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에서 일하고 있는 인도 친구 루치와 아비셱, 라다크 친구 도르제가 퇴근 후 카페에 놀러 왔다. 모두 술과 노래를 좋아하고 흥을 아는 친구들이다. 우리는 맥도웰을 홀짝이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루치와 아비셱은 겨울에 잠시 라다크를 떠나 고향으로 내려갈 때를 빼고는 늘 라다크에 머무르고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리와 마찬가지로 외부인이었다. 도르제는 외부인인 우리가 라다크 사회의 분위기를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나는 이전부터 해왔던 생각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라다크 사람들은 특이해. 낯선 사람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한없이 친절하고, 경계심도 없어서 외부에 대해 굉장히 열려 있는 것처럼 보여. 하지만 계속 지내다 보면 여러모로 폐쇄적이라는 생각도 들어.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너무 크다고 해야 하나. 외부로부터 고립된 채로 오랫동안 살아왔기 때문일 수도 있지.”
도르제는 조금 발끈하며 대답했다.
“폐쇄적이라고? 라다크는 굉장히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사회야. 역사적으로 그리 멀지 않은 과거까지도 일처다부제의 관습이 남아 있었어.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았다는 거지.”
일처다부제의 관습이 라다크 사회의 개방성과 어떻게 연결이 되는지는 당장 이해가 되지 않아 따져 묻고 싶었지만, 도르제의 말투에서 자부심(?) 비슷한 것이 느껴졌기에 그만두기로 했다. 사실 도르제뿐만이 아니라 라다크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단한’ 자부심을 품고 있다. 라다크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자부심이 도를 지나쳐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라다크는 ‘인도 속의 작은 티베트’라고 불리지만, 라다크 사람들은 스스로를 ‘인도 사람’과도 ‘티베트 사람’과도 완전히 구별 짓곤 한다. 사실 국적으로 따지자면 그들은 인도라는 나라의 국민이고, 티베트와 라다크는 문화적으로 절반 이상 닮았는데도 라다크 사람들은 그들로부터 자신들을 떼어놓기에 바쁘다.
라다크에 대한 이미지 탐색은 인도를 여행하는 각국의 여행자들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다. 한국 남자들은 외국 남자에 대해 과도한 경계심을 품는다, 한국 여자 여행자들은 모두 ‘앞머리’라는 것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 여행자들은 어디를 가든 답이 없는 친구들이다, 사실 가장 끝까지 지독하게 흥정하는 사람들은 독일 여행자들이다, 일본 남자 여행자들은 거지 차림을 하고 다닌다 등등.
한참 대화를 이어나가고 있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나는 조용히 전화를 받기 위해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카페 아래층은 아룬의 사무실이었다. 친구와 한참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계단 아래쪽에서 두 남자가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늦은 밤에 이곳을 찾을 사람은 친구들밖에 없는데 친구들의 목소리는 아니었다. 순간 바짝 긴장한 나는 서둘러 전화를 끊고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목소리는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누구세요?”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 보는 얼굴의 두 남자였다. 그들은 그 어떤 인사의 말도 없이 다짜고짜 물었다.
“LBA에서 왔습니다.”
LBALadakh Buddist Association라는 조직에 대해서는 친구에게 들어 대충은 알고 있었다. LBA는 말 그대로 라다크 불자들의 협회다. 그들의 등장과 동시에 영화 속에서 숱하게 보았던 익숙한 장면이 하나 떠올랐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현장에 검은 정장을 입고 나타나 신분증을 내보이며 수사 협조를 구하는 FBI 요원들! 그만큼 그들의 태도는 굉장히 사무적이고 공격적이었다. 나는 기가 차서 되물었다.
“그런데요?”
“여기서 파티가 벌어지고 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검문차 들렀습니다.”
신고? 검문? 순간 머릿속에 수만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라다크 사회에서는 허가받지 않은 장소에서 밤에 술을 마시는 것이 큰 죄가 될지도 몰라. 어쩌면 좋지? 뭐라고 변명이라도 해야 하나? 벌금을 내라고 하면 어쩌지? 아니, 추방이라도 당하면?
어떠한 망설임도 없이 위풍당당한 그들의 태도에 나는 순간 정말로 죄를 지은 사람처럼 수그러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카페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검문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아닌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누구에게 신고를 하고, 누가, 누구를 검문한다는 말인가? 경찰이 버젓이 활동하고 있는데 라다크 불교 협회의 회원이 무슨 권한으로 개인을 불시검문 한다는 말인가? 그들이 농담을 하고 있다고 치더라도, 이런 농담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로도 LBA라는 조직의 성격과 라다크 사회에서 이 조직이 갖는 위치가 대번에 짐작이 되었다. 이들의 페이스에 말려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요? 카페의 영업시간은 끝났고, 나는 친구들을 초대해서 술을 마시고 있어요. 그것도 문제가 되나요?”
"이곳은 라다크입니다.”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인도 곳곳을 여행하면서 ‘This is India’라는 말은 숱하게 들어봤지만 라다크 사람들이 이렇듯 텃세를 부리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럼 올라가서 확인해보세요. 우리 카페는 위층이에요.”
“아니요, 이 사무실 안을 점검해야겠는데요.”
그들은 아룬의 사무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룬은 이미 퇴근한 뒤라 사무실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었다.
“이 사무실은 나와 상관없어요. 보고 싶으면 이쪽으로 올라가서 확인하세요.”
“우리는 이 사무실을 보고 싶습니다. 열쇠를 주시죠.”
“이 사무실은 나와 상관없다니까요! 내가 이 사무실 열쇠를 왜 갖고 있겠어요?”
“당신이 갖고 있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협조하지 않으면 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겠습니다.”
그들은 정말 문을 부술 기세로 달려들었다. 상황이 악화되는 듯하자 덜컥 겁이 났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이토록 흥분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의문의 사내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 위층에서는 친구들의 웃음소리가 음악소리와 흘러나오고 있었다. 당장 올라가서 친구들을 불러오고 싶었지만 오기가 생겼다. 나는 정색하며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되받아쳤다.
“경찰에 신고하겠어요. 아니 한국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할 거예요!”
“그렇게 하세요, 그래 봤자 여긴 라다크니까요.”
그들은 또다시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한국에서 대통령을 데려오겠다고 해도 귓등으로도 듣지 않을 것 같았다. 나는 침착하게 다시 상황을 설명했다. 문제가 되는 일이 있다면 아무 말 않고 받아들일 테니 올라가서 확인하라고 말했다. 둘은 한참을 무언가 논의하는 듯했다. 나는 잠자코 그들의 대답을 기다렸다. 마침내 남자는 한층 수그러든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당신은 불교 신자입니까?”
어처구니가 없었다. 그 순간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당신들이 지금 이러는 이유는 이 사무실의 주인이 크리스천이기 때문이군요. 그렇죠? 당신들 불교 협회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싫기 때문에?”
돌아온 그들의 대답은 가관이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여기 이 친구는 무슬림인 걸요.”
“그러니까 라다크 불교 협회에는 무슬림 회원도 있다는 말이네요. 그렇다면 LBA의 정체가 뭔가요?”
사태가 코미디로 진행되어갈 때 즈음 친구들이 내려왔다. 도르제는 그들과 아는 사이인지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나는 먼저 도르제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도르제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그들에게 이것저것 물었고, 한참을 옥신각신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마침내 의문의 두 남자는 “실례했습니다, 마담”이라는 사과의 말을 남긴 채 사라졌다.
도르제는 그들이 LBA의 회원이 아니며, 옆 건물의 바에서 술을 한잔 마시고 나오는 길에 카페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려와서 술김에 ‘장난’을 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나를 다독이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 아무 일도 아냐.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니 잊어버려.”
하지만 그들이 진짜 LBA의 회원이든, 지나가던 동네 건달이든 나에게는 더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코미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라다크에서 지내는 동안 국적을 묻는 말 다음으로 많이 받아본 질문이 “불교 신자입니까?”이다. 내가 불교신자인 것과 무슬림인 것은 이들에게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 크리스천이라면? 종교를 갖지 않은 사람이라면? 간단하게 말하자면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라다크는 보통 티베트 불교 문화권으로 대부분 사람들이 불교를 믿는다고 알려져 있고, 덕분에 불국토의 상징이 되어 티베트 불교가 갖는 마법적 매력에 이끌린 수많은 여행자, 특히 서양 여행자들의 목적지가 되고 있다. 그러나 레 시내 한가운데에는 불교 사원뿐만 아니라 이슬람 사원도 있고, 교회도 있다. 이슬람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아잔 소리가 하루에 다섯 번씩 레 시내 곳곳에 울려 퍼지며, 교회에서는 매주 일요일 예배가 열린다.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또한 적지 않다. 이렇게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곳이지만 이곳에서 불교는 권력 그 자체이다.
내가 경험한 라다크는 총을 들고 싸우지 않을 뿐 내면화된 종교갈등이 깊은 지역이다. 종교에 따라 소속될 수 있는 사회집단이 확실하게 나누어진다. 그들의 정체성을 결정짓는 요인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종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다크에서 종교란 개인의 신념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이 불교도인 채로, 혹은 무슬림은 채로 태어난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행동, 생각과 생활의 곳곳에 종교가 깃들어 있다.
훗날 웃지 못할 LBA 해프닝을 라다크 친구 델렉에게 이야기해주었다.
“라다크 사회는 정말 이상해.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장난이 가능한 거야?"
“나도 불교 신자이지만 LBA는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아, 자신들이 공무라도 집행하는 듯이 군다니까. 종교단체일 뿐인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차라리 이름을 라다크 청년 연합Ladakh Youth Association으로 바꾸는 것이 낫지 않겠어?”
델렉은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LBA가 원래부터 이렇게 경찰처럼 활동했던 것은 아니야. 우리에게 불교는 그냥 삶의 방식일 뿐이었어. 부처는 어떤 신을 믿으라고 이야기하지 않거든. 중요하지도 않고 말이야. 그런데 불교의 그런 성격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지켜왔던 ‘메이저’로서의 위치가 흔들리기 시작한 거야. 사람들은 두려워하기 시작했어. 가만히 있다가는 갖고 있던 모든 것들을 내놔야 할 판이었거든. LBA는 불교 공동체를 본격적으로 관리해야만 했어. 청년 조직을 만들어서 사회 이곳저곳에 잣대를 들이대며 규제했어. ‘라다크’적이지 않은 모든 것들을 배척하기 시작한 거야. 불교 외의 다른 종교는 물론이고 외부로부터 유입되는 문화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지.
정말로 LBA에서 카페 두레에 검문을 나왔던 거라면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가 있었을지도 몰라. 너도 알다시피 라다크에서는 여자들이 술을 마시는 일이 일반적인 건 아니잖아? 레 시내에 어디에서도 라다크 여자들이 대놓고 술을 마시는 일은 절대 찾아볼 수 없어.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 라다크가 오랜 시간 간직해온 가치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 LBA의 경우는 도가 지나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해. 너무 많은 것들이 한꺼번에 변하고 있어서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있어.”
한참을 이야기하던 델렉의 표정이 무거워 보였다. 나는 짐짓 웃어 보이며 그 웃지 못할 해프닝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지만, 델렉은 이번 사건에 자못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델렉 역시 라다크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라다크인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화 중에 라다크의 불교와 불교 문화에 대한 이야기라도 나올라치면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알려주기 위해 두 눈을 밝히던 그였다. 그런 그의 입에서 라다크 사회에 대한 쓴소리가 나온 것은 처음이었다.
델렉은 나의 볼멘소리에 맞장구를 쳐주었지만, 고작 몇 달 라다크에 머물렀을 뿐인 외국인이 라다크 사회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쓴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한편으로는 불편하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그의 자부심에 상처를 준 것 같아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극복해야 할 문제였다.
나라고 언제까지나 라다크의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며 침이 마르게 칭찬만 할 수는 없는 일이었으니까. 경계에 선 내 눈에 보이는 라다크 사회의 모습들에 대해서 라다크 친구들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다. 나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말이다. 나는 과연 라다크와 가까워지고 있는 것일까? 이 경계선에서 벗어나 한 걸음 더 다가가야 할까? 아니면 언제까지고 이 언저리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일까?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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