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혹독한 라다크와 마주하기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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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zenzen25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티베트 라싸에 도착한 시간은 밤 열 시. 늦은 시간이지만 허기에 지쳐 허겁지겁 뚝바를 쑤셔 넣었다. 급하게 먹고 바로 잠자리에 든 탓인지 체기가 계속 올라오고 오한에 몸이 떨렸다. 자꾸만 누군가 폐를 쥐어짜는 느낌에 제대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숨을 마시고 뱉기 위해 온 힘을 다 해야 했다.

“후하, 후하, 후하."

여덟 개의 침대가 오밀조밀 모여 있는 작은 도미토리 안으로 가쁜 숨이 퍼져나갔다. 남녀가 함께 쓰는 방이라 자꾸 거친 숨소리가 야릇하게 들릴까 봐 이불을 얼굴 끝까지 끌어당겨도 봤지만 갑갑함에 이내 다시 걷었다.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먹은 것을 게워냈다. 타지의 차가운 타일 바닥에 앉아 변기를 부여잡고 앉아 있으려니 서러웠다. 집 떠나온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일어난 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밤새 줄기차게 한 복식호흡 때문에 온몸에 진이 빠졌다. 으슬으슬하고 피곤한 몸을 따뜻하게 녹일 샤워가 간절했다.

따뜻한 물을 틀자 하얀 수증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라 샤워실 안을 가득 메웠다. 순간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니, 몸에 닿는 물이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전에, 샤워실 바닥에 머리를 박고 쓰러졌다. ‘쾅’ 소리를 내며 딱딱한 타일 바닥에 머리가 닿을 때 문득 생각했다.

‘여기가 어디지?’

티베트를 떠나기 전까지 지긋지긋한 고산병을 달고 다녔다. 무기력한 몸을 이끌고 간 조캉 사원에서는 느끼하고 비릿한 버터 냄새에 속이 메슥거려 비틀거리다 카메라를 소매치기당하는 줄도 몰랐고, 맛있는 음식 앞에서 아무런 의욕 없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의 얼굴로 그저 배를 곯지 않기 위해 밥을 먹었다. 이것이 나의 최초이자 최악의 고산병이었다. 고산병은 고도가 높은 곳에서 기압이 낮아지면서 평지보다 산소의 농도가 떨어져 몸이 적응하지 못해 생기는 병이다. 티베트도 라다크도 해발 3500m를 넘는 고산 지역이기에 언제나 고산병의 위험이 있다. 하지만 한번 크게 앓고 나서 면역력이 생긴 건지(사실 면역력이 생길 리는 없다) 다행스럽게도 그 이후로 더는 고산병은 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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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사람들은 보통 사람의 두 배보다도 더 큰 폐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레 시내에 위치한 폴로그라운드에서 매년 여름 마을 대항 축구대회가 펼쳐지는데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은 걷기는커녕 서 있는 것만으로도 현기증이 나는 이곳에서 라다크 청년들이 공을 쫓아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서커스처럼 느껴졌다.

“우린 델리나 잠무에 가면 완전 날아다녀.”

저지대에 가면 오히려 역 고산 증세를 겪는다고 했다던 한 친구의 말은 좀 과장처럼 느껴졌지만 60분 동안 쉬지 않고 뛰는 모습을 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말은 아닌 것 같았다. 라다크 사람들이 고산지대에 잘 적응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에 따른 어려움도 있다. 지대가 높다 보니 기압이 낮아 피를 온몸으로 보내야 할 심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세계의 심장외과 전문의들도 라다크 지역에 관심을 두고 해결 방법을 논할 정도라고 하니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한국에서도 몇 년간 생활한 적 있는 쵸갤 스님은 심장병을 앓는 라다크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라다크 심장 재단을 세우기도 했다.

누브라를 여행할 때면 고산병의 위험을 더욱 실감하게 된다. 누브라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차로 지나갈 수 있는 가장 높은 도로인 카르둥라를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거듭하여 굽이치는 길을 따라 고개를 오르니 머리가 깨질 것 같은 통증이 몰려왔다. 몸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숨을 몰아쉬자 운전기사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괜찮아?”

“조금 힘들지만 괜찮아.”

“물을 많이 마셔둬.”

“알아. 이정도야 뭐, 가이드북에 보면 죽는 사람도 있다던데.”

“사실 너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근데 진짜 사람이 죽기도 해?”

“몇 년 전에 한 노부부를 태우고 누브라로 가는 길이었어. 할머니는 카르동라에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숨을 제대로 못 쉬더라고. 처음에는 으레 있는 고산병 증세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숨이 넘어갈 듯 헐떡거리는 할머니를 보고 있자니 무서워져서 빨리 저지대로 내려가려 병원에 가려고 했어. 근데 전날 내린 눈 때문에 길이 막혀서 옴짝달싹하지 못했지. 결국 할머니는 차 안에서 돌아가셨어.”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돌아가시는 걸 내내 지켜본 거야?”

"응. 그렇지.”

“아무런 손도 못 쓰고?”

“쓸 수가 없었지. 우리에겐 아무것도 없었는걸.”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말년에 아름다운 풍광을 나누려 라다크에 온 노부부는 그 숨 막힐 듯 아름다운 그림에 갇혀 슬픈 이별을 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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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두레에도 고산병과 사투하고 있는 손님들이 종종 찾아오곤 했다.

“여기, 헉헉, 정말, 찾기가... 헉헉, 힘드네요.”

“다들 그러시더라고요. 근데, 괜찮으세요?”

“땡볕에, 헉헉, 너무, 헤매서, 계단도...”

“숨 좀 고르세요.”

그는 두 손으로 머리를 에워싸더니 카운터 앞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들어가서 앉아 계세요. 따뜻한 물을 좀 드릴게요.”

“잠깐만... 이러고 있을게요.”

이럴 때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포트 안의 물이 빨리 끓기를 기다리는 것뿐이다. 따듯한 물을 한 모금 마신 손님은 그제야 기운을 조금 차리고 카페 안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좀 괜찮으세요?”

“네. 아까보단. 제가 폐가 좀 안 좋아서.”

“아깐 정말 놀랐어요. 구급차를 불러야 하나 싶더라고요.”

“라다크 오려고 담배도 끊고 운동도 했는데도 이러네요.”

“산소를 좀 마셔보시는 게 어때요? 창스파 가는 길에 산소 바가 하나 있어요.”

라다크에는 산소 바가 있다. 남아공 출신의 로리와 그 여자친구 루씨가 아이디어를 내고 KC 가든 사장 타시가 레스토랑의 한 모퉁이를 제공해 만든 공간이다. 아무것도 없던 땅 위에 뚝딱뚝딱 목재를 세워 만든 산소 바는 사실 조금 이상야릇했다. 산소의 청량함을 표현한 건지, 라다크를 무중력 우주에 비유한 건지, 3평 남짓의 공간은 온통 파란색 야광 빛으로 꾸며져 있었다. 바닷속 같기도 하고 우주 같기도 한 그 작은 방에는 커다란 산소통이 몇 개 있었고 10초에 10루피라는 적지 않은 돈을 줘야만 산소를 마실 수 있었다. 과연 장사가 될까 싶었는데, 산소 바는 호기심 많고 돈 많은 인도인과 고산병 증세를 덜려고 하는 여행객들 덕분에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리고 있다고 했다.

며칠 뒤 다시 온 손님은 산소 바에서 산소를 마셨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고 했다.

“저 비행기 표 샀어요.”

그는 라다크에 온 지 5일 만에 내려가겠다고 결정을 내렸다. 아무 데도 가지 못했지만 더 있어봤자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마날리에서 40시간에 걸쳐 힘들게 올라와서 고생만 하다 내려가려는 그가 안타까웠지만 차마 말릴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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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라다크 사이에는 악사이 친Aksai Chin(인도 서북국경지대인 라다크에 있지만 중국이 점령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지역이 있다. 1962년 누가 봐도 라다크에 속한 이 지역을 두고 분쟁이 있었다. 중공군에 대항할 상대는 용맹하기로 유명한 케랄라Kerala(인도 남서부에 위치한 해안) 해군이었다. 패기에 차서 라다크로 올라온 케랄라 해군은 전투고 뭐고 고산병만 끙끙 앓다가 악사이 친은 고스란히 중국령이 되었다는 웃지 못할 일화가 있다. 장정도 못 이기는 고산병인데 그 고통을 모르는 것도 아닌 내가 어떻게 조금만 더 있으면 괜찮아질 거라는 말로 그를 붙잡을 수 있을까?

고산병은 누군가에게는 짧게 스쳐 지나가는 순간이지만, 누구에게는 멈추지 않고 지속하는 고통의 시간이다. 혹여 제대로 된 여행을 즐기지 못할까 봐 사람들은 저마다의 고산병 퇴치 방법을 가지고 있다. 누구는 마날리행 버스에서 독한 냄새를 풍기며 생마늘을 우걱우걱 씹기도 하고, 누구는 비아그라를 먹기도 하고, 이뇨제를 먹기도 하고, 뜨거운 물만 마시는 이도 있다. 한국 음식으로 고통을 참아내는 사람도 있었다. 누구든 라다크를 완전히 즐기기 위해서는 고산병을 극복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라다크는 최악의 여행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라다크 생활에는 또 다른 관문이 있다. 라다크 사람들의 얼굴에는 도장으로 찍은 듯 깊고 두터운 물결무늬 주름이 새겨져 있다. 그렇기에 라다크 사람의 ‘내가 몇 살로 보여?’라는 질문에는 적어도 다섯 살은 빼고 대답해야 한다. 나도 처음에는 정직하게 대답했다가 속상하게 만든 게 한두 사람이 아니다. 그들의 주름을 만든 건 사막과도 같은 건조한 기후다. 건조함은 줄곧 여행자를 괴롭힌다. 아침에 일어나면 코가 꽉 막혀 숨쉬기 힘들고, ‘팽’하고 코를 풀면 앵두 빛 피가 묻어 나왔다. 발은 마른 논바닥처럼 쩍쩍 갈라지고, 각질은 반쯤 들려 달랑거렸고, 입술은 터 있는 게 당연했다. 가끔 태양 아래 서 있으면 온몸의 수분이 쪽 빠져 메마른 고목이 된 듯한 기분이었다. 몸은 간지럽다 못해 따끔따끔했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과 건조한 지역이라는 특성상 자주 씻지 않아도 된다는 점은 좋았다. 전기가 없는 오전 시간에 한두 명이 온수기 안에 덥혀진 물을 사용하면, 그 나머지 사람들은 냉수마찰을 해야만 했다. 언제나 이불에서 비비적비비적 늑장을 피우는 나는 온수가 없다는 핑계로 당당하게 샤워를 하지 않았다. 건조해서 잘 씻지 않아도 티가 안 났기에 더 당당했다. 땀이 거의 나지 않아 옷을 자주 빨지 않아도 괜찮았다. 라다크 친구들은 잘 씻지도 않으면서 멋을 부려 기름을 발라 머리카락이 언제나 물에 젖은 듯 축축해 보였다. 하루 이틀 머리를 안 감아도 라다크 친구들에 비하면 내 머리 상태는 굉장히 양호한 편이었다.

라다크에서는 자연의 혹독함을 온몸으로 받아들여야만 했다. 고산병이 오면 오는 대로, 건조하면 건조한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전기장판도 가습기도 없이 그 자체로 자연을 마주해야 한다. 사실 겨울의 삶은 여름보다 더 열악하고 혹독하다. 겨울에는 채소를 구할 수 없어 게스트 하우스 주인 양첸은 겨우내 먹을 채소들을 따가운 햇볕 아래 말려두곤 했다. 모진 겨울을 보낸 라다크 사람들은 초여름에는 부쩍 여위어 있었다. 8개월 정도 계속되는 라다크의 무자비한 겨울을 인내하는 것은 그들에게도 여전히 힘든 일이다. 할 일도 없고, 놀 것도 없고, 신선한 음식도 없는 그야말로 얼어붙은 8개월이다.

론리 플래닛에는 겨울에 라다크에 가는 건 미친 짓이라고 적혀 있다. 우린 겨울의 라다크에서 2주를 머문 적이 있으니 그 책에 따르면 미친 짓을 한 셈이다(하지만 여행객이 완전히 사라진 라다크는 차분하고 평온해 좋았다). 스타킹에 내복 바지, 패딩 점퍼까지 껴입고서도 이불 두 채를 덥고 따뜻한 물을 담은 병을 안은 채 잠이 들면서도 우리는 생각보다 춥지 않다고 얘기했다. 영하 40도까지 떨어진다는 혹독한 라다크의 추위에 잔뜩 겁을 먹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한 덕이기도 했고, 온난화의 영향인지 실제로 그 해는 포근한 편이라고 라다크 사람들도 말했었다.

사실 라다크의 혹독한 자연에 적응하는 일은 힘들고 벅차다. 하지만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끊임없이 라다크를 찾았다.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다른 사람들도 이곳을 그리워하다 이내 다시 찾아오곤 했다. 가혹한 자연조건에 발목을 잡혀 망설이기에 라다크는 엄청나게 매혹적인 곳이다. 아니 이런 관문들을 거쳐야만 진짜 라다크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오히려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어렵게 얻을수록 가치 있다고 느끼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니던가?

“뭐가 그렇게 매혹적이야?”라고 묻는다면 “비현실적인 풍광과 꿈결 같은 설산”이라는 흔해 빠진 답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가 본 사람들만이 알 것이다. 이유도 없이 자석에 이끌리듯 다시금 이 땅을 밟는 이 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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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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