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의 재해석] 신데렐라 외전; 유리공 존 그라스 (2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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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만 보자, 어디까지 얘기했었죠? 아, 그래요. 제가 태미 영감의 유리 공예방에 도제로 들어갔고 시골에 있던 우리 가족들이 올라와 이곳에 정착했다는 얘기까지 했지요.

 다른 일들은 다 잘 풀리고 있었습니다. 저의 처지도 하룻밤 만에 완전히 달라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가슴에 품고 있는 고통의 바늘 하나가 잊을 만하면 저를 찔러댔습니다. 루시가 생각날 때마다 전 조용히 문을 나서 구두 가게가 있는 거리로 갔습니다. 사람들 눈에 잘 띄지 않는 구석에 서서 멍하니 그녀가 오기를 기다린 적도 있습니다. 5년 동안 딱 한 번 그녀의 뒷모습을 보았습니다. 바로 제가 거기를 떠나온 지 일주일째 되던 날이었습니다. 루시는 구두를 받아들고 문을 나와서는, 다시 문을 향해 돌아서서 한참을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저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요. 전 아직 루시 앞에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녀가 다시 거리를 향해 돌아서서 발걸음을 옮길 때, 전 그 표정을 보고 알 수 있었습니다. 루시는 다시 구두 가게를 찾지 않을 거라는 것을요. 그 짐작은 맞았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제가 그 거리로 나갈 때마다, 구두 가게를 찾은 것은 그 집안의 하녀였습니다. 전 그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동안 나를 만나기 위해 매주 직접 구두 가게에 온 걸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밝아지기도 했습니다. 밝아진 마음은 이내 깜빡하고 암전이 되곤 했습니다. 그러면 전 철봉을 잡고 뜨거운 불 앞에서 유리 장식품 만들기에 몰두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 와중에 루시를 다시 만나게 된 일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상황에서였습니다. 여기엔 복잡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앞에서부터 차근차근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태미 영감을 찾아온 비밀스런 집사 이야기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한 밤중에 누군가가 문을 두드렸습니다. 제가 문을 열어주었고, 신사복 위로 망토를 걸친 그는 태미 영감을 찾았습니다. 그 눈빛을 보아하니, 용무가 보통의 물건 의뢰는 아닌 듯 했습니다. 그는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고, 긴장하고 있는지 얼굴이 굳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곧장 부엌으로 갔습니다. 손님들이 찾아와 얘기를 나눌 때 주로 앉는 커다란 식탁에 그들은 앉았습니다. 전 분위기를 보고 급히 집을 나와서 어머니와 형제들이 있는 집으로 갔습니다. 다음 날, 태미 영감에게 그가 의뢰한 것이 무엇인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유리 구두를 만들 수 있냐고 묻더구나.”
“구두요? 장식품 말고 사람이 직접 신는 구두 말이에요?”
“그래, 직접 신을 수 있는 유리 구두 말이다. 쉽게 깨지지 않아야 하고, 발에 꼭 맞도록 섬세하게 가공해줄 수 있냐고 하더라.”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요?”
“할 수 있다고 했지. 그 말을 듣더니, 굳은 얼굴이 확 펴지더구나. 내 짐작엔 꽤 많은 유리 공예점에서 거절당하고 온 모양이야.”
“영감님, 유리 구두 만들어 보셨어요?”
“안 만들어봤지.”
“그럼 왜 된다고 하셨어요?"
"거액을 부르더구나.”
“네? 영감님, 돈 때문에 못하는 일 하시는 분 아니잖아요.”
“나 말고 네가 할 수 있지. 그래서 수락했다.”
“제가요? 저도 한 번도 안 만들어봤어요.”
“거짓말마. 요 구두공 낙오자 녀석아. 5년 동안 어깨 너머라도 배운 게 있겠지. 그걸 보여줄 차례야. 이번 일을 잘 마무리하고, 난 그 의뢰비로 널 독립시킬 생각이다. 성가셔서 더는 같이 못살겠다. 아 참, 그 사람이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이 일을 절대 발설하지 말라고 하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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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기분이 묘했습니다. 그 5년은 저에게 쓸모없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왔는데, 그때 배운 기술을 여기서 써먹게 되다니요. 어떤 노력도 그냥 버려지는 건 없나봅니다. 태미 영감에겐 엄살을 부렸지만, 사실 구두를 만드는 일은 지금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죽을 다루는 기술, 가죽이 오랫동안 변형되지 않게 처리하는 핵심 기술을 그 영감탱이한테 못 배웠을 뿐입니다. 구두란 가죽이 아니면 안 되는 물건이라 그 기술 없이 구두를 만들었다간, 종이로 구두를 만드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재료가 가죽이 아니라면 문제는 달라집니다. 제가 익힌 기술이라면 충분합니다. 이제 할 일은, 구두에 어울리는 가볍고 쉽게 깨지지 않는 유리 재료를 찾는 일과, 구두 주인의 발 사이즈와 모양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일입니다. 그 일은 저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염원하던 저의 독립이 걸린 의뢰니까요. 사흘을 구두 재료를 찾는 일에 몰두했습니다. 유리에 몇 가지 다른 재료를 첨가하고, 모래의 비중을 달리 하여 가볍고 강도는 센 유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한 가지 흠은, 유리의 투명도가 좀 떨어진다는 것인데 은은한 색을 첨가하여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의뢰 받은 구두는 총 5개였습니다. 이제 구두 주인의 발을 측정할 차례였습니다.

 작업장은 태미 영감의 집과 바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제가 사흘 만에 작업장 문을 열고 나오자, 태미 영감은 부엌 식탁에서 럼주를 앞에 두고 어두운 표정으로 앉아 있었습니다. 난 영감에게 적당한 유리 재료를 찾아냈으며, 구두 주인의 발 측정만 끝나면 바로 작업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 일은 꼭 성공시켜야해. 무슨 일이 있어도.”
“왜 그래요? 안 드시던 술을 드시고. 무슨 일이 있어요?”
“우리 길드의 상점 중에 4개가 갑자기 문을 닫았어.”
“무슨 말씀이에요? 네 개의 가게가 폐업했다는 거예요?”
“네 가게의 주인들이 갑자기 사라졌어. 사흘 전을 기점으로.”
“…….”
“우리가 맡은 이 일. 처음부터 뭔가 찝찝했어. 그 집사라는 사람도 좀 이상해보였고. 우리에게도 이 일을 발설하지 말라고 했지. 그 말인즉, 이 일은 누구든 알아선 안 된다는 거야. 아는 사람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거지.”
“그럼? 그 주인들은.”
“응. 난 그렇게 추측해. 사라진 자들은 이 일을 할 수 없다고 한 가게 주인들이겠지. 이 일엔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 넌 이 일을 모르는 거야. 그들은 나와만 얘기했고, 내가 만드는 줄 알고 있어. 넌 조용히 만들기만 해.”

 이틀 후부터, 그때 그 집사라는 사람은 유리 구두를 신을 여자를 한 명씩 데리고 왔습니다. 물론 밤이 깊었을 때 비밀스럽게 왔지요. 집사는 여자를 우리 공예방의 작업실로 들여보낸 다음, 마부와 함께 부엌 식탁에 앉아 여자가 나오길 기다렸습니다. 태미 영감이 여자의 발에 석고를 바르고 발 모양을 뜰 동안, 난 식탁 밑 마루바닥 아래의 작은 공간에 미리 숨어 그들이 무슨 일을 꾸미는지, 그들은 누구인지를 알아내려고 했습니다. 첫 번째 여자가 온 날에 그들은 아무런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담배를 만드는 요령만 잠시 주고받았죠. 두 번째 여자를 데리고 온 날부터는, 집사와 마부는 긴장이 풀렸는지 이 말 저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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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들어 종합한 내용은 이렇습니다. 그들은 이 왕국의 실세, 라수스 남작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얼마 후에 있을 왕비의 생일 축제에 그들은 유리 구두를 신은 다섯 명의 여자를 참석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습니다. 왕자의 눈에 들기 위해 모인 수많은 여자들 중에, 유리 구두는 그들의 사람임을 알아보는 표식의 의미였습니다. 그 계획을 위해 축제에 참가한 다른 사람들은 유리 구두를 신은 여자들을 왕자에게 적극 소개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라수스 남작은 여자를 밝히는 왕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왕국의 앞날을 좌지우지할 계획이었던 겁니다. 다섯 명 중 한 명은 반드시 왕자의 마음을 얻어 결혼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남작의 사주를 받은 여자는, 왕비가 되어 라수스 남작이 권력을 키워 가는데 큰 자산이 될 것입니다. 마부는 사라진 유리공들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 대목에선 집사가 마부의 말을 제지했습니다. 그 얘긴 다신 꺼내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사라진 유리공들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입니다.

 마지막 다섯 번째 여자가 온 날, 그녀가 마차에서 내렸을 때, 제 심장이 순간 유리처럼 단단히 굳어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못 본 사이 더 아름다워진 루시가 마차에서 내릴 때 손을 내미는 마부를 보고 활짝 웃었습니다. 5년 만입니다. 그 미소를 본 것이. 저는 진정이 되질 않았습니다. 전 영감의 다락에 숨어 밖을 보고 있다가, 부엌으로 가는 대신, 작업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제 심장이 시키는 일이었습니다.

 전 작업장 구석에 숨어서, 영감이 본을 다 뜨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일이 마치고, 영감이 발을 닦고 밖으로 나오세요, 라는 말을 던지고 밖으로 나갔을 때, 전 루시 앞으로 나섰습니다. 앞뒤 잴 틈이 없었습니다. 늘 꿈꾸고 기다려온 순간이었습니다. 발을 닦느라 긴 머리칼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앉은 그녀 앞에 제가 섰습니다. 루시. 그녀가 흠칫 놀라며 고개를 들고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놀란 눈을 하고 저의 얼굴을 찬찬히 확인하더니,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존 그라스?

 멀뚱히 서 있는 저에게 다가온 것은 오히려 그녀였습니다. 루시는 벌떡 일어서더니 두 손으로 제 두 손을 맞잡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존 그라스? 그때 왜 갑자기 사라졌던 거야? 전 겨우 정신을 차리고 말했습니다. 지금 길게 말할 시간이 없으니, 내일 낮에 도시 외곽 밋어프 숲에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루시는 알았다고 답했고, 그때 집사가 작업장 문을 두드렸습니다. 전 재빨리 구석으로 몸을 숨기고, 루시는 작업장 밖으로 나갔습니다.


To be continue. 3편에서 계속-


 원래 한 번 분량으로 계획했던 이야기가 덩치가 커져서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두 번째에도 마무리를 못하는 점 죄송합니다. 쓰면서 이야기가 진화한 탓도 있고, 오늘 혼자 육아를 담당하다보니, 온전히 시간을 내지 못한 탓도 있습니다. 가능하면 다음 이야기로 끝을 맺으려고 합니다. 장담은 못하겠지만요. 다음 이야기도 많은 기대 바랍니다.

-Soulmate writer by your side.


*신데렐라 외전 1편 - @kyslmate/49rqc7
*신데렐라 외전 3편 - @kyslmate/3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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