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다드기타 1장

인도의 경전인 바가다드기타를 읽으면서 이 책은 역사서이며 경전이기에 성경공부를 하는 듯했습니다.. 한 왕조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되며 안에 담긴 메세지나 종교관은 당연히 차이가 있겠지만, 해석하는데 있어서 그 시대의 문화나 가치관에 대한 이해가 필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제 얕은 이해에 조금은 아쉬움을 느꼈습니다.
인도에는 인도의 사람이 다 알지 못할 만큼 신의 수가 많다고 하는데, 이를 증명하듯 바가다드기타 곳곳에 토테미즘적 신앙이 묻어납니다. 아직 제가 읽는 곳에는 나오지않았지만 서론에 따르면 맛쓰야(물고기신), 와라하(멧돼지신), 꾸르마(거북신)등 신이 등장하는데요, 생명체는 물론이고 산, 강, 호수, 돌등에도 신이 깃들어있다고 믿는다하니 놀랄일은 아니겠지만요. 처음 바가다드기타에 대한 제안글을 읽고서 무엇보다도 인도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인도의 인구수는 세계 2위로 2007년도 약 12억 8천 1백만명이라고 하니 앞으로 변화할 세상에 영향을 끼칠 것도 물론이거니와 영화 세얼간이에서 보였던 모습이 인상깊었었거든요.

라고 시작은 하게 되었지만 말입니다 어찌하다보니 [천가지감天歌之感] 의 첫 주자는 되었으나 인도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합니다.

세번 읽었는데 사실 너무 어렵거든요 하하하하하하하



내용상으로는 분명 흐름에 따라 편히 읽으면 되겠지만, 분명 인물 하나하나 요소 하나하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담긴 뜻이 어마어마하게 많을것 으로만 추정하며 아는만큼 보인다고, 제눈엔 그저 역사서로만 읽혔습니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배경적 지식이 있는 읽지않던 성경을 꺼내 읽고싶은 마음이네요(웃음) 회귀본능이겠지요.


@peterchung/bhagavad-gita
@peterchung님의 제안글입니다.





우선 1장에 들어가기에 앞서 그 전쟁의 서막에대해 다뤄진 내용에서는요

[요약]
판다왕이 죽고난 후 그 동생 드리트라슈트라가 왕이되고 판다왕의 다섯형제들을 거둬 자신의 100명의 아들들과 양육하게 됩니다. 그러나 드리트라슈트라의 맞아들인 듀료다나가 이들 판다바스(판다왕의 오형제)를 시샘하여 죽이려는 계획을 짭니다. 판다바스들의 어머니 쿤티는 그것을 알고 피해 살아납니다. 그리고 이웃나라의 국왕이 사위를 고르는 시험에 지원자를 받고 브라만으로 변장한 판다바스 오형제와 사촌인 듀료다나도 참가하게 되는데, 판다바스중 셋째인 아르쥬나가 이기어 공주와 결혼하게 됩니다. 여기서 어머니 쿤티가 좋은 것은 나눠가져야지 하고 말실수를 하여서 어머니의 말은 절대적인 것이라 오형제와 공주가 결혼하게됩니다. 드리트라슈트라의 명으로 국토의 절반중 강유역 황무지를 판다바스들에게 주게되고 사촌 듀료다나는 역시 시샘하여 땅을 빼앗으려는 계략을 꾸밉니다. 판다바스들은 땅을 모두 빼앗기고 결국 친지들을 등에 진 채 전쟁을 하게 됩니다.
그 전쟁의 시작에서부터 바가다드기타 1장이 시작됩니다.

1장에 들어가기 전,

판다다스들의 어머니 쿤티는 세 번째 아들 아르쥬나가 이웃나라의 국왕의 딸 드라우파디와 다섯 아들을 모두 결혼하게 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왕조의 역사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경전에서는 한 번의 말 실수로 나오지만 이것은 왕비였던 어머니로서의 지혜가 담겨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듀로다냐의 시샘을 알고 있었기에 그가 결혼하려던 드라우파디가 사촌인 아르쥬나와 결혼하게 되자 분명 또다시 음해하려는 계획을 세웠으리라 짐작하기 때문이죠. 아무래도 다섯명이라면 죽음의 위협이 줄어들게 될테니까요? 또 결혼은 세력을 확장하는데 쓰이기 때문에 다섯 아들과 드라우파디가 일처다부제의 모양으로 모두 결혼하게 되고, 이를 통해 강한 임금과 결탁하게 됩니다.


여기서 얼핏 든 생각이. 일처다부제의 모양이어서 혹 여성의 지위가 높았을까? 한다면 오산인 것 같아요. 사위를 뽑는 시험에서 셋째 아르쥬나가 우승한 뒤 어머니에게 돌아와서는 '아르주나가 큰 상을 받았습니다.'라고 이야기하였고 어머니는 무슨 상인지도 모른 채 '너희들 모두가 그 상을 나누어라'라고 나누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결혼한 판다바스들에게 땅을 주지 않고 듀로다냐는 그 국토를 다 차지하려고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드리타라슈트라가 왕국의 절반을 갈라주는데 이에서도 지혜가 엿보입니다. 겉으로보기에는 황무지이고 가장 나쁜땅처럼 보이지만, 강유역인지라 열심히 개척만 하면 훌륭한 도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보고 시샘많은 듀로다냐의 눈엔 쓸모없어보이는 그 땅을 무려 국토의 절반을 판다바스 오형제에게나눠줍니다. 또 이 다섯 형제는 우애가 좋아 맏형인 유디슈트라를 왕으로 세웁니다.
듀로다냐의 탐욕은 이에 그치지 않고 계략을 짜서 그 국토마저 빼앗아버린 뒤 돌려주지 않습니다. 선한 판다바스들임에도 결국은 전쟁까지 일어나게 됩니다. 또 전 인도가 가담하게 되는데요 이렇게 전 인도가 가담하게 되는 데에는 판다바스들 다음은 주변국인 자신들이 될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요? 혹 아시는 분 계실까요:)


이후 친족들 중 한 사람인 크리슈나는 지혜를 발휘하여 자신 또는 자신을 제외한 나머지 친족들 중 선택하라고 합니다. 도울 이를 고르라는 것이죠. 이는 이익을 위하여 자신의 도움을 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신의를 저버리지 않을 사람인지를 보는 덕목인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나 판다다스들이 크리슈나 한 사람을 선택한다.듀료다나는 수가 훨씬 많은 크리슈나를 제외한 나머지 친족들을 선택하죠. 그런데 크리슈나는? 인도의 최고 3대신 중 하나인 비슈누신의 여러 아바타중에서 근원이 되는 존재라고 합니다. 같은 인물이며 나중에 신격화 된것이겠지요? 관우처럼요.


동시에 중의적인 표현으로는 신에대한 마음에 대해 돌아보게하지 않나 싶어요. 기독교로친다면 기복신앙을 가지고 이익만을 위하여 신을 구하는 사람은 이익앞에선 신의 뜻을 놓아버리지요. 그러나 자신의 이익이 아닌 진정 신의 뜻을 구하는 신을 택하는 사람에게는 노름을 좋아하는것과같은 죄된 약한 모습이 있더라도 결국엔 승리를 선사해주신다는 뜻이 담겨있지 않았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봅니다. 판다바스들이 나중에 전쟁에서 승리하거든요.


이어서 1장의 시작과 함께 전쟁도 시작됩니다.


전쟁터에는 [판다바스와 크리슈나 vs 드리트라슈트라의 맞아들 듀료다나와 그의 형제 백여명]의 구도입니다. 판다바스들은 자신의 형제들과 마주하고 있으므로 굉장히 힘들어합니다. 형제들에게 칼을 겨누고 어찌 행복할 수 있겠냐고 말합니다.

LiÉÉ³É WûliÉÑÍqÉcNûÉÍqÉ blÉiÉÉåÅÌmÉ qÉkÉÑxÉÔSlÉ |
AÌmÉ §ÉæsÉÉåYrÉUÉerÉxrÉ WåûiÉÉåÈ ÌMüÇ lÉÑ qÉWûÏM×üiÉå 󰍓
etānna hantumicchāmi ghnato'pi madhusūdana |
api trailokyarājyasya hetoḥ kiṁ nu mahīkṛte 󰍓
그들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들이 비록 나를 죽이려 할지라도.
악마 마두를 죽인 자, 크리슈나여!
삼계의 모든 왕국을 위해서도 아니할진대
어찌 겨우 이 땅의 이익을 위해서 이겠습니까.



친족들과의 전쟁을 피하고싶은 처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그들이 비록 자신을 죽이려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들은 할아버지, 스승, 삼촌, 형제, 아들, 손자, 친구들끼리 서로 양쪽에 마주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두료다나 한사람의 시샘으로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만, 역사서는 승자의 입장에서 쓰여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혹여 판다바스들의 행적이 미화되었을 가능성도 없지않아 있고 우상화되었을 가능성도 엿보입니다.만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절대 사실이 아니라 혹 1%라도 그럴 수 있겠다라는 개인적 추론입니다:)

ÌlÉWûirÉ kÉÉiÉïUÉ·íɳÉÈ MüÉ mÉëÏÌiÉÈ xrÉÉeeÉlÉÉSïlÉ |
mÉÉmÉqÉåuÉÉ´ÉrÉåSxqÉÉlWûiuÉæiÉÉlÉÉiÉiÉÉÌrÉlÉÈ 󰍓
nihatya dhārtarāṣṭrānnaḥ kā prītiḥ syājjanārdana |
pāpamevāśrayedasmānhatvaitānātatāyinaḥ 󰍓
드릐따라싀띄라의 아들들을 죽인다고
우리들을 위해 어떤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자나르다나'여!
가증스러운 저들이라도 죽인다면
그 죄악은 우리가 치르게 될 것입니다


iÉxqÉɳÉÉWûÉï uÉrÉÇ WûliÉÑÇ kÉÉiÉïUÉ·íÉlÉç xuÉoÉÉlkÉuÉÉlÉç |
xuÉeÉlÉÇ ÌWû MüjÉÇ WûiuÉÉ xÉÑÎZÉlÉÈ xrÉÉqÉ qÉÉkÉuÉ 󰍓
tasmānnārhā vayaṁ hantuṁ dhārtarāṣṭrān svabāndhavān |
svajanaṁ hi kathaṁ hatvā sukhinaḥ syāma mādhava 󰍓
우리들이 자신의 친족들인 드릐따라싀띄라의 자식들을 죽이는 것은
그러므로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자기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행복이 가능하겠습니까? 마다와여!


rɱmrÉåiÉå lÉ mÉvrÉÎliÉ sÉÉåpÉÉåmÉWûiÉcÉåiÉxÉÈ |
MÑüsɤÉrÉM×üiÉÇ SÉåwÉÇ ÍqɧÉSìÉåWåû cÉ mÉÉiÉMüqÉç 󰍓
yadyapyete na paśyanti lobhopahatacetasaḥ |
kulakṣayakṛtaṁ doṣaṁ mitradrohe ca pātakam 󰍓
비록 탐욕에 억눌린 마음인 그들은
가족의 파괴를 자행하는 잘못과
친구를 배반하는 죄악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지만 위와같은 인물적 설정은 사실일거라고 생각도 동시에 들었어요. 성경에서도 많은 인물이 비슷한 성정을 품고 있었거든요. 끊임없이 어려운 상황 힘겨운 상황에서도 계속해서 악행을 용서하고 신의 의중을 구하고.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도 '저들이 저들의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하고 자비를 구하셨듯이요.

아르쥬나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저들 앞에서 나의 살갗이 타들어가는 듯 하다고. 친족들에게 활을 겨누고 마음이 찢어질것 같이 아프고 그 슬픔에 손이 덜덜 떨린다고 말이죠. 몇해전만해도 이웃이며 함께 대화를 나누고 인사를 나누고 집안의 경사엔 서로 축하해주며 좋지 않은 일에는 함께 슬퍼하던 친구이며 가족이니까요. 가슴이 타들어가는 아르쥬나의 심정 이해가 되시나요?


xÉÏSÎliÉ qÉqÉ aÉɧÉÉÍhÉ qÉÑZÉÇ cÉ mÉËUvÉÑwrÉÌiÉ |
uÉåmÉjÉÑ¶É vÉUÏUå qÉå UÉåqÉWûwÉï¶É eÉÉrÉiÉå 󰍓
sīdanti mama gātrāṇi mukhaṁ ca pariśuṣyati |
vepathuśca śarīre me romaharṣaśca jāyate 󰍓
나의 삭신들은 내려앉으며 나의 입은 타들어가노라.
그리고 나의 몸에서 전율이 (일어나고 온 몸의) 털이 곤두서는구려.


aÉÉhQûÏuÉÇ xÉëÇxÉiÉå WûxiÉɨuÉMç cÉæuÉ mÉËUS½iÉå |
lÉ cÉ vÉYlÉÉåqrÉuÉxjÉÉiÉÑÇ pÉëqÉiÉÏuÉ cÉ qÉå qÉlÉÈ 󰍓
gāṇḍīvaṁ sraṁsate hastāttvak caiva paridahyate |
na ca śaknomyavasthātuṁ bhramatīva ca me manaḥ 󰍓
(나의 활) 간디와는 손에서 미끄러져 떨어지고 살갗마저 타들어갑니다.
(몸은) 서 있을 수 없으며, 그리고 생각은 헤매고 있습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많은 생각이 들며, 몸은 가누기가 힘들 정도이고 손에 쥔 활마저 쥘 힘이 나질 않는 아르쥬나입니다. 혹 아르쥬나는 이 상황에서 자신이 국왕의 사위를 고르는 시험에서 승리한 것에 대해서 자책하지 않았을까요? 아니면 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을까요? 선한 마음을 놓지 않으려하는데도 불구하고 계속되는 살해의 위협과 핍박과 고난 속에서요. 신의 뜻을 그토록 구하였는데도 결국은 모든 땅을 빼앗기고 친족들과 칼을 켜누게 되었으니 말이에요. 전쟁이 일어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읽어보면 지금의 감정선이 이해가 갑니다.


저는 사실 이부분에서 많은 공감이 일었어요. 신의 뜻대로 살기 위해서 그 의중을 구하고 계속해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면서도 이 판다바스들처럼 지속적으로 힘든일이 많이 있었거든요. 용서하고 용서할수록 듀료다나와 같은 이들은 더 잘못을 모르고 죄를 지을 뿐이었죠. 그래서 내가 저들이었다면 저런 원망이 일지 않았을까 싶어서요. 이런 저런 생각을 해보았어요.

ÌlÉWûirÉ kÉÉiÉïUÉ·íɳÉÈ MüÉ mÉëÏÌiÉÈ xrÉÉeeÉlÉÉSïlÉ |
mÉÉmÉqÉåuÉÉ´ÉrÉåSxqÉÉlWûiuÉæiÉÉlÉÉiÉiÉÉÌrÉlÉÈ 󰍓
nihatya dhārtarāṣṭrānnaḥ kā prītiḥ syājjanārdana |
pāpamevāśrayedasmānhatvaitānātatāyinaḥ 󰍓
드릐따라싀띄라의 아들들을 죽인다고
우리들을 위해 어떤 즐거움이 있겠습니까?
'자나르다나'여!
가증스러운 저들이라도 죽인다면
그 죄악은 우리가 치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토록 신의 의중을 구하며 죽음에 내몰려진 상황에서도 혹여 신앞에서 죄를 짓게 될까 염려하는 모습마저 보입니다. 그것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신의 거룩한 기준에 맞춰 살아가고 싶기 때문일 거에요. 세상과 비교하게 되면 나는 이정도면 바르게 살고 있지 하고 타인과 비교하며 자신이 짓는 작은 죄들에대해서 간과하기 쉬우니까요. 타인의 더 큰 죄앞에서 자신의 큰 죄도 물론이거니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인도의 경전을 읽으면서 성경에서의 신에대한 모습으로 해석하고있어요.
무지하니 용서해주셔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신에대한 신앙심에 본질적으로는 같은 자세가 있지 않았을까 싶은 마음이 크게 들기도 하네요: )

사실 판다바스들이 국토를 다시 빼앗긴데에는 왕으로 세웠던 첫째의 약한 부분을 약점으로 잡혔기 때문이에요. 노름을 좋아했는데, 듀료다나가 이를 알고 타짜처럼 계략을 세워서 하나하나 다 강탈해버립니다. 첫째왕 둘째셋째 어머니 , 집마저 하나하나 다 빼앗겨버려요. 노름에 계속 지면서요. 이런 모습마저 인간적이어서 더 와닿아요. 만약 판다바스들이 신과 같은 완전한 모습이었다면 공감할 수 없었을 거에요. 죄앞에 나약한 인간의 모습이 여실히 담겨있는, 그러면서도 동시에 신에게의 다가섬을 멈추지 않는 끈기있는 신앙관입니다.

iÉxqÉɳÉÉWûÉï uÉrÉÇ WûliÉÑÇ kÉÉiÉïUÉ·íÉlÉç xuÉoÉÉlkÉuÉÉlÉç |
xuÉeÉlÉÇ ÌWû MüjÉÇ WûiuÉÉ xÉÑÎZÉlÉÈ xrÉÉqÉ qÉÉkÉuÉ 󰍓
tasmānnārhā vayaṁ hantuṁ dhārtarāṣṭrān svabāndhavān |
svajanaṁ hi kathaṁ hatvā sukhinaḥ syāma mādhava 󰍓
자기사람을 죽이고 어떻게 행복이 가능하겠습니까?
우리들이 자신의 친족들인 드릐따라싀띄라의 자식들을 죽이는 것은
그러므로 그럴 가치가 없습니다. 마다와여!



친족을 죽이고 어떻게 행복이 가능하겠냐는 물음에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대로라면 아담과 하와 이래 사실 모두 형제여야 하는데요.
세계는 전쟁이 끊이지 않고 서로 죽고 죽이고...
큰 시공의 틀에서 지켜본다면 결국은 친족을 죽이는 것일테니
어쩌면 진짜 행복은 서로 사랑하는데서 시작될지도 모르겠어요.
아르쥬나의 말처럼요.

사실 이런 살생에대한 거부감과는 다르게 전쟁은 판다바스들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신의 뜻이 함께한 것이지요. (2장을 살짝 엿보고오니 크리슈나신께서 설득하시는군요.)
그들이 단순히 착해서 도우려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끊임없이 신의 의중을 구한데에 신의 마음을 얻게하는 힘이 있지 않았을까요?


화자와 독자가 만나 대화를 해야하는데 혹여 저혼자 계속 제멋대로 생각한 건 아닌지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만읽으면서 저 나름의 기도를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갔다면 용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peterchung 님 덕분에 인도경전을 다 읽어보네요. 감사한 마음입니다. :)





끝으로 이번 장과 비슷하다 느껴지는 다윗의 시 몇소절 놓고가요.

시편 14편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
그들은 부패하고 그 행실이 가증하니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시편 142편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다음 [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다드기타 2장은 @levoyant 님께 토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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