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살구 열리는 계절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니무 양파뽑기_2.JPG


written by @roundyround




9월이 되면 라다크는 바빠진다. 척박한 라다크 땅에도 수확의 계절이 돌아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온통 얼어붙은 혹은 말라붙은 땅처럼 보이는 이곳에도 가을은 어김없이 풍요를 선사한다. 사막 한가운데 자리 잡은 오아시스 같은 마을 곳곳에서 보리밭은 황금색으로 물들고, 봄철 싱그러운 꽃을 피웠던 살구나무에 주렁주렁 열려 있던 살구들은 보기만 해도 시큼한 초록색에서 달콤한 주황색으로 그 빛깔을 바꾼다.

이때가 되면 메인 바자르의 채소 시장에 살구가 등장하고, 라다크의 살구를 맛보려는 여행객들이 시장에 몰려든다. 한국에서 살구란 익숙한 과일이 아니었는데 이곳에서는 어느 집에 가나 살구나무 한 그루씩은 있을 정도로 흔하고, 동시에 라다크 사람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것이다. 물론 제 가족들이 먹기도 하겠지만, 보통 라다크 사람들은 살구를 털어 시장에 판다. 싱싱한 살구들은 라다크 아주머니들 손에 하루에도 몇 상자씩 담겨 나와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라다크 사람들은 살구를 말려서 먹기도 하는데, 말린 살구는 라다크를 여행하는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특산품이다. 말린 살구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쫄깃하게 말린 것은 곶감 같은 맛이 나고, 오랜 시간 바싹 말린 것은 먹기 힘들 정도로 딱딱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살구를 다 먹고 남은 씨앗의 단단한 껍질을 깨면 그 안에 아몬드와 비슷하게 생긴 것이 나오는데, 이 역시 실에 꿰어 말려 보관하며 사시사철 먹는다. 또 살구 씨앗에서 추출한 기름은 머리카락이나 피부에 좋다고 알려져 라다크를 찾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뺨에 뾰루지가 잔뜩 올라와 고민하고 있던 재은이에게 라다크 친구들이 하나같이 입을 모아 제시한 해답도 바로 ‘살구’였다.

살구철이 되면 우리는 종일 살구를 입에 달고 살았다. 일 때문에 근처 마을에 다녀온 라다크 친구들이 살구를 한 봉지씩 따다가 가져다주는 날이면 그 자리에서 순식간에 다 먹어 치우곤 했다. 노랗게 익은 살구만 보면 정신없이 달려드는 우리에게 라다크 친구들은 늘 이렇게 말했다.

“살구 더 먹으면 내일은 종일 화장실 가야 해. 알지?”

살구는 산성이 강해서 다섯 개 이상 먹으면 배탈이 난다고 알려져 있다. 누구는 빈속에 먹어서도 안 될 정도로 산성이 강하다고도 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과연 살구를 과하게 먹었다 싶은 날에는 아랫배가 살살 아파왔지만 그래도 살구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한바탕 수다를 떨며 살구를 입안으로 밀어 넣다 보면 어느덧 테이블 위에 살구 씨앗이 수북하게 쌓였다. 이렇게나 없어서 못 먹는 살구였지만 좋아하는 만큼 많이 사 먹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었다. 시장에서 살구를 사려면 보통 1킬로그램에 120루피 정도였는데, 우리에게 결코 싼 값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런 우리가 안쓰러웠는지 하루는 리조트를 운영하는 친구인 남걀이 전화를 걸어 왔다.

“바쁘지 않으면 와서 살구나 따서 가져가. 오늘 리조트 직원들이랑 가족들이랑 다 같이 살구 따서 잼 만들 거거든.”

남걀의 리조트 정원에는 수십 그루의 살구나무가 있었다. 전에도 살구 철이 되면 가끔 놀러 가서 배가 터질 때까지 살구를 따 먹고 오곤 했기에 우리는 각자 커다란 봉지를 하나씩 챙겨 들고 리조트로 출동했다.



살구 가게_6.jpg


살구나무들은 온통 주황색이었다. 남걀과 리조트 직원들은 살구나무 밑에 커다란 그물을 걸쳐놓고 기다란 작대기를 이용해 살구를 털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흥분한 나는 살구를 따서 봉지에 담기 시작했다. 새나 벌레가 먹지 않고, 진한 색으로 먹음직스럽게 익은 것들은 바로 입으로 들어갔다. 한입 크기의 살구를 입안에 넣고 깨물면 달콤한 살구 과즙이 삐직 하고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이쪽 나무 살구는 출리가 아니라 패팅이야.”

한창 무아지경으로 살구를 따고 있는 우리에게 남걀이 다가와 말했다.

“출리는 뭐고, 패팅은 뭐야?”

“라다크 사람들은 패팅을 더 맛있고 질 좋은 살구로 쳐."

“뭐가 다른데?”

“일단 패팅은 크기가 작아. 그리고 가장 큰 차이는 이거야. 여기 꼭지 부분에 주름 보이지? 이 주름을 가진 것이 패팅이야. 그리고 보통 잼은 패팅이 아닌 출리로 만들어.”

출리와 패팅의 맛을 비교해보니 과연 패팅이 조금 더 향긋하고 새콤달콤했다. 나는 패팅이 열려 있는 나무를 찾아 손 닿는 곳에 있는 모든 패팅을 다 따기 시작했다.

“남걀, 살구쨈 만드는 방법 좀 가르쳐줘. 나도 잼 만들어보고 싶어!”

레 시내의 어느 가게에서나 살구잼을 팔지만 직접 만든 잼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맛있다. 남걀네 집처럼 살구나무를 많이 가진 집에서는 철이 되면 살구를 털어 잼을 한가득 만들어 놓기도 한다.

“라다크의 살구는 당도가 높기 때문에 설탕을 많이 넣지 않아도 돼. 그냥 살구를 갈아서 물을 붓고 잼처럼 찐득찐득해질 때까지 저어주면서 끓이는 게 다야. 아! 그리고 끓일 때는 꼭 알루미늄 냄비를 사용해야 해. 유리병에 다 만든 잼을 넣고 꽉 잠근 후에 병째로 끓는 물에 한 번 넣었다 빼면 자연적으로 방부 처리가 돼. 간단하지?”

그날 남걀네 리조트에서 따온 살구로 만든 잼은 처음 시도한 것 치고는 굉장히 성공적이었다! 덕분에 그 이후 우리는 살구잼을 만들어 먹게 되었다.



살구 나무_3.JPG


살구가 열리는 계절은 보리를 거두는 시기이기도 했다. 뜨거운 라다크의 볕 아래 영근 보리를 거두는 시기가 되면 한창 추수 중인 보리밭에 옹기종기 둘러앉아 새참을 먹고 있는 라다크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라다크의 농촌에도 우리나라 농촌의 품앗이나 두레와 같은 조직이 존재한다. 우리나라 농촌과 마찬가지로 이곳에도 타지로 나가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일손이 부족해지기 시작했고, 네팔이나 인도 비하르에서 온 이주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메우게 되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그들을 영 못 미더워 했지만 당장 추수철이 닥쳐서 일손이 달릴 때는 별수가 없었다.

9월의 어느 날, 우리에게 라다크에서 ‘두레’를 행동으로 옮길 기회가 찾아왔다.

“니무Nimmu(인더스 강을 끼고 펼쳐진 아름다운 마을로 라다크의 서쪽을 향하는 차들이 쉬어가는 길목에 있다)에 사는 친척 언니 시아버지가 보리밭에서 일 하시다가 쓰러지셨대. 그래서 도와드리러 가봐야 할 것 같아. 너희들의 도움이 필요해. 같이 가줄 수 있겠어?"

초모의 다급한 연락이었다. 우리는 흔쾌히 초모의 제안에 응했다. 카페를 찾는 손님들이 카페의 이름인 ‘두레’의 뜻에 대해 물을 때면 ‘추수철에 협동하여 일하는 전통적 농촌 공동체’라고 설명하곤 했는데, 라다크에서 생활하며 어려운 일이 생길 때마다 늘 도움을 주던 초모에게 ‘두레’의 의미를 몸소 보여줄 좋은 기회가 생긴 것이다.

니무는 레에서 차를 타고 삼십 분 정도면 갈 수 있는 마을이다. 유유히 흐르는 인더스강을 끼고 너르게 펼쳐진 보리밭을 품고 있는 이 마을은 라다크 서부를 여행하는 여행자라면 한 번쯤은 들르는 곳이다. 서쪽으로 향하는 모든 차량이 이곳에 잠시 서서 휴식 시간을 갖기 때문이다.

우리는 초모와 싱게와 함께 니무로 향했다. 니무로 향하는 길은 짧지만 아름다웠다. 아찔한 절벽을 끼고 난 길을 달리는데 저 아래로 굽이치는 인더스강이 보였다. 그 길을 지나고 있으면 차바퀴가 헛돌아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떨어지는 상상을 하게 됐다. 싱게는 이따금 핸들을 확 돌려서 우리를 놀라게 하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우리는 차 안이 떠나가도록 소리를 질렀다.

“너희는 라다크에 몇 번째 오면서 아직도 이 길이 무서워?”

“백 번을 와도 무서울 거야.”



보리 추수 후 밭_1.jpg


구불구불 이어진 길 저 너머로 니무 마을의 전경이 보였다. 차는 마을 초입의 다리를 지나 조금 더 들어가 섰다. 초모의 친척 언니 앙무의 집에 도착하니 그녀의 딸인 돌카와 그녀의 시아버지가 우릴 반겨주었다. 할아버지는 이제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하신 듯 보였다.

“어쩌다 쓰러지신 거야?”

“할아버지 자식들은 다 마을을 떠나 살고 보통은 할아버지 혼자 집에 계셔. 밭일도 혼자 다 하시고. 이제 추수철이라 일도 많은데 무리하신 거지, 뭐.”

“한국 농촌이랑 똑같네.”

“밭에 쓰러져 계시는 걸 동네 사람이 발견하고 병원으로 모시고 갔다가 어제 퇴원하신 건데 오늘도 저렇게 일하러 밭에 나가겠다고 하셔.”

우리를 바라보며 말없이 미소만 짓고 계시는 할아버지에게 이제는 몸이 좀 괜찮으신지 라다크 말로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답을 하지 않았다. 싱게는 머리에 수건을 두르더니 벌떡 일어나며 외쳤다.

“자, 이제 나가볼까?”

앙무는 따라나서려는 할아버지를 말려보려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그는 기어코 낫을 손에 쥐었다. 우리도 서둘러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는 싱게의 뒤를 따랐다. 찻길을 따라 5분 정도를 걸어가니 길 양옆으로 펼쳐진 보리밭에서 하나같이 허리를 숙인 채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람들은 보리를 거두고 있었다. 낫을 쥔 몇 명이 보리를 베어서 쌓아놓으면, 다른 사람들은 그것을 한 아름씩 모아 바닥에 차곡차곡 널었다.

“왜 보리 짚단을 저렇게 널어놓는 거야?”

“탈곡하기 전에 볕에 말려야 하거든. 우리가 해야 할 일도 바로 이거야. 중요한 건 보리 낱알이 붙어 있는 윗부분을 아래쪽으로 놓고, 다음 줄에 다른 짚단을 올리면서 그 부분을 숨겨주어야 해. 그래야 새들이 못 먹거든.”

“간단하네!”

나는 집에서 챙겨온 스카프를 머리에 둘렀다. 날이 흐려 구름이 껴있었지만, 라다크의 태양은 여전히 뜨거웠다. 앙무는 내심 불안해하는 눈치였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외국인들이 과연 이런 밭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뻔했다. 대학 시절에 농활을 다녔던 경험이 있어서 사실 이런 종류의 밭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나는 커다랗게 노래를 틀어놓고 연신 노래를 따라 부르며 일을 했다.

밭에서 일하고 있는 라다크 사람들과 비슷한 차림새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도 우리가 외국인임을 눈치챈 동네 사람들은 지나가며 앙무에게 이것저것 묻기도 했다. “코리아 빠(한국인)"라는 말이 반복적으로 들리는 것을 보니 우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레에서 멀리 떨어진 마을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곳도 ‘도시’에서 떨어진 마을인지라, 외국인을 바라보는 라다크 사람들의 눈빛이 레에서와는 많이 달랐다. 그런데 외국인이 이곳에 와서 ‘밭일’까지 하고 있으니 얼마나 신기한 광경이었겠는가.



니무 보리추수_3.JPG


일은 단순했지만 반복해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해야 했기 때문에 이내 등과 허리가 뻐근해졌다. 내가 허리를 쭉 펴며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일 때마다 앙무는 미안한 표정으로 들어가서 쉬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가 떠나고 난 뒤 또다시 쓸쓸하게 이곳에 혼자 남아 밭일을 도맡아야 할 할아버지를 생각하니 조바심이 나서 도저히 쉴 수가 없었다. 우리는 더욱 속도를 냈다. 이따금 밭두렁을 어슬렁거리던 개가 다가와 서성이다 돌아서곤 했다. 보통 라다크의 날씨는 눈을 뜨고 하늘을 바로 바라볼 수 없을 만큼 쨍하게 맑아서 가끔 날이 흐리면 영 기분이 울적했는데, 나무 한 그루 없는 밭 한가운데 서 있으려니 하늘에 드리운 구름이 오히려 반가웠다.

“지혜! 재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양손에 무언가를 바리바리 싸 들고 밭두렁을 걸어오고 있는 초모와 돌카가 보였다.

“새참이다!”

옆에서 일하고 있던 네팔 사람들은 우리만큼 크게 기뻐하는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들고 있던 낫을 내려놓고 바지에 묻은 흙먼지를 탁탁 털어내는 모습을 보니 새참 시간을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초모와 돌카는 빠른 손놀림으로 가지고 온 음식들을 펼쳐놓았다. 밥, 짜파티, 달이 전부인 간소한 메뉴였다. 네팔 사람들의 접시에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을 만큼 많은 양의 밥을 퍼주는 모습을 보고 우리는 기겁을 했다.

“초모, 우리 밥은 우리가 풀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게 한바탕 배부르게 먹고 배를 두드리고 있는데 초모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커다란 기름통을 꺼내놓았다. 창이었다! 라다크 사람들도 밭일을 하면서 창을 마셨다. 꺼내 놓기가 무섭게 창을 컵에 따라 벌컥벌컥 마시기 시작했다. 시큼한 창의 향기가 입안에 머무는 동안 살구를 하나 입안에 집어넣었다. 살구를 안주 삼아 한 잔 두 잔 마시다 보니 서서히 취기가 돌았다. 바람은 시원했고, 멀리 보이는 산자락은 신비로운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쯤 되니 힘든 밭일도 신선놀음처럼 느껴졌다.



니무 보리추수_1.JPG


“보리밭 남은 일 끝내고 저쪽 채소밭에도 가야 해. 서두르자!”

우리는 재빨리 보리밭 일을 끝내고 채소밭으로 움직였다. 산등성이 가까이 떨어진 해는 더 이상 뜨겁지 않았다.

우리가 할 일은 뽑아놓은 양파를 보관하기 좋도록 줄줄이 엮어 집 옥상으로 옮기고, 괭이로 밭을 파헤쳐서 미처 발견하지 못한 당근을 캐내는 것이었다. 우리는 각자 뿔뿔이 흩어져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나는 양파가 쌓여 있는 곳으로 가서 머리카락을 땋는 것처럼 양파 줄기를 땋아 내려갔다. 욕심을 부려 너무 길게 엮어버린 나머지 다발이 툭 하고 끊어지면서 양파들이 후드득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양파 속이 다치면 나중에 썩어버리니까 조심해야 해.”

하는 수 없이 바닥에 주저앉아 다시 양파 줄기를 엮기 시작했다. 땅에서 짙은 흙냄새가 올라왔다. 라다크 땅에서 젖은 흙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라다크에서는 늘 마른 모래의 냄새가 났기 때문이다. 젖은 흙의 냄새에서는 강한 생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마른 라다크 땅에도 싹을 틔우는 대지의 힘 말이다.

레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우리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얼굴은 울상이 되어 있었다. 다음 주말이 올 때까지 다시 혼자일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다음에 다시 오겠노라고 말하고 겨우 돌아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앙무는 우리들의 손을 부여잡고 연신 고맙다고 말했다.

“정말 고마웠어. 너희들이 와주어서 많은 도움이 되었어. 너희들을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니무 마을 보리밭에서의 한나절은 나에게도 참 고마운 경험이 되었다. 늘 말로만 설명해왔던 ‘두레’의 의미가 이렇게 즐겁고도 아름답게 친구들에게 전달되었으니 말이다.



겨울철의 보리밭.jpg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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