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메스의 작은생각] be동사로 데카르트를 디스하다

이번 글은 지난 글 스피노자에게 be동사를 배우다의 스핀오프 격입니다. 이번에도 주인공은 be. 하지만 이번에는 방향이 좀 다릅니다. 지난번이 ‘철학으로 영문법하기’라면 이번 글은 ‘영문법으로 철학하기’쯤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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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르트는 수학자로도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친숙한 예만 몇 가지 들자면 방정식에서 미지수 x를 쓰기 시작했고, x축과 y축이 수직으로 만나는 좌표 평면을 도입했으며, 거듭제곱을 숫자 오른쪽에 위에 작은 숫자로 표현하는 ‘지수’를 처음 고안해냈죠.

수학자로서의 이런 많은 업적은 어쩌면 꼼꼼하다 못해 소심하기까지 한 성격에서 비롯되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중세철학의 토대를 근본적으로 뒤집어 ‘근대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지만 정작 자신은 그런 내용의 저서 서문에다가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교회에 대한 갖은 칭송(아부?)을 늘어놓았으니까요. 어쨌거나 데카르트의 소심한 성격은 그의 철학에서도 드러납니다. 이런 식이죠.

데카르트: 나는 의심 병 환자야. 조금이라도 의심의 여지가 있으면 믿지 않겠어.
학생: 그럼 선생님, 지금 저랑 말하고 있는 것도 못 믿으시겠네요?
데카르트: 당연하지.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지도 모르잖아.
학생: 그렇더라도 이 방정식의 근이 5인 건 믿으실 수 있죠? 선생님이 방금 풀어주셨잖아요. 설령 꿈속이라도 수학문제의 정답은 정해져 있지 않을까요?
데카르트: 그것도 마찬가지야. 악마가 내 생각을 조종하고 있는지 어떻게 아니?

크헐, 이 정도면 중증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때, 데카르트의 뒤통수를 치는 깨달음이 있었으니, ‘꿈을 꾸고 있는 나, 악마의 조종을 받고 있는 나 자신은 의심할 수 없는 것 아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설령 그것을 의심하더라도 그것을 의심하고 있는 ‘나’는 의심할 수 없으니까. 의심하고 있는 나를 의심하고, 그렇게 의심하고 있는 나를 또 의심하고…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명제가 그 유명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인데요. 이 순간, 철학만큼 영어도 좋아하는 헤르메스가 나타나 치명적인 태클을 가합니다.

헤르메스: 에이, 선생님, 말장난은….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고 하셔야죠.
데카르트: 그게 그거지, 뭐가 달라?
헤르메스: 아니, 하는 거랑 하고 있는 건 다르죠. "너 스팀잇 하냐?"랑 "스팀잇 하고 있냐?"가 어떻게 똑같나요?”
데카르트: 엇? 그런가?

그렇죠, 여러분? "너 스팀잇 하냐?"라는 질문은 물론 "너 (지금) 스팀잇 하냐?"라는 뜻도 되지만 "스팀잇에 가입했냐?" "스팀잇 활동하냐?" "스팀잇 할 줄 아냐?"의 뜻도 되니까요.

하지만 데카르트가 의심할 수 없다고 말한 대상은 어디까지나 생각하고 있을 때의 나, 의심하고 있을때의 나였죠. 따라서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생각하고 있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로 수정되어야 한다는 게 똑똑한 헤르메스의 생각인 거구요. 영어도사들이 지겹도록 말하는 현재진행형!

I am thinking, therefore I am.

이렇게 수정해놓고 보면 말장난의 비밀이 확실히 드러납니다. be동사 ‘am’을 잘 보세요. 앞의 글에서 이야기했듯 be는 ‘있다=존재하다’라는 뜻이고, 보어는 존재의 ‘양태’를 나타내는 말이니 ‘I am thinking.’을 낱낱이 풀어 해석하면 ‘나는 생각하고 있는 양태로 있다.’가 됩니다. 읽어보니 이상하죠? 말이 씹히죠? 이유는? '있다'라는 표현이 한 문장에서 두 번 반복되기 때문입니다. 데카르트가 한국어를 사용했다면 이런 사기(?)를 칠 수는 없었을지도...^^

스스로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명제에서, 데카르트가 '무엇인가를 한다'라는 표현이 갖는 다양한 의미 사이에서 혼동을 일으킨 건지(그렇다면 그는 머리가 나쁜 겁니다) 아니면 의도적으로 혼동을 유발한 건지(그렇다면 그는 그냥 나쁜 놈입니다)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위대한 수학자 데카르트에게 머리가 나쁘달 수는 없으니 그냥 나쁜 놈인 걸로! ㅎㅎ

어쨌든 이것 하나는 명확합니다. 우리가 의심할 수 없는 것은 ‘생각할 줄 아는 나’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는 나’, ‘의심하고 있는 나’, ‘오버워치 하고 있는 나’ 다시 말해 ‘무엇이든 하고 있는 나’라는 것이죠.

철학도 좋아하고 영어도 좋아하는 헤르메스는 이렇게 해서 ‘나’의 확실성을 ‘생각(하는 능력)’에서 찾고 그것이 모든 진리의 출발점이라 주장했던 데카르트를 확실히 디스해 버렸습니다. 오옷! 그렇다면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나'의 확실성에 근거를 둔, 데카르트 이래 지금까지의 모든 과학들, 지식들, 진리들은 어떻게 되는 거죠? 큰 일 났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기회를 기약하구요. 여러분! 의심병 환자 데카르트 선생님도 의심할 수 없었던 것은 사실 ‘뭔가를 하고 있을 때의 우리 자신’입니다. 그러니 뭐든 열심히 해야겠죠? 이왕이면 하고 있을 때 행복한 걸 하자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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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제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약속드린 장기 연재 “오직 대한민국 사람들만을 위한 영어”도 준비를 마치는 대로 곧 시작하겠습니다. 보팅, 댓글, 리스팀, 팔로우, 뭐든 여러분의 반응은 헤르메스의 날갯짓을 더 힘차게 만듭니다. 하지만 스팀잇 뉴비인 지금의 헤르메스는 리스팀이 더 간절하답니다. 헤르메스의 보람은 더 많은 사람들과의 나눔이니까요. 글이 좋으셨으면 RESTEEM! 부탁드릴게요. 오늘도 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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