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1학번이다. 얼마 전 90년대를 배경으로 한 붐이 일었다. 응답하라 1994, 그리고 무한도전까지 90년대의 소환, 그것보다 전이었을 것이다. 아마 2003년 즈음? 나는 요즈음말로 표현하면 MBC드라마 ‘내 인생의콩깍지’의 덕후였다. 박광현과 소유진이 주연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1991년을 배경으로 시작된 청춘 드라마였을 것이다.
01
오늘은 불금이다. 사실 나는 불금하고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거의 10여년 동안 수도생활을 했거든.... 방콕 수도 말이다. 요즈음 자꾸 마음이 뜬다. 예전에는 뜨는 마음을 잘 가라앉히곤 했는데 요즈음 그러한 의욕조차 일어나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가보는 거다. 그동안 거의 동양철학 관련 서적들만 공부했다. 올해가 무술년戊戌인데, 내 경우는 꼭 戌字가 드는 해(1994/2006/2018년)에는 마음이 싱숭생숭 경거망동 요동질 충동이 마구마구 일어난다. 그전에는 그러한 이유를 몰랐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그럴 수 있는 개연성이 있구나라고 이해를 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닌 거 같다. 사실 수행자修行者는 운명을 알고 이를 이용할 수 있는데 자칫하다가는 운명의 노예가 되어버린다. (그렇다고 내가 운명을 잘 아는 것도 아니다. 대충 그렇다는 것이다.) 번뇌(탐욕, 성냄, 어리석음)라는 대력귀大力鬼에 사로잡혀 버린다. 나는 운명의 파도를 타기로 결정했다. 운명이란 움직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다. 하긴, 숨쉬고 집에만 있는 것도 움직이는 것이긴 하다. 일단 마음이 계속 움직이니까. 대승기신론에 이러한 구절이 있다.
覺卽不動
깨닫는다는 것은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움직임을 피할수 없을 바에야 과감하게 운명의 파도를 타면 된다. 그리고 그 파도속에서 부동심不動心을 연습하면 된다. 스팀잇이 촉매제가 된 것도 같다. 요즈음 스팀잇 분위기가 쳐진다. 이럴 때는 가벼운 게 좋다.
02
박남정 – 널 그리며
1989년 내가 고2때다. 유튜브가 참 매력있다. 왠만한거 치면 다 걸리거덩. 나는 남정이형의 이노래보다는 사랑의 불시착이 더 좋다. 보니까 이거 본 것도 같다. 내가 남정이 형을 좋아하는 이유는 상문고등학교 출신이거든. 왜 동향사람 혹은 공통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면 동지감이 있쟈나. 나는 이 고등학교 졸업생은 아니다. 그 당시 여기에 간 친구들은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왜냐하면 빡빡이(1mm 스포츠 머리) 도하기 천자문 100번 쓰기를 입학생들에게 의무사항으로 내주었거든. 그래서 고등학교 입학 전에 온가족이 천자문 절라 쓰기 모드이다. 안 쓰고 입학한 걔는 고1생활 망친다. 진짜 개된다. 불쌍한 영혼들! 흙흙흙! 우리 때는 뺑뺑이었는데 나는 다행이 여기 안드갔다. 야호! 아마 여기 나온 연예인 중에 나와 동시대인은 그 유명한 듀스(DEUX)의 이현도와 김성재이다. 내가 예전에 21세기 時景을 주제로 가장 좋아하는 떠나버려를 포스팅하기도 했다. 나의 아주 친한 친구가 상문고를 나왔고 듀스 예내들과 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내 친구는 착한 개날나리였다. 그런데, 상문고는 비리의 온상이었고 나중에 그것 때문에 매스컴 탔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막돼먹은 재단 이사장 때문에 말이다. 아쉽다. 요것만 넣긴 아쉽다. 사랑의 불시착도 소환!
03
나는 몸치이다. 머리굴리기는 잘하는데 몸으로 굴리는 것은 잼뱅이다. 이건 가족의 내력인가 보다. 나의 형은 나보다 더하다. 요즈음 아버지를 보니.... 우유종이팩 까실 때마다 꼭 찢어트리면서 까신다. 몸치의 원천은 우리 아버지. 어찌어찌하여 대학에 드갔고 내가 대학교 2학년 때 였을 것이다. 락까폐가 처음 생겼다. 나는 내 친구와 압구정동에 새로 생긴 락까페를 갔다. 그때 거기서 가장 많이 나왔던 노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 회오리춤이 유행이었다. 이건뭐 개나 소나 회오리춤. 나는 그거 못한다. 너무 과격하거든. 하지만 그당시 이들의 음악성은 참 충격적이었다.
나 같은 몸치 친화적인 사람을 위한 서태지의 아이들 노래가 하나 있다.
‘환상속의 그대’ 노랫말부터 춤까지 나는 정말 이 노래가 좋다. 환상이라는 말 자체에 내가 필이 꽂혔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환상이라지? 금강경의 유명한 구절이 있다.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
모든 현상은 꿈과 같고 허깨비와 같고 물거품 같고 그림자 같고 이슬과 같고 번개와 같기 때문에 당연히 반드시 모든 현상을 이렇게 보아야 합니다.
환상이라도 좋다. 그녀가 나타나면 말이다. 신나게 분탕질 쳐야지했다. 그리고, 춤 자체가 의외로? 단순하다. 손과 발만 가락에 맞춰 휘둘르면 된다. 나의 20대, 내가 노래방가면 늘 분위기 띄울 때 부르던 노래가 두 개 있다. 바로 이 노래 환상속의 그대와 바로 이 노래 자자 버스안에서 자자 근데 난 못자.(ㅋㅋ 아재 깨알 개그)
04
나의 20대에 너무나 고급지고 가장 옷 잘 입는 형님으로 생각했던 이현우님, 지금 보니 개촌스럽다. 나는 그 형님의 파란 혹은 하얀 난방에 넥타이 메고 청바지에 약간 인텔리스럽게 고급지게 영어 섞어가며 여유롭게 노래 부르다가 발바닥 비비는 춤이 로망이었다. 리듬만 탄다. 현란한 춤이 없어서 좋았다. 그러다가 그를 따라서 발바닥이 닳도록 부벼댔다. 우리 때 강남역 나이트하면 오디세이였다. 나는 한 달에 한 번은 꼭 거기에 갔다. 그보다 약간 질 떨어진 곳은 씨에스타, 내 대학동기가 거기 선전부장이라고 공짜로 많이 드갔다.
05
그의 춤은 아트다. 말이 필요없다. 나는 흐린기억속에 그대는 별로다. 나에게 그는 춤의 황제였다. 여기에 구준엽님과 강원래님이 백댄서로 있다. 우리 형은 현진영을 싫어했다. 원촌중학교 동창이란다. 현진영이 깐죽거리는 날나리였다고 한다. 그래서 형을 괴롭혔다고 했다. 쪼매한 게 형한테 시비를 맨날 걸었다고 한다. 우리형은 현지영보면 시바....! 그래서 나는 특히 좋았다. ㅋㅋㅋ
05
많이 뜨지 않았지만, 그 시대에 인정받던 댄스 아티스트, 말이 필요없다. 두곡을 모셔 두었다.
06
대충 몇 곡 선택하고 퉁치려다 보니까 노래가 생각보다 많다. 그밖에 나에게 추억이 담긴 댄스곡이 몇 곡 더 있다. 이 노래들은 동시대를 살았던 40대 아재들의 추억을 소환하기에는 충분히 넉넉하다.
다음 불금에도 별 생각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