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장없이 말하겠다. 나와 같은 스킬이면 백인 남성 / 백인 여성을 선호했다. 건축 업계에서는 동양사람에게 특정 테스크를 주는 경우가 잦은데 이력이 쌓이며 올것 같았던 프로젝트 메니지먼트, 발표의 기회를 잘 주지 않았다. 준비는 내가 했는데, 발표는 Adam 이 했다. 하아... 나와 동양인 동료들에게 반복적인 테스크가 주어지는 것 같았다. 내 눈앞에도 슬슬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벽이... 그것이였다. 마침 그 시간대에 나보다 오랜시간 미국에 있다 한국행을 택하는 선배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략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건축 업계에도 코포레이션은 소수 중심으로 돌아간다. 대표나 윗 사람이 와서 몇마디 하고 가면 마감 전날이여도 디자인을 바꿔야 하는 일이 잦았다. "문을 1 피트만 움직여 봅시다." 간단한 체인지 같지만 사실 몇 인치만 움직여도 문 밖, 계단, 폭, 동선 계산 등 다시 해야한다. 마감 전날 급한 상황에서도 완벽에 가까운 드로잉을 프로듀스하는 멤버들 (특히 동양인들)은 빛을 보았다. 늦게까지 있느라 오버타임을 많이 쓸 수 밖에. 오버타임은 1.5x 의 수당을 받았다. 그렇게 열심히 일하니 승진을 시켜 주는 듯 했다. 오버타임은 더이상 못썼다. 궁극적으로 내가 버는 액수는 그 전과 똑같았고, 업무량은 더 늘어났다.
몇 동료들은 디자인 센스나 언변이 유달리 뛰어나지 않아도 CEO나 클라이언트 미팅 스케줄이 잦았다. 또 그것이 자연스럽게 그들이 프로젝트 리드를 할 수 있는 상황으로 이어졌다. 대부분 백인 동료들이 그에 해당했다. 그들이 참 편안해 보였다.
이런 상황에 봉기라도 몇번 일으키고 싶지만 그냥 순리라 생각하고 승복했다. 중심을 제외한 다수의 역활은 기계 부품이 되는 것 같다. 익숙하시지 않는가? 어느나라의 기업을 가도 마찬가지 일것을. 다만 피부색이 다른 환경에서는 그 차이가 유난히 두드러져 보일 뿐인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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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사회에서 인종을 탓하는 핑계거리를 만들기는 상당히 쉬운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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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인 미 동부에서 올라갈 수록 피부색이 중요함은 사실이다. 당연히 백인들이 더 수월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능력과 재능으로 시스템을 무색하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것이 내가 느끼는 자본주의 미국 사회의 최대 강점이다.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문은 언제든 열려있기 때문이다. 거치는 관문들이 빡셀뿐이다.
스스로를 이겨내려 보낸 시간과 노력 뒤에는 항상 기회가 찾아 왔던 것 같다.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 편안해 졌을때는 뭐라도 한 디자이너인 마냥 행동하는 아집에 빠졌다.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으니 난 인종 탓을 하며 벽을, 유리천장을 스스로 만들고 있었다. 아집과 안일함은 나를 편견에 사로잡히게 했다. 그리고 그 편견이라는 것이 정말 얼마나 못생긴 것인지 보게된 계기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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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방문 후 미국가는 국적기 안. 미국을 비자로 오갈 경우 세관과 입국신고 2가지를 해야하는데 승무원이 세관신고서만 주길래 입국신고서 달라고 물었다.
“아..그 입국.. 그거 없어요. 없어졌어요”
(한국말이 어눌했다. 이름표를 보니 중국계 승무원이었다.)
“입국 신고서가 없다구요?”
“없어졌어요”
“??… 아… 알겠습니다”
일단 대화를 마무리했다. 말이 안된다 느껴서다. 입국해야하는데 신고서가 없는게 말이 안된다. 이 분이 내 질문을 잘 못알아 들었거나 트레이닝이 덜 된것임에 분명하다. 마침 복도를 지나가던 한국인 승무원을 잡고 같은 질문을 다시 물었다.
“입국신고서 주시겠어요?”
“손님 입국신고서 올해부터 없어졌어요. 심사때 온라인으로 자동처리되요.”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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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짧은 순간 나의 두뇌는 중국계 승무원의 어눌한 한국말에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타인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랬는데. 우연히 비춰져 보게된 난 편견과 모순의 뺑뺑이 안경을 끼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어글리함을 알기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휴… 당시를 떠올리니 또 머리 내부가 차가워지는 느낌이다.
비행 내내 지난 시간동안 미국에서 고군분투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더 잘나고 싶어 노력했던 그 세월 속 얼만큼 이뤄놓아도 완벽하지 않은 영어를 들으며 나의 말에 신뢰도가 적다고 느낀 사람이 있었겠지. 내가 그 승무원을 바라보았듯. 아 진짜… 그 때 비행 shitty 했다. (괜히 찔리고 미안한 마음에 그 중국계 승무원이 다시 올때마다 잠든척 했다.) 한국 사회에 자리한 온갖 편견을 삼켜가며 기를 쓰고 일하고있을 그. 그가 잘되길 바란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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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이후 대학원, 그 이후. 나도 결국 편견을 뚫고 미국사회에서 성공한 한국인이 되었… 결말은 진부하기 이전에 불가능하다. (미디어에서 그렇게 그만좀 했음 좋겠다.) 편견은 뚫거나 지우거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절대. 내가 백인, 흑인, 혹 한국에서 일해도 상황과 환경에따라 나를 혹은 남을 향한 편견은 항상 존재 하는 그런 것이다. 하지만 편견을 가시화 하고 따를 것인가 말것인가... 선택권은 있다. 편견은 진실 이 아니기 때문이다.
‘OO 사회의 OO 남성/여성’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단어를 넣으면 언제든 편견에 사로잡힐 수 있다.
나를 사회적 약자로 만들어 보이지않는 벽을 나타나게 할 수 있다.
아니면 나를 강자로 만들어 편협함 속에 자아를 가두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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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동양여성이고 미국사회에 있기 전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다. 그것이 진실 이다. 때문에 나는 아집에 사로잡히고 사회가, 사람들이 만들어낸 도그마와 편견에 빠져 허우적덴다. 편견은 입력되는 순간부터 두뇌 어딘가 깊숙이 자리해 항상 나에게 명령을 보낸다. 특히나 미동부 만큼이나 혹은 보다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나에게는 끊임없는 테스크임을 아주 잘 알고있다.
30대에는 편견을 자각하며 끊임없는 내적 갈등과 사고를 통해 더 지혜로운 선택을 하는 방법을 매 순간 연습한다. 뭐 간단히 말해서 목표가, 내 자아가 보고 싶은 세상이 있고, 가는길에 편견에 빠지지 않기 위해, 혹은 빠져도 빨리 나오려 노력하고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지각이 사회의 도그마에 흔들리지 않고 나아갔으면 한다.
나는 어릴적 부모님 세대가 보여주신 성공시대보다 더 성공한 시대에 살고싶다. 친구들, 동료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진정으로 잘 살아보고싶다. 그렇게 되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세계를 맘껏 누비고 휘졋고 다니는 그런 세상의 도래를 죽기전에 한번 맛보고싶기다. 단지 그 이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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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