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여성으로 미국사회에 산다는 것 / The Tru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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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과 이것저것 옛 이야기 했다. 0 촌이자 베스트 프렌드 답게 내 고민을 받아주고 몇가지 제안을 했다. 그 중 한가지가 스팀에 이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고민 좀 되었는데 암튼 내 스타일데로 써보겠다.

‘진실/the truth' 은 무엇일까? 사실 우리는 그 어떤 외부적 요소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세상의 다양한 이념을 사용해 서로를, 스스로를 지배하려 한다. 내부 의식이 편견, 편협한 아집과 도그마에 빠지지 않게 매순간 노력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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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부는 상당히 보수적이며 그들만의 전통적 리그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백인 남성들이 이뤄온 사회임을 부정할 수 없다. (쉽게 말해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 주연들을 보라) 한식 하우스와 나는 동양인, minority 그룹에 속한다. 스펙은 접어두고, 그는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미국계 동양인 남성. 그가 느끼는 기회와 내가 느끼는 것은 본질적으로 차이가 있는데…

백인, 동양인 등의 미국사회 내에서 피부색에서 비롯된 삶을 흑백 논리로 나누려 하는것이 아니다.
이 글은 순전히 나의 경험과 의견, 내가 지각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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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때. 첫 프로젝트를 하며 입에 꿀먹은 듯한 경험을 몇번 했다. 서양사람들이 주장이 강하고 잘함을 알고 있으시라 생각한다. 교수와 논쟁도 서슴지 않는다. 디자인 과제가 주어졌다. 백인 학생들은 1 가지를 아이디어를 내놓고 그것을 0.1 단위로 의견과 방향을 설명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짧은 발표시간이여도 참관자들과 오가는 대화가 상당하다. 다들 어린나이부터 토론과 발표에 익숙해서인지 내성적, 외향적 성향에 관계없이 의사표현을 정확하게 잘한다.

동양권 문화의 학생들은 한가지 이상을 정교하게 잘 해가는 경우가 많았다. 양과 질 차이가 아니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완성도 높게 보여주는 능력이다. 객관적으로 보아도 다들 디자인 정말 잘한다. 특히 한국 유학생들은 언어가 약할 경우 밤을 세우며 아이디어를 다양하게 준비한다. (그 전념에 교수들도 한국학생을 조교로 고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발표도 물론 잘하는데 확실히 쎄게 나가지는 않는다. 한,중 교포 2세들도 교수를 향해 진짜 좋은 태도를 갖춘다. 중요한 발표날 아니여도 옷 잘입고 가는것도 해당된다. 미국애들은 80% 쪼리 신고 오는데 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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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클래스는 아시안 3, 백인 16, 흑인 1. 다 친했는데 (4 년을 함께 보냈다), 약간의 텐션이 있는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아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곤 했다.
미국애들: “You guys are doing too much! (너네 넘 많이 하는거 아냐?)”
한국애들: (소곤소곤) “쟤는 별거 안해놓고 말을 참 잘해”, “넘 오바한다”

대학생때는 인텐스하게 노력하고 친구들과 실력 키우며 경쟁을 쎄게 해보고 싶었다. 겸손/ 배려/ 조신의 미덕을 따르며 19 년을 살아왔지만 미국에서는 미국 방식을 따라야 내 입지를 강하게 할수 있다. 일단 나는 그 지긋지긋한, 수동적이고 말없는 동양 여성 이미지를 통해 나를 바라보는 기회를 주고싶지 않았다. 통념을 깨며 나의 실력을 더 어필할 수 있을까?

‘오바’를 탑제했다.

내 의사표현을 주저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아이디어를 뻔뻔스럽게 이야기 했다. 아 진짜 머리카락이 두피에서 서는것 같이 떨린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원래 좀 조용히 있으려는 타입인데 여러사람과 토론할때는 질문이건 의견이건 초장에 일단 제시 하고 봤다. 영어가 덜 익어 필터링이 안되 의도치 않게 말이 쎄가 나간적도 있었다. 오히려 좋았다. 한 4-5년 하니 자연스러워졌다. 과 친구들과는 빡센 언쟁, 경쟁, 여행을 함께 하며 아주 끈끈한 사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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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대 중반 부터는 사회생활하며 뭐 달리 생각할 겨를 없었다. 어리고 자신감도 충만했지. 기회도 많이 얻고, 전통적인 협회 조직속에서 발언권 갖는 일도 생겼다. 미디어에서 성별/인종 중심 사회에 억울하다 나오는 사람들 보면… 자본주의에 성별/인종 탓? No way. 실력이 안되서라 생각했다. 동정하지 않았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 갔다. 어느정도 커리어가 안정이 되는듯 하는데.. 나의 기여도에 비해 더 위로 올라가는게 쉽지 않아지는게 느껴졌다... 그것이 피부색 때문 같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포장없이 말하겠다. 나와 같은 스킬이면 백인 남성 / 백인 여성을 선호했다. 건축 업계에서는 동양사람에게 특정 테스크를 주는 경우가 잦은데 이력이 쌓이며 올것 같았던 프로젝트 메니지먼트, 발표의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 준비는 내가 했는데, 발표는 Adam 이 했다. 하아... 나와 동양인 동료들에게 반복적인 테스크가 주어지는 것 같았다. 내 눈앞에도 슬슬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이... 그것이였다. 마침 그 시간대에 나보다 오랜시간 미국에 있다 한국행을 택하는 선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략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일까… 벽이 눈앞에 점점 선명해져 오는것만 같았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몇가지 일화가 있었지만 생략하겠다. 무엇이 진실 인지 이제는 알고있기 때문이다. 그 벽이 원하는 사람들에게만 보인다는 것을…

내 속의 두려움을 듣고 사회가 던진 편견의 미끼를 덥썩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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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be continued...

2편

해외에서 하루 하루 고군분투하시는 모든 분들의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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