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으로, 과거로
“마치 죽은 새의 날개 같아”
그라나다 시내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춰 한 나무의 잎을 찍으며 놀라운 발견을 했다는 듯 말했다.
"어 정말, 그렇다, 되게 멋있다."
라고 말해준 S와 달리 H는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반응을 보였다.
“그런가? 그런 것 같기도 하고.”
10년 전 와봤던 그라나다에 다시 온건 온전히, 이곳에서 자리를 잡고 4년째 살고 있는 친구 S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회사를 관두고 여행을 준비하는 H에게 같이 스페인에 가자고 제안한 건, 연인으로서의 단순한 배려였다. 그랬기에 유럽은 그다지 관심이 없다는 H의 말에 나는 내심 안도했다. 오랜만에 보는 S와의 시간을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돌연 H의 변심으로, 스페인은 우리의 세 번째 여행이자, 두 번째 해외여행이 되었다.
2년 차 커플이었다. 엄청나게 열렬하지 않지만, 심드렁한 관계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계적인 데이트에서도 어쨌든 우리의 심장은 늘 쿵쾅거렸고 볼은 붉었으니. 다만 그런 신체적인 반응은 서로로 인해서보다는 술의 힘이 더 컸을 것이다.
우리는 술을 좋아했고, 늘 술을 마셨다. 그리고 스페인 여행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거침없이 술을 마시며 스페인의 밤거리를 누볐다. 낮에는 뭘 하든 상관없었다. 술을 시키면 매번 다르게 나오는 타파스가 신기해서 우리는 무슨 게임을 하는 사람처럼, 다음은? 다음은? 다음은? 다음 스테이지로 가기 위해 끊임없이 술을 시켰다. S가 데려간 모든 술집은 정말 맛있는 술과 타파스를 계속 내왔고, 나는 정말 그라나다에 살고 싶다는 말을 백 번은 넘게 했다.
마드리드로 돌아온 우리는 여행에서의 마지막 저녁을 먹었다. 영어 메뉴를 보고 대충시켰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다. 고기 비계로 만든 수프였는데 한 입 먹고 더 이상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느끼했다. 나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고, H는 마드리드에 며칠 더 묵은 뒤 프라하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그래, 비행기 잘 타고 무사히 한국에 가고,”
아직 헤어지기까지 시간은 꽤 남아있었지만, H가 집에 무사히 가라는 얘기를 건네며 왈칵 눈물을 쏟아냈다. 나 역시도 같은 마음이었다. 곧 다시 만날 건데, 고작 3주 뒤면 볼 건데도 자꾸만 마음이 웅웅거리고 눈물이 쏟아졌다.
“나 군대 갈 때 울어보고, 처음 울어.”
우리는 느끼한 비계 수프를 가운데에 두고 둘이 눈이 빨개지도록 울다가, 다시 웃고, 와인을 마셨다.
그리고 난 공항에서 H로부터 카톡을 받았다. 너로 인해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넓어졌는지, 이번 여행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너라는 사람에게 얼마나 고마운지, 20줄도 넘는 길이의 카톡은 살면서 받아 본 중 가장 길고 가장 낭만적이고 가장 감동적인 카톡이었다.
그리고 3개월 뒤 우리는 헤어졌다. 어쩌면 우리는 붙잡아둘 수 없는 여행지에서의 낭만적인 순간과 점차 균열이 가고 있는 관계에 대한 괴리감에 그렇게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스페인에 흩뿌린 우리의 웃음이, 울음이, 취기가, 분노가, 사랑이 아직도 가끔 떠오른다.
_ 즐겁고도 위태로운, 스페인 그라나다 / 이오
"그의 마음이 여전히 그라나다에 남아 있었어요. H에게서 돌려받지 않은 마음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채, 그렁그렁한 슬픔에 담겨 죽은 새의 날개처럼 축 늘어져서, 그라나다의 바람에 흩날리고 있죠. 그 마음을 찾아와야 해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래를 향해 전진하기 위해서는, 과거에 놓아두고 온 그 마음을 찾아와야 해요."
이제는 [스팀시티]의 운명공동체가 된 이오에게 마법사는 제안을 했습니다. 물론 그는 총수가 아니니 마법사의 제안을 얼마든지 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법사는 [스팀시티]로부터 온 직관을 따라, 그에게 과거로 가서 그 마음을 찾아오지 않겠느냐고, 못다 한 이별을 고하고 남겨진 마음을 가져오지 않겠느냐고 제안했습니다.
"이오는 라총수의 <위즈덤 레이스>에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어요. 남미에서 말이죠. 그런데 [스팀시티]는 다른 제안을 했어요. 먼저 과거로 가서 남겨진 마음을 찾아와야 하지 않겠느냐고. 이미 라총수는 동쪽으로 여정을 시작했고, 남미에서 합류할 생각을 하고 있던 이오에게 [스팀시티]의 메시지를 전달해야 했죠. '서쪽으로 가서 남겨둔 마음을 가져오지 않겠어요? 배를 타고 말이에요.' "
길은 양쪽으로 뻗어있다. 동쪽은 미래로 가는 길이다. 서쪽은 과거로 가는 길이다. 나는 꽤나 오래전부터 과거의 시간에 머물러 있었다. ‘현재’에 서서 ‘미래’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과거’의 감옥에 갇혀 과거를 보고 웃고, 과거를 보고 울었다. 몸은 앞으로 향해있지만 뒤로 꺾여진 머리는 보기에도 기괴하고 스스로도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그래서 경직된 목을 두둑두둑 풀어내고 앞을 바라보기 위해, 과거를 마주하기 위해 과거로 떠나기로 했다. 서쪽으로 떠나기로 했다. 그리고 그 길은 바닷길이다.
_ 커티샥을 마시고 서쪽으로, 과거로 (feat. 1Q84) / 이오
미련이 남은 마음은 소금기둥으로 굳어버릴 뿐입니다. 과거의 시간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은 비참합니다. 다음 생을 기다리고, 또 그다음 생을 기다려도 시간은 미래로 나아갈 뿐, 과거로 돌아가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벌어진 두 사람의 시간은 각자의 궤적을 달리고, 지난 시간 뒤에 다시 만나봐야, 내가 알던 그가, 그가 알던 내가, 더이상 아니기 때문입니다.
알함브라 궁전의 기억
하루는 스페인에서 영어 강의와 함께 가이드도 겸하고 있는 S가 우리를 위해 알바이신 투어를 계획했다. 해지기 전에 만나기로 하고 나와 H는 알함브라 궁전을 거닐었다. H의 사소한 농담이 나의 기분을 상하게 했고 우리는 대차게 싸웠다. 다시 안 볼 것처럼 굴고 오래지 않아 화해했지만, S의 알바이신 투어를 받는 내내 우리는 조용했다. 그녀는 어색한 얼굴로 우리에게 말했다.
“내가 투어를 몇 년 했는데 이렇게 반응이 없는 사람들은 처음이야.”
_ 즐겁고도 위태로운, 스페인 그라나다 / 이오
이별의 전조처럼, H와 대차게 싸운 알함브라 궁전은, 이베리아반도를 점령하고 있던 이슬람 무어제국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어제국의 찬란했던 시간은, 1492년 스페인 이사벨 여왕에게 패망함으로써 막을 내리고, 무어제국의 마지막 왕 무함마드 12세는 알함브라 궁전을 부수지 말아 달라며 자진 항복을 하고는 궁전을 떠나 아프리카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알함브라 궁전을 떠나며 '영토를 빼앗기는 것보다 이 궁전을 떠나는 게 슬프구나'라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상실의 슬픔에 빠진 아들이 못마땅했던 그의 어머니는 '남자처럼 제대로 지키지 못했으니, 여자처럼 울기라도 해야지.'라며 비아냥거렸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함마드 12세는 알함브라 궁전을 잊지 못하여, 북아프리카에 그와 비슷한 궁전을 만들어 그곳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했다고 합니다.
알함브라 궁전을 새로 점령한 이사벨라 여왕조차 '부수기는 쉬우나 이렇게 아름다운 궁전을 다시 만들기는 어렵다'며 궁전을 보전하게 했으나, 이사벨 여왕 사후 궁전은 수 세기 동안 가톨릭 세력에 의해 수난을 겪게 됩니다. 이슬람 건축의 상징인 모스크를 성당으로 개축하고 수도원을 짓는가 하면, 궁전을 허물거나 기독교식으로 변경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뒤로 알함브라 궁전을 왕궁으로 쓴다던 계획도 흐지부지되어 중앙 정부에서는 슬슬 이 궁전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18세기 초에 펠리페 5세가 며칠 들렀던 것이 마지막 왕실의 방문이었다. 그 이후로도 알함브라는 계속 훼손되는데, 계속적인 개수공사가 있었음에도 이베리아반도 전쟁을 피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쟁 말미인 1812년에 프랑스의 세바스티앵에 의해서 탑들이 철거되어 피해를 입고, 1821년에는 지진피해까지 입었다. 그 뒤로는 지역 총독마저 알함브라 맞은편의 헤네랄리페에서 거주하면서 궁전을 완전히 방치하는 바람에 집시와 강도들의 무단거주지로까지 퇴락했다.
_ 알함브라 궁전 (나무위키)
"부수기는 쉬우나 다시 만들기는 어려운 일이죠. 그리고 부서진 마음에는 온갖 지저분한 것들이 밀고 들어와 자리를 차지하지요. 원망과 우울, 미련과 미움 등등.. 그것은 역사의 상처를 입은 궁전뿐만 아니라, 공백이 생겨나기 시작한 모든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상처에 갇혀 고개를 과거로만 고정하고 있으면 삶은 제자리걸음을 할 수밖에 없고, 어느새인가 림보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도 제자리에 멈춰 설 수도 없게 됩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는 당연히 없죠. 용기가 나지 않으니까요. 정면으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할 용기를 가진 이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할 리가 없습니다. 텅 빈 마음을 밀고 들어와 차지하고 앉아 있는 온갖 지저분한 것들을,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지 않으면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수가 없어요. 그것에는 진정 용기가 필요하지요. 어느새 친숙해져 버렸으니, 어느새 의존되어 버렸으니.."
아니, 단순히 혼자여서 때문이 아니었다. 연이어 상처받는 일로 극도로 무너져 있어서 그랬다. 석양을 좇으며 내가 다시는 떠오르지 않을 석양이고 싶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글을 쓰는 것도 싫었고, 쓰면 쓸수록 내 글이 미웠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무기력한 나날이 이어졌다. 무언가 애써 하고 싶지 않았고, 애를 쓸 에너지가 전혀 없었다. 그저 가라앉는 나를 가만히 지켜보며 이따금 숨을 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때 늘 나를 격려하던 건 너였다. 움직이게 해준 것도 너였다. 글을 다시 열심히 써야지 마음먹게 해준 것도 너였다. 나는 이제 숨도 아주 잘 쉬고, 밥도 잘 먹고, 지는 해를 보며 그렇게까지 많이 아프진 않다. 아직 내 글이 예쁘게 느껴지지는 않지만, 많이 쓰는 게 중요하니까. 네가 소개해준 스팀잇에서, 스팀문학전집에서 열심히 많이 글을 써보려 한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 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닫아걸었다.’
_ 최은영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내 생의 초반에 만난 가장 중요한 사람 @roundyround(라총수) 에게 늘 고맙다. 그리고 이곳에서 새로운 관계의 첫 장도 열 수 있다면, 그건 그거대로 의미가 클 것 같다.
_ 스팀잇. 이제 시작합니다 / 이오
그때 이오에게 용기를 불어넣어 준 것은 그의 베프 라총수였습니다. 새로운 것을 시작해보라거나, 툴툴 털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보라거나, 너는 할 수 있다고, 같잖은 위로의 말 따위를 늘어놓은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가족을 연이어 잃고 상실의 시간을 보내던 친구가, 미래를 향해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기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 것입니다. 용기를 내어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을 몸소 보여준 것입니다. 기억을 떠올리게 한 것입니다. 상실의 기억 이전에 세상에 거칠 것이 없던 두 사람,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했던 수많은 모험과 도전들. 그들은 거칠고 험한, 키 높이까지 눈이 쌓인 히말라야 산맥도 맨몸으로 정복한 역전의 용사들이었으니까요.
티베트 니알람에서 4일을 고립되어 있다가 7시간 눈을 헤치며 걷고 1시간 버스를 타고나서야 마주할 수 있었던 국경 도시 장무는 내가 겪은 가장 드라마틱한 국경이다. 나와 친구들은 밀입국이라도 하는 사람처럼 숨을 죽인 채 환호하고 숙소에 와서야 ‘우리 하나 되어 이겼어’ 노래를 부르며 오열했다. 모험이자 설렘이던 국경이 내게 무덤덤해진 건 무기력이 습관으로 굳어지던 어느 날들이 계속 이어지면서였다. 떠도는 삶과 머무는 삶을 반복하며 나는 떠도는 것도 머무는 것도 행복하지 않은, 무엇을 해도 행복하지 않은 돌연변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서는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욕망도 열망도 기쁨도 행복도 아무것도 없이 남은 것은 무기력뿐이라 그 무엇도 할 수 없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조금씩 애써 몸을 일으키다가 결국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 다시 여행을 떠나보기로 했다. 나는 길 위에서 가장 크게 웃는 사람이었으니.
하지만 이번에 내가 떠나는 길은 두 발 디딜 수 있는 땅이 아니라 그 속을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찰랑거리고 위험한 바다다.
_ [크루즈 투어] 프롤로그, 새로운 국경을 찾아서. / 이오
축복의 위스키
"용기를 낸 이오에게 [스팀시티]는 바닷길을 제안했어요. 크루즈를 타고 서쪽으로, 과거로, 남겨진 마음을 찾아 그라나다까지.. 바다를 거슬러 과거의 자신에게로 돌아가는 거예요. 거기서 남겨진 마음을 찾아 다시 미래로, 가라앉은 [스팀시티]를 찾아 지구행진을 시작한 라총수의 여정에 동참하기 위해, 친구를 넘어 [스팀시티]의 첫번째 투자자로서 위대한 여정을 개척해 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 거예요. 상처 입은 영혼들이, 과거에 남겨진 마음을 찾아 떠나게 될 위대한 항해를 개척해보지 않겠느냐고 말이에요."
“크루즈 여행을 가보는 건 어때요?.”
애초에 남미로 여행을 가려던 내게 갑작스러운 이 제안은 얼토당토않게 느껴졌다.
“네??? 크루즈요?? 으하하하하하.”
어이가 없어서 큰소리로 웃었다. 얼마 만에 이렇게 크게 웃었던지.
“크루즈 엄청 비싸고 은퇴한 노부부들이나 가는 거 아닌가요?”
살면서 내가 크루즈 여행을 해볼 거라고는 생각도 해본 적 없고, 관심도 가져본 적도 없다. 크루즈 하면 떠오르는 것도 타이타닉 같은 영화의 장면과 남들이 대부분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편견 정도뿐이다. 근데 순간 머릿속에 큰 배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붉게 타오르는 해 질 녘의 하늘 아래 쪽빛 망망대해가 펼쳐지고, 그 위에 떠 있는 하얀 색 배 안에 위스키를 한 잔 들고 서 있는 내가. 근사한 그림이었다. 그리고 크루즈는 내 생각만큼 비싸지도 않았다.
그래서 물렁물렁하고 유연하고 속을 알 수 없는 바닷길에 뛰어들기로 했다. 바다로 국경을 넘나들기로 했다. 크루즈를 타고 세계 일주를 하기로 했다.
_ [크루즈 투어] 프롤로그, 새로운 국경을 찾아서. / 이오
그것은 운명적이었습니다. 라총수가 동쪽으로 떠나고, 멀린은 우연히(?) 만난 지인으로부터 크루즈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여정이 스페인 그라나다를 향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 [스팀시티]는 마법사의 직관을 통해 말했습니다.
'이오에게 제안해 볼 것.'
그러나 이것은 제안하기도 전에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과거를 헤엄쳐 나가기 위해 서쪽으로 배를 타고 여행을 하기로 결정했고, 그 결정을 하고 돌이켜보니 밋업 날의 커티샥이 떠올랐다. 그리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날 피터님이 가져온 커티샥의 범선은 나의 배였다. 그 술을 따라 하이볼을 만든 것도 나였고, 그 술을 가져간 것도 나였고, 그 술에 그려진 범선에 올라탈 사람도 나였다.
커티샥에 그려진 커티샥호는 영국에서 위스키와 맥주, 와인, 차 등을 싣고 상하이를 오가던 배로 1871년 상하이와 런던을 107일 만에 주파한 기록을 갖고 있는 ‘한 때 세계에서 가장 빨랐던 범선’이다. 커티샥호가 술 냄새를 풍기며 오갔던 그 길을 나도 술 냄새를 풍기며 오갈 것이다. 그래서 이 여행의 시작은 상하이이다. 크루즈를 타고 상하이에서 싱가포르로, 싱가포르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미대륙으로 미대륙에서 오세아니아로 지구 한 바퀴를 돌 것이다. 그 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하다. 두근두근한 마음을 돋우기 위해 커티샥 하이볼을 한잔 타서 마신다.
아, 밍밍하다. 근데 그게 맛이다.
_ 커티샥을 마시고 서쪽으로, 과거로 (feat. 1Q84) / 이오
마법사가 이오에게 크루즈 여행을 제안하기 한 주전, 또한 마법사가 지인으로부터 크루즈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듣기 며칠 전, [스팀시티]는 밋업을 열었습니다. 이제 곧 <위즈덤 레이스>를 시작하는 라총수를 배웅하는 밋업에서, [스팀시티]의 영성가 피터는 마치 이오의 크루즈 여행을 예고라도 하듯, 범선이 그려진 위스키 '커티샥'을 가져왔습니다. 주전자만 한 댓병 사이즈의 '커티샥', 이오는 그것으로 하이볼을 만들었고, 남은 '커티샥'을 집으로 가져가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마법사는 크루즈 여행을 제안한 것입니다.
"커티샥은 독특한 방패 모양의 노란색 라벨이 특징인데, 짧은 치마를 입고 바람과 같이 달릴 수 있었던 젊은 마녀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해요. 이는 이오의 여정입니다. 남겨진 마음을 찾으러 과거로 가는 여행을 축복하는 운명의 위스키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스팀시티]는 이미 중첩된 시공간에서 이오의 서쪽 여정을 미리 축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가 더이상 헤매지 않고 '한때 가장 빨랐던 범선'의 길을 따라 자신의 남겨진 마음을 찾아올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 미래로 나아가, 과거에 묶인 수많은 남겨진 마음들에게, 주저하지 않고 확신으로 가득 찬 내일이 너를 기다리고 있다고 기쁨의 소식을 전할 수 있도록.."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_ 조지 고든 바이런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이토록 늦은 한밤중에
지금도 가슴속엔 사랑이 깃들고
지금도 달빛은 훤하지만칼을 쓰면 칼집이 해지고
영혼이 괴로우면 가슴이 허하나니,
심장도 숨 쉬려면 쉬어야 하고
사랑에도 휴식이 있어야 하느니라.밤은 사랑을 위해 있고,
낮은 너무나도 순식간에 돌아오지만,
이제는 더 이상 헤매지 말자
아련히 흐르는 달빛 사이를……
시를 음미하며,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이 일상인 내가 곧은 마음으로 더 이상 헤매지 않게 되는 어느 날을 상상했다. 주저하지 않고 확신으로 가득 차 행동할 수 있는 어느 날을.._ [위즈덤 레이스] 크레타섬 하니아, 그곳엔 조르바가 있다 1 / 이오
크루즈에서는 길을 잃을 염려가 없습니다. 과거는 지나왔고, 돌아가는 길 역시 지나 온 길을 되집어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이상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과거로 돌아가 남겨진 마음을 찾게 되면, 텅 빈 가슴이 가득 채워지며 앞길을 비춰주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마음이 비춰주는 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면 됩니다. 이오가 그러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