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23일.
아침부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비보에..
그만.. 숨이 턱! 막혀왔습니다.
그리고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멍- 하니..
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만..
보고.. 또.. 보았던 것 같습니다.
눈물은.. 한 방울도.. 나지 않았습니다.
도무지.. 실감을 할 수가.. 없었으니까요..
그러다가.. 대장님의 모습에..
김광석 오빠의 ‘부치지 않은 편지’..
그.. 악마의 편집. 같은..
JTBC 뉴스룸.. 영상을 보다가.. 그만.. 펑-!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도무지.. 멈춰지지가 않았습니다.
다음날까지.. 그리고 또.. 다음날 까지..
저는 분명히.. 가만히 있는데.. 눈에서는..
계속.. 물이 흐르고.. 또 흘러내렸습니다.
기억 나세요?
제가.. 대장님을.. 처음 만났던 건..
1992년.. 총선이 한창이던 6월. 이었습니다.
그때.. 대장님은.. 강서구 을. 에..
처음으로 출마한.. 국회의원 후보. 이셨고..
저는.. 조직의.. 피라미 학생. 이자..
선거운동을 돕는.. 자원봉사자. 였었지요..
당선 가능성이 1% 도 없는.. 열악한 상황. 이었지만..
우리는 정말 즐겁게.. 선거를 치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그해 연말.. 대선에서.. 우리는..
백기완 후보의 선거운동. 으로.. 다시 만났었지요..
겨울 바람이 매섭던.. 서울역 광장 유세에서..
대장님과, 김광석 오빠와, 저는.. 각자 다른 위치에서..
그 자리에.. 함께.. 있었더랬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에..
총학생회 집행부를 같이 했던 친구, 연이가..
‘매일노동뉴스’ 에 기자로.. 취업을 하면서..
발행인. 으로.. 대장님을 또 만났었습니다.
이후로..
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를 지지하는..
‘국민승리 21’ 을 거쳐.. ‘민주노동당’ 까지..
저와.. 우리 조직의 동기와 선후배들은..
늘.. 대장님과.. 함께! 였고..
그 시절에.. 우리들의 소원은.. 단 하나! 였습니다.
“우리가 살아 생전에.. 진보 정당 소속으로..
국회에.. 단 1석이라도.. 진출할 수만 있다면..
제발.. 그럴 수만 있다면.. 정말 좋겠다..”
그런데.. 우리의.. 간절했던 소원은..
예상 외로.. 너무 빨리. 이루어지고야 말았습니다.
2004년에.. 대장님이..
국회에 진출! 할 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때.. 정말 얼마나 기뻤는지.. 서로를 부둥켜 안고..
한참동안.. 기쁨의 눈물을 흘렸던.. 기억도 납니다.
물론.. 얼마 지나지 않아.. 당의 내분으로 인해..
‘진보신당’ 으로.. 떨어져 나오게 되고..
‘통합진보당’ 을 거쳐.. 지금의..
‘정의당’ 에 이르기까지.. 많은 아픔이 있었지만..
그리고.. 그 과정에서.. 민주 노동당 시절의..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어냈던!”
그 장본인들과.. ‘통합진보당’ 으로..
다시 통합하는 것을.. 결사코.. 반대! 했던..
제가.. 탈당을.. 하게 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대장님과.. 심블리 언니. 만은..
늘.. 항상.. 저의.. 꿈과 희망! 이었습니다.
스무살, 어린 시절에..
사회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진보 정당’ 을 꿈꾸었던 이래로..
단 한 순간도.. 대장님이 없는..
진보 정당은.. 상상을 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대체..
이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이랍니까.. ㅠㅠ
왜 항상.. 진보는..
티끌 한 점에도 무너져야 하는 건가요..
그래서는.. 저 거대한 쓰레기 산을..
도대체 누가.. 어떻게.. 치울 수가 있을까요..
너무나도 허망하게 떠나버리셔서..
처음에는.. 원망도 컸지만..
우리가 함께 꿈꿨던.. 진보정당. 이 꿈이었는지..
아니면.. 대장님이.. 꿈이었는지..
그것조차.. 헷갈리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이미 몸으로 알아버린.. 학습효과. 처럼..
대장님이.. 살아서 견뎌내셨어야 할..
수많은 고통과 심적 부담과 고뇌 등에 대해..
왜 그런.. 극단적인 선택과 결심을..
하셨을런지.. 그것도.. 너무 잘 알겠기에..
정말 심장이 터져버릴 정도로..
가슴이 아프고.. 또 아팠습니다.
심지어.. 이런 모든 것들도.. 그저..
살아남은 자의.. 자기 변명과 위로. 일 뿐..
이라는 것. 까지도.. 알겠기에..
더더욱..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그래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는 마음에..
세브란스로.. 대장님이 계신 곳으로.. 달려갔는데..
그곳에서..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많은 동기와 선후배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이것도.. 대장님의 마지막.. 선물. 이었을까요..?
각자의 삶에 바빠서..
평소에는.. 잘 모이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이도록.. 하셨던 거 말이예요.
그날.. 모두는.. 맥주잔을 기울이며.. 각자..
대장님에 대한 추억을.. 한 자락씩.. 꺼내놓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마음 아팠던 이야기는..
작년에.. 사모님을 인터뷰했던..
시애 언니의 이야기. 였습니다.
두 분의.. 여름 휴가 계획을 여쭤봤더니..
원래는.. 좋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고.. 푹 쉬기로.. 했다가..
완전히 반대로.. 하기로 하셨다고..
생각해보니.. 그동안..
갖게 된 것들이 너무 많아서.. 비워보기로 하셨다고..
단식까지.. 하기로 하셨다지요..
그 이야기에.. 모두가 무너져서.. 한참동안..
말없이.. 다시 눈물을 쏟고야 말았습니다.
옷도 한 벌, 구두도 한 켤레.. 밖에 없던 분이..
뭐 그리 가진 게 많다고.. 휴가마저도... ㅠㅠ
애초부터 항상.. 대장님은.. 그런 분. 이셨는데..
도대체 무엇이.. 대장님을..
그런 사지로.. 내몰고야 말았던 것일까요..
아직도.. 대장님의 부재가.. 도무지 실감나지 않지만..
그래서.. 작별 인사를 하는 것도.. 어색하기만 하지만..
그럼에도.. 여기에 적었던..
저의.. 마지막 인사를.. 전합니다.
“당신으로 인해.. 희망을 꿈꿀 수 있어서..
참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부디 영면하시길...”
아주 오랫동안.. 사무치게 그리울 것 같습니다...
조국 교수님의 말씀처럼.. 저 역시..
‘진보 정치의 별’ 이 진 것이 아니라..
어느 날, 밤 하늘에..
새로 빛나는 별이 있으면..
대장님. 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이 포스팅에 달린 보팅들은..
@pepsi81 님의.. “추모 노회찬” 글에 더하여..
노회찬 의원님의 유가족께..
부의금으로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