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앗살람 알라이쿰, 라다크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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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enzen25




1층에 새 식구가 들어왔다. 작은 전통 가옥을 개조한 건물의 3층에는 카페 두레가, 2층엔 주인인 아룬의 사무실이, 1층에 창고 같은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그 공간을 깨끗이 치워 세를 낸 것이다. 뿔테 안경을 쓰고 수염이 무성한 작달막한 사내는 자신을 ‘지하’라고 소개하고 1층에 새로 생긴 여행사의 주인이라고 했다. 레에 도착하자마자 카페를 청소하느라 바쁜 우리에게 그는 몇 번이고 찾아와 언제 문을 여느냐고 재촉했다. 그의 성화에 카페를 생각보다 빨리 열었고 그는 우리 카페의 단골이 되었다. 카페 두레가 세 든 전통 가옥은 레의 중앙에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길가가 아니라 일부러 찾아야만 올 수 있어 우연히 들어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카페는 입소문을 타고 어렵사리 찾아온 사람들로 바글거릴 때도 있었지만 지하네 여행사는 늘 한가했다. 레 시내에 깔린 게 여행사인지라 외진 곳에 자리한 여행사에까지 여행객들의 눈길이 닿을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은 온종일 모기만 잡았어.”

지하는 라다크에 있지도 않은 모기를 잡으며 시간을 때웠다고 능청스럽게 말하며 신세 한탄을 하곤 했다. 지하는 수다스러웠다. 그는 카페에 자주 올라와 짜이를 마시며 자신의 트래킹 이력부터 시작해서 대학 시절 이야기, 가족 자랑까지 많은 주제의 이야기를 쉴 새 없이 했다. 때로는 지겹기도 했지만, 이웃이니까 친절하게 대하자는 마음으로 열심히 듣다 보면 흥미로운 이야기들도 있었다. 그중 내 귀를 가장 솔깃하게 한 이야기는 지하가 그의 친구 살림과 함께 들려준 이야기였다. 지하와 살림은 라다크인 무슬림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티베트 사람이야.”

“티베트 사람이면 불교도 아냐? 너는 무슬림이잖아.”

“대부분의 사람들이 티베트에는 불교 신자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아. 무슬림들도 꽤 많아.”

“그럼 할아버지는 중국이 티베트를 점령했을 때 인도로 건너오신 거야?”

“아냐. 우리 할아버지는 여행으로 라다크에 와서 라다크 여자를 만나 정착한 거야.”

“여행을 왔다고?”

“응, 실크로드 알지? 실크로드 일부였던 라다크에는 무역이나 여행을 목적으로 와서 정착한 사람들이 많거든. 카슈미르 사람들이나 다른 지역의 많은 무슬림 상인들이 이곳에 이주하면서 무슬림의 인구가 많아졌지.”

“흥미로운걸.”

“우리 할아버지 완전한 몽골리안 얼굴이야. 우리 아버지도 그 얼굴이 조금 남아있지만 날 봐. 전혀 몽골리안처럼 생기지 않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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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와 살림은 파키스탄 여행 중에 만났던 얼굴에 더 가까웠다. 이들처럼 얼굴만 봐도 무슬림인지 한눈에 알 수 있는 라다크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았다. 지금은 라다크 사회 내에서 무슬림의 개종이 엄격하게 다뤄진다고 하지만 이전에는 더 자유로웠기에 불교도가 된 무슬림도 많다고 했다. 그렇게 피가 섞이다 보니 얼굴만으로 추측하기는 어려웠다. 가장 확실하게 구별할 수 있는 방법은 이름이었다. 스텐진, 남걀, 린첸, 나왕, 싱게, 델렉, 앙무, 양첸 등 티베트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불교도였고, 살림, 모하메드, 압둘 등 아랍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무슬림이었다.

라다크는 ‘작은 티베트’, ‘불교의 성지’ 등으로 널리 알려져서 많은 사람이 라다크 하면 불교만을 떠올리지만, 라다크 인구는 대략 70%의 불교도와 20%의 무슬림, 10%의 기독교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처음 만난 라다크 사람은 불교도가 아니라 무슬림이었다. 스리나가르에서 출발해서 라다크로 들어오는 지프를 운전해준 사람이 카르길Kargil(스리나가르와 레를 잇는 국도 중간에 위치한 도시)에 사는 무슬림 압둘이었으니 말이다. 그때만 해도 라다크에 이렇게 많은 무슬림이 사는 줄은 까맣게도 모르고 압둘이 신기해 연신 이런저런 질문을 해댔었다. 하지만 레에 도착해 짐을 풀고 시내로 나온 순간 생각지도 못한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메인 바자르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는 두 개의 모스크도 그렇고, 금요일마다 모스크 앞에 장사진을 이루며 기도를 드리는 사람들도 그렇다. 하얀 모자를 쓴 그들은 경건하게 메카를 향해 절을 한다. 매해 레의 모든 무슬림들이 집결해서 이스라엘 정부와 미국 정부에 대한 반대 시위를 하기도 하는데 모인 사람들의 수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아서 볼 때마다 놀라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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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손님 중에도 무슬림이 꽤 있었다. 라다크의 불교도와 무슬림은 종교와 이름 외에는 같은 문화, 같은 언어, 비슷한 얼굴을 가졌기에 그 구분이 어렵고 무슬림이라는 종교 자체가 우리에게 친숙하지 않기 때문에 가끔 의도치 않게 무신경한 행동을 하곤 했다. 카페를 연 첫해부터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오는 라다크 손님이 있었다. 한국 영화와 노래를 좋아한다며 자신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름이 기억은 안 나지만 무슬림 이름이었다. 말없이 고독을 씹곤 했던 그 손님이 하루는 내게 다가와 말했다

“음악 좀 줄여도 될까?”

“왜? 시끄러워?”

“아니. 지금 아잔이 나오고 있잖아.”

“아, 미안. 줄여줄게.”

모스크 첨탑에서는 하루에 다섯 번 무슬림의 기도 시작을 알리는 아잔Azan이 울려 퍼졌다. 누군가는 어떤 아저씨가 자꾸 노래를 한다고 오해하기도 했다. 실제로 울부짖듯 노래하는 소리로 들리기도 했다. 내게는 의미 없는 소리이고 매일 들어서 익숙해져 신경도 쓰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카페의 음악 소리가 자기의 신심을 방해하고 있다는 듯 항의를 했다. 이런 요구는 처음이었다. 그 누구도 아잔이 흐른다고 음악을 꺼 달라고 요구한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손님의 종교를 미리 파악하고 음악을 끌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어쩐지 머쓱했다. 이후로 아잔이 흐르면 음악 소리를 슬그머니 줄여놓곤 했다.

하루는 도움을 얻은 적 있는 두 명의 라다크 친구에게 한국 음식을 대접한 적이 있다. 최대한 맛있는 음식을 선보이기 위해 찬장에 꽁꽁 숨겨두었던 식료품을 모두 풀어서 된장찌개와 김, 감자 볶음 그리고 스팸까지 진수성찬을 차려 내놨는데 두 친구 중 한 친구의 얼굴이 그리 밝지 않았다.

“많이 먹어! 한국 음식이야. 엄청 맛있을걸?”

“근데 이거 무슨 고기야?”

“돼지고기.”

“난 돼지고기 못 먹어. 무슬림이잖아.”

“아, 미안. 너는?”

다른 친구에게 물었다.

“난 괜찮아. 불교도거든.”

한국에서 가져온 소시지를 아무 생각 없이 무슬림 친구에게 건넸다가 민망했던 일이 있어서 주의하자고 생각했는데, 또 이런 실수를 하다니. 순전히 불교도처럼 생긴 친구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면 이슬람은 다른 종교에 비해 유독 하지 말아야 할 것도, 지켜야 할 것도 많기에 배려해야 할 부분이 많다. 술도 마시지 말아야 하고, 돼지고기도 먹으면 안 되고,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해야 하고, 금요일 열두 시에는 모스크에 가야 하고, 여자들은 몸과 머리카락을 가려야 하고, 혼전 순결도 지켜야 하고. (무슬림이 혼전 순결을 지키지 않을 경우 직업적으로도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결혼을 일찍 한다고 한다).

내게 이슬람은 허들 경기처럼 느껴졌다. 숱한 장애물들을 넘고 넘어야 알라에게 다가갈 수 있고 천국에 갈 수 있기에. 내가 생각하는 가장 거대한 허들은 라마단이었다. 라마단은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알라로부터 코란의 계시를 받은 것을 기려 한 달 동안 해가 떠 있는 시간에 금식하는 의식이다. 물로 목을 축일 수도 없고, 담배도 피울 수 없고, 섹스도 할 수 없다. 그야말로 지독한 금욕의 시간이다. 무슬림들은 해가 지면 낮 동안의 금욕을 보상받기라도 하겠다는 듯 한 상을 거하게 차려 사람들을 대접했다. 어차피 무슬림이 아닌 나는 아침 점심을 잘 챙겨 먹고 그들의 잔치에 초대받아 거한 접대를 받곤 했다. 제3자로서는 행복할 수도 있는 기간이지만, 내가 당사자라면 절대 할 수 없을 의식이 바로 라마단이었다.

지하 역시 라마단을 지켰다. 제집 드나들 듯 카페를 찾던 지하의 발길이 끊긴 것도 라마단이 시작될 즈음이었다. 이슬람 달력을 알 리 없는 나는 지하가 갑자기 오지 않는 게 외상을 달아놓고 갚지 않으려는 수작이라고 오해를 했다. 그 이유가 라마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라마단 때문에 당분간 단골을 잃어야 한다니 속상한 일이었다. 라다크의 성수기 4개월 중에 하필이면 라마단이 껴 있다니. 알라도 참 무심하시지. 영어가 큼지막하게 박힌 노란 티셔츠에 캡 모자를 즐겨 쓰던 그는 무슬림 전통 의상을 입고, 무슬림 모자를 쓰고 라마단을 지키고 있었다. 지하는 라마단 초반에는 의욕에 차서 금식을 했지만 금세 원래 즐겨 입던 옷을 입고 카페에서 짜이를 시키고 담배를 피웠다.

“뭐야? 라마단 기간이잖아.”

“몸이 안 좋아져서 도저히 못 하겠어.”

“이런 날라리.”

지하처럼 설렁설렁 라마단을 보내는 무슬림들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 노란 해가 떠 있는 동안 자신을 절제하며 보냈다. 그리고 그 기나긴 인내 끝에는 보상이 있었다. 라마단이 끝난 다음 날은 무슬림들에게는 가장 큰 축제이다. 무슬림들은 그날을 ‘이드 알 피트르Eid al Fitr’ 라고 부르며 온종일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이드는 축제라는 뜻이고 피트르는 금식을 깬다는 뜻이다. 금식을 깨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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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가 추숏Chuchot(레 남쪽에 있는 마을)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이드 알 피르트’를 기념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자고 우리를 초대했다. 나는 터키에서 봤던 왁자지껄한 축제가 레에서도 일어날 것을 기대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음식을 나눠 먹고 신나게 노는 대신 다들 가게 문을 닫고 자기네들끼리 즐기는 듯했다. 나는 지하의 집에서 축제를 함께 즐기기로 했다.

라다크 사람들에게 여러 번 식사 초대를 받아봤지만 라다크 무슬림의 집에 초대를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손님을 식사에 초대하면 보통 술도 함께 준비하는데, 라다크 무슬림들의 축제에는 술이 없었다. 지하의 부인은 양고기, 닭고기, 채소 요리 등을 끊임없이 가져다주었다. 라다크 사람들이 손님을 식사에 초대했을 때 어떻게 손님에게 음식을 대접하는지 이미 알고 있던 나와 지혜는 점심도 거른 상태였다. 지하와 그의 가족을 포함해서 초대받은 몇몇 무슬림 친구들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먹어댔다. 어마어마한 먹성이었다. 한 달 동안 제대로 먹지 못한 걸 그 하루에 다 보상받으려는 듯했다.

“천천히 좀 먹어. 이러다 체하겠어.”

“체해도 괜찮아. 너희도 많이 먹어. 이건 축제니까.”

그렇게 한참을 앉아 그들과 웃고 떠들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오랜 시간 라다크에 머물면서도 늘 낯선 존재였던 라다키 무슬림들은 그렇게 한 걸음씩 가까이 다가와 ‘친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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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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