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물교환의 시대에서 화폐경제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미래가치에 대해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물물교환 시대의 가치는 현재가치에 국한됩니다. 지금 내가 가진 배추랑 네가 가진 닭고기를 교환해야 하니, 눈에 보이는 현재 결과물이 없으면 교환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부피가 크고, 소지가 곤란한 현물 대신, 동전, 지폐 등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화폐를 교환의 매개수단으로 사용하면서 우리는 뻥을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현물이 없어도, 일단 가지고 있는 걸로 간주하고 화폐와 물건을 교환할 수 있게 된 겁니다.
화폐 제조에 보안체계가 갖추어지기 이전에는 누구든 기술만 있으면 위폐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보안 기술이 발달한 지금도 위폐는 여전히 만들어지고 있지만 말이죠. 그러나 화폐는 불안전한 교환 매개수단임에도 불구하고 편의성으로 인해 대표적인 교환 수단으로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산업시대의 시작과 말미암아,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 생산물들은 더더욱 화폐경제의 권력을 가속화시켰습니다. 그나마 금을 매개로 화폐의 가치를 담보하고 있던 ‘금본위제’마저 폐기된 후로는 이제 대놓고 뻥을 치고 생산물들을 소유하고 유통할 수 있게 되었고, 숫자놀음에 능한 슈퍼 엘리트들은 숫자 조작만으로 세상을 지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의 진화속도입니다. 지금의 최첨단 과학기술의 발전과 문명, 초고속으로 성장한 산업시스템은 모두, 이런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미래가치에 의해 형성되었으니 말입니다. 너에게 이만큼의 가치를 줄 예정이니 일단 결과물을 만들어 하면 100층짜리 빌딩도 만들고, 음속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도 만듭니다. 목소리에 얼굴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전화기도 만들고, 인간을 복제하기까지 할 태세입니다. 눈에 보이는 현물만을 교환가치로 인식하던 물질 차원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일을 인간은 해내고 있습니다.
무슨 힘으로 말입니까? 믿음 말입니다. 숫자에 불과한, 통장에 찍힌 아니 찍힐 액수를 믿음으로, 우리는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금본위제를 벗어난 현재의 통화량이 실제의 가치보다 엄청나게 부풀려져서 돌아다니고, 여차하면 하루아침에 종이 쪼가리, 아니 숫자 쪼가리가 될지 모를 화폐를 진짜 가치로 여기며, 우리는 지구를 마구마구 개척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만들어내는 초능력
철수에게 10년 동안 먹을 스테이크를 제공하겠다 약속하고, 그 증거로 계약서 쪼가리와 계약금으로 일 년 치 스테이크 교환권을 내밀면 철수는 산을 들어서 옮겨버립니다. '어떻게 하면 산을 옮길 수 있을까?' 생각하고 생각해서, 산을 파헤칠 포크레인을 만들고, 바위, 흙을 이동시킬 트럭을 만들어서 산을 옮겨버리고는, 10년 먹을 스테이크를 제공받습니다. 그리고 그 산을 옮기는 과정에서 생겨난 부가가치는 하얀 종이 쪼가리를 써준 자본가가 독식합니다. 철수는 그 산에서 나는 열매들만으로도 십 년 동안 스테이크랑 교환할 수 있었음에도, 한방에 십 년치 스테이크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불가능한 일을 가능케 하는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합니다.
이렇게 화폐란 현재가치가 아닌 미래가치를 사는 것입니다. 미래가치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불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핸드폰 없이도 잘 살았고, 자가용 없이도 잘 돌아다녔습니다. 화폐는 자꾸 사람들을 미혹해서 '나를 가지면, 너의 미래가 행복할 거야'라고 세뇌시킵니다. 행복은 현재 시점의 이야기인데 자꾸 미래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상상하게 만듭니다. 이것은 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합니다. 덕분에, 인간은 전에 없는 엄청난 속도로 진화를 이루었고 문명을 발전시켰습니다. 그러나 행복과 삶의 가치는 더더욱 어렵고 복잡하게 변질시켜 버렸습니다.
뭐든 바꿀 수 있는 교환수단을 많이 확보하는 것은 안정감을 줄 수 있습니다. 현재는 단칸방에 살아도, 언제든 뭐든 바꿀 수 있는 고액 화폐들을 장판에 밑에 깔아놓고 모든 것을 가진 것으로 간주하고 뿌듯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 사람이 산 것은 만물이 아니라 안심입니다. 미래에 어떤 일이 닥쳐도 돈으로 뭐든 할 수 있는 세상에 대처할 수 있다는 안심(安心)말입니다. 실제로 뭘 사지도 않습니다. 그냥 일단 가지고 있어 보려는 것입니다. 뭘 사게 될지, 뭘 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일단 가지고 있어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너무 많이 가졌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납니다. 그래서 더 상상합니다. ‘자식한테 일어날 거야, 나는 아무 일도 없었지만 자식한테는 일어날 거야.’ 그러고는 어떻게든 자식에게 교환 수단을 넘겨주려고 합니다. 그렇게 화폐에게 또 속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 일어납니다. 사고가 나고, 집값이 올라 돈이 더 필요합니다. 화폐에 속아, 문명과 산업을 발전시키지 않았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을 대처하기 위해, 다시 화폐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화폐에 충성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까지의 산업화 과정에서 인간의 능력만 보자면, 이미 신의 경지에 올랐다 볼 수 있겠습니다. 우리의 능력은 이제 확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화폐는 인간의 진화를 위한 놀라운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시인류가 보자면 현생인류는 신처럼 여겨질 테니까요.
믿음에 기반한 발전, 뻥에 기반한 진화
그런데 개인의 행복, 삶의 만족도를 보자면 과연 문명과 산업의 발전 정도와 비교하여 더 나아졌을까요? 펜트하우스에 월세로 사는 연예인의 만족도와 맨손으로 멧돼지를 때려잡은 선사시대 인간의 만족도가 얼마나 차이가 나겠는가 말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화폐경제에 된통 속았습니다. 졸라게 고생만 하고, 화폐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생존 환경은 더 가혹해진 겁니다. 사냥하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선사시대에 비해서도 말이죠. 도리어 스트레스는 더더욱 많아지고, 환경은 더 악화되어 버렸습니다.
누구를 위한 문명화, 산업화인가, 이런 얘기는 학자들이 많이 했으니 저는 다른 얘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이왕 이렇게 진화한 거, 더 빨리 달려 보자는 이야기입니다. 화폐경제 시대의 권력자는 두말할 필요 없이 자본가입니다 종이 쪼가리, 숫자 쪼가리에 불과한 화폐유통을 선점한 자본가는 철수가 가진 가축들과 영희가 가진 과일들을 종이 쪼가리를 써주며 일단 자기 꺼로 keep 하고 철수와 영희 사이에서 농간을 벌였습니다. 하루에 한 마리면 충분할 고기를 죽을 때까지 하루에 백 마리씩 먹을 수 있다고 영희를 속여서, 영희가 현재 가진 과일에다가 영희의 과수원이 향후 20~ 30년간 생산해 낼 과일들까지 담보로 잡아, 평생 스테이크 교환권을 써줍니다. 영희는 필요도 없는 평생 스테이크 교환권에 환호하고, 일단 자기가 결혼하고 애 낳고 하다 보면 스테이크가 많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덥석 과수원의 미래를 넘겨 버립니다. 자본가는 이렇게 가운데서 양쪽의 미래를 저당잡고, 수수료라는 핑계로 과일과 스테이크를 맘대로 먹고, 나중에는 철수의 가축과 영희의 과수원까지 홀랑 자신의 것으로 가져가 버립니다.
이게 화폐경제의 경제활동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문명과 산업의 발달을 부채질하다 보니, 너무 달려버려 시장이 필요 없어지게 된 것입니다. 사람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유통채널을 만나게 되고, 그냥 직접 교환해 버리게 되는 시절이 다가오면서 위기가 시작됩니다. 사이사이에서 농간을 자행하던 유통자본가들은 점점 쇠퇴하게 되고, 생산자와 소비자의 직접적 교환이 다시 가능해지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3D 프린터 등의 도래는 그냥 생각과 상상을 결과물로 바로 만들어 버리니, 더 이상 교환이라는 것을 해야 할 필요가 없어져 버리는 것입니다.
이제 권력은 생각과 상상입니다. 아이템만 있으면 모두가 네트워크 된 세상에서 바로 원하는 것을 교환하고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늘 자본가의 허락과 인정을 받아야 세상에 나올 수 있던 것들이, 자본 없이도 세상에 드러나지고 유통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자본의 종말. 자본이 만들어 낸 인간의 진화가 자본을, 더 이상 불필요한 종이 쪼가리, 숫자 쪼가리로 만들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조짐은 산업현장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새로 시작하는 젊은 스타트업들은 성공 가능성과 부가가치가 클수록 외부 투자를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유통과 제조 과정의 혁신과 발전으로, 신제품과 서비스의 출시에 큰 비용이 들지 않을뿐더러, 오랜 자본가들의 횡포를 지켜봐 온 뉴스타트업들이 자본을 경계하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개발비 몇 푼에 창업자의 혼이 담긴 사업 결과를 홀라당 먹어버리고, 심지어 창시자를 내쫓아 버리는 악행을 번번이 경험하고 목격한 뉴스타트-업들이, 산을 자본가가 아닌 자신들을 위해 옮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소비자와의 직접 유통망을 찾고 만들고 개방하고, 비용이 들지 않는 홍보망을 개척하고 확대하고 네트웍해서, 생각하고 상상하면 바로 결과물로 만들고 판매하고 교환할 수 있는, 자신들만의 교환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갈수록 자본의 설자리는 없어져 갈 것입니다. 세대를 거듭하며 결핍을 빠르게 채운 채로 산업현장에 진입하는 젊은 세대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처럼 돈으로 결핍을 채우는 악습에 노예가 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을, 자신이 하고 싶은 방식대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만큼 하기 위해, 자신들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을 개척해 내고 확장하고 유지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산업사회에서 부속품으로서, 부적절하다고 내팽개친 컨베이어 벨트 부적응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새로운 땅을 개간해야 했습니다. 현실 공간의 땅을 모두 기성세대에게 선점 당해 버린 이 젊은 세대는 웹, 모바일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새로운 영토를 개발하기 시작했고, 이 영토에서 먹을 것을 얻고, 입을 것을 얻기 시작한 것입니다. 초기에는 자본가들이 이 땅까지 먹으려 벌떼처럼 달려들었으나, 어쩝니까, 가상의 영토는 무한대로 확장이 가능하니, 화폐경제의 희소성의 원칙이 통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제는 실력이고 실체입니다. 매번 좋아야 하고 더 나아야 합니다. 만족스럽지 않으면 모바일 웹의 세상은 언제든 다른 업체로 갈아탈 수 있습니다. 어제까지 온 세계가 배워야 한다고 경탄을 금치 못하던 일류기업들이 하루아침에 도산하고, ‘카피캣’ 이라고 놀림받던 후발 기업이 소비자의 심리를 매력적으로 파고들어, 단숨에 업계 1위를 탈환해 버리기도 합니다. 삶의 모든 영역이 속속 가상의 공간과 연결되고, 교환가치는 모바일 웹의 가상공간에서 확정되고 부가됩니다. 물물교환의 시대처럼, 가상공간에서 눈으로 보고 만져보고 확인해 볼 수 있으니, 교환 매개체로서의 화폐는 점점 설자리를 잃어갑니다. 이제는 미래가치가 아닌 현재가치가 더더욱 중요해집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언제든 내가 가진 것과 교환이 가능하니 굳이, 미리 십 년 치 스테이크를 확보해 둘 필요가 없습니다. 리얼과 리얼이 만나는 가상의 현실에서, 삶의 가치는 미래가 아닌 다시 현재로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내가 원하는 때에, 내가 원하는 만큼 사용할 수 있으니, 굳이 잉여를 확보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만큼 삶의 여유가 생기고 현재에 집중할 수 있게 되니, 스트레스는 줄고 다시 사람들은 여유를 찾고 사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아직 완전히 도래한 미래가 아닙니다. 화폐 권력이 자신의 자리를 완전히 내어줄지도 의문입니다. 그래서 위기의식을 느낀 국가와 시스템들은, 이러한 이상한 세계로 통하는 문을 막아보려 고심 중이고 시도 중입니다. 그러나 판도라의 문은 이미 열린 듯합니다. 구글 神은 종이화폐가 필요 없고, 디지털 우주는 물리적 실체가 필요 없으니, 화폐에 종속된 인간을 더더욱 자유롭게 놓아주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도권은 화폐에서 생각과 상상으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이제 생각과 상상이 현실이 되니, 생각과 상상을 통제하는 자가 권력을 쥐게 될 것입니다. 자본가의 횡포에 시달리고, 생각과 상상의 결과물을 고작 십 년 치 스테이크 교환권과 바꾸라고 협박당하던 상상가들은, 모바일 웹의 디지털 우주에서 독립을 선포하고, 주권을 선언하니, 자본은 본국으로 송환되어 구세대 유물이 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아니라면 어찌 대학생 애송이가 AT&T도 하지 못한 전 세계 통신망(페이스북)을 구축할 수 있으며, 러시아 이민자 출신의 젊은이와 그의 친구가 도서관 검색 프로그램을 만들다, 전 세계의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유통하는 디지털 神(구글)을 창조할 수 있었겠습니까.
자본이라는 구(舊) 권력과 상상이라는 신(新) 권력이 공존하는 이 과도기적 시대는, 절대왕정의 몰락과 신흥 부르쥬아 계급의 성장이라는 산업화 초기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의 팽창을 위해 절대왕정을 무너뜨릴 민주주의라는 신 이념이 등장했듯, 디지털 우주의 만개를 위해 자본주의를 무너뜨릴 상상주의라는 신 이념이 대두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누가 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한 디지털혁명을 제어할 수 있을까요? 이 혁명은 자본혁명처럼 위험하지 않다고, 인간에게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요? 구글 神은 인류를 자본권력으로부터 해방시켜 줄까요? 아니면 매트릭스의 기계 시스템처럼 인간의 생각 에너지를 빨아먹는 또 다른 괴물이 될까요?
그러니 마냥 낙관할 수만은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변화가 시작되었고 속도가 매우 빠르다는 것. 인류의 진화는 개개인으로의 팽창이 아닌 '네트워크'라는 神으로 수렴하고 있다는 것. 그러므로 개체로서의 인간의 종말이 얼마 남지 않았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자본의 종말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가진 것은 시간뿐 입니다. 시간을 자본과 교환해오던 관습을 그만두고 시간을 상상과 교환해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생각하면, 상상하면, 이루어지는 세상이 도래하고 있으니, 자꾸 생각하고 상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이 도래하는 상상주의 시대에 주권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생각하고 상상하지 않으면, 도태되고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로봇처럼 구글 神의 신체 역할을 수행하다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정보의 취합과 0과1의 연산만으로는 할 수 없는, 상상과 창의적 활동에 매진하여 디지털에게 종속되지 말아야 합니다. 흉내 내는 것은 디지털이 더욱 잘합니다. ‘Paste&Copy’는 디지털을 쫓아갈 수가 없습니다. 다만 상상하기는 디지털은 할 수가 없습니다. 영혼 없는 대답만 나열하는 siri는 아무리 발전해도 여자의 '어머, 왜 이러세요~'라는 말에 그린라이트를 켤 수 없고, 강남스타일 같은 곡을 빌보드 챠트 1위에 올릴 수 없습니다.
상상과 직관의 시대, 인류의 제6번째 감각이 피어나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2014년 뉴욕에서 쓴 글입니다.
이제 와 보니, 이미 그 때 뉴욕은 비트코인으로 한 번 난리가 나던 때였습니다.
저는 그런 줄도 모르고 세상이 변할 거라 예언하고 있었네요.
이미 변하고 있는 현장의 한복판에서 말이죠.
미래는 언제나 생각보다 빠릅니다.
[INTRO]
마법사입니다. 그렇다구요.
마법의 열차는 불시 도착, 정시 발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