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라다크에 오면 스피툭 곰파에서 열리는 가면 축제를 볼 수 있을 거야.”
“그게 뭔데?”
“곰파의 승려들이 가면을 쓰고 ‘참’이라고 하는 춤을 춰. 종교적인 의미의 춤이지.”
“스님들이 춤을 춘다고? 굉장하다!”
“네가 생각하는 그런 춤은 아니야. 완전히 종교적인 의식이야.”
“좋아. 참을 보러 이번 겨울에 꼭 다시 올게.”
처음 라다크를 찾았던 해에 떠날 날을 며칠 앞두고 스피툭 곰파의 친구들과 겨울에 다시 라다크에 오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그해 라다크의 겨울은 몹시 추웠다. 한겨울의 라다크를 찾은 우리들을 보고 친구들은 반가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런 우리의 대담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의 라다크는 라다크 사람들조차도 두려워할 정도로 지독하게 춥기 때문이다. 우리는 상카르에 위치한 한국 사찰인 대청보사에 머물렀다. 밤새 얼어붙은 몸을 겨우 움직여 고양이 세수를 하고 매일 같이 스피툭 곰파를 찾았다.
축제를 앞두고 친구들은 연습이 한창이었다. 한 노승이 20여 명의 승려에게 참을 가르치고 있었다. 얼굴에 가득한 주름으로 노승이 지내온 세월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와 상관없이 그의 몸놀림은 기민했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다른 승려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나이가 어린 승려들은 뭐가 그리 즐거운지 연습을 하면서도 저들끼리 떠들며 연신 깔깔거렸다. 겨울 라다크의 하늘은 여름보다 훨씬 더 푸르렀다. 승려들의 붉은 가사가 몸놀림에 따라 펄럭이며 파란 하늘에 가 닿는 모습을 넋을 놓고 바라보곤 했다.
축제 바로 전날, 스피툭 곰파의 승려들은 모두 모여 참에 필요한 가면과 의상들을 전부 꺼내어 손질했다. 어른 머리의 두 배 크기보다도 훨씬 커다란 가면은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우리도 곁에 앉아 그들을 도왔다. ‘카닥’이라는 명주 천으로 가면 위에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털어내고 윤이 나게 닦았다. 한 노승은 커다란 가면을 하나 집어 들더니 이제 갓 다섯 살이 된 동승의 머리 위에 얹었다. 가면의 무게를 지탱하지 못하고 휘청거리는 동승을 바라보며 모두 깔깔 웃었다.
축젯날 아침 일찍 대청보사를 지키는 라다크 승려와 함께 스피툭 곰파로 향했다.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곰파 안마당은 참을 보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이른 아침부터 곰파를 찾은 사람들은 손에 든 염주를 하나씩 굴리며 끊임없이 염불을 외고 있었다. 커다란 카메라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외국인들이 몇 명 보이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라다크 사람들이었다. 자리를 잡기 위해 서성이고 있는 나를 발견한 소남이 다가왔다.
“준비하는 거 보고 싶지?”
“응! 볼 수 있어?”
“따라와.”
소남은 우리를 마당 한편의 방으로 안내했다. 그 안에서 승려들이 참을 위한 의상으로 갈아입고 있었는데 몇 명의 승려들이 이를 돕고 있었다. 과연 의상은 혼자서는 절대로 입을 수 없을 정도로 크고 무거워 보였다. 대여섯 벌의 옷을 겹쳐 입고 나니 몸은 두 배는 더 커 보였다.
“이 옷만으로도 움직이기 어려울 정도로 충분히 무거운데 가면까지 써야 해. 동작 하나하나가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없지.”
다소 긴장되어 보이는 친구들을 격려하고는 밖으로 나와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앉았다. 날씨는 몹시 추웠지만, 다닥다닥 붙어 앉은 사람들과 체온을 나누니 따뜻하게 느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편에 자리 잡은 승려들이 연주를 시작했다. 북과 징, 나팔 소리가 느린 박자로 울려 퍼졌다.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일제히 불당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형형색색의 의상을 걸쳐 입고, 커다란 가면을 쓴 승려들이 연주에 맞추어 몸을 움직이며 앞마당으로 내려왔고, 곧 마당 중앙의 기둥을 중심으로 커다랗게 원을 그리며 천천히 돌기 시작했다. 승려들이 몸을 움직일 때마다 넓은 소맷자락이 공중에 너울거렸다. 옷이 너무 커서 동작 하나하나를 살피기는 어려웠지만, 승려들은 일제히 같은 동작을 하고 있었다. 커다란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모습이 우리나라의 탈춤과도 비슷하게 보였다.
옆에 앉은 라다크 할아버지와 손자가 겨울에 라다크를 찾은 외국인이 신기한지 우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나는 “줄레” 하고 인사를 건넸다.
“줄레 장(줄레 해봐).”
할아버지는 우리의 인사에 대답하라고 손자를 채근했다. 소년은 부끄러운지 몸을 베베 꼬며 할아버지 품으로 파고들었다. 할아버지는 이후로도 우리에게 라다크 말로 뭐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었다. 그저 하염없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미소를 주고받았다. 그사이 한 차례의 참이 끝나고 승려들은 다시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무슨 생각해?”
어느새 소남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아무것도 아냐.”
소남은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승려들이 추는 참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있어?”
“글쎄. 승려들이 추는 춤이니까 부처님하고 관련 있는 건가?”
“그것보다도 훨씬 깊은 뜻이 있어. 참을 통해 우리가 죽은 후에 보게 되는 것들, 그 무서운 형상들을 미리 보여주는 거야. 죽은 후에 걷게 되는 길 위에서 헤매지 않도록.”
“죽음을 연습한다고?”
“말하자면 그런 거지. 사람은 죽은 후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깨닫게 되거든. 지금부터 머릿속에 넣어두면 죽은 뒤에 모든 기억이 되살아나게 되는 거야. 이전에 몇 번 보았던 것들이라면 아무리 무서운 모습이라도 두렵지 않을 것 아니야? 익숙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들까지 데려와서 참을 보여주는 거지. 지금은 아무것도 모르지만 죽고 난 이후에는 자신이 생전에 보았던 모습들을 기억해낼 수 있거든.”
“그럼 참도 여러 번 보면 그만큼 더 연습이 되는 거야?”
“물론이지.”
“하지만 죽음을 연습하는 자리에 ‘축제festival’라는 말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
“축제는 외국인들이 갖다 붙인 말이야. 원래 참은 하나의 의식이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축제이기도 해.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어 먹잖아.”
문득 두꺼운 전통 의상을 겹겹이 껴입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승려들의 움직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에게도 죽음이란 두려운 것일까? 죽음 이후의 세계가 어떻게 익숙해질 수 있는 것일까? 참은 그 모양도, 의미도 내게 너무나도 생경하기만 했다. 어떤 난해한 행위예술도 이보다 낯설 수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가면을 쓴 승려들의 춤을 바라보고, 차를 마시고, 가족과 이웃과 이야기를 나누며 죽음을 연습한다. 이들에게 죽음이란 삶 바로 가까이에 있는 것이다.
다시 연주가 시작되고 다른 의상과 가면을 쓴 한 무리의 승려들이 내려왔다. 승려들의 춤은 계속되었다. 그때 제법 굵은 눈발이 공중에 흩날렸다. 겨울 라다크에 눈이 내리는 것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지만, 눈 내리는 날의 참은 특별한 것이라고 소남은 말했다. 이런 광경을 보게 된 것을 행운이라고 여기며 좋아할 겨를도 없이 눈발을 품은 공기는 너무 차가웠다. 숨을 쉴 때마다 입에서 하얀 입김이 구름처럼 뿜어져 나왔다.
참을 끝낸 승려들이 불당 안으로 들어가고 전통 의상을 차려입은 마을 주민들이 곳곳에서 차와 음식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스피툭 마을 공동체에서 자발적으로 음식을 준비하여 스피툭 곰파를 찾은 사람들에게 대접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쪽에서는 전통 의상을 입은 라다크 청년들이 앉아서 북을 연주했다. 북소리가 곰파 앞마당에 쩌렁쩌렁 울렸다. 사람들은 차와 음식을 서로 나누어 먹으며 쉴새 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차와 음식은 우리에게도 돌아왔다. 라다크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컵을 건네주고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우리도 컵을 받아 들며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컵 한가득 뜨거운 밀크티를 따라 주었다. 밥은 쌀과 견과류를 함께 찐 것인데 단맛이 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무리의 라다크 사람들이 큰 원을 그리고 서서 북 장단에 맞추어 서서히 돌기 시작했다. 춤이라고 하기엔 너무 느렸지만 같은 박자로 발을 움직이고 있었다. 땅에 달라붙은 발바닥을 천천히 떼어내는 듯한 느린 춤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아마 세계에서 가장 느린 춤일 것이었다. 마당에 가득 찬 사람들의 입가에서 나온 하얀 김이 눈 내리는 공기 중에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축제였다. 죽음을 연습하는 축제.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 다음 이야기 - 날이 맑을수록 판공초는 더 아름답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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