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예술을 대하는 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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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젯소칠이 끝난 캔버스 위에 최초로 붓이 화면과 만난다. 그림의 시작부터 완성까지의 과정 중 가장 짜릿한 순간이다. 그리고 내 붓질로 하얀 평면 위에 새로운 세계가 점점 구축되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도 그릴 수 있고 저렇게도 그릴 수 있다. 물론 그림이 항상 내 의도대로 완성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부분은 내 눈과 손의 판단으로 만들어진다. 비록 그림 속 작은 세상일 뿐이지만 나는 그 세상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또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은 언제라도 수정할 수 있다.


잠시 창밖을 내다본다. 희뿌연 하늘 아래 거대한 북한산 자락이 보인다. 시선을 낮추면 갈색 지붕의 빌라들이 줄줄이 늘어서 있고, 박스형의 빌딩들은 근경을 차지하고 있다. 집 밖을 나가 버스에 오른다. 버스가 부암동 언덕을 내려갈 때면 빽빽한 빌딩들로 가득한 서울의 전경이 보인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내가 바라보는 것에 대한 감상이라는 것이 존재한다. 답답한 회색빛 도시라든지 혹은 멋있는 대도시의 전경이라든지….


하지만 막상 도심 속 광화문이나 종로 한 가운데에 서 있을 때에는 내 존재가 한순간 보잘것 없어지고 도시에 대한 판단이 불가능하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판단하기에는 너무 방대한 것이며, 마치 북한산을 볼 때처럼 이 수많은 빌딩들은 마치 태초부터 있어온 것 같은, '주어진 것' 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모든 도시 계획과 건축물들은 분명히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지고 디자인된 것임을 모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 어려운 것이 있다. 바로 '사회'다. 도시에 존재하지만 그림이나 건축과는 달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무슨 사연 때문인지 사람들은 모였다가 흩어지고, 울다가 웃는다. 화를 내며 크게 목소리를 내기도 하고, 비웃음과 조롱으로 타인을 냉소하거나 무관심으로 응대하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권력투쟁이, 한쪽에서는 시민단체의 분주한 움직임이, 한쪽에서는 이어폰을 낀 채 횡단보도를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캔버스 앞에서는 전지전능했던 내 입지가, 도시 한복판의 광경들 사이에서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게 된다. 내 주위의 모든 것들은 마치 단단히 굳어 있는 '주어진 것들' 투성이다. 세상을 파악하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거대하며, 하물며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수정하기에는 너무 강력해 보인다. 그림을 바꾸는 행위가 곧 사회를 바꾸는 행위라면 나에겐 가장 쉽고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사회와 유리된 채 그림만을 바꾸는 사람이라면 나는 불행할 것이다.




이 글을 2014년에 썼던 걸로 기억한다. 광화문 광장을 구경꾼처럼 자주 기웃거렸던 시기다. 마지막 문장을 언제나 마음에 품고 실천하려고 하지만 실은 자주 까먹는다. 나는 언제나 다짐하고 언제나 잘 잊는 사람이다. 이렇게라도 스팀잇에 박제해서 상기시켜보고 싶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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