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암스테르담입니다. 몇 시간 뒤면 한국으로 돌아갑니다. 한국에 집이 있습니다. 아니 있을 겁니다. 아직 찾지는 못했지만.. 집을 떠나와 여행을 떠난 지 벌써 5년째입니다. 집이 없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라 방랑이고 유랑입니다. 여행은 집이 있는 사람이 떠나는 겁니다.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에게 여행은 정처 없는 떠돌이 생활일 뿐입니다. 집을 가지고 싶어 여행을 계속하고 있지만..
몇 평짜리 머리를 누일 공간이 있다고 집이 있는 것은 아닐 겁니다. 나를 걱정해 주고, 생각해 주고, 마음을 나누고, 함께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고, 함께 슬퍼하며, 함께 환희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 집일 겁니다. 서로의 꿈에 동참하고, 응원하고, 함께 어려움을 나누고, 뭐 그런 걸 꿈꾸는 겁니다. 공동체를, 커뮤니티를, 꿈꾸는 사람들 다 그런 걸 꿈꿉니다.
그래서 나는 2년 전 박살 난 밴드와 함께 암스테르담에 왔습니다. 그리고 타던 차의 유리창이 또 박살이 났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했습니다. 워낙 꽁꽁 봉해 놓았던 터라.. 지금 와 생각해 보면 차라리 뭘 좀 가져가지.. 없는 살림에도 뭐라도 좀 가져갔더라면 마음이 좀 더 나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얼마나 힘들면 차를 털려 했을까요? 뭘 좀 훔쳐서 마약을 했더라도 말입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렇게라도 한시름 잊어야 했을까요? 그때에도 그랬습니다. 가져가지도 못할 거면서.. 왜 유리창은 박살을 내어 놓았을까.. 나의 마음도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아닙니다. 나의 마음은 이미 수많은 세월 동안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매번 공동체를 시도하고 또 시도하며, 그들은 참 많이도 내 마음을 박살 내어 놓았습니다. 깨어진 건 물론 나뿐이 아니었겠지만..
유리창은 투명해 보입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의 삶을 모두 알고 있다는 착각을 줍니다. 그러나 소중하게 다루지 않으면 한 순간에 깨어질 만큼 연약합니다. 세상의 모든 관계는 모두 유리 위에 놓여 있습니다. 한 순간에 박살이 나고 다시 붙일 수가 없습니다. 끊어진 인연을 다시 이어봐야 너덜너덜할 뿐입니다. 조금의 충격에도 다시 박살이 나고 마는 겁니다.
그래서 매번 새로 공동체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조각조각 박살 나다 못해 다시 이어붙일 수도 없을 만큼 바스러질 때까지, 붙이고 또 붙여봤지만 돌아오는 것은 원망과 상처뿐.. 그래서 자꾸 봉하게 되었는지 모릅니다. 자꾸 묶고 봉하고, 함부로 열지 못하도록,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도록 경계했는지 모릅니다. 스팀잇을 시작하며 마법사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누가 물었습니다. 닉네임이 왜 멀린이냐고? 돌아가며 각자 왜 이름이 그 모양인지 설명하는 챌린지가 제게 돌아왔습니다. 마법사는 그간 번 돈으로 닭 사먹고 이만 뜨려고 하던 찰나였습니다. 그런데 님들이 제게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냥 떠나도 되었을 텐데. 나는 님들에게 꽃이 되고 싶었나 봅니다.
[steemitnamechallenge] 마법사입니다. 그렇다구요.
그리고 시작되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이름을, 정체를 드러내고 말게 되자, 더 이상 마법사임을 숨기고, 나의 사명을, 나의 꿈을 외면한 채로 '그럼 이만..'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러다 보니.. 스팀시티.. 공동체.. 커뮤니티를 또.. 시작하게 된 겁니다.
마음은 반반이었습니다. 이런 공동체.. 이런 커뮤니티.. 늘 뻔한 거니까. 또 박살 날 거니까. 마음의 반쯤은 남겨 놓았습니다. 그래야 나도 살겠으니까요. 어떻게 또 박살이 납니까.. 그렇게는 못 삽니다. 그렇게는 더 못 삽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총수님들이 선출되고,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정성을 다해 가라앉은 스팀시티를 찾아다니고 계시지만.. 마법사는 한 발 뒤로 물러서서 반쯤은 마음을 남겨놓고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습니다. 반쯤 남겨 놓은 마음으로.. 그리고 다시 암스테르담에 오게 되었습니다.
참 운명이란.. 어케 여기를 다시 오게 되었을까요. 표면적인 이유는 가난한 마법사가 가장 싼 항공권을 찾다 보니 어쩔 수 없어 그랬다지만.. 왜 하필 암스테르담이었을까요. 환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루를 머물렀습니다. 그리고 직관은 [글쓰기 유랑단]에 대해 말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더 거부할 수가 없습니다. 더 미룰 수가 없습니다. 거부했다간 돌아가는 비행편이 취소될지도 모를 테니까요.
그래서 그대들을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반쯤 남겨 놓은 마음으로, 반쪽짜리 마음으로 그대들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그게 솔직한 심경입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오게 되면, 누구라도 운명의 부름에 반응하게 되면, 그래서 스팀시티 한 발 더 나아가게 되면.. 이제는 더 이상 반쪽짜리 마음으로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이제는 마음 반쪽 남겨 놓고 공동체, 커뮤니티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또 유리창이 박살 나고 말 테니까요. 내 마음 남은 반쪽마저 박살 나고 말 테니까요.
그래서 그때에는 물러서지 않을 겁니다. 마법사의 마음은 늘 흔적도 없이 바스러졌지만, 깨어진 조각으로라도 살겠다고, 그렇게라도 살아남겠다고 떠난 님들처럼, 그냥 떠나가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박살 나게 두지는 않을 겁니다. 막고 또 막아설 겁니다. 밤을 새워서 지키고 날이 새도록 지켜서 무사히 집에 돌아가게 될 때까지.. 그리운 나의 집 찾을 때까지.. 견뎌낼 겁니다. 지켜낼 겁니다. 집으로 향하는 여정.. 무사히 마쳐낼 겁니다.
그러니 그대도 깨어진 마음으로 오십시오. 다시 시작합시다. 괜찮습니다. 깨어지고 바스러졌어도, 녹이고 다시 녹여서 새로 만들면 됩니다. 새 마음으로 또 시작하면 됩니다. 상처는 아물고 새 살은 돋아나기 마련이니까요. 스팀시티의 용광로에서 함께 녹아듭시다. 그리고 새로운 유리창으로, 방탄 유리창으로 다시 태어납시다. 암스테르담에서 말이죠.
여기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만납시다.
여기 암스테르담에서 다시 시작합시다.
여기 암스테르담에서 마법사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스팀시티 + 글쓰기 유랑단]
글쓰기 유랑단을 모집합니다
암스테르담
너 왜 신청 안 하니?
신청자는 없습니다
그 후..
[도서출판 춘자 / 배낭영성] 여기 이곳 스팀잇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