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r-Bookclub]낙관과 비관, 라이프니츠 철학과 볼테르 - 캉디드 혹은 낙관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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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비관적인 사람과 낙관적인 사람을 물컵의 비유를 통해 설명하곤 합니다.

물이 반이나 남았네
물이 반 밖에 없네

하는 이야기를 여러분들 모두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낙관과 비관은 이처럼 단순하게 작용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사례로 한 사람의 내면을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A는 격한 운동 후에 가방 안에 있는 물통을 꺼냈습니다. A는 자신에게 밝은 미래가 있다고 여기며 현실 또한 충분히 낙관적으로 보고 있어 운동과 같은 여가를 기쁜 마음으로 즐기는 사람입니다. 스스로가 행복하게 자랐다고도 생각합니다. 물통을 열어 확인해보니 A의 물통에는 물이 별로 없습니다. 2L라도 단번에 마실 기세로 물통을 열었던 A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왜 물이 이거 밖에 없어?"

A는 비관주의자일까요?

이번엔 사막을 걷는 B씨를 살펴보겠습니다. B는 살던 마을에서 추방당해 사막을 떠돌고 있습니다. B는 추방 당할 실수를 한 자신을 혐오하고 동시에 그정도 일로 추방까지 하는 마을의 제도와 질서도 과하다 여깁니다. 자신을 내쫓은 마을과 주민들은 망할 것이라며 저주도 합니다. 사막에서 살아가는 방법도 모르며 다른 마을이 어느 방향인지도 모릅니다. 자신은 사막에서 홀로 죽어갈 것이며,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도 아무도 모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B는 계속 떠돌다 물통을 하나 발견합니다. 아마 사막을 지나간 행인이 떨어뜨린 모양입니다. 물통을 열어보니 물은 겨우 한모금도 안 될 양이었습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B는 낙관주의자일까요?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물컵의 비유가 얼마나 단편적인지는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그리 단순하지 않습니다.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사람은 다르게 생각합니다. 비관적이면서 동시에 낙관적인 사고도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가령 저는 과거의 제 자신이 부족한 사람이라 여깁니다. 오늘의 저 자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내일의 나 자신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동시에 낙관적인 생각을 가집니다. 과거의 자신도 더 나은 자신이 되어가는 과정이며, 오늘의 자신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의 나 또한 부족할 것입니다. 하지만 역시 더 나은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은 하루가 될 것이라 믿습니다. 저는 비관적인 사람일까요, 낙관적인 사람일까요?

같은 낙관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현실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고 그 긍정적인 면을 확대할 수 있다고 믿는 낙관이 있는가하면 막연한 믿음에서 오는 낙관도 있습니다. 비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긍정적인 면에서도 부정적인 면을 포착하여 이를 고쳐나가려는 비관이 있는가 하면 어떻게 해도 나아질 수 없다는 비관도 있습니다. 성공이 자신의 재능에 귀인한 것이라는 낙관에 오만해져 결국 실패를 맞이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타인들이 성공이라 부르는 것에서도 오점을 찾는 비관적인 시각을 통해 발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비관에 마음을 잠식 당해 발전가능성 자체에 비관적인 사람도 있습니다. 반대로 비관적인 현실에도 낙관적인 생각으로 발전가능성을 믿고 버티며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낙관과 비관은 마음이 가진 무기입니다. 상황에 적합한 무기를 이용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더 시크릿'과 같은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맹목적인 낙관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은 활력을 주지만 이것이 지나쳐서 맹목적인 믿음이 되면 실패를 인정하지 않게 됩니다. 유연한 사고를 해칩니다. 잘못을 고치지 못 합니다. 반대로 맹목적인 비관은 앞으로 나아갈 동기를 해칩니다. 현실은 절망적이며 그러한 현실을 변화시킬 수 없다고 믿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겠죠. 적절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낙관이 비관을 낳기도 합니다. 캉디드의 비관은 낙관에서 태어났습니다. 캉디드의 불행 중 많은 부분은 캉디드가 멍청하고 낙관적이기에 나타났습니다. 캉디드가 충분히 냉소적인 사람이라 다른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면 불행 중 일부는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엘도라도에서 돌아온 후 자신의 부를 노리고 다가오는 사람들을 의심했다면 사기 당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많은 불행의 원인이 자신의 어리석음이라는 비관을 가지고 있었다면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캉디드는 낙관적인 사람이 아니라 어리석은 사람인 것입니다. 캉디드의 낙관은 부정적인 현실에서도 한줄기 희망을 찾는 바람직한 낙관이 아니라 아Q와 같은 정신승리 일 뿐입니다.

반대로 마르틴은 비관이라는 늪에 빠져드는 개인을 상징합니다. 마르틴이 부정적인 현실을 알되 낙관을 지닌 인물이었다면 자신에게 찾아온 캉디드라는 기회를 붙잡아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캉디드의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 캉디드가 더 이상 어리석은 행동을 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르틴은 그러지 않았습니다. 그저 부정적인 현실과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 대한 비관만 가지고 변화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마르틴의 삶이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발전한 것은 '일이나 합시다. 그것이 삶을 견뎌 내는 유일한 방법입니다.'와 같은 생각을 가진 후입니다. 삶을 견뎌낼 수 있다는 작은 낙관만으로도 마르틴의 삶은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팡글로스는 예정조화, 충족이유율 등을 이야기하며 전적으로 라이프니츠 철학을 조롱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물입니다. 이 책을 읽을 어떤 독자도 팡글로스의 태도를 우습게 여기도록 철저히 비합리적이고 망상적인 인물로 설계되었습니다. 하지만 라이프니츠의 시대는 종교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던 시대입니다. 심지어 지금도 서구사회에 존재하는 무신론에 대한 반감을 생각하면 당시 사상가들의 신학에 대한 집착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당시 학자들은 모두 어려서부터 신학을 공부하기도 했구요. 예를 들어 라이프니츠와 동시대에 살았던 데카르트는 뇌가 정신에 끼치는 영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데카르트는 신이 개입한 영혼이 육체에 영향 받는다는 것을 부정하며 심신이원론을 주장했습니다. 뇌의 손상으로 인한 정신적 손상은 영혼의 손상이 아니라 영혼과 별개의 육체의 손상일 뿐이라는 것이죠. 당대에도 비판이 컸을만큼 비이성적인 믿음이었음에도 데카르트는 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종교적 자유가 주어지지 않던 시대에 신을 칭한 것을 모두 자연으로 치환하면 재밌는 결과가 나옵니다. 라이프니츠의 철학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진화는 예정조화에 완벽히 부합하는 예입니다. 최선의 개체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개체가 최선의 개체입니다. 충족이유율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존재하는 이유가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존재하는 것에는 이유가 존재합니다. 아주 여러번 소개하는데 맹점은 분명 비합리적인 구조이지만 이유가 있어서 존재합니다. 맹점에 대해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독자분은 이 글을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라이프니츠 철학은 마냥 조롱 당할 철학이 아닙니다. 비합리적인 믿음으로 송과선에 영혼이 담겨 있다고 믿었던 데카르트가 멍청이가 아닌 것처럼요. 볼테르 본인조차도 무신론자를 철학도 윤리도 갖지 못 한 야만인이라 여겼으니 볼테르 또한 구시대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흰 도화지에 찍힌 작은 검은 얼룩을 포착하는 눈은 검은 도화지에 찍힌 작은 흰 얼룩도 포착합니다. 그리고 이를 무시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마냥 옳게 흘러가는 듯 느껴질 때도 비관적으로 작은 얼룩을 포착하고 이를 개선하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완전함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며, 부정적인 현실 속에서도 낙관적으로 작은 돌파구를 찾는 사람만이 더 나은 삶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낙관과 비관이라는 무기를 자유자재로 적재적소에 활용하며 긍정적, 부정적인 현상을 볼 때 현상 자체를 넘어 그 현상의 이유를 꿰뚫어보는 통찰력도 얻어야 할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글쓰기를 쉬다가 쓴 글이 상상력 릴레이였는데 이번에도 쉬다가 다시 쓰는 글이 북클럽이네요! 재밌는 아이디어 내주신 @vimva 님께 감사드립니다. 책 사진도 빔바님 사진 그대로 이용했는데 괜찮겠죠?! kr-relay 태그를 보았는데 여러가지 릴레이가 혼재하니까 어지럽더라구요. 시간여건상 바쁘신 분들도 많이 계셔서 다음달부터 kr-bookclub 태그에도 두가지 책에 대한 글이 동시에 올라올 수 있으니 썸네일을 통일하는 것도 좋은 것 같습니다. 아예 태그를 분리하면 뒤늦게 글을 쓰시는 분들의 노출도가 너무 낮아질 것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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