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누구도 내가 되기를, 나는 원하지 않는다.
오직 나만이 나를 견뎌낼 수 있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알고, 그토록 많은 것을 보았으나 그토록 아무것도, 아무것도 할 말이 없음이여.
-로베르트 발저
오랫동안 로베르트 발저의 [산책자]를 읽고 싶었다. 그러나 십 오년 전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을 읽은 후 그 충격-돈이 없어서 굶주리고 있는 한 작가의 이야기인데 글이 너무나 매혹적이었으나 그 트라우마로 인해 나는 전업작가의 꿈을 접고 말핬다- 이 너무나 컸기에 책구입을 최대한 미루고 있었다. 그러나 만나야 할 책은 불현듯 도착하고 만다.
산책길에 산책자를 들고 나섰다
未時에 나는 벤치에 앉았다. 빛이 춤추는 물결이 보이고 소나무 그늘이 차양이 되는 시간. 나는 방을 옮겨다니며 전희를 즐기는 사람처럼 벤치를 옮겨다니며 모든 사물이 빛과 색을 뿜어내고 있는 것을 보았다. 이 거대한 빛의 소용돌이를 충분히 즐긴 후 큰 일이라도 결심한 듯 두꺼운 책을 펼치고 말았는데 단 한 줄도 읽지 못했다. 이 책은 밤에 깨어있는 날 위한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의 글을 음미하게 위해 침대 옆 협탁에 책을 둔 채 밤이 되기를 기다리며 그의 생을 더듬는다.
내가 당신이 되는 것을 원합니까
그의 단편소설 [크리스마스 이야기]에 나오는 화자는 크리스마스날 괴짜 독신자의 불청객이 되어 힘겨운 시간을 보내다가 수치를 느끼며 그의 집을 나오게 된다. 그러나 곧 바람에 흩날리는 눈송이를 맞으며 환희에 사로잡힌다. 자신이 한 가정의 아버지이자 동시에 아이들이라는 상상에 빠지는가 하면, 초라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느니 아름다운 눈으로 덮인 채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을 하며 길 위에서 잠이 들고 싶어한다.
로베르트 발저는 작은 셋방에서 셋방으로 끊임없이 이사를 다녔다고 한다. 폭음했고 불면증을 앓았으며 환청과 발작에 시달리며 "올가미조차 제대로 맬 줄 몰라서" 자살에 실패했다.
그는 왜 그 누구도 자기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을까. 나는 그가 불행했다고 함부로 단언할 수 없다. 삶의 궤적에 촘촘히 박혀있는 감정들을 그 혼자 맛보았으므로.
눈으로 덮인 채, 눈 속에 파묻힌 채 온화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자여, 비록 전망은 앙상했지만 그래도 생은 아름답지 않았는가.
-크리스마스 이야기(1919)
쓰여진 것은 숨어있다가 어느 순간 현실 속에 펼쳐진다. 1956년 그는 크리스마스날 눈 속에서 죽은 채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은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릴케의 것처럼 낭만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는 누군가가 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똑같은 질문을 나게게 던져보고 싶다. 나는 그 누군가가 내가 되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그러라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당신은 내가 당신이 되어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선뜻 그러라고 하겠는가.
생각의 단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