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적당히 유명한 오빠의 공연이 홍대에서 있었다. 먼 곳에서 올라온다는 연락을 받고, 미리 있던 일정을 급하게 조율했다.
어제 송별회를 다녀오고 12시 넘어 늦게 집에 들어왔는데, 아침에 들를 곳이 있어 일찍부터 분주했다. 늦지 않게 부랴부랴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들리려던 일정은 오늘이 아닌 내일이었다.
예상치 못한 시간이 남아 생각도 없는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밥을 먹고선 레슨을 했는데, 레슨을 시작할 때쯤 배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갑자기 열도 나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겨우겨우 레슨을 끝냈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아 연습실 바닥에 머리를 잠깐 댔고, 그대로 잠들었다.
자고 나선 한결 좋아졌지만,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통증 때문에 걷기도 힘들었다. 공연을 못 가겠다고 말할까 고민하는 중에도 '망해서 행복한 사람들'에게선 계속 연락이 왔다. 서울에 도착했다는 연락, 지금 어떤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연락들이었다.
몸이 정말 안 좋았지만, 그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했고, 또 전달해줄 물건도 있어 안 가기 애매한 상황이었다. 잠깐 들려 선물만 주고 올 생각으로 공연장에 갔다. 공연 두 시간 전에 가서 함께 식사할 생각이었는데 다른 일정이 밀리면서 공연 20분 전에서야 겨우 도착했다. 얼굴만 비추고 가기가 마음에 걸려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적당히 유명한' 오빠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유명했다. 공연장을 가득 채우고도 자리가 없어 사람들이 밖에서 음악을 들었다. 나는 낯선 풍경에 당황하면서도 '망해서 행복한' 오빠들과 함께 아티스트에게 지급되는 위스키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도 복통과 오한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건배만 하고 술은 입에도 대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몸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 배가 아파 괴로워하던 바로 그때!!! 공연장에서 낯익은 얼굴을 보게 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거기 있었다. 얼굴을 보자마자 알 만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그 사람이 왜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혹여나 그 사람이 떠날까 설레는 마음을 감추고 괜히 그 근처를 서성이곤 했다.
두 시간에 걸친 긴 공연이 끝난 후, 나는 그 아티스트가 '적당히 유명한' 오빠와 절친한 사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나는 진작 집에 갔어야 했지만, 이 자리에서 쓰러지더라도, 그 사람과 함께 있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지인들과의 뒤풀이 자리가 형성되었고, 당연하게도 음악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 자리가 됐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가는 와중에도 나의 관심사는 오롯이 그 아티스트였는데, 너무 좋아했기 때문에 팬이라는 말조차 쉽게 꺼낼 수 없었다. 희한하게도 그 사람의 존재를 의식한 후부터는 복통도 사라졌다.
술자리에서 적당히 이야기가 오간 후에야 그 아티스트와 말할 기회가 생겼다. 난 거짓말을 조금 보태 그 사람의 앨범을 천 번 들었다고 했다(거짓말이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몰라 선생님이라고 했지만, 그 사람은 XX씨라고 불러주길 원했다. 그 아티스트는 지금은 다른 작업을 한다며 다음 공연에 나를 초대해주었는데, 나는 그것이 100% 빈말인 걸 알면서도 내게 직접 그 말을 건넸다는 사실에 감동해 고개를 크게 끄덕거렸다.
그 아티스트가 떠나기 전 얼른 수첩을 꺼내 '사랑의 말'을 적어달라고 부탁했다. 무슨 정신으로 그런 말을 했는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좋아하는 단어를 말해달라고 했다. 내가 말한 몇 개의 단어와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를 적어주고, 그 옆엔 '가능한 한 즐거우시길.'이라고 적어주었다. 사인을 바란 건 아니었는데, 아래엔 이름과 함께 사인을 해주었고, 그때 나는 몸이 녹아 흐물거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비싸게 되팔아야지 생각했다가, 죽을 때까지 갖고 있겠다고 다짐했다.
그 아티스트가 떠나면서 자연스럽게 그 자리도 파하는 분위기가 됐다. 신기하게도 그 아티스트가 떠나고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복통이 다시 시작됐다. 택시를 불러 겨우 뒷자리에 앉고서는 배를 끌어안고 낑낑대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돌아와 씻으니 몸이 좀 나아졌다. 하지만 당장 내일 일을 취소하고 응급실에 가야 할지, 월요일까지 버텨야 할지는 아직도 정하지 못했다. 나 이러다 정말 죽는거 아닐까?
그치만 오늘은 죽어도 좋을 만큼, 기쁜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