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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만난 건 2012년의 여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S의 공연을 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고, 그녀는 그러고 싶다고 했다. 그녀를 처음 만난 홍대 카페에서 나는 그녀에게, 지금 이 시점에 1992년의 S의 에너지가 왜 필요한지 역설하고 설득했다. 그녀는 뭐 어려운 얘기라고 "하면 되죠. 어떻게 시작할까요?'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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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의 공연.. 2012년 나는 완전히 기력을 상실해 있었다. 몸은 무너져 내렸고 마음은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그러나 직관은 나를 쉬게 두지 않았다. 똥줄이 타들어가 피를 질질 흘리는 와중에도, 직관은 내게 쉬지 말 것을, 아직 더 달려야 한다며 채찍질했다. 그래서 생각했다. 기왕 그럴 거면 불가능한 시도를 해보자. 그때 생각난 것이 S의 공연이었다.
'어떻게 시작하지?'
생각을 뒤지고 있는데, 얼마 전 어머니가 읽어보라고 주었던 책이 생각났다. 왜 그 책을 읽어보라고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따금 뜬금없는 직관을 선사하는 어머니의 제안을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 책 생각이 났다. 가출했던 폭주족 소녀가 S의 노래를 듣고 집으로 돌아와 생의 도전을 시작했던 이야기.. 그렇군. 그녀를 찾아가 보자.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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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당시 자신의 2번째 책 출간을 앞두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저러한 무브먼트들을 준비하고 실행하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나는 마법의 매뉴얼 대로 그녀의 곁에 따라붙었다. 그리고 그녀의 방향성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그녀는.. 아직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녀는 결핍을 마구 채워대는 폭주기관차 같았다. 감히 그 에너지를 막아서 외부로 돌리게 할 수 없었다. (후에 그녀는 인터뷰에서 분노 에너지였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갈등이 일어날 수 있는 지점이었다. 나는 그녀를 둘러싼 이들에게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
'이것은 어떤 무브먼트도, 공익적인 무엇도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녀가 그녀의 꿈, 버킷리스트들을 채우도록 돕는 일입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S의 공연은 그녀의 무브먼트와 연결되지 않았다. 그리고 2013년의 에너지는 오히려 전혀 예상치 못했던 C에게로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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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드롬.. 2013년 C의 복귀는 신드롬 그 자체였다. 모두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과연 가능하겠냐고 회의적이었을 때 나는 밀어붙였고, 결국 C는 화려한 신드롬 속에 복귀를 하였다. 1년여의 투어를 함께 했지만 정작 그와 대면 한 것은 단 한차례뿐이었다. 그것도 동석자로서.. 그런데 그는 내게 계속 물었다.
"우리 어디서 본 적이 있죠?"
"아닌데요"
"분명 어디서 봤는데.."
왜 모르겠는가.. 같은 별에서 온 우리인데..
신드롬은 오히려 내겐 좌절이었다. 직관이 말한 에너지가 이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롤모델이라던 C에게, S는 2012~13년의 에너지를 양보하였던 것일까? 고졸 가수 C와 중졸 가수 S, 그리고 폭주족 소녀의 콜라보레이션은 불가능했던 걸까? 아무튼 이건 분명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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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2002년 그리고 2012년, 10년을 주기로 일어나던 혁명은 2012년에서 멈추었다. 역사에 만약이 없지만, 2002년에 붉은악마가 없었다면 과연 노무현은 대통령이 될 수 있었을까? 그러면 우리는 이회창을 대통령으로 맞았을까? 그러면 차라리 나았을까? MB-박근혜로 이어지는 처참한 역사는 없었을까? 그러니 만약, 2012년에 'Again 2002', 'Again 1992'가 있었다면 우리는 차가운 광화문 바닥에 앉아 촛불을 들지 않아도 되었을까? 가보지 않은 평행우주를 알 수가 없다. 다만 영화 1987에서처럼, 연관이 없는 개개인들의 선택이 불러일으킨 나비효과가 그때에는 일어나지 않았다. 역사는 만약과 반대로 흘렀고 마법사의 삶도 급전직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역사의 만약을 따라가지 못한 우리는 처참한 사건을 목도해야 했다. 마법사는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본국으로 송환되었다. 그리고 내려진 판결은 가택연금이 아닌 떠돌이연금 4년..그리고 암선고가 추가되었다. 모든 것을 잃고 4년 동안 세상을 떠돌아야 했다. 사적소유를 일체 봉쇄 당한 채, 모든 관계로부터 차단당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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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그녀를 잊고 있었다. 초반에 연락이 오곤 했으나 나는 그녀를 만날 수가 없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 있었으니, 만약이라는 그 우주에 올라타지 못했으니, 그녀를 다시 만날 수는, 만날 수가 없다. 그리고 S는 C의 신드롬 소식을 들었는지, 자신의 컴백 공연 제안서를 내게 보내왔다. 물론 그가 직접 보낸 것은 아니다. 그는 이제 생활인이 되어 개런티를 받고 공연을 하면 그뿐이다. 제안서를 보낸 곳은 당연히 대행사이고 나는 제안서를 집어던져 버렸다. 전 좌석을 매진시켜도 수익이 날 수 없는 예산안.. 진정성을 밥 말아 먹은 생계인의 눈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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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4년이 흘렀다. 겨우 가석방으로 풀려난 나는 페이스북이라는 소통 창구 하나를 허락받았다. 그리고 첫번째 쓴 글은 영화 1987의 리뷰였다.
처음에는 단순한 리뷰로 시작하였는데 결국 X세대의 1987에 대한 얘기로 흘러가 버렸다. 그러니 S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꼴보기 싫어도 그는 역사의 인물이니까. 한참 S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고 있는데 페이스북 메신저가 갑자기 띠링하고 울렸다. 생전 쓰지도 않는 페이스북 메신저..
'마법사 멀린 맞아요?'
그녀였다.. 아마 전화나 문자였다면 나는 응답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응답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은 직관이 내게 허락한 방식이 아니니까. 그러나 그녀는 소름 끼치게도 정확한 그 순간에, 직관의 방법으로 나를 소환해 내었다. 나의 정체성을 또박또박 일깨우며.. 다시 그녀와 조우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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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삶을 돌아본다. 폭주족 소녀로부터 지금의 그녀가 되기까지, 그녀는 늘 한결같이 자신의 결핍과 상처를 정면으로 마주했다. 폭주하던 삶을 정반대로 돌려, 자신을 가로막은 억압과 저주의 벽을 정면으로 들이받아, 부수고 부수었던 것이다. 외부인이 그걸 보면 당황스럽거나, 황당하거나, 유치하거나, 어설프거나, 아니꼬와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그녀를 둘러싼 어떠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버킷리스트를.. 남들은 불가능하다며 봉인해 놓은 꿈의 리스트를 써 내려 갔다. 80여 개가 넘는 버킷리스트.. 그게 어찌 그녀의 꿈뿐일까. 그것은 입으로만 나불대며, 두려움으로 봉인해 버린, 용기 없는 모든 이의 꿈이다. 그녀는 그것을 대신 이뤄내고 도전하고 시범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어.'라고 말이다. 그러느라 좌충우돌한 시간들, 그러느라 폭주했던 시간들, 그러느라 떠나간 사람들, 상처 입은 사람들 또한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 그대로 당돌하게 자신의 운명을 개척해 나갔다. 그리고 제대로 성장해 왔다.
2012년에 그녀가 준비되어 있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만약의 우주에 들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우리 모두는 그 시간을 거쳐오며 단단해지고 새로워졌다. 물론 300명의 아이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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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의 첫 책으로부터 이어진 순례의 기록들을 추천한다. 폭주족 소녀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어떻게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넌 할 수 없어', '난 하지 못할 거야'의 벽을 부수어 갔는지.. 그녀의 꿈, 아니 적어도 하나쯤은 우리의 꿈이기도 한, 그녀의 버킷리스트들이 어떻게 성취되어 왔는지.. 느껴보길 권한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딸들에게 마법사로서, '너도 다르지 않다고', '너도 할 수 있다'고 다시 한번 권고하고 싶다. 한남충, 개저씨를 때려잡는 분노에너지로, 자신 앞에 놓인 유리천장을 박살내 보라고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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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마법사를 그녀의 우주로 소환했다. 이제 새로운 도전에 들어선 그녀가 계속 성장하여, 대지의 어머니로 자신을 현현하기까지 나는 계속 지켜볼 것이다. S가 떠나간 자리에, 대지의 딸들과 붉은 그대들이 난장을 벌이기를 고대하며 말이다.
*멈추지마, 다시 꿈부터 써봐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사랑은 무업입니까
#누군가에게는판타지
#그러나내겐리얼논픽션그리고기록
#그래서반타지
[INTRO]
마법사입니다. 그렇다구요.
마법의 열차는 불시 도착, 정시 발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