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년 전 오늘
2. 그리고 오늘
3. 한여름 밤의 꿈
그분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온 후 문자를 남겼다. 가시기 전에 꼭 한 번 더 불러 달라는 내용이었다. 여태껏 나는 그분에게 '꼭'이라는 말을 붙여본 적도, 부탁의 말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날 굳이 그런 문자를 보낸 것은, 떠나는 길에 편지 한 통을 전해드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이 왔다. 오늘은 그분과 그분의 가까운 사람들이 함께하는 송별회 날이다.
그분과 여행을 갈 때엔 식비는 물론이고 숙박, 그 외에 들어가는 모든 경비를 한 번도 부담한 적이 없다. 심지어 가끔은 "힘들지?"라는 말과 함께 같이 온 젊은이들에게 5만원씩 용돈을 쥐어주신 일도 있었다.
어느 여행 날. 좋은 숙소와 맛있는 음식을 즐기면서도 그것이 못내 마음에 걸렸던 나는, 카페에서 계산하려는 그분을 따라가 계산하겠다고 나섰던 일이 있다. 잠깐의 실랑이 끝에 그분께서는 한숨과 함께 그래서 내 마음이 편해지면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다.
겨우 우겨서 계산은 했지만, 그때 그분의 모습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마음의 부담을 덜고자 한 일이었지만 전혀 마음이 편하지 않았고, 내 성급한 판단으로 오히려 상처를 드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분과 함께하는 여행은 언제나 가기 전까지는 어떤 곳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분이 누군가에게 초대를 받았고, 그 초대에 우리가 함께하는 것임은 알 수 있었다.
나는 여행을 갈 때마다 누가 받아도 나쁘지 않을만한 무난한 선물을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와 같은 짧은 편지와 함께 챙겨가곤 했다.
어느 날은 선물을 준비하다 그분에게도 편지를 쓰고 싶어졌다. 그간의 감사함을 적고서는, 봉투에 넣지도 않고 편지지를 접어 가방에 챙겨갔다.
그날은 유독 맛있는 음식들과 즐거운 이야기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그럴수록 가방 안에 있는 내 편지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봉투조차 챙기지 않은 나 자신을 질책하면서, 이런 편지는 안 드리는 게 났겠다고 생각했다.
넌지시 그분과 가까운 지인에게 편지를 써왔다고 말했다. 잠들기 전에 얼른 갖다 드리라는 말을 들었고, 고민 끝에 쭈뼛쭈뼛 방문을 두드리고 편지를 드렸다.
편지라고 하기도 뭐한 꼬깃꼬깃한 종이였지만, 부끄러움을 참고 "편지를 써왔어요."라고 말했다. 그분께서는 편지를 받고선 "우리 @ab7b13이 편지를 써왔구나. 정말 행복하다. 행복해."라는 말을 반복하셨다. 그때 나는 기쁜 마음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게 좋아하셨는데 그 이후로 한 번도 편지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 떠올랐다. 편지 한 통 정도는 가시는 길에 무겁지 않은 짐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이상하게도 목적지와 함께 가는 이, 가서 만날 사람들을 미리 전달받게 되었다. 선물을 챙기기 더 수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 마음이 산란했다.
아침 일찍 고운 편지지에 정성껏 편지를 썼다. 손으로 글씨를 쓰다 보니 또다시 코끝이 찡해졌다. 오늘은 잊지 않고 예쁜 봉투에 편지를 넣었다. 이것이 내가 그분께 드릴 수 있는 전부이고, 또 그분이 바라는 전부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마음이 찡해졌다.
한국을 떠나는 그분의 주소만이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다. 설사 찾아뵙진 못하더라도, 계절이 바뀔 때쯤, 아니면 그분이 쓸쓸하실 매달 마지막 날에 맞춰 편지 한 통 정도는 보낼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