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거꾸로 가는 삶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written by @zenzen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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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우유를 사기 위해 카페에서 가장 가까운 구멍가게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우유 좀 주세요.”

“우유 없어요.”

워낙 작은 구멍가게이고, 우유가 없을 때도 종종 있었던 터라 별 생각 없이 근처의 다른 가게로 발길을 돌렸다.

“우유 있어요?”

“있어요.”

아저씨가 건네 준 우유는 가루 우유였다.

“이거 말고 팩 우유요.”

“없어요.”

마을에 우유가 사라졌다. 카페에서 가까운 곳부터 마을 끝 어귀까지 동네의 모든 가게를 돌아봤지만 번번이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이 믿을 수가 없고, 어이가 없다.

“도대체 왜 우유가 없어요?”

모든 가공된 우유는 마날리와 스리나가르를 통해 들어오는데, 마날리는 비가 와서 길이 막혔고, 스리나가르는 파업 때문에 우유가 배달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육로는 일 년에 고작 4개월만 열리는데다 그마저도 120일을 꼬박 드나들 수 있지는 않았다.

마을에 우유가 없다니!
난생처음 겪는 일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우유를 구할 수 없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해봤기 때문에 지금 상황에 말문이 막힐 뿐 이었다. 사실 마날리 길이 막혀도 마을에서 짠 소젖은 구할 수 있었지만, 카페에서 셰이크를 만들기 위해선 팩에 든 우유가 꼭 필요했기 때문이다. 클릭 한 번이면 전 세계 어디서든 원하는 물건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인도에서 생산된 우유는 전 세계 각지로 바삐 수출되고 있는데, 같은 나라 안에서는 길이 막혀 손에 넣을 수 없다니. 게다가 이 관광도시에서! ‘육로가 막혔다면 비행기로 오면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은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는 철없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갑절도 넘는 가격에 우유를 살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한국에서는 뭐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24시간 내내, 손 뻗으면 닿는 거리 안에서 구할 수 있었다. 라다크에서는 가게들이 일제히 문을 닫는 일이 잦고, 문을 일찍 닫아도 딱히 불편한 일은 없었기에 잠시 이곳이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오지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우린 망했어” 하며 낙담하고 있는데 “날 따라와봐”라고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띨레가 데려간 곳은 내가 그날 오전에 방문했던 가게였다. 가게 주인은 띨레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가게 끝에 위치한 창고 안에서 우유 한 박스를 꺼내왔다. 내가 갔을 때는 우유가 없다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그였다. 라다크에도 사재기가 있다니! 괘씸한 마음이 들었지만 혹여 길이 또 막히면 이만한 보험이 없기에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만다.

“고마워, 또 올게!”

서울에서는 상상도 못할 불편함은 비단 우유나 토마토 같은 물건을 구하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다. 생활에 없어서는 안될 수도, 전기, 가스 같은 기본적인 시설도 제대로 누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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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단골손님으로 만나 친구가 된 싱게의 생일파티가 카페에서 있었다. 싱게의 여동생 초모와 NGO에서 일하는 노르부 등 많은 친구들이 모였다. 이런저런 얘기와 함께 대수롭지 않은 농을 주고받는데 열 시가 되자 당연한 듯 불이 나갔다. 그러자 한 친구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이것 봐. 이런 식이라니까. 정치인이 바뀌어도 변하는 건 없어.”

“전기 말이야?”

“그래. 그가 내세운 공약이 라다크의 전기 사정을 개선하겠다는 거였거든. 근데 이거 봐. 여전하잖아.”

그 말이 발포탄이라도 되는 듯 삽시간에 논쟁이 시작됐다.

“전기 사정만 가지고 섣불리 판단하지마.”

“우린 그 공약을 보고 그를 뽑은 거야. 그래서 바뀐 게 있어?”

“그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문제는 아니잖아?”

“정치인들은 전부 썩었어. 부정부패만 일삼는다고! 한국의 정치인들은 어때?”

침을 튀기며 열변하던 노르부가 갑자기 우리에게 묻는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거짓 공약을 내세우고 부정부패를 일삼아.”

“그런데 한국은 왜 그렇게 발전했어?”

“경제적으로 발전했을지 모르지만 정치적으로 발전하지 않았어. 아니 오히려 요즘에는 후퇴하고 있는지도 몰라.”

“한국의 정치인들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네. 다 똑같아. 그런 사람들에게 뭘 믿고 맡길 수 있겠어?”

“지금은 그렇다 쳐도 나아질 거라 믿고 있어.”

노르부의 냉소에 짜증이 났던 싱게가 우리의 말에 손뼉을 딱 치며 말한다.

“그래. 그거야! 일단은 믿어봐야지. 너처럼 아무것도 믿지 않고 비관만 하면 뭐가 나아지겠어?”

“퍽이나. 믿어봐야 부질 없는 짓인 걸.”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친구들은 서로 삿대질을 하기 시작했다. 과열되는 분위기 때문에 이웃집의 항의를 받을까 질겁한 우리들의 저지로 일단락됐다. 정치 이야기를 하며 흥분하는 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인가 싶어 웃음도 났지만, 놀라웠던 건 전기 문제를 선거의 공약으로 내세운다는 점이었다. 교육도, 복지도 아닌 전기가 공약이라니.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그들의 민감한 태도 역시 의외였다. 라다크의 전기 사정에 대해 불평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줄 알았다. 대도시의 혜택을 받고 자란 젊은이들에게는 라다크의 전기 사정이 불만이었나 보다. 하긴 몇 개월을 사는 우리도 라다크 생활에서 가장 불편한 게 전기인데 하물며 한 해를 꼬박 사는 사람들은 오죽할까?

라다크의 일정치 않은 전기 사정은 우리를 항상 미치게 했다. 분위기 있는 여느 카페처럼 음악을 틀어놓으면 두 시간도 가지 못하고 전기가 끊겼다. 낮 시간에 음악은 사치였다. 낮 동안 방전된 전자기기를 충전할 길을 찾을 수 없어, 카페는 늘 조용했다. 전자기기를 충전하지 못하는 건 사실 약과다. 작은 초 하나에 의지해 어둠 속에서 처음 짜이를 끓였을 때는 패닉 그 자체였다. 찻잎은 얼마나 넣었는지, 우유를 넣었는지도 모른 채 난장판을 벌이며 만든 짜이는 의외로 맛있다는 평을 받았다. 일본인 다이는 일본에서 마시던 밀크티의 맛이라며 십 년 만에 만난 고향의 맛에 감격하기도 했다. 한번은 쓰레기를 담은 종이 상자를 들고 암흑 속에서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딘 적도 있었다. 비명 지를 새도 없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허둥지둥 일어나 바닥에 나뒹구는 음식물 쓰레기를 손으로 주워 담다 보니 눈물이 찔끔 났다.

휴대폰 불빛은 곧 제2의 눈이자 생명의 빛이었다. 휴대폰이 없을 때는 꿩 대신 닭이라고 가방에 있던 넷북을 켜고 화장실에 간 적도 있었다. 턱에 발이 걸려 넘어지며 넷북은 저 멀리로 한참을 날다 바닥에 떨어졌다. 쿵 하는 소리에 내 마음도 내려앉았다. 그 후 한국에 와서 고치기 전까지 넷북은 고철덩어리로 몇 달간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대신 신기하게도 밤눈은 점점 밝아졌다. 심봉사가 눈을 뜨듯이 번쩍 눈이 뜨인 건 아니지만, 서서히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휴대폰 불빛으로 일일이 자물쇠 구멍을 비춰가며 문을 잠그고, 계단을 내려오다 넘어지거나 삐끗하기 일쑤였지만 시간이 지나자 계단도 보이고, 자물쇠 구멍도 보였다. 어둠에 익숙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컴컴한 밤에 개울을 끼고 집으로 가는 길도 사뿐히 걸어 다녔다. 갑작스럽게 정전이 찾아와도 단번에 초를 찾아 불을 켰고, 어둠 속에서 밀크 티뿐 아니라 된장국도 만들 수 있었다. 어둠은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오래 사귄 친구 대하듯 어둠과 손 잡고 모든 일을 능숙하게 처리할 수 있었다. 밤은 어두우니까 비로소 밤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불편함에 한발짝씩 적응해 갔다.

라다크의 열악한 제반 환경이 언제나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좋은 점도 있었다.

“카톡카톡.”

명랑하게 통통 튀는 스타카토 소리가 들리면 와이파이가 잡혔다는 뜻이다. 카페 문을 열러 가는 중이든, 밥을 먹으러 가는 중이든, 장을 보는 중이든 이 소리만 들리면 지혜는 길에 우두커니 서서 스마트폰을 하염없이 만지작거렸다.

2007년에 한 시간 인터넷을 이용하는 동안 두 세 개의 짧은 메일을 보내는 걸로 만족해야 했던 걸 생각하면 길 한 가운데서 와이파이가 잡히는 라다크란 별스럽게 느껴진다. 지혜가 스마트폰에 코를 박은 채 손을 바삐 놀릴 때면 나는 하릴없이 기다리거나 먼저 식당에 가서 차 한잔을 마셨다. 뜨거워서 호호 불어야만 마실 수 있는 차의 온기가 사라질 때쯤에야 지혜는 나타났다. 우리는 언제나 인터넷에 목말랐다. 한국에서는 일을 하든, 놀든, 이동을 하든 언제나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의 직사각형 창 안을 떠돌아다니며 살았기에 갑작스러운 빈자리가 컸다. 하지만 똑똑한 손 전화가 없는 나는 와이파이를 사용하려면 넷북을 들고 거리로 나오는 수 밖에 없었다. 한 번은 민망함을 감수하고 넷북을 들고 나와 와이파이가 잡히는 제이앤케이 은행 앞에 자리를 잡았다. 과감하게 넷북을 펼쳐서 이메일을 보내봤는데 지나치게 느린 속도도 문제지만 눈부신 태양 탓에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조차 않았다. 단 세 줄을 쓰고 넷북을 덮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까지 아등바등 인터넷을 하려고 애쓰는 스스로가 딱했다. 그래서 인터넷을 끊었다. 사뭇 진지하게 절필선언 아닌 인터넷 중단 선언을 하고 나니 마음 한구석이 후련했다. 그 뒤로 3개월 동안 인터넷을 하지 않았다. 인터넷뿐만 아니라 컴퓨터 자체를 하지 않았다. 가끔 한국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으나 죽을 만큼 간절하진 않았다. 몰라도 못 살건 없었다. 오히려 비행기를 타고도 여덟 시간이나 걸리는 한국의 이야기에 신경을 끄니, 십 분 거리의 라다크 이야기들이 더 크고 또렷하게 들렸다.

실체가 없는 것에 팔려 있던 영혼을 찾으니 하루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쓸 수 있었다. 원래 내 것이었지만 내가 쓰지 못했던 그 잃어버린 시간들을 되찾게 된 것이다. 심심하면 윈도우 창을 띄우는 대신 카페의 창을 열었다. 바람이 살랑거리는 소리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소리, 무슬림의 기도 소리가 어우러져 MP3 파일이 되었고, 분홍빛으로 하늘을 적시는 해가 설산 뒤로 숨는 모습은 유튜브 동영상이 되었다. 손님들이 가져오는 따끈따끈한 여행 이야기와 친구들이 전해오는 마을 소식은 검색 없이도 들을 수 있는 그날의 핫뉴스였다. 친구들은 가끔 낚시성 뉴스를 가져오긴 했으나, 웃으면서 넘길 수 있는 귀여운 사기였다. 게임이 하고 싶으면 카페에 놀러 온 동네 아이들과 젠가를 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나무 블록을 빼내는 아이들을 볼 때면 자꾸만 웃음이 새어 나와 게임에 집중하지 못했지만 애초에 아이들을 이기려는 생각은 없었기에 상관없었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더 이상 원치 않는 정보를 접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초록 창에 뜬 실시간 인기 검색어를 습관적으로 클릭하고, 시도 때도 없이 SNS를 확인하고, 사지도 않을 물건들을 구경하기에 바빴다. 딱히 하고 싶지 않은데도 으레 당연히 하던 일들이었다.

인터넷이 사라진 라다크에서의 삶은 간결하고 깔끔하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의 삶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조금은 불편하고, 조금은 느릿한 라다크에서의 삶은 그 자체로 색다른 즐거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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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에서 카페를 시작한 우리의 첫 번 째 설거지 장소는 공용 수돗가였다. 전통 가옥인 우리 카페에는 수도 시설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느 라다크 사람들이 그러듯 공용 수돗가에서 물을 받아 사용했고, 사용한 물은 모아두었다가 가지고 나와서 버렸다. 처음 카페 문을 연 날, 손님이 하나둘 들어차며 설거지가 쌓여갔지만 밖에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것이 싫어 마냥 설거지를 미뤄두고 있었다. 그때 내 등을 떠민 건 다이와 제이미였다. 이 둘은 카페 초창기에 매일같이 카페를 들락거리며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 주며 우리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친구들이다. 해가 완전히 진 레 시내의 밤하늘은 상상 이상으로 어두웠지만, 가로등과 주변 가게의 불빛은 설거지하기에 충분했다. 다이는 비누칠, 제이미는 헹구기, 나는 우유가 눌어붙은 냄비 처리 등 서로 할 일을 배분하고, 드리워진 서로의 그림자 때문에 위치를 바꿔가며 최적의 자세를 찾아 한참 동안 설거지를 했다. 그러다 어느순간 갑자기 전기가 나갔다. 수많은 정전을 경험했지만 나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팟’ 하고 일순간 마을 전체에 불이 꺼졌고 우린 어둠 한가운데 갇혔다. 하지만 우리는 당황하지 않고, 달빛과 간간히 다니는 자동차 전조등에 의지해 설거지를 이어갔다. 청각과 촉각을 열 배쯤 더 곤두세워 물의 위치와 양을 파악하고, 그릇이 깨끗하게 닦였는지를 확인했다. 컵을 깨기도 하고, 비누칠한 그릇을 다시 닦기도 했지만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초승달 아래에서의 설거지는 불편했지만 낭만적이었다. 비누칠 한 번하고 고개 들어 달 한 번 보고, 냄비 한 번 헹구고 고개를 들어 달 한 번 보고…… 설거지는 평소보다 두 배 이상 오래 걸렸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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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는 거의 보지 않던 밤하늘을 라다크에서는 하루의 일과처럼 올려다봤다. 정전이 되어 모든 빛이 숨을 죽이면 하늘의 별은 더 찬란하게 빛났고, 우리는 하늘에 수놓아진 동물과 신화 속의 인물의 이름들을 생각해내는데 골몰했다. 그럴 때는 혹여 다시 불이 들어와 덜 반짝이는 별을 보게 될까 봐 계속 정전 상태이기를 바라기도 했다. 이런 별들을 매일 볼 수 있다면 라다크의 불편함들을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렇게 불편과 낭만을 저울질하며 우리는 라다크의 삶에 적응하고 있었다.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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