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프롤로그 – 5월에 만난 첫 번째 라다크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written by @roundyround


벼르고 벼르다 떠난 여행이었다. 나는 힘겹게 마지막 학기를 마무리하고, 재은이는 한 학기를 남겨두고 휴학을 했다. 우리는 ‘떠나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라는 의견에 동의하고 지도를 펼쳤다. 여느 대학생들처럼 배낭여행을 결정한 우리에게 인도 여행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중국을 거쳐 티베트, 네팔을 통해 인도로 들어가는 루트를 정하고, 중국의 천진항으로 들어가는 배를 예약하고, 인도비자를 발급받았다. 돌아오는 비행기표는 예약하지 않았다. 돌아올 날을 계획하기에는 우리의 마음이 너무 뜨거웠다.

낯선 길을 걷다 보면 늘 그렇듯 온갖 우연들이 인연이 되며 하나의 여행을 완성했다. 일정도, 루트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러다 죽겠구나’ 싶은 순간들도 여러 번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신나고 즐거웠다. 티베트에서의 혹독했던 시간을 거쳐 네팔에 도착한 우리는 보상이라도 받듯 제법 호화로운 생활을 했다. 그래 봤자 삼시 세끼를 여행자 식당에서 그럴싸하게 먹는 정도였지만. 여행에 정해진 메뉴얼이 있을 리 없지만 신기하게도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의 경험과 감상은 대체로 비슷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인도의 오르차Orcha(인도 중부의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한국인 여행자의 꼬임(?)에 넘어가 파키스탄으로 흘러 들어갔고, 4월을 훈자Hunza(파키스탄의 훈자 계곡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 보내며 인생에 다시없을 신선놀음을 했다. 계속 그곳에 머무르고 싶었지만 5월에 인도로 오기로 한 친구를 만나기 위해 다시 인도로 돌아가야 했다. 힘겹게 와가Waga(인도와 파키스탄의 국경) 국경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5월의 어느 날, 여행은 4개월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살구꽃 피는 훈자에서 보낸 시간들은 라호르Lahore(파키스탄 북동부 펀자브 주의 주도)의 불볕더위 덕에 오래전 일들처럼 기억에서 멀어졌다. 익숙한 라호르의 거리 풍경이 창 밖으로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동안, 매일 믿지도 않는 신을 찾으며 내가 맞이한 순간순간에 대해 감사해 하던 시간들을 떠올렸다. 천국이 있다면 살구꽃 핀 훈자 마을같을 것이라는 확신도 여전히 유효했다. 어느덧 버스는 목적지에 도착했다. 두서없이 흩어진 기억을 주워 담을 시간도 주지 않은 채 버스는 우리를 국경에 떨궈놓고 떠나버렸다. 국경을 통과하기 직전, 파키스탄 땅을 뒤로하고 마지막 사진을 한 장 남겼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DS

“한국 분이세요?”

이제 막 국경을 넘어 파키스탄 땅을 밟은 한국인 여행자였다. 우리는 그 자리에 서서 한참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에게 40일 동안 경험한 파키스탄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해주었다. 나름 최신 정보라고 생각했지만, 비슷비슷한 루트로 움직이는 배낭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정보의 유효기간이 짧았다. 한국인 여행자는 수첩을 꺼내 한참을 끄적거리다가 말했다.

“참! 레Leh로 들어가는 육로가 열렸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라다크도 가시나요?”

라다크! 한국에서 여행을 준비할 때, 가이드북과 인터넷을 통해서 접했던 곳이었다. 여행을 준비하던 때만 해도 우리는 가고자 하는 여행지들과 관련된 온갖 ‘나쁜 이야기들’ 때문에 악몽을 꿀 정도로 굉장한 겁쟁이들이었다. 라다크도 그중 하나로 아름다운 이미지가 눈을 사로잡았지만 동시에 벼랑 끝으로 굴러떨어진 버스의 사진은 끔찍한 공포였다. 육로를 통해 레로 들어가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게 레는 루트 위에 완전히 오르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머릿속에서 사라지지도 않은 채로 있었다.

우리는 그 자리에서 레로 향하기로 결심했다. 육로가 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애초부터 그곳이 우리의 목적지였던 것인지 스스로도 헷갈릴 정도로 일말의 고민도 없이 내린 결정이었다.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그 곳에 대해 아는 것이라고는 ‘무시무시한 길을 통과해야 한다’는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그 길로 다람살라Dharamsala(인도 북서부의 도시, 티베트 망명 정부가 들어서 있다)를 거쳐 스리나가르Srinagar(인도 북서부 잠무 카슈미르 주의 주도)로 향했다. 그리고 스리나가르에 도착하자마자 여행사를 통해 레로 들어가는 지프를 대절했다.

출발하는 날 새벽 다섯 시, 자그마한 체구에 우리보다도 어려보이는 라다크 청년을 만났다. 지프를 운전해줄 압둘이었다.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서둘러 차에 탔지만 잠에서 덜 깬 채로 한동안 멍하니 창밖만 보았다. 새벽은 아직 어둠을 몰아내지 못하고 땅 바닥 근처를 서성이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차 안의 공기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자 언제나처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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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다크 말로 ‘안녕하세요’는 뭐야?”

“줄레. 줄레는 ‘안녕하세요’도 되고, ‘안녕히 가세요’도 돼. ‘어서 오세요’, ‘반갑습니다’, ‘감사합니다’도 줄레야.”

압둘이 오른쪽 손을 모아 이마에 갖다 대고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이렇게 하면 더욱 공손한 표현이 된다고 했다. ‘스리나가르–레’ 혹은 ‘마날리–레’ 구간을 오가는 지프 운전자들이 수면 부족과 만성 피로에 시달려 자주 사고가 일어난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운전하는 압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었다. 압둘도 싫지 않은 지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는 이야깃거리가 떨어지면 노래를 했다. 압둘은 그렇게 노래를 하다간 고산병 때문에 머리가 아파질 거라고 걱정했지만 우리는 정말이지 신기할 정도로 멀쩡했다. 결국 단 1분도 잠들지 않은 채 19시간 동안 웃고 떠든 끝에 레에 입성했다.

“자, 여기가 레야.”

압둘은 고맙게도 한밤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숙소까지 잡아주었다. 압둘에게 오래도록 작별 인사를 했다.

레에 도착한 이후로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압둘에게 배운 대로 “줄레” 하고 인사를 건넸다. 라다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마다 압둘이 떠올라 마음이 즐거웠다. 다행히도 고산병의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다들 레에 오면 고산병으로 지독한 고생을 한다던데 고산병은커녕 불볕더위와 싸우다 온 우리에겐 추위마저 반가웠다. 숙소 주인아주머니는 도착하자마자 시내 곳곳을 쏘다니는 우리를 신기하게 여겼다. 레 시내는 시즌마다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드는 관광지다웠다. 여행자가 몰려드는 거리에는 숙소와 식당, 그리고 갖가지 기념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했다.

대체로 비슷한 방법으로 하루를 보냈다. 느지막하게 일어나 근처 식당에 가서 느릿느릿 아침식사를 하고, 뒤통수가 뜨거워질 때까지 일광욕을 했다. 길에서든, 레스토랑에서든, 누군가와 대화가 시작되면 목이 쉴 때까지 수다를 떨었다. 여행자들과 나누는 여행에 대한 이야기들이 지겨워지면 동네 곳곳을 어슬렁거렸다. 별다른 일정 없이 다른 여행지에서 보냈던 날들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나날들이었다. 그러는 사이 지쳐 있던 몸과 마음은 서서히 활기를 되찾고 있었다.

라다크가 좋았다. 얼마만큼 좋았냐고 묻는다면 ‘좋았던 다른 여행지들’만큼 좋았다고 대답했을 것이다. 왜 좋았냐고 묻는다면 풍경이 아름답고, 날씨가 좋고, 음식이 맛있고, 사람들이 친절하기 때문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좋았던 여행지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지만, 그곳에서 지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라다크는 우리에게 특별하게 다가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함은 순식간에 쌓였지만, 낯선 것들에 익숙해질 때쯤 곳곳에서 발견되는 의외의 모습들은 라다크를 떠나려는 우리의 발목을 붙잡았다. 그렇게 그 해 5월 따뜻한 봄을 보내고 뜨거운 여름을 맞이하기 전까지 40여일의 시간 동안 라다크에 살았다. 그 시간을 잊지 못해 매번 다시 라다크를 찾으면서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삶의 이야기는 그곳에서도 고집스럽게 이어지고, 다채롭게 덧붙여졌다.

우리는 그곳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는 양첸네 식구들을 만났다. 여행의 공간과 생활의 공간은 양첸네 식구들과 함께 둘러앉은 식탁 위에서 속수무책으로 뒤섞였다. 그리고 양첸의 집은 언제고 다시 찾을 고향집과 같은 곳이 되었다. 어느날 우연히 찾아가 친구가 된 스피툭 곰파의 승려인 소남과 스텐진은 돈을 주고도 보고 들을 수 없는 소중한 경험을 선물해주었다. 이야기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들이 들려준 이야기들은 조금씩 내 생각을 바꾸었다. 또래 친구들인 초모, 싱게, 델렉과 함께 기울인 술잔들 속에서 우리가 가진 꿈의 모양이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만들어왔던 이상의 ‘우정’을 나누게 되었다. 그들을 통해 우리의 여행은 완성되었다. 라다크는 우리에게 그런 곳이다. 또 다른 삶터이자 언제고 돌아갈 고향이다. 그리고 라다크를 찾게 될 그 누군가에게도 익숙함과 낯설음이 뒤섞이는 매력적인 곳, 라다크는 적어도 한 달 살아볼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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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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