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상가적 P의 이야기 #03 _ 영감과 일상, 그 중간 어디쯤



다양한 영감과 감성, 감각이 뒤섞이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는 오랜 고민을 이곳에서 생각을 나누며 실현시키고픈 마음로 '몽상가적 P의 이야기'는 시작되었다.

어제는 나의 글에 영향을 받았다며 @feeltong 님이 '취향공동체'라는 타이틀로 새로운 글을 쓰셨다. 어쩌면 영감의 교감은 이렇게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기분 좋은 설렘이 생긴다. 글을 읽다보니 내가 원하는 감성이니 감각이니 하는 것들의 온도는 과연 어디쯤일가를 생각해보게 되어 그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프레임에 갇힌다는 것


어쩌면 새로운 플랫폼을 갈망하게 된 계기 중 하나의 이야기가 될 것 같다.

패션에서 영역을 넓혀 전반적인 트렌드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나에게는 세 번의 전자회사와의 컨설팅을 할 기회가 있었다. 패션을 포함한 소비자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를 연구하고, 이러한 요소들을 차기 모델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가가 주요한 컨설팅이었다. 참 쉽지 않은 부분이었다. 직접 디자인을 하는 것도 아니고, 마케팅 활동을 펼치는 것도 아니었기에 실물이 없는 아웃풋에 어디까지를 결과로 할 것인가는 정하기 나름 같았다.

개념적인 부분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고, 마켓과 디자인의 전략적인 차원에서 기획 단계를 거치게 되었다. 그들은 고민했다. 우리에게서 더 많은 것을 뽑아내고 싶어하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우리는 기술자도 디자이너도 아니었기에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줄 수 없었다. 실무자가 아닌 내가 바라보기에 실무자인 그들은 매우 답답해보였다. 묘하게도 1등 회사는 1등 같은 태도를 갖추었고, 2등 회사는 2등 같은 태도를 갖추었지만, 둘 다 멋있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철저한 '틀' 안에서 움직이고 있었고, 매우 성실하게 그 틀을 유지하고 지켜나가고 있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매우 자율적이고 창의적이며 혁신적이고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와 실험을 이어간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직접 겪어본 관련 직종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보수적이고 편견에 휩싸여있었다. 새로운 시도는 경제논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단 한 발자국도 나아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는 건 안다. 덩치가 큰 대기업은 움직임을 함부로 할 수 없겠지.

안타까웠다.

그들의 분야는 분명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에 있음이 분명해 보였고, 그들에겐 새로운 개념을 접할 기회가 필요해보였다. 그런데 어떤 워크샵에서 의외의 이야기를 들었다. 킨포크매거진을 포함한 다수의 매거진을 연간 구독하고 있으며, 주말이면 목공과 그 외 많은 것들을 배우러 다닌다는 것. 개인의 시간을 향유하는 것에는 그 어떤 결과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들인데, 어떻게 일에 있어서는 조금도 더 경험하려하지 않는 것일까. 킨포크를 보며 더 예쁜 그릇은 구매할지언정 그것에서 영감을 받아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프레임에 갇힌 건 그들만이 아니었다.






감각의 향유


"세상의 모든 경계가 사라진다. 이종간의 결합으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미래의 키를 쥘 수 있다. 유형의 물건이 아닌, 무형의 가치를 소비하는 시대가 되었다. 각자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이 중요해졌다. 개인의 시각과 관점이 중요해졌으며, 개별의 큐레이션이 화두가 되었다."

이 세상은 금방이라도 그간의 카테고리를 모두 흐릿하게 만들고 새로운 원더랜드(wonderland)를 만들것 처럼 느껴진다. 관련 책들이 쏟아져나오고, 미디어의 전문가들을 앞다투어 기존에 없던 분야들의 특성과 우리가 갖추어야 할 준비 자세를 나열한다.

그런데, 우리의 일상 안을 들여다보면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여전히 지옥철에 몸을 싣고 출퇴근을 하며, 딱딱하고 투박한 책상 앞에 앉아 급박한 기한을 맞추기 위해 오늘도 이리저리 분주해야만 한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얼마나 경계없이 즐거운 것들을 만들어내어 블루오션을 창조하는 선두가 될 수 있을까. 결국, 퇴사하고 그간 모은 돈과 시간을 모두 투자해서 내 사업하지 않는 한 엄두도 못낼 일이라는게 '새로움'이고, '변화', '감각 혹은 감성'이라는 것들인 것이다.

어쩌면 나는 직업적으로 그 새로움, 변화, 감각이라는 것들에 달려들어야 했기에 그에 대해 몰두하고 필요성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나 역시 시달리는 야근과 수직적인 조직구조, 회의를 위한 회의, 비효율적이고 오래된 업무 방식에 지칠대로 지쳐버렸다. 그저 눈 앞의 결과에만 눈이 멀어 주먹구구식으로 빨리 해치우고자하는 꼰대같은 어른들과 일하는 것은 넌덜머리가 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멈추고 싶었다. 더 이상 달리고 싶지 않았고, 이런 식으로는 일을 오래할 수 없다고 느꼈다. 내 정신과 몸이 그것을 너무도 격렬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그렇게 프리랜서가 되었고, 새로운 플랫폼에 대한 목마름이 커져갈 수록 고민의 시간도 이어졌다.






영감과 일상 사이, 그 중간 어디쯤


그렇게 완전히 일상도 아닌, 완전히 예술적인 것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감각이고 싶었다. 경계선을 밟고 양쪽을 다 끌어당기고 싶었다. 일상과 영감을 자유롭게 왔다갔다할 수 있는 그런 플랫폼이 하고 싶은 거였다. 그래서 취미가 아닌 취향을 다루고 싶었다.

책에 비유해본다면, 많은 각주가 달린 전문서적이 되고 싶진 않았다. 그렇다고 누가봐도 금방 만들었을 것 같은 가벼운 책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참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누구든 관심이 있다면 생각해보면 좋을 이야기들을 채우고 싶었다. 당연하게 생각하던 것들에 반문을 제기하며 새로운 창의성을 만들어내고 싶었다.

이 개념에 몇 년을 질척거렸다. 아무것도 못했다. 오직 노트에만 수 많은 낙서들로 남았다. 그래도 끝끝내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징글징글하게 매달려 여기에 이 글을 토해내는 오늘이 되었다.






몽상가적 P의 이야기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1 _ P의 의미에 대하여
몽상가적 P의 이야기 #02 _ 어떤 형태의 시간을 만들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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