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누브라 계곡의 첫 번째 마을, 탕야르 탈출기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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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enzen25




라다크에 오는 사람들이 코스처럼 밟는 지역이 두 군데가 있다. 판공초와 누브라 밸리이다. 누브라 강이 흐르는 깊은 계곡에 위치한 마을들은 하나같이 황량하고도 웅장한 산맥에 둘러싸여 있지만 저마다 다른 특색을 가지고 있기에 여행자들은 이를 빼놓지 않고 방문하려고 한다. 누브라 밸리 지역의 가장 큰 도시라고 할 수 있는 디스켓Disket과 부드러운 모래 언덕이 유명한 훈더르Hunder, 2010년에 개방된 뚜르뚝Turtuk이 사람들이 가장 즐겨 찾는 마을이다. 우리도 이 코스를 다녀온 적이 있다. 동행했던 인도인 친구 루치가 뚜르뚝 지역 여행 허가증을 받지 않는 바람에 검문소에서 한두 시간 옥신각신하고 사정사정을 해가며 겨우 밟은 뚜르뚝은 조용했다.

발티스탄에 속해 있는 뚜르뚝은 파키스탄의 훈자와 판박이다. 작은 세계에 꽁꽁 숨어서 살던 아이들은 여행자들의 발길이 닿으며 새로운 놀잇거리를 찾은 듯 보였다. 카메라에 제 눈빛과 몸짓을 맡기는 것이 어색하지 않았다. 기나긴 여정 끝에 도착한 뚜르뚝은 아름다웠고 아이들은 귀여웠으나 하룻밤 묵고 싶지는 않아 디스킷에서 묵고 다음 날 훈더르에 가서 낙타를 구경하며 짧은 여정을 마쳤다. 이것이 우리의 누브라 여행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우리는 사람들이 거의 하지 않는 특별한 누브라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은 가보지 못한 우리만의 특별한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악!”

외마디 비명에 놀라 잠에서 깼다. 안경을 쓰지 않아 흐릿한 시야였는데도 핏빛으로 물든 지혜의 두 눈이 또렷하게 보였다.

“왜 그래?”

“렌즈를 너무 오래 꼈나 봐. 눈이 너무 아파.”

사부 곰빠Sabu Gompa(사부 마을의 곰파)에 적을 둔 롭상과 그의 고향인 탕야르에 가기로 오래전부터 계획한 날이었다. 탕야르는 누브라 밸리를 끼고 있는 마을 중 하나인데 워낙 작고 오지라 현지인조차 잘 모르는 곳이었다.

“그래서 탕야르에 갈 수 있겠어?”

“어쩌겠어. 가야지.”

엄청난 난시를 가진 지혜는 렌즈를 끼지 않으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자신의 고향을 보여줄 생각에 한껏 설레 허가증부터 지프 예약까지 모든 준비를 한 롭상을 실망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줄레!"

하얀 이를 드러내고 환하게 인사하며 나타난 롭상이 마련한 지프에 올라탔다. 지프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 차체가 흔들림에 따라 우리의 몸도 쉴새 없이 흔들렸다. 차는 움직일 때마다 위태로운 소리를 냈고, 눈이 보이지 않아 두 배로 울렁거린다며 지혜는 재빨리 잠을 청했다. 싼 가격에 지프를 빌리려다 보니 이런 고물차를 구할 수밖에 없었다며 롭상은 미안해했다. 차가 너무 심하게 흔들려 원치 않는 어깨춤을 추다 보니 도저히 잘 수 없던 나는 바깥 경치를 구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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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브라 밸리에 가려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찻길 카르둥라를 넘는데 우린 카르둥라가 아닌 와릴라 패스를 거쳐 탕야르로 향했다. 초록과 노랑이 점점이 박힌 예쁜 마을들을 지나치자 완만한 오르막길인 와릴라 패스가 나타났다. 와릴라 패스는 현기증이 날 정도로 정상을 향해 거침없이 올라가는 카르둥라 길과는 다른 운치가 있었다. 카르둥라에 오르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차들이 비탈 아래 굴러떨어져 있는 공포스러운 모습을 보며 험난한 산자락을 올라야 하지만, 와릴라는 아주 완만하고 느긋하다. 비탈 자체의 경사가 높지 않아 오래오래 돌아가야 할 뿐만 아니라 길 자체가 약간 기울어져 있어 속도를 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와릴라는 시간이 돈인 여행자의 마음을 모르는 태평한 이가 만든 길처럼 보일 정도다. 느긋하게 가다 보면 어느새 산정상에 도착해서 ‘언제 내가 이렇게 높이 올라왔지?’ 하고 되돌아 지나온 길을 보며 깜짝 놀라게 되는 그런 길이 와릴라 패스다. 잡아먹을 듯 거친 흙산으로 살풍경한 카르둥라 패스와는 달리 부드러운 느낌의 산맥과 지치지도 않고 이어지는 생명력 강한 꽃들과 뭉실뭉실한 연보라색의 가시덤불과 초록이 수놓은 길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바라보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여기서 쉬었다 가자.”

롭상이 우리를 깨운 건 땅거미가 질 무렵이었다.

“여기가 어딘데?”

“유목민 천막. 우리 어머니가 계셔.”

허허벌판에 있는 작은 천막에는 초로의 노인이 있었다. 롭상의 어머니는 이곳에서 생활하며 양과 야크를 돌본다고 했다(탕야르는 야크 고기로도 유명한 지역이다). 그녀는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며 짜이와 과자를 주었다. 그녀는 도시에서 스님 생활을 하느라 한참 보지 못한 아들이 반가운지 거칠고 쭈글쭈글한 손으로 연신 롭상의 손을 어루만졌다. 탕야르에는 작은 절이 하나 있는데 롭상은 아주 가끔 그 절을 관리하기 위해서만 고향을 찾기 때문에 참으로 오래간만의 재회라고 했다.

오랜 유목 생활에 지친 노모는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늙어 보였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하고 갈라진 노모의 손이 서글퍼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롭상이 그 손을 꽉 감싸 쥐었을 때 마음이 따뜻해지고 안심이 되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부모를 웃게도 울게도 하는 것은 자식일 테다. 짧은 만남은 끝이 나고 천막에서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렸을 때 절로 보내 자기 손을 타지 않은 자식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은 어떨까? 어려운 형편이지만 따뜻한 밥 먹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할까? 곁에 두지 못하고 절로 보낼 수밖에 없는 것에 마음이 쓰라릴까? 나는 절대 알 수 없을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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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차에 올라탔다. 탕야르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했다. 차는 크릉크릉 힘겨운 소리를 내며 굴러가는 게 신기할 정도로 가까스로 움직였다.

“도착했어.”

마을은 상당히 작았다. 마을 안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없어 마을 어귀에 내려야 했다. 어둠 속에 불빛을 내뿜는 몇 채의 집으로 마을 규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산골 오지였다. 불빛 한 점 안 보이는 캄캄한 길을 더듬더듬 올라갔다. 같은 라다크지만 레의 밤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짙은 어둠이었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비틀거리며 한참을 걸어 롭상의 누나 집에 도착했다. 허기에 지친 우리는 롭상의 누나가 만들어 준 소박한 뚝바를 허겁지겁 먹었다. 반쯤 먹었을 때 불이 꺼졌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른 채 어둠 속에서 식사를 했다. 늦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할 일은 없었다. 차를 타고 오느라 피곤했던 까닭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 양치만 한 채 빨리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이른 아침을 먹고 우리는 롭상이 관리하는 탕야르의 작은 절을 방문하기로 했다.

“어떡해. 카메라 충전기를 안 가져왔어.”

“배터리를 아껴서 찍으면 되잖아.”

“배터리도 별로 안 남았어.”

“그럼 건전지라도 사서 써야지 뭐. 롭상, 슈퍼마켓은 어디에 있어?”

“우리 마을엔 슈퍼마켓이 없어.”

아무리 시골 마을이어도 작은 구멍가게 정도는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어 거듭 물었다.

"진짜 없다니까.”

“그럼 사람들은 필요한 물건을 어떻게 구해?”

“없는 대로 사는 거지. 정말 필요한 물건은 시내 나가는 사람들 편에 구하고.”

“그래도 마을에서 조금 나가면 작은 가게 하나쯤은 있지 않아?”

“아니. 한 세 시간은 나가야 해. 버스도 없어서 한참을 걸어야 하거든. 이 주변을 지나다니는 차도 없어서 히치하이킹도 힘들 거야."

“세 시간을 나가야 한다고? 말도 안 돼. 거기에 갔다가 오느니 사진을 안 찍는 게 낫겠다.”

평소 여행을 다니며 사진을 많이 찍는 편은 아니지만, 막상 사진을 찍을 수 없는 상황이 되니 심통이 났다. 뭐 이따위 촌구석에 사람을 불렀나 싶어 괜히 롭상이 야속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슈퍼마켓 가는 길에 약국에 들러 안약이라도 사려 했던 생각은 입 밖에 내지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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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롭상과 롭상의 조카 도르제와 산 중턱에 위치한 사부 곰빠에 갔다. 똘망똘망한 인상의 도르제는 초등학교에서 영어를 배운다고 했지만 부끄러워서인지 말이 없었다. 절은 아주 작고 잠잠했다. 그 고요함이 좋아 불당에서 한참 동안 넋을 놓고 있었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오히려 이상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조용한 곳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앉아있다 보니 잠이 솔솔 왔다. 꾸벅꾸벅 졸다가 밖으로 나왔다. 한 칸밖에 남지 않은 카메라 배터리를 아끼고 아껴가며 사진을 찍었다. 열 장 정도를 찍고 나니 카메라가 꺼졌다.

“카메라가 없으면 어때. 눈으로 지금, 이 순간을 담자.”

제법 멋을 부리며 말했지만, 눈이 보이지 않는 지혜나 이곳에 오면서 이미 비슷한 풍경을 지긋지긋할 정도로 본 나나 경치가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색다른 구경거리가 없을까? 평소 여행할 때도 나는 유서 깊은 건물이나, 역사적인 유적지나,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필수 관광 코스에 심드렁해 하는 편이었다. 눈에 불을 켜고 두리번거렸지만, 보이는 건 마을을 둘러싼 계곡뿐이었다. 볼 것도, 할 것도, 놀 것도 없었다. 살다 살다 이렇게 할 게 없는 마을은 처음이었다. 정말이지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휴대폰 신호는 잘 안 잡히는 수준이 아니라 아예 없었다. 누브라에 와 있는 사이 생일을 맞은 친구에게 축하 전화를 걸기 위해 휴대폰을 꺼냈는데 신호가 하나도 잡히지 않았다. 몇 주 전부터 오늘이 생일이라고 성대한 파티를 열 거라고 설레발을 쳤던 걸 깜빡 잊고 여기 온 것이 미안해서 건 전화였다.

“롭상. 왜 전화가 안 되지?”

“이 동네는 전화가 안 터져.”

“뭐? 전화가 안 된다고?”

“BSNL(인도의 국영 통신업체)만 터지거든. 통신사 뭐야?”

“에어텔(인도 최대의 이동 통신사).”

“그럼 안돼."

전화조차 쓸 수 없다니, 우리는 황망함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문명 혐오론자가 진짜 좋아할 마을이야.”

“천국이지. 천국.”

지혜는 이 마을에 질린 듯 혀를 차며 말했다. 나도 그 말에 동의했다. 여유롭고 문명과는 동떨어진 삶에 대한 동경은 있어도 우리는 절대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것을 탕야르에 와서 깨달았다. 우리가 레에서 살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모든 것을 갖춘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한계치의 ‘오지’는 딱 레까지였다.

해가 뜨니 눈을 뜨고, 배가 고프니 밥을 먹고, 심심하니 잠을 자고, 전기가 나가니 또 잠을 자는 자연에 순응하는 하루를 보냈다. 절을 방문하고 동네를 가볍게 산책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낮잠을 잔 탓에 눈이 말똥말똥한 우리는 이부자리에 누워 수다를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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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 롭상에게 떠나자고 하자.”

"나도 그 생각했어.”

“나 도저히 못 견디겠어. 심심해 미치겠어.”

“교도소에 수감된 거 같아. 아름다운 풍경 보면서 교화하라고.”

“어떻게 해서든 내일 꼭 여기서 탈출하자.”

“근데 롭상은 며칠 더 있고 싶어 하는 눈치던데. 오랜만에 온 고향이잖아.”

“여기서 며칠 더 있다간 우리가 미칠걸? 우리가 살고 봐야지. 무조건 가자.”

우린 탕야르에서의 탈출을 다짐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우린 눈을 뜨자마자 샴푸를 찾았다. 열악한 상황이라는 것을 아니까 참으려 했지만 모래바람을 많이 맞은 탓에 더러워진 머리를 견딜 수 없었고, 이런 거지꼴로 레에 가고 싶지 않기 때문이기도 했다.

“롭상. 샴푸 있어?”

“없어. 비누로 감아.”

“그러면 머리가 심하게 엉킨단 말이야.”

“아! 천연 컨디셔너가 있어. 기다려봐.”

밖에 나간 롭상이 구해온 건 초록 잎사귀가 주렁주렁 달린 나뭇가지 두 개였다.

"이 나무줄기의 껍질을 벗겨 봐.”

롭상의 시범에 따라 우리는 줄기의 껍질을 벗겼다. 롭상은 벗긴 껍질을 칭칭 말아서 우리에게 내밀었다.

“따뜻한 물 반 컵에 넣어서 머리에 발라 봐.”

껍질에서는 진득진득한 수액이 흘러나와 그럴싸한 천연오일로 보였다. 뜨거운 물을 데워달라고 하는 게 롭상의 누나를 번거롭게 하는 것 같아 그냥 차가운 물에 머리를 감았다. 얼얼한 머리통에 진득진득한 천연 에센스를 부었다. 수액 한 방울이라도 낭비할까 봐 나무껍질을 쭉쭉 짜서 머리에 치덕치덕 발랐다. 그렇게 한동안 두었다가 머리를 감았다. 여자들이 창포물에 머리 감는 건 풍속도에서나 보아온 일인데 직접 하게 되다니.

“이거 되게 좋다. 이름이 뭐야?”

“옴부, 영어로는 모르겠다. 누브라에서만 나는 거야.”

옴부 덕분에 오랜 라다크 생활로 상한 머리에 윤기가 돌고 머릿결이 한결 좋아진 듯했다. 하지만 차가운 물로 감은 탓인지 온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머리도 지끈거렸다. 문명의 혜택이 거의 없다시피 한 이곳에서의 생활은 의외의 재미가 있기도 하고, 색다른 경험이었지만 우리는 자연을 오롯이 마주하고 견디며 살 수는 없는 사람들이었다. 힘들고 불편한 이 생활을 즐기는 건 이틀이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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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

“어디를?"

“레로. 레에 돌아가고 싶어.”

우리의 보금자리이자 가장 번화한 도시 레로 하루바삐 돌아가고 싶었다.

“버스가 없어. 당장 지프도 구할 수 없고.”

“정말 어떤 방법도 없다고?”

“마을을 나가 한참 걸으면 버스가 있긴 할 거야. 그렇게라도 가고 싶어?”

“응, 걸을 수 있어. 그렇게라도 가자.”

한참을 걸어 나가도 차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나 걸었을까? 유조차 한 대가 기름을 싣고 있었다. 우리는 양해를 구하고 유조차에 올라탔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기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우리는 트럭 한구석에 일렬로 섰다. 바닥은 기름으로 흥건해서 앉을 수도 없었다. 잡을 곳도 여의치 않았지만, 각자 차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매달렸다. 기름통에서는 자꾸 기름이 새어 나왔다. 미끌미끌한 바닥에 몇 번이고 넘어질 뻔했고 그때마다 우리는 소리를 질러댔다. 물론 놀라서 내는 소리였지만 탕야르를 벗어났다는 자유의 함성이기도 했다.

우리는 내려서 버스를 타고 칼사르Khalsar(카르둥라를 넘으면 나오는 마을로, 이 마을 오른쪽으로 수무르, 파나믹, 왼쪽으로는 디스킷, 훈더르가 펼쳐진다)로 향했고 거기서도 지프를 잡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대부분 지프는 이미 사람들이 차 있어서 인내심을 갖고 빈 차를 기다려야 했다.

돌아가는 길에는 카르둥라를 넘었다. 험난한 사막 고원으로 둘러싸인 길을 긴 시간 지나야 했다. 사람도 차도 나무도 없이 그저 황무지에 가까운 그곳을 멍하니 지켜보고 있으려니 문득 무서워졌다. 아무런 문명의 혜택도 없이 자연 그 자체와 마주한다는 것은 등골이 서늘해지는 일이었다. 저 한가운데 내 몸 하나만 가지고 뚝 떨어진다면 대체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칠흑 같은 밤에 덮칠 추위는 어떻게 이기고, 잡아먹을 듯 불어 닥치는 모래바람은 어떻게 견디고, 아무하고도 말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은 어떻게 토닥일 수 있을까? 메마른 모래로 꾸역꾸역 배를 채우다 모래 속에 갇혀버리는 상상을 하니 몸이 근질근질 해졌다.

이내 레가 나타났다. 황토색밖에 보이지 않던 시야에 초록색이 빼곡하게 칠해지고 네모난 흰 건물이 드문드문 박혀 있었다. 시끄럽기만 하던 차도, 번화한 시내도 슈퍼도 와인 숍도 모두 반가웠다. 헤벌쭉 웃으며 레 시내를 걷는 나는 어쩔 수 없는 도시여자였다.

라다크가 오지라 해도 레만은 예외였다. 레에서는 원한다면 모든 것을 구할 수 있었다. 카페로 돌아와 진하게 뽑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우리는 문명에서 한 발자국만 밖으로 나가도 살 수 없는 인간으로 변이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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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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