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말주의]
안녕! 하루 쉬고 돌아온 깨알 같은 문학이야. 전체 작품 내용 요약 아닌거 알지? 깨알 같은 생각할 부분 하나만 집어서 주는거야!
고아는 아니지만 이모네 집에 보내져서 길러진, 화니라는 이름의 한 여자아이가 주인공인 이야기야. 이모와 이모부는 아들 둘, 딸 둘을 거느리고 큰 저택에 사는 부자이지. 화니의 어머니는 가난한 선원에게 시집 가는 바람에, 힘들게 아이들을 키우기 버거워 해. 그래서 화니를 언니네 집으로 보낸 거야.
화니는 비록 하녀라고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완전한 가족 대접은 받지 못하고 자라나. 심부름 할 것 있으면 하고, 불을 아끼느라 제대로 때우지 못하고, 좀 하고 싶은 게 있어도 항상 참고 양보하고 고분고분해야 하는 환경이지. 대놓고 돈 받고 고용된 하녀보다 오히려 힘들 수도 있었을 것 같아. 일종의 신데렐라 캐릭터지.
그렇다고 그 집 식구들이 직접 괴롭히거나 하진 않아. 다른 이모가 하나 있는데, 참견쟁이이고 부자 이모네에 잘 보이길 원하지. 그래서 그 집 아이들을 띄워주기 위해서 화니를 깎아내리는 습관이 있어. 진짜 누가 이뻐서가 아니라, 그쪽에 잘 보이고 이익을 얻어내기 위해서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키는 행동들...그런거 당해본 형들도 아마 있을거야.
암튼 그래서, 화니는 화가 나더라도 꾹 삼키고 지나가는 일이 많아. 참을성, 겸손, 차분함 등등의 단어가 떠오르는 캐릭터야. 그런데 화니가 사심을 갖고 보는 상대가 있긴 있어. 그 집의 둘째 아들이자 자신의 사촌인 남자를 좋아하고 있지.
둘째 아들은 전혀 눈치채지도 못하고, 오히려 이웃집에 이사온 다른 여자 때문에 마음 아파하고 있어. 그는 목사가 되려고 하는데, 이웃집에 온 여자는 둘째 아들에게 관심을 가지면서도, 돈 많은 남자를 바라고 있거든.
이웃집에 이사온 여자는 작은 파장을 일으켜. 그 여자와 남동생, 그리고 화니의 사촌들은 모두 모여서 연극을 하는 등, 같이 어울려 놀게 돼. 그런데 화니의 이모부는 매우 엄격해서, 연극 따위는 허용하지 않을 인물이야. 그래서 이모부가 집을 비운 동안 그렇게 놀게 되지.
문제는...화니는 이모부를 거스르고 무언가를 하는 게 싫은거야. 그래서 참여하지 않겠다며 거부를 해. 사실은 이웃집 여자에 휘둘리는 둘째 아들의 모습에 더 마음이 상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당대 기준으로 집안의 어른 입장에서, 자식들이 연극을 하며 노는 것이 싫을 수 있지. 결혼할 나이인 딸이 둘이기 때문에 더 그래. 그런데 이모부가 집을 오래 비웠기 때문에, 화니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렇게까지 룰을 지키려고는 하지 않지. 독자가 보기에도 다소 너무 꽉 막히고 답답한 모습이야.
그러나 결과적으로, 연극을 같이 하던 이 젊은이들 사이에서 나중에 일어나게 된 사건 때문에, 화니의 생각이 현명했다는 것이 드러나게 돼.
제인 오스틴의 맨스필드 파크(Mansfield Park) 이야기야. 그때그때 떠오르는 작품을 갖고 오다 보니깐, 이미 다룬 작가는 좀 뒤로 밀어놓으려고 하는데도...이미 다룬 작가의 작품이 떠오르면 어쩔 수 없네.
이미 한번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다룬 적이 있었지? 물론 오늘은 그 작품이 떠올랐다기보다는, 착한 여자 컴플렉스가 생각난 것이긴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 중에서, 맨스필드 파크의 주인공 화니 프라이스가 가장 좋아하는 인물이라고 했대. 솔직히 특별히 예쁘거나 똑똑하거나, 말을 잘하거나 유쾌하지도 않은 캐릭터인데도 말이야. 화니 프라이스는 그냥 "착한 여자"야. 그래서 독자들 중에는 도대체가 이해를 못하겠다, 너무 매력 없는 캐릭터라고도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
그런데 화니는 적어도 착한 여자인 척 하는 여자는 아니지. 정말로 자기가 생각하기에 옳은 것에 대해서는 고집이 있어. 그래서, 흔하게 말하는 착한 여자라기보다는 바탕이 선하다고 봐야겠지? 가식도 아니고, 정말 자기가 생각하는 그대로 행동할 뿐인데도 착한 여자인 것이니까.
아마 제인 오스틴은 그런 면모 때문에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화니라고 한 것이 아닐까...
맨스필드 파크는 여러 번 드라마나 영화로 나왔어.
(미니시리즈 맨스필드 파크, 1983)
(영화 맨스필드 파크, 1999)
(영화 맨스필드 파크, 2007)
뭔가 나이보다 노안이었던 80년대의 특징, 시대극에서의 검은 고수머리를 선호하던 1990년대와, 그냥 동시대의 눈에 맞는 헤어스타일을 선보이는 2000년대의 특징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모습인 것 같아. ㅋㅋ
보통 착한 여자 컴플렉스라는 말이 있지? 꼭 여자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특히 어떤 "역할"을 요구받는다는 점에서 남자보다는 여자가 그런 컴플렉스가 있는 경우가 많은 것일 수도 있겠지.
정말로 착한 여자와 착한 여자 컴플렉스의 차이는 무엇일까?
또 주관적으로 답하면 되는 문제이고, 미리 생각해놓은 정답 따위는 없어. 그러나 실제 삶에서 목격한 사례를 들어주면 좋을 것 같은 문제야!
혹시 주변에서 본 적이 없다면, 남자로 변경해서 생각해도 좋아. 남자 중에서도 왜 거절 잘 못하고 그런 성격을 착한 남자 컴플렉스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팁, 경험담, 개인적인 기준 등이 있다면 알려줘. 그리고 맨스필드 파크의 화니가 어느 쪽인지에 대해서도 곁들이면 가산점이 있을거야! 아마도!
딱 눈에 들어오거나, 설득력이 특히 뛰어난 답변을 선택할게. 그럼 답변 기대할게, 형들!
그럼 이제 지난 회차에서 나온 답변을 선택할 시간이야. ㅋ지난 회차는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한 구절에 대한 내용이었지? 슬픔을 소재로 한 시.
I sometimes hold it half a sin
To put in words the grief I feel:
For words, like Nature, half reveal
And half conceal the Soul within.
반쯤은 죄악으로 여겨질 때가 있네,
내가 느끼는 슬픔을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말은 마치 자연처럼 반은 드러내고
반은 감춘다네, 내 안의 영혼을.
마지막 두 줄 때문에 많은 형들이 이런 답변을 해줬지: "말로는 슬픔(또는 그 무엇이) 이라는 것을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아마 이 시에서 공통적으로 다들 느끼는 부분일거야.
두 번째로 공통된 부분은, 모든 형들이 한 얘긴 아니지만, 말을 통해 슬픔이 해소되는 경향이었지.
그래서 다른 이야기를 거기에 추가로 해준 형을 찾아보았어.
일단 @thewriting 형이 슬픔의 표현(가령 울음)이 반사적인 것이라고 해줬어. 반사적이기 때문에 테니슨도 어쩔 수 없이 표현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르지.
그런데 테니슨이 말로 표현하는 게 왜 반쯤 죄악이라 했을까? 반만 드러내는 게 죄인가? 반은 불가피하게 감추어져서? 말이라는 게 원래 그런 것인데(시에도 나와 있듯이), 그걸 사용해서 슬픔을 표현하는 것 자체가 죄인가? 왜?그럼 울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로 표현하는 것만은 반쯤 죄가 되는 것인가?
너무 큰 슬픔과 비교해서 나의 슬픔이 상대적으로 작을 경우, 죄스럽게 느껴진다는 심정을 @bookkeeper 형이 표현을 해줬어. @simtole 형은 그 슬픔을 막아주지 못한 슬픔, 죄책감을 이야기하기도 했지. @yourhoney형은 일부러 다른 말을 해서 슬픔을 감춘다는 이야길 했어. @vanillaromance 형은 슬픔 이전에 사랑을 하는 것으로 한없이 작아지고 슬픈 마음이 되는 현상을 이야기했지.
근데 말로 표현하는 것이 그 자체로 왜 죄인지는 명확하게 모르겠어. 정말 죄책감 때문일까? 물론 그 말도 어떤 경우에선 맞으리라고 생각해. 하지만 슬픔에 대한 우리의 자세나 느낌 말고, 표현하는 것이 왜 그 자체로 죄스러울까?
그 아리까리한 마음을 @napole형의 답변에서 살짝 엿봤어.
슬픔을 말로 표현할 때면 내가 싫어져..뭔가 포장하려는 것 같기도 하고 숨기려 하는 거 같기도
말로 표현하는 게 그 자체로 포장하는 것, 숨기려 하는 것 같다는 느낌. 표현이라는 것에 걸맞지 않게, 포장과 숨김이라...이런 느낌인가? 싶더라고. 말로 표현하지만 역설적으로 그것이 오히려 감추는 것이 된다? 그래서 이 답변을 선택했어.
그래도 정답이 없는만큼 다들 답변이 너무 훌륭했고, 슬픔에 대해 생각해본 기회가 된 것 같아.
그럼 착한 여자와 착한 여자 컴플렉스(모르겠으면 남자로 바꿔서 생각)의 차이에 관한 이번 회차 답변도 기대할게! 다음 회차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