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모든 여행자는 자신의 여행기에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유쾌하고 재미있는 여행 작가인
'빌브라이슨(William McGuire Bryson)' 의 여행 책에는 그 흔한 여행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대신 빼곡히 쓰인 글이 모인 탄탄하고 흥미로운 문장들로 책을 가득 채우고 있다. 또한 다른 여행서적과 달리 명소에 국한되지 않고, 마치 누군가의 구체적인 일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 정도로 생생한 여행 에피소드를 담아내고 있다. 흔히 우리가 즐겨보는 여행 에세이에 스며든 감동이나 감성적인 글보다는 예상치도 못한 개그가 틈틈이 치고 들어오는데, 우리나라 정서와 달라서인지 코드가 안 맞는 듯 하지만, 은근 또 잘 맞기도 한지 책을 읽다가 실소를 뿜을 때가 많다. 무엇보다 빌브라이슨의 여행 책에 열광하는 독자들은 그의 독특한 개그보다는 개그와 함께 스며든 솔직 담백한 문장에 더 찬사를 보낸다.
과연 국내의 어느 여행 책에서 자신만의 감성에 충실한 직설적인 여행 이야기와 여행지에 관한 독설들을 스스럼없이 담아낼 수 있을까?
수많은 유명 작가들 중에 빌브라이슨을 예로 든 이유는 글 쓰는 여행자들이 여행기를 표현하는 방식에 관한 얘기를 하기 위해서이다. 여행을 준비하는 이들은 여행 가이드북을 비롯해 여행 에세이, 매거진 등을 통해서 여행하려는 목적지를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그 느낌을 현지에 도착하기 전까지 머릿속에 가져가게 된다. 정보를 사전에 습득하는 것은 여행에 이로운 건 사실이지만, 가끔은 그 정보들이 과장되어 공중에 붕- 뜬 풍선처럼 부풀어 올라있다는 기분을 받게 된다. (과장되었다고 해서 그 정보가 거짓은 아니다.) 그렇게 현지에 도착하여 자신이 알고 있던 그 느낌으로 막상 두 눈으로 직접 바라보니, 어라. 이 느낌이 그 느낌이 아닌 것이다. 그리고는 예상했던 기대가 반감되어 버린다. 나 또한 홍콩 여행 전에 지겹도록 들었던 멋진 야경을 여행 중에 실제로 보았을 때, 솔직히 기대 이하였다. 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지만, 시중에 출간된 여행 책 중에 홍콩 야경은 ‘그냥 보통’ 혹은 ‘무난한 정도’라는 표현은 찾을 수도 없고,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야경 중 하나’와 같은 극찬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어쩌면 글 쓰는 여행자가 자신이 경험했던 여행지를 책에서 자신 있게 추천하는 건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래야 독자들이 책을 통해 여행지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품고 여행을 떠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을 읽다가 유럽에 대한 로망이 사라져 여행을 포기한 사람도 보았다. 다만 어느 여행자도, 어느 여행지도 백 프로 만족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표현하지 않는 지금 시대의 글쓴이들은 어쩌면 자기 자신에게는 한없이 솔직 할지 몰라도, 상대방을 위해서는 그런 글을 쓸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고 본다.
판단은 오로지 독자의 몫이다.
여행 책의 본질은 좋고 나쁨을 떠나 정확하고 사실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독자의 여행을 이롭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선 글쓴이들은 지극히 감성적인 여행기는 지양해야 하며, 조금 더 솔직 담백한 여행기와 정보들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빌브라이슨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속 시원하게 써 내려간 여행기를 서점에서 만나볼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