결국 안정적이지만 평범한 결과만을 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평범 이상으로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진 사람은 위험에 자신을 내맡기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어차피 언젠가 리스크를 안을 생각을 했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이번 스팀시티의 총수를 전임하는게 맞았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제가 예상치 못했을 많은 고난들이 어찌 없겠냐만은 적어도 마법사님이 제안하신 이 사업의 구상은 다른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것과는 달리, 성공을 의심하기 어려운 매력적인 비즈니스로 보였으니까요.

그럼에도 결국 총수 자리에 적극적 지원하지 않은 것은, 이 글 서두에 밝힌, '사람은 자신이 잘 하는 것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이며, 과연 이 총수 자리가 제가 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쉽사리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총수로 선정되신 조대표님 같은 경우 제가 크립토커렌시가 무엇인지 알기 전부터, 이 스팀시티 프로젝트에 적합한 기술을 개발해오셨습니다. 또한 라운드라운디 님 같은 경우 실제로 구현되어야 할 스팀시티의 오프라인 마켓과 유사한 카페를 운영해본 경험도 있으시죠. 즉 제게 총수 자리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기회였습니다만 이 분들에게는 삶을 관통해온 인생의 주제 그 자체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물론 쌓아온 경험이 전부는 아니겠죠. 하지만 경험의 문제를 떠나 과연 제 타고난 기질이 총수라는 자리에 맞는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저는 괴팍한 성격으로 학창 시절 반장에서 잘린 적이 있습니다. 흔하지도 않을 뿐더러 유쾌한 경험도 아닙니다. 저 풍류판관에게, 당신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덕이 있냐고 누가 질문한다면,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답 밖에 드릴 수 없습니다. 즉 제 기질이 이 자리에 있어 강점으로 작용할지는 의문입니다.

또한 인생을 걸고 아직 초입 단계에 불과한 프로젝트를 앞장서서 이끌고 나갈 용기가 있는지도 확실하지 않습니다. 실은 예전에도 스스로에게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과연 직장을 그만두고 언젠가 전업 글쟁이로 살 수 있을 것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No였습니다. 나는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하지만, 실은 저는 '전 틈틈히 글도 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그냥 스스로 맥 없는 월급쟁이라는 걸 인정하기 싫어 좀 더 튀는 자기 소개나 하길 희망하는 부류의 사람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자신을 속이지는 않습니다. 네 저는 용기가 부족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그런 자기 분석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쉬운 부분이 있더군요. 예전 포르투갈 왕이 국운을 걸고 인도와 무역로를 개통할 사령관을 뽑을 당시의 일입니다. 오래 동안 머리를 싸매다가 머리가 너무 아팠던 그는 그냥 길에 가는 사람을 사령관으로 지정했죠. 그 사람은 바로 불세출의 탐험가였던 바스코 다 가마였습니다. 피에르 가르댕은 선택의 기로에서 동전을 던져 진로를 결정했고 유명 디자이너가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전술한 수 많은 결격 사유에도 불구하고 한 번 저도 스스로의 운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제가 근무하는 회사 로비에는 새로 런칭된 차량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른 출근 시간, 졸림을 이기지 못한 어떤 신입 사원이 그 안에서 잠을 자다가 마침 그 시간 차량 문을 열어 본 총수에게 들켜 회사에서 잘렸다는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옵니다(제가 알기로는 실화입니다). 만약 이 회사에서 잘리면 그것도 운명이라는 생각이 들어 요즘 티브이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하는 모델의 차량에 들어가 잠을 청했습니다. 하지만 근무 시작 시간까지 아무도 그 문을 열지 않더군요.

이로써 제 운은 총수와는 맞지 않는다는 최종 결론을 내게 되었습니다. 다만 연구위원의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원할 생각입니다.

예전 90년대, 사법연수원에서 꼴찌를 했던 어떤 변호사는 선호하는 직장에 취업이 되지 않자, 그냥 별 생각 없이 친구가 세운 10명 규모의 게임회사에 취업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회사는 대한민국 3대 게임 회사 중 하나로 성장했고, 그 분은 그 회사의 등기임원이 되어 당시 판검사를 갔거나 대형 로펌을 취업한 사람들이 모두 그 친구를 부러워한다고 하는군요. 제가 예측하는 스팀시티의 미래는 이보다 밝습니다. 총수는 되지 못했지만 이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고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어 기쁩니다.

마법사님이 말씀하신 인류 역사의 공진화적 측면 뿐 아니라, 저 풍류판관이 미래에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이 프로젝트를 응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스포입니다만 플리마켓 이벤트 때 방문하신 분들을 대상으로 타로 카드를 보아드릴 생각입니다. 저 보고 싶으신 분들은 오세요.

6월입니다.

감사합니다.

[스팀방송국 (총수발표)] 어느 날, 갑자기.. 총수님들을 찾았습니다.
[스팀시티] 마법에 걸린 어느 날
한 박자 쉬고, 두 박자 쉬고, 세 박자 마저 쉬고, 하나 둘 셋 넷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82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