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1. 기억 전달자 by 로이스 로리 -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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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에도 꾸준히 독후감을 한글과 영어로 올려왔는데요.
이번에 @oldstone 님께서 독후감 대회를 개최해주셔서 기쁜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


골치 아프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고통도 없고, 슬픔도 없다.
내 선택에 책임을 질 필요도 없다. 선택 자체가 없으니까.
모든 것은 예측 가능하고,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다.
이곳은 천국인가, 아니면 천국을 꿈꾸던 인간들이 만들어낸 지옥인가.


전쟁과 고난이 전 세계를 휩쓸고 지나간 뒤 먼 미래의 지구. 이곳은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없는 지상천국이 되었다. 모든 것은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세한 것까지 위원회가 다 지정해준다. 모든 가정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자녀로 이루어져 있다. 아이들은 갓난아이 때부터 면밀히 관찰해서 그 아이의 성격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지정해준다. 나이가 들어 때가 되면 각 사람들의 천성과 이상형을 잘 조합해서 최적의 배우자를 짝지어준다. 어른이 되거나 결혼을 하면 살 집도 마련해준다.

이 책의 주인공 조너스는 열두 살이 되었다. 이곳에서 열두 살은 매우 특별한 나이이다. 지난 12년 동안 관찰해온 아이의 성향과 능력을 바탕으로 그 아이가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될지 위원회가 알려주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때부터는 각자의 직업에 맞는 공부를 하고 훈련을 받게 된다. 헌데, 조너스는 이전에 듣도 보도 못했던 희한한 직업을 배정받는다. 바로 ‘기억 보유자(The Receiver)’였다.


출처: 교보문고

이 사회에서는 이곳을 아픔도 슬픔도 괴로움도 없는 지상낙원으로 만들기 위해 과거 시대의 기억들을 (전쟁, 기아, 슬픔, 고통, 감정 등을) 없애 버렸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오로지 ‘기억 보유자’만이 가지고 있게 된다. 마치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금서처럼, ‘기억 보유자’는 아무도 가지지 못한 과거 시대의 기억을 혼자만 간직하고 있다. 그러다가 사회에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기억 보유자'에게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결정을 내려달라고 부탁한다. 마치 신탁을 받듯이.

'기억 보유자'는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과거의 기억을 - 인류의 역사를 - 참고 삼아서 현명한 결정을 내리고, 그가 내린 결정은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모두가 받아들인다. 예를 들어 한 때 사람들이 한 가정에 3명까지 자녀를 허락해 달라고 청원을 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자문을 부탁받은 ‘기억 보유자’는 과거에 인구가 많아지고 먹을 게 부족해져서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게 된 일을 기억해낸다. 결국 한 가정에 세 자녀를 허락하자는 청원은 기각되고 만다. (사람들에게 기각의 이유는 알리지 않는다. 그들은 그저 받아들이고, 따른다.)

이제 나이가 들어버린 ‘기억 보유자’는 ‘기억 전달자(The Giver)’가 돼서 새로이 ‘기억 보유자’로 지정된 조너스에게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인류의 기억을, 역사를 하나씩 전달해주게 된다.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
우리는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인류의 역사에 대해서 기억을 전달받던 조너스는 자신이 행복하게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사실은 많은 것이 결여된 사회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곳에는 고통과 슬픔이 없다.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할 수 있는 감정 자체를 약물로 없앴기 때문이다. 사랑도 예외는 아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고통을 줄 수 있는 '사랑의 감정'도 이 세계엔 존재하지 않는다. 색깔도 없다. 과거에 인류가 피부 색깔로 서로를 차별하고 전쟁을 일으켰기 때문에, 아예 색깔도 없애 버렸다. 추위와 더위도 없다. 사람들이 살기에 가장 최적의 조건으로 날씨를 조절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에는 눈과 비와 따가운 햇살도 없다.

‘겉보기에 평화로워 보이는 세상’을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깨닫게 된 조너스. 그는 곧 자신의 일생을 송두리째 바꿔 놓을 일생일대의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면서,
동시에 살 떨리게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감정이 없으면 과연 우리는 행복해질까? 사랑하지 않으면 고통스러워할 일도 없으니 좋은 걸까? 누군가 우리를 대신해서 최선의 선택을 해준다면 항상 최선의 결과가 나올까? 골치 아프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혹여 잘못된 선택을 할까 전전긍긍해할 필요도 없다면, 그곳은 지상낙원이 될까?

우리는 매번 선택의 기로에 놓일 때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이과를 가야 할까, 문과를 가야 할까. 변변찮은 전공이라도 명문대가 좋을까, 지방대라도 취업이 잘 되는 전공이 좋을까. 내 꿈을 좇아야 할까, 안정된 직업이 먼저 일까, 지금 결혼을 해도 될까, 아이를 낳아도 될까. 선택이 힘든 이유는 우리의 선택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의 잘못된 선택으로 자신의 삶이 완전히 길을 벗어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건 가슴 벅찬 일이면서, 동시에 살 떨리게 두려운 일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건 얼마나 용감한 일인가.


"기억 전달자"는 단순히 디스토피아를 그린 우울한 책이 아니다. 우리의 현실에 대해 깊이 성찰하게 만드는 훌륭한 소설이다. 이 책은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 선택에 책임을 진다는 게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알려주고 있다. 올바른 선택을 하려면 시시때때로 자신을 돌아보며, 내가 진실로 원하는 게 뭔지 스스로를 들여다봐야 한다.

단순히 병이 없는 상태가 건강한 게 아니라, 활기차게 자신의 삶을 능동적으로 영위해 가는 상태가 건강한 것이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고통과 슬픔이 없다고 해서 그곳이 저절로 지상낙원이 되지는 않는다. 고통과 슬픔을 경험하고서도 인생에서 기쁨과 행복을 찾는 삶이 진짜 행복한 삶이다.

4부작 중1편이지만, 굳이 4부작을 다 읽을 필요는 없다. 처음부터 4부로 계획하고 쓴 시리즈가 아니라, <기억 전달자>를 쓴 이후, 후속 편을 나중에 썼기 때문이다. 1편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 소설이다. 뉴베리 수상작이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We don’t dare to let people make choices of their own.”
“Not safe?” The Giver suggested.
“Definitely not safe,” Jonas said with certainty. “What if they were allowed to choose their own mate? And choose wrong?
“Or what if,” he went on, almost laughing at the absurdity, “they chose their own jobs?”
“Frightening, isn’t it?” The Giver said.
Jonas chuckled. “Very frightening. I can’t even imagine it. We really have to protect people from wrong choices.”
“It’s safer.”
“Yes,” Jonas agreed. “Much safer.”

“사람들한테 선택권을 주면 큰일 나요.”
“안전하지 않으니까?” 기억 전달자가 물었다.
“당연하죠.” 조너스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사람들이 자기 배우자를 직접 선택하면 어떻게 되겠어요? 잘못된 선택을 하면요?"
“아니면,” 조너스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자신의 말이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오려고 했다. “사람들이 자기 직업을 직접 선택하게 되면 어떡해요?”
“무서운 일이지. 그렇지?” 기억 전달자가 말했다.
조너스는 키득거렸다. “아주 섬뜩한 일이죠. 상상도 못 할 일이에요. 사람들이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해요.”
“그게 더 안전하지.”
“네.” 조너스가 동의했다. “훨씬 안전하죠.”

2.
이곳 사람들에게는 고통이라는 감정이 없다. 약을 통해서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기도 전에 없애버리니까. 하지만 '고통'이라는 감정이 뭔지 배우기 위해서 조너스는 약 없이 고통을 견뎌야만 했다. 이 '아픈 감정'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자신 혼자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외로워진 조너스.

They have never known pain, he thought. The realization made him feel desperately lonely, and he rubbed his throbbing leg.

저들은 고통이라는 게 뭔지 모르는구나, 그는 생각했다. 이 사실을 깨닫자 조너스는 절박하게 외로워졌다. 그는 욱신거리는 다리를 문질렀다.

3.

At dawn, the orderly, disciplined life he had always known would continue again, without him. The life where nothing was ever unexpected. Or inconvenient. Or unusual. The life without color, pain, or past.

새벽이 오면, 그동안 조너스가 알고 있었던 질서 정연하고 잘 계획된 삶은 조너스 없이 계속 이어져갈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삶. 불편하거나 특이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 삶. 색깔도, 고통도, 과거도 없는 삶 말이다.

4.

Once he had yearned for choice. Then, when he had had a choice, he had made the wrong one: the choice to leave. And now he was starving.
But if he had stayed…
His thoughts continued. If he had stayed, he would have starved in other ways. He would have lived a life hungry for feelings, for color, for love.

한때는 자신에게 선택권이 있었으면 하고 무척 바랐던 적이 있었다. 헌데, 자신에게 선택권이 주어졌을 때, 그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말았다. 안락한 삶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는 굶주리고 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안락한 삶 속에 머물렀더라면…
그의 생각이 계속 이어졌다. 만일 그가 그곳에 머물렀더라면, 그는 다른 쪽으로 굶주렸을 것이다. 감정에, 색깔에, 사랑에 굶주린 삶을 살았을 테니까.


한국어판 제목: 기억 전달자
원서 제목: The Giver
저자: Lois Lowry (로이스 로리)
특이사항: 4부작 중 1편. <더기버: 기억 전달자>라는 제목의 영화로도 만들어졌음. 뉴베리 수상작.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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