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이미지 출처: @lanaboe/5swpsw-hello>
본고는 그림으로 마음을 훔치는 @lanaboe님께 드리는 헌정 포스팅입니다.
@soyo님이 진행하고 계시는 작가 리뷰 이벤트입니다.
@soyo/50sbd
라나 작가님이 연재하시는 〈우리들의 곰 아저씨〉 그림 동화의 그림을 소개합니다.
동화의 내용과 별개로 동화의 등장인물인 ‘곰 아저씨’가 자신의 창조자 라나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라나님께
어릴 적 당신과 함께 놀던 작은 곰 인형 테디를 기억하시나요? 당신과 제가 만났던 곳은, 동네 어귀에서 매월 열리던 벼룩시장에서였지요. 주인이 이사 가면서 저를 비닐에 싸서 옛 집에 버리고 갔고, 마침 지나던 폐지 줍는 할머니가 절 가져다가 벼룩시장의 가판에 올렸습니다.
혼란스럽고 모든 것이 두려웠습니다. 낯선 곳에서 새로운 주인을 만나 잘 지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습니다. 어쩌면 그런 고민은 사치였을지도 모릅니다. 전 손 때 묻고, 헤져서 당장 쓰레기통으로 던져진다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거든요. 그 날 제가 당신에게 팔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할머니는 그렇게 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선한 눈매를 크게 뜨고, 가판들 위에 놓인 장난감들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전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이 세상에서 저를 이해할 유일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러운 헝겊에 불과한 저의 존재를 품어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입니다.
당신이 그냥 지나가면 어쩌나, 하는 새로운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저의 엉겨 붙은 털이 그렇게 부끄러웠던 건 처음이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어떤지, 당신은 내 앞을 그냥 지나쳤습니다. 저의 눈은 당신을 따라 갔지요. 그것이 끝이라고 생각한 순간, 당신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제게 다가와, 저를 들어 이리저리 살폈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 이 곰 아픈 것 같아. 내가 고쳐주고 싶어. 깨끗이 씻겨 주고 싶어.”
“너무 오래된 것 같지 않니? 다른 장난감도 많은데.”
“난 이게 좋아. 새 장난감은 다들 좋아하겠지만, 이건 나만 좋아해줄 수 있을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데리고 가야 할 것 같아. 이 곰은 특별해.”
제가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펑펑 울었을 겁니다. 아무 것도 아닌 저를, 당신은 아무 이유도 없이 받아주고, 사랑해주었습니다.
당신과 전 늘 함께였습니다. 함께 하는 모든 순간이 특별했고, 당신의 손길에 제 털이 닿을 때면 제 가슴은 설렘으로 북받쳐 올랐습니다.
당신과 떨어지게 된 것은 사고였습니다. 당신이 없을 때, 집에서 놀던 당신 동생이 촛불을 가지고 장난을 치다가 불이 제 몸으로 옮겨 붙었습니다. 다행히 금방 불은 껐지만, 제 몸의 반은 타서 엉망이 되었습니다. 전 그것이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당신에게 작별 인사도 못했는데. 차라리 이런 꼴을 보이느니 그 편이 낫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당신 동생은 고맙게도, 날 위해 눈물을 흘려주었습니다. 검은 봉지로 싸서 제 처참한 모습이 보이지 않게 해주었습니다. 그 날로 전 쓰레기들이 모이는 어느 곳으로 떠났습니다. 제 기억도 거기까지였습니다. 당신이 저를 그림으로 불러주기 전까지 전 어둠 속을 헤맸습니다.
당신이 어느 날, 저를 그림으로 불러주었습니다. 불탄 몸 대신, 윤기 있고 부드러운 털을 그려주었습니다. 아무 것도 못하는 작은 인형의 모습이 아니라, 튼튼하고 듬직한 곰으로 재탄생시켜 주었습니다. 전 당신으로 인해 두 번째 생명을 얻게 된 겁니다.
당신은 제가 홀로 외로운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을 그렸고, 저를 위해 보내주시기로 했지요. 작은 새가 친구들을 찾아, 저에 대해 말하도록 했습니다. 작은 새가 저에 대해 말하는 것을 엿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얼마나 특별한 곰인지, 얼마나 착하고, 사랑스러운 곰인지를 아이들에게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작은 새는 당신의 메신저였으니, 그 말은 곧 당신의 말이었습니다. 전 감격했습니다. 제가 이런 사랑을 받아도 되나, 하고 말입니다.
당신이 저를 위해 보낸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습니다. 그들은 당신을 닮아 있었습니다. 선한 눈매, 모든 걸 다 받아줄 듯한 웃음, 조심스럽게 저를 아끼는 태도까지도. 그들은 당신의 모습을 나누어 가진 듯 했습니다. 그들로 인해 전 외롭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배려 때문에 행복한 나날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단 하나 유일한 소원이 남아 있었습니다. 더러운 헝겊 덩어리에 불과한 저를 선택해주시고, 불탄 저를 다시 불러 멋진 곰으로 만들어 주신 당신을, 저의 창조자인 당신을 직접 만나는 것 말입니다.
제 꿈에 당신이 나왔습니다. 우리는 그리운 얼굴을 서로 마주하고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그 침묵 속에 우리의 지난날과 그리움 모두가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 사이에 흐르던 공기가 멈추고, 시간도 침묵했습니다. 당신은 시장 가판대에서 처음 절 보던 그 눈매로 절 바라보았습니다. 꿈이었지만, 행복했습니다.
사랑합니다. 비록 몸은 함께 있지 않지만, 어디서든 당신의 향기를 맡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웃고 어울릴 때, 당신도 함께 있다는 걸 느낍니다. 저를 그려주신 라나님, 당신이 주신 그림의 숲에서 영원히 함께 하길 원합니다. 당신의 연필 끝에서 그려지는 모든 것들이 이 세계를 풍성하게 만듭니다.
마지막 인사는 하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마지막이 아니니까요.
-당신의 곰, 테디가.
따뜻하고 섬세한 라나님의 그림,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lanaboe님의 그림 동화 링크입니다.
(포스팅에 사용된 그림들의 출처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의 곰 아저씨 4편
@lanaboe/4-my-mr-bear
우리들의 곰 아저씨 3편
@lanaboe/6wsvfc-2-my-mr-bear
우리들의 곰 아저씨 2편
@lanaboe/2-my-mr-bear
우리들의 곰 아저씨 1편(예고)
@lanaboe/2gkh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