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나무는 비전이나 명상을 재점검해 보는 방법이다. 속성을 제대로 배정하면 상징체계가 끝없이 분화하면서 생명나무에 일치하게 된다. 만약 속성을 잘못 배정하면 상응물의 사슬을 추적하려 할때 상징체계가 무너지고 그 이상한 연관관계가 드러난다. 이처럼 속성을 제대로 배정하면 관계의 사슬이 계속 세분화한다는 사실은 정말 놀라울 따름이다. 여기서 논리적으로 연결된 사슬의 길이는 우리의 지식 범위에 따라 한정된다. 과학, 예술, 수학 그리고 역사 속의 신기원들과 윤리학, 심리학, 생리학 등을 통해 그 길이는 점점 더 확장될 것이다. 이처럼 정신을 활용하는 특별한 방법을 통해 고대인들은 나름대로 자연과학 지식의 개연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물론 이 지식은 정교한 도구가 발명된 다음에야 견고해졌다. 우리는 분석심리학의 꿈 해석 방법을 통해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잠재의식이 갖고 있는 상징화 능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적설한 실험을 하나 해보자. 서로 관련성이 없는 상징들을 마음에 떠올리고 생명나무를 명상하면서 그들이 스스로 분류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다. 꿈을 분석할 때와 마찬가지로 연상의 사슬이 길게 이어지면서 의식 가운데로 이들 상징이 솟아오르는 모습을 지켜보라. 미스티컬 카발라
동양의 원형적 상징체계를 떠올리라면 우선 주역의 괘상이 먼저 생각난다. 선천팔괘도와 후천팔괘도로부터 다양한 술법들이 응용되어 나왔다. 처음 역학을 공부할때 재야의 학자 혹은 수행자들과 얘기를 나누다보면 그들의 생각에는 서양의 신비주의를 경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런데 마녀화영식을 생각해보면 서양도 마찬가지였다.
정신세계는 물질세계와 다르게 경계가 없다. 그런데 그들은 스스로 경계를 만들어 정신적 해석을 물질화(표상화)하며 가치 위계를 함부로 설정한다. 이러한 태도는 확실히 자가당착이다. 정신의 무경계성와 물질의 경계성을 혼돈하는 것이다. 문화는 소통되면서 발전해가는 것이다. 소통은 상호존중의 기반위해서 진화되어야 한다. 자신의 해석적 틀은 적용의 경계일뿐 물질화된 경계가 아니다. 종교, 사상, 철학의 도그마는 정신의 물질화된 병폐이다. 정신의 말랑말랑한 유연성이 딱딱한 벽으로 변형되어 스스로를 가두어버리는 것이다.
다이언 포춘이라는 여성 신비가의 책을 읽으면서 서양의 원형적 상징체계인 생명의 나무를 통해서 이를 해석, 적용하는 방법이 주역의 상징체계 해석, 적용 방식과 너무나도 유사하여 깜짝 놀랐다. 이미 200여년전부터 동서양의 문화교류가 활발해 지면서 교차영성의 해석적 시도들이 넘쳐났다.
대체로 다른 문화에 속한 만신전의 신들은 10세피로트의 열개의 칸에 분류해 넣을 수 있다. 이때 우선적인 분류 기준은 점성학적 의미다. 왜냐하면 점성학은 일종의 우주적 언어로, 세상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행성(Planet)을 보고 알기 때문이다. 미스티컬 카발라
행성의 점성학적 의미는 동서양이 비슷하게 해석된다. 그리고 이에대한 해석 프레임을 더 원형으로 밀고 나가면 4원소설로 귀납되어지는 것 같다. 동양의 음양5행(목화토금수)설은 4원소(지수화풍)의 동적인 역학관계를 해석하는 프레임으로 연결될 수 있으니 차이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다.
카빌라의 생명의 나무 도상과 주역의 괘상을 명상의 도구로 이용하면 적어도 치매는 걸리지 않을 것 같다. 아니, 미칠랑가?
교차영성
불로주(不老酒)에 대하여 든 생각
통합영성의 지도
10가지 숫자에 대하여 달리 해석되는 동서의 영성적 개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