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장 상키아 철학의 이론과 카르마 요가의 훈련 >
크리슈나가 아르주나의 영적인 스승 역할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번빈에 휩싸인 아르주나를 격려하면서 영원한 자유의 길로 이끕니다.
아르주나는 삶과 죽음이라는 인류의 영원한 질문에 맞닥뜨렸다.
인간에게 영혼이라는 것이 있는가?
죽은 다음에도 그 영혼은 생존하는가?
이 세상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더 깊은 근원적인 실재가 존재하는가?
만약 그런 근원적인 실재가 존재한다면 그걸 직접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그걸 직접 인식한다면 그것이 일상적인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르주나는 이런 문제에 부딪쳤다. 2장에 실려 있는 아르주나의 이런 질문에 대한 크리슈나의 대답 속에는 <바가바드 기타> 전체의 주제가 언급되고 있다. 그러므로 2장은 <바가바드 기타> 전체의 내용을 간추린 개요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크리슈나는 참 자아 아트만은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으며, 영원한 것임을 일깨우는 것으로 가르침을 시작합니다. 단계적으로 영적인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참 자아 아트만은 영원하다는 궁극적인 전제부터 선포하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현재의 삶을 버리고 다른 형태의 삶을 찾으라고 권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을 버리고 은둔 수도자가 되라고 권하지도 않습니다. 그는 오히려 요가를 통해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평화로움으로 충만한 상태를 성취할 것을 요구합니다.
2장 14-15
사람은 감각기관과 감각 대상의 접촉에 의해
차가움과 뜨거움,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흘러가는 것이다.
일시적으로 왔다가 가는 것들이니 참고 견디라.
이런 변화가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고,
즐거움과 괴로움을 동일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이
진정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며,
영원한 생명을 얻기에 합당한 사람이다.
황소처럼 강인한 정신력으로 이 사실을 깨닫도록 하라.
2장 16-18
존재하지 않는 것은 생겨날 수 없고,
존재하는 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이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궁극적인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온 우주에 충만하게 깃들어 있는
결코 없어지지 않는 실재를 깨닫도록 하라.
이 영원한 실재는 어떤 힘으로도 없애버릴 수가 없다.
육체는 사라져 없어지지만 육체 속에 거하는
측량할 수 없는 이 실재는 영원히 죽지 않는다.
그러니 아르주나여, 아무 염려 말고 나가서 싸워라.
2장 71-72
모든 욕망을 버리고
결과에 대해 집착하지 않고 행하는 사람,
'나'와 '나의 것'
또는 '내가 한다'는 에고 중심주의를 넘어선 사람은
참된 평안에 이른다.
아르주나여, 이것이 지고한 경지다.
여기에 이른 사람은 더 이상 미혹되지 않는다.
그대는 이 자리에 도달하도록 하라.
그리하여 죽음을 넘어 영원으로 들어가도록 하라.
사람은 감각으로 살아갑니다. 좋고 싫고, 행복하고 슬프고, 감정은 생기고 없어집니다. 끝없이 흐릅니다. 변화합니다. 이것은 일시적입니다. 변화는 것은 변하지 않는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사람의 감각기관의 중심을 잡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사람은 죽지만 실재는 죽지 않습니다. 실재는 태어나지도 죽지도 않습니다. 육체는 사라져도 살아있습니다. 사람은 삽니다. 그래서 죽습니다. 산다는 것은 죽는다는 것입니다.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영원한 것에 대해 알려줍니다. 변하지 않는 아트만을 일깨어 줍니다. 아트만을 알게 되었을 때, 번민은 줄고 평안함으로 충만하게 됩니다. 힌두교에서 전하는 마음의 평안에 이르는 길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도 이에 연결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3장에는 크리슈나가 행위를 통해 해탈에 이르는 길을 설명합니다. 카르마 요가의 길입니다.
[천가지감天歌之感] 서언@taotao/5jypiq
[천가지감天歌之感] 바가바드기타 1장 < 내면의 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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