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아름다왔고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개인적인 성향이 투명함, 명징(明澄), 블루 이러한 단어들을 좋아한다. @madamf 님의 포스팅 [madamf’ favorite] Blue is the Warmest color 아델에게... 첫사랑 중인 소녀와 첫사랑에 실패한 늙은 소녀에게...를 통해 따뜻한 블루라는 표현이 너무나도 신선하게 다가왔기에 소설을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도서관에 달려가서 대출하여 읽어보았다. 내가 읽은 책은 90년도 번역본인 것 같다. 알라딘에 검색하면 19세 미만이라고 인증해야 한다고 뜬다. 그놈의 갠세이.
먼저 투명함과 블루, 나에게 다가온 문자적 풍미(風味)를 적어본다. 투명하기에 빤히 보이인다. 숨길 수가 없다. 깨끗하다. 너무나 깨끗하기에 결벽적이기까지 하다. 극단적으로 깨끗하다면
맑은 물에는 고기가 못산다
(결벽증에 잭니콜슨의 영화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가 생각난다. 왜일까?)
때론 너무 빤하다는 것이 몸부터 마음까지 모두다 드러내어져 도무지 나를 숨길수 없는 상태가 되어 두렵기까지 하다. 때로는 숨키고 싶은게 사람들의 삶이다. 모두 다 드러나면 피곤하거든... (미투운동으로 음탕한 그림자가 까발려지고, 대통령까지 한 그분? 생각하면 투명함은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그로인한 그들 가족들이 감내해야할 주홍글씨는? 씁쓸하다.)
十目所視十手所指
여러사람이 보는 바이고 여러사람이 손가락질 하는 바 -대학(大學)
조선시대 선비, 군자들의 모습 청복(淸福)을 누린다는 것이 때때로는 이러한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덩이가 될수 있다. 바로 허세!
블루하면 하늘 하늘하면 맑음, 시원함이 느껴진다. 불교에서는 약사유리광여래(琉璃光如來)라고 하여 치유해주시는 부처님을 염불하면서 병을 고쳐달라고 기원드린다. 하기야 그 병이란 것이 몸의 병뿐인가? 마음의 병도 약사유리광여래를 외치면서 기원한다. 마음의 병은 번뇌(탐욕, 성냄, 어리석음, 교만, 의심, 삿된 견해)들인데 뜨겁다. 마음과 몸을 태워버린다. 그래서 시원한 블루에 의해 씻겨내려져야 청정(淸淨)함의 상징인 투명함이 되어지는 것이다. 탁함이 없는 투명함, 이것은 지혜이다.
독서후기로 나아가기 전에 사설이 너무 길었다. 투명함과 블루의 이러한 내적인 잠상(潛想)을 가지고 이책을 읽었다면 초장부터 엄청 까부순다. 아주 비꼬듯이 말야. 그렇지만 적나라하고 철저한 무미(無味)로 일관된 섹스, 그룹섹스(호모섹스 동반), 구타(폭력), 곤충먹기, LSD를 통한 환각 묘사는 투명하다. 이게 바로 켄윌버가 지적한 포스트모더니즘의 극단적 평원적 3인칭 시각의 일례일까? 한편으로는 너무나 인간적이기까지하다. 뭐 소설 뒷부분에 작품 해설들을 읽어보면 그런대로 이해가 간다. 그리고, 이 소설속의 묘사를 읽으면서 한 인간으로서 가질수 있는 온갖 부정적? 상상(퇴폐/변태/가학)을 현실적으로 그대로 실행했던 히피 문화의 솔직함, 그리고 상실감을 간접적으로 경험해본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면서 뭐? 이딴 소설이 다있어! 하다가도 계속 읽으면서 류가 되어보고픈 나를 갈구하기도 한다. 나는 야누스이다.
LSD와 함께하는 류와 섹스를 나누는 여자친구?, 그리고 류의 자세한 성애 묘사에는 부러움까지 느껴진다. 그러나 그들이 속칭 파티라고 하는 그룹섹스묘사는 사실 혐오감과 왜 저렇게까지 할까? 라는 생각도 되어진다. (파티를 즐기는 모든 구성원들은 LSD와 함께한다. 류는 인형이다. 류하나에 달라붙은 세명의 사람(흑인남자, 흑인여성, 백인여성), 흑인 남성은 류의 입에 자신의 성기를 집어놓고 오럴섹스를 즐긴다. 흑인여성은 류위에 올라타 전희를 즐기고 백인 여성은 류의 발가락에 자신의 성기를 놓고 섹스를 즐긴다. 그리고 류는 흑인의 사정을 그대로 입으로 받아낸다. 그런데 여기서 류도 역겨움을 느끼나보다. 토기를 느끼며 뱉어낸다.) 이 소설을 보는 나도 혐오감을 느낀다. 소설을 보는 나에 대하여 관찰해보면 나는 확실히 헤테로섹스를 받아들일수 있겠지만?(사실 원한다고 해야 옳은 것 같다. 남자란...) 호모섹스는 못받아들인다. 과거가 생각난다. 중학교때, 엄마가 없는 때를 틈타 그룹섹스를 하는 포르노를 본적이 있다. 그러나 흥분은 되지 않았다. 동물들의 미친짓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묘한것이 또보게 되기도 한다. 으흐흐. 나는 두 사람(여자와 남자) 섹스 포르노에 대해 우호적이다. 그게 흥분과 함께 대리만족을 유발시킨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책을 접해보지는 못했다. 대충 이해한다면 탈권위주의, 탈이념으로 가자는 것인데 그래서 개성/자율성/다양성/대중성을 강조하다보니 호모섹스, 그룹섹스 등 뭐 이런 것들을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상하게 거부감을 느낀다. 그리고 혐오스럽기까지 하다. 이상하거나 거부감을 느끼는 것에서 그치고 그럴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자율성/개성/다양성을 존중해주는 것이겠지만 혐오스러움이 발전해서 막는 행동/마녀사냥으로 나선다면 아마도 그것은 권위주의나 이념주의자로 가는 것이 아닐까도 생각된다. 하지만 나의 가족이 그렇게 된다면? 막고싶기는 하다. 호모는 인정해줄수 있겠다. 그렇지만....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틀리다고 우기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류의 행동과 묘사중에 재미나게 본 부분이 있다. 하나는 LSD에 취해있는 류가 죽은 벌레(나방) 그리고 썩은 음식을 씹어먹는 묘사가 디테일하게 나온다. 그런데 썩은 음식은 류도 벹어버린다. LSD의 약발이 딸리나보다. 한 스님의 법문이 생각났다.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든 것이니 마음먹기에 따라 세상을 바꿀수 있다는 법문을 들은 한 거사가 스님께 똥대접을 갖고와서 말한다. 스님! 당신이 깨달았다면 이 똥대접을 마실수 있습니까? 이 똥은 똥이 아닙니다. 나는 마실수 있습니다. 마시겠습니까?
미친놈! @peterchung
소설속에서 류의 친구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증말 드럽다. 씻지도 않는 것 같다. 드러운데 섹스도 할맛이 날까? 나의 히피문화에대한 냉소적인 비판일까?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더럽다도 생각이 만든 허상이지! 똥파리들에게는 똥도 맛있는 음식이다. 그런데 으이구 드러버라. 나는 생명을 존중하는 생태주의자의 소양이 부족한가 보다. 똥파리, 구더기보면 치우기보다는 죽이려는 마음이 앞선다. 모기의 앵앵거림은 엄청 성가시다. 살기를 느낀다. 특히 명상을 할때는
이놈의 모기새끼!
LSD의 힘은 대단하다. 어찌보면 마음이 만들수 있는 세상을 물리적인 약물을 통해서 경험시켜줄수 있는 유용한 도구인 것 같다. 그래서 전통수행들 중에서 약물요법을 강조하는 것이 있는가보다. 하지만 위험하다. LSD를 이용해 정신질환자들을 치유한 초개인심리학자 스타니슬라프 그로프 (Stanislav Grof)의 책들이 생각난다.
[독서후기] 정신적인 문제(영적비상상태)/윤회에 관한 초개인심리학자(Transpersonal psychology)의 서적을 읽고
LSD에 쩌든 마약환자들은 영화속에서건 이 소설속에서 달달달 오한을 느낀다. 이를 한의학적으로 생각해보았다. 음허화동(陰虛火動)이란 말이 있는데 생명력의 상징인 신정(腎精)이 고갈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땀을 많이 흘리기도 하는데, 이는 과다 SEX로 인한 정액 고갈로 신장의 명문화(命門火)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이다. 차의 엔진에 기름이 부족한 상태라고도 할수 있을까? 이것이 LSD에 의한 중독 영향일까? 아니면 LSD에 취해 과도한 SEX를 하여 정액을 남발한 탓일까? 참 궁금하다. LSD에의한 환상도 어찌보면 정액을 고갈시킬수 있다. 왜냐하면 과도한 정신놀음(환각유희)또한 신수(腎水)인 정액을 고갈시키기 때문이다. 또 무지하게 굶으면 환상이 보인다. 명상인들이 환상을 본다고할때 당신 며칠 굶었냐고 물으면 그렇게 굶은 경우가 많다. 이 또한 진액을 고갈시키는 것이다.
[雜記] 위험하지만 너무나 자극적인 그리고 너무나 호기심 불러일으키는.... 그이름 탄트라(Tantra)
마지막에 류는 투명한 유리조각을 보며 하늘을 쳐다본다. 아마도 이와같지 않을까? 어둠을 서서히 걷어내는 새벽녘,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향해가고 싶다. 한없이 투명한 블루는 싫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않으니까
ps.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를 읽고 사색의 기회를 주신 @madamf 님 감사드립니다. 따스한 블루의 마음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