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평평설과 맞먹는 음모론자 플라톤은 우리가 살고있는 현상 세계는 사실 동굴이고 진짜 세계(idea)는 동굴 밖에 있다고 아무런 과학적 근거 없이 막 주장했다.
그러나 논리적 근거는 그럴싸했다. 가령 누구나 내각의 합이 180도인 삼각형의 개념을 머리속에서 유추할수 있지만 어떤 인간도 0.0000000000001미리의 오차 없는 완벽한 삼각형을 그릴 수 없다. 우리가 그리는 삼각형은 머릿속 개념(이데아의 세계)을 따라서 그린 불완전한 삼각형(현상 세계)일 뿐이다. 라고 그는 이빨을 깠다.
그럼 플라톤은 미술을 어떻게 보았을까? 플라톤은 미술을 저급하다고 했으며 심지어 화가들을 다 국가 밖으로 쫓아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너같은 음모론자들이 쫓겨나야지..) 아니 그가 생각하는 미술이 도대체 뭐길래?
플라톤
미의 이데아
플라톤은 '미(美)'에도 '이데아' 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미의 이데아란 교묘한 눈속임처럼 감각적인 것과는 차원이 다른, 아주 '순수'한 아름다움이다. 인간의 감각을 교란하지 않고 아주 정확한 척도와 비례로 구성된 기하학적인 형태가 진정한 미가 아닐까.. 라고 플라톤은 코 파면서 말했다.
플라톤은 '실제로 아름다운 것'과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했다. 아름다운 것은 스팀달러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스팀파워라며...아니 다시, 아름다운 것 '아는 것'이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믿는 것'이라 했다.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항상 변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영원한 불변한 것이다. 따라서 인간이 보는 시점을 고려해서 그 만큼의 왜곡을 적용했던 그리스의 건축과 조각도 마구 비판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진리를 벗어난 교묘한 눈속임, '아름다워 보이는 것'뿐이기 때문에..
플라톤은 침대로 예를 든다. 모든 사물은 이데아의 모방이기 때문에 침대 제작공이 만든 침대도 침대의 이데아의 모방일 뿐이다. 제작공은 이미 한번 머릿속에 떠오른 침대의 이데아를 현실 세계에서 모방했다. 그렇다면 그 침대를 화폭으로 옮긴 화가는? 이데아를 모방한 침대의 모방. 즉 예술이란 모방의 모방, 가상의 가상, 그림자의 그림자일 뿐이다. 예술의 모방술은 그 자신이 열등한 것으로서, 열등한 것과 결합하여, 열등한 것을 낳는 것이라며 아주그냥 쐐기를 박는다.
이렇게 예술이라는 것은 그가 보기에 진리의 세계에서 2단계나 떨어진 저급한 것이었다.
플라톤의 현대미술가 입국심사
플라톤은 이러한 이유때문에 저서 <국가> 10권에서 진실을 흐리는 예술인들의 국가추방을 주장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은 사람을 끄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여전히 그리스 사람들은 연극을 보러가고 시를 읽고 즐거움을 느낀다. 플라톤도 일단 인정. 하지만 예술의 모방이 가상적인 쾌락만을 추구하는게 아니라 진리를 말하는 어떤 유익한 것임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예술이 입증성을 설명할만한 자신에 대한 변명이 합당하면, 그때 비로소 다시 귀국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때 플라톤 말빨에 막혀서 추방당한 불쌍한 예술인들, 세월이 지나 한두명씩 변명을 달고 귀국한다.
폴 세잔 <생 빅투아르 산>
▷ 이름: 폴 세잔
▷ 입국사유 :
플라톤 선생님께선 화가의 모방술을 침대에 비유하시면서, 화가는 침대를 있는 그대로 모방하는 것도 아니라 특정 시점에서 보이는 것을 그린다고 하셨죠. 예를 들어 원근법처럼.. 하지만 화가가 침대를 어느 시점에서 보는 것과 상관없이 침대 그 자체는 달라지지 않는다고 하셨죠. 저는 캔버스에 이러한 모순을 극복하고자 시도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인간의 눈으로 뭔가를 바라보면 그게 원근법처럼 소실점 하나에 의해 질서정연하게 나열되어 있지 않죠. 우리의 눈은 수많은 시각적 단편이 모아 하나의 사물을 지각하게 됩니다. 따라서 저는 눈속임의 그림이 아니라 사물 그 자체를 가장 잘 나타내는 방식으로 표현했습니다.마치 모자이크처럼 수많은 시각적 단편들을 모아서 하나의 구조적인 전체로 통합했습니다.
이 그림은 사물을 한 시점으로만 봤을때의 교묘한 눈속임이 아닙니다! 저만큼 사물 그 자체의 진리를 견고하게 잘 표현한 사람도 있습니까?
몬드리안 <구성A>
▷ 이름: 몬드리안
▷ 입국사유:
아마 저의 입국사유가 가장 선생님께서 맘에 들어하실 겁니다... 예술이란 뭐라고 하셨습니까? 미의 이데아란 바로 순수한 아름다움이라 하셨습니다 또한 순수한 아름다움이란 '척도'와 '비례'로, 기하학적인 수학적 직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도 하셨죠. 저도 100% 공감하는 바입니다. 이데아를 모방했을 뿐인 현상세계의 덧없는 사물들을 '추상'하여 사물의 이데아(본질)에 가장 가깝게 나타낼려고 시도했습니다.
최대한 감각적인 요소들을 제거하고 공통적인 요소들을 뽑아서 더더욱 본질에 가깝게, 사물을 추상하고 또 추상하고 단순화시키다보면 그 최종적인 모습은 수평선 혹은 수직선이었습니다. 이게 바로 선생님이 좋아하시는 본질의 기하학적인 표현입니다!
말레비치<검은 사각형>
▷ 이름: 말레비치
▷ 입국사유:
앞의 몬드리안이 사물의 본질을 추상하여 기하학적으로 나타내었다면.. 저는 본질 그 자체, 근원적인 이데아의 세계 그 자체를 그려보았습니다. 이 세상 사물의 감각적인 덧없는 색깔들을 모조리 합쳐버린다면 무슨 색이 나올까요? 바로 검은색이죠..모든 것의 근원색.. 선생님이 생각하셨던 형이상학적인 완벽한 색인 것 같습니다.. 스마트폰의 검은 화면을 켜면 세상 모든 것을 담을 수 있듯이요. 검은색은 정말 무한합니다. 선생님께선 '예술의 진리는 사물의 영원한 본질을 나타내야 한다'라고 하셨는데, 이것은 모든것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그림입니다!
폴 뉴먼 <영웅적인 장엄함을 위하여>
▷ 이름: 뉴먼
▷ 입국사유:
선생님이 말씀하신 예술을 '모방'의 산물로 봤을때, 제것은 더이상 어떤것의 모방이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미의 이데아의 순수함을 설명하셨을때, 그러한 미를 느끼는 자에겐 어떤 벅찬 기쁨이.. 감각적쾌감과는 수준이 다른 정신적인 쾌감을 느낄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런 정신적인 숭고함을 주제로 작업했습니다.
제 그림을 처음 봤을때는 그 거대함과 아무것도 재현하고 있지 않은 캔버스 속에서 사람들은 일단 당황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지각에서 벗어나는 것을 경험하면, 처음에는 뭔가 두렵기도 하고 불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순간을 극복하기만 하면 어떤 초월적인 쾌감, 열락의 기쁨을 맛보게 되죠. 이것이 바로 순수한 미의 이데아입니다. 제 그림은 어떠한 그림보다도 '진리'에 가까운 그림입니다. 더이상 가상의 가상, 모방의 모방도 더더욱 아니구요..
라우센버그<침대>
▷ 이름: 라우센버그
▷ 입국사유:
그놈의 침대가지고 하도 예술인한테 그러시길래 좀 짜증나서.. 침대 그림을 그리는 대신에 아예 침대에다 그림을 그렸습니다.봐요 이건 침대의 가상도 아니고 뭐 눈속임도 아니죠? 아무것도 재현하지 않은 하나의 사물이 탄생했습니다!...후후후...속시원해라.
플라톤 : 뭐 다들..썩 맘에들진 않지만, 그래도 봐줄만 하군. 통과!
@thelump
<초간단 미술사> 시리즈
그림의 탄생
뒤샹의 변기 '샘'의 모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