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다크에 온 첫해 여름, 우리는 한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지냈다. 할 일이 없었다기보다는 그것이 가장 즐거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지루해질 때 즈음, 마침내 가이드북을 뒤적거렸다. 가까운 곳부터 어디라도 가보자는 결정을 내리고 공항 근처 스피툭 곰파에 가보기로 했다. 미니버스를 타고 십오 분이면 갈 수 있었다. 일주일 만에 레를 처음 벗어난 우리는 일주일 전 한밤에 지나온 그 길의 모습을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차장은 우리에게 눈짓을 보내며 버스가 스피툭 곰파에 다다랐음을 일러주었다. 버스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니 하늘을 제외하고는 사방이 흙색이었다. 세상이 정확히 하늘 반, 땅 반인 것처럼 느껴졌다. 언덕 꼭대기에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은 스피툭 곰파가 보였다. 완만한 경사의 비탈길을 타고 올라야 했는데, 우리는 그제야 고산병을 핑계 삼으며 목마른 개처럼 헉헉거렸다. 왼편으로는 레 공항의 활주로가 한눈에 들어왔다. 곰파 입구에서 조금은 경건해진 마음으로 기도 바퀴를 세 차례 돌렸다. 종교를 갖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종교적인 행위는 몸과 마음에 긴장을 주었다.
관광객은 눈에 띄지 않았다. 오래간만에 관광을 나선 우리는 이곳저곳의 풍경들을 사진 속에 담아대느라 분주했다. 스피툭 마을의 전경이 내려다보였다. 모든 것이 작게만 보여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사방이 지나치게 조용하고, 보이는 모든 것이 선명했다. 라다크의 모든 색은 채도가 높았다. 하늘은 내가 알던 파란색보다 훨씬 진한 파란색이었고, 나무들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불당 안에서 나온 승려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에게 다가가 “줄레” 하고 인사를 건넸다. 웃으며 인사를 받고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외국인들의 방문이 낯설지 않은 듯했다. 우리는 함께 사진을 찍고 서로의 이름을 물었다. 우리 또래로 보이는 한 승려는 소남이라고 했다. 그는 곧 들어가봐야 한다며 바쁘지 않으면 같이 들어가자고 손짓했다.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그를 따라 불당 안으로 들어갔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발바닥이 닿는 순간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향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시계 방향으로 돌면 돼.”
그 자리에 가만 멈추어 서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소남이 말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는 그가 말한 방향으로 불당 안을 한 바퀴 돌았다. 한편에서는 열댓 명의 승려들이 옹기종기 모여 머리를 맞대고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까치발을 하고 조심스레 그들에게 다가갔다. 널빤지에 미리 그려놓은 밑그림 위에 형형색색의 모래를 뿌려 색을 채워 넣고 있었다. 모래로 그렸다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한 그림이었다. 말하기는커녕 숨을 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보였다.
“이건 부처님의 나라를 표현한 그림이야. 만달라라고 부르지. 만달라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만달라는 칼라차크라 만달라야. 일주일 동안 그리는데 오늘이 4일째야.”
소남은 만달라를 만드는 과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가 명상을 수행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색을 채워 넣는 과정은 굉장히 놀라웠다. 뿔 형태의 기다란 관이 이 신기한 그림을 완성시키는 도구였다. 관 안에 색을 입힌 모래를 채워 넣고 관의 윗부분을 겨드랑이 사이에 고정하고는 남은 손에 쥔 칼자루로 관의 표면에 패인 홈을 살살 긁어서 안에 담긴 모래가 관 끝의 구멍으로 조금씩 새어 나오게 하고 있었다. 관 끝에 뚫린 구멍의 크기가 매우 작아서 마치 커다란 펜으로 색칠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더욱 놀라운 것은 색 모래조차도 돌을 곱게 갈고 색을 입혀서 직접 만든다는 점이었다.
“이거 정말 굉장하다.”
“작은 그림 하나하나에 다 의미가 있어. 무엇 하나 괜히 그리는 것은 없어. 색과 치수까지 전부 책에 적혀 있지. 그리고 우리는 정해진 대로 그려야 해. 색과 치수에도 모두 의미가 있거든. 만달라는 그 자체로 완전한 것이야.”
만달라를 그리는 과정 자체도 경이로웠지만, 불당의 분위기는 확실히 나를 압도했다.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생각조차 할 수가 없었다. 칼자루가 관 표면을 긁으며 내는 소리가 불당 안에 울려 퍼졌다. 만달라 주변으로는 다른 공기가 흐르고 있는 듯했다.
그 후로 매일같이 스피툭 곰파를 찾았다. 내부에 퍼진 향내와 어둑한 조명, 약간은 차가운 공기, 붉은 가사를 걸친 스님들, 불경 외는 소리, 빛나는 황금색 불상과 같은 것들이 좋았다. 가장 좋은 것은 친구가 된 스님들에게서 듣는 이야기였다. 유난히 개구쟁이 같던 자그마한 체구의 스탠진은 한국말을 따라 하며 장난을 치곤 했다. 우리를 만나기 전부터 한국에 관심이 많았는지 한국의 영화나 연예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곧잘 했다. 그런 스탠진도 만달라를 만드는 동안에는 무슨 질문을 하든 늘 작업에만 열심이었다. 잘은 몰라도 손재주가 워낙 뛰어나서 이미 스피툭 곰파의 승려들 사이에서는 명성이 자자한 듯했다. 스탠진이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난 후 휴식 시간에 우리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했다. 곰파에서 생활하는 승려들의 삶이 궁금했던 터라 당장 그를 따라나섰다. ‘방’이라기에 서울의 고시원 쪽방 같은 모습을 상상했는데 잠을 자는 방, 불상이 모셔져 있는 방, 화장실, 부엌까지 갖추고 있는 데다가 텔레비전은 물론 DVD플레이어까지 있었다. 스탠진은 차와 비스킷을 내왔다. 그는 앨범을 구경하며 한참을 깔깔거리며 떠들어 대던 우리를 말없이 지켜보다가 사뭇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입을 열었다.
“너희들은 종교를 갖고 있어?”
“아니.”
“그럼 환생도 믿지 않겠네?”
“글쎄, 불교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시 태어나는 것을 믿긴 해.”
스탠진은 서랍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나에게 건넸다. 편지봉투였다. 외국에서 보내온 듯했다.
“이게 뭐야?”
“네덜란드의 친구가 보내온 편지야. 읽어봐.”
편지를 쓴 사람은 몇 년 전 라다크를 여행했던 네덜란드 여자였는데, 예불이 진행되고 있을 때 스피툭 곰파를 찾았다가 우연히 스탠진을 만났다고 했다. 승려들이 예불을 드리는 모습을 지켜보던 도중 갑자기 까닭을 알 수 없는 슬픔이 밀려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그날 스피툭 곰파의 노승과 나누었던 대화에서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고. 오래전에 돌아가신 그녀의 아버지와 승려 스탠진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그녀의 아버지는 트럭운전수였는데 30여 년 전 네덜란드에 물난리가 났을 때 사람들을 구하다 돌아가셨고, 라다크에서 환생하여 스피툭 곰파에서 승려의 삶을 살고 있다고. 그녀는 스탠진을 자신의 아버지처럼 여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하지만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스탠진의 삶에 갑자기 끼어들 생각은 없다고, 그가 살고있는 승려로서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축복한다며 편지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이후로 그녀는 매년 스탠진을 보기 위해 라다크를 찾는다고 했다. 편지를 다 읽고 한동안 어안이 벙벙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어때? 거짓말 같지?”
“응. 그러니까 네가 전생에 네덜란드 사람이었다는 거야?”
“그래. 부모님께서 그러셨는데 내가 어렸을 때부터 내 고향은 저 멀리에 있다는 말을 자주 했대. 물에 들어가는 것은 죽도록 싫어했고. 장난감 자동차를 엄청나게 아껴서 몸에서 떼어놓지를 않았다더군.”
“너도 그녀를 보면 특별한 느낌이 들어?”
“응, 난 느낄 수 있어. 진짜야. 모든 것이.”
스탠진의 눈동자가 반짝이고 있었다. 이들에게는 삶도, 죽음도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었다. 아직도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스탠진이 말했다.
“전생에 좋은 카르마(업보)를 쌓았기 때문에 내가 지금 라다크에서 승려 생활을 하는 것인지도 몰라.”
만달라가 완성된 다음 날부터는 새로운 작업이 시작되었다. 예불이 시작되면 사용될 ‘촛빠’라는 공양물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촛빠는 버터와 짬빠를 섞은 반죽으로 만든 뿔 모형이었는데, 그 삼각뿔의 한 면에 버터로 만든 꽃을 붙여 장식하고 있었다. 손톱만 한 크기로 만든 버터 조각에 색색의 물감을 입히고, 그것을 조각조각 겹쳐 붙여 꽃을 만드는데 정교한 모양은 물론이고, 그 색감까지도 진짜 꽃 못지않게 아름다워 그 자체로 예술품 같았다. 라다크의 승려들은 예술적 감각까지 타고난 것인지 하나같이 손재주가 좋았다. 만달라를 완성했다는 생각에 마음에 여유가 생긴 듯 분위기는 한결 느슨했다.
완성된 만달라는 유리관 안에 보호된 채로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리고 사흘에 걸친 예불이 시작되었다. 불당 곳곳에 아름다운 촛빠가 세워졌다. 예불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진행되었고, 그동안 많은 사람이 만달라를 보기 위해 스피툭 곰파를 찾았다. 라다크 불교 신자들은 완성된 만달라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기도를 드렸다.
커다란 불을 피워놓고 그 속에 공양물을 던지는 의식을 마지막으로 만달라는 부수어졌다. 일주일 동안 공들여 만든 만달라가 스님 손바닥 밑에서 단숨에 슥슥 지워져 버리는 모습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내 입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방금 전만해도 경이로운 예술작품이었던 만달라는 순식간에 모래더미가 되었다. 지켜보고 있던 나의 표정만 일그러질 뿐, 스님들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고, 움직임에도 망설임이 없었다. 라다크 사람들은 줄을 서서 만달라 모래를 받아 갔다. 우리도 한 줌의 모래를 받아서 종이에 곱게 싸두었다. 소남은 이 모래를 몸에 지니고 있으면 좋을 거라고 했다. 나는 모래를 싼 종이를 손에 쥐고 스탠진이 이전에 이야기했던 좋은 카르마가 나의 삶에도 하나둘 쌓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의식이 끝난 뒤, 남은 모래를 주워 담은 소남은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눈짓을 보냈다. 예불에 참여한 승려들이 모두 줄을 지어 스피툭 마을 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행렬을 따라 밭을 가로질러 하염없이 걷다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궁금해진 나는 소남에게 살며시 다가가 물었다.
“지금 어디 가는 거야?”
“스피툭 마을의 물줄기가 출발하는 곳으로 가는 거야.”
“거긴 왜?”
“그곳에 만달라 모래를 뿌리면 모든 것이 끝나.”
도착한 곳에는 작은 오두막이 한 채 있었다. 소남이 말한 스피툭 마을의 물줄기가 출발하는 지점이었다. 허리를 숙여 안을 들여다보니 과연 그 안에 있는 물웅덩이로부터 개울물이 시작되고 있었다. 승려들은 곧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불경을 읊기 시작했다. 삼십 분 가량의 예불이 끝나고, 만달라 만들기에 참여했던 한 스님이 별안간 승복을 훌렁 걷더니 오두막 안으로 들어가 남은 만달라 모래를 전부 부어버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나서 재빠르게 눈물을 훔쳤다. 스님은 모래를 담았던 용기를 한참 물속에 헹구더니 그 안에 물을 한가득 담아 나와서 바깥에 휙 하고 뿌렸다. 입구에 바싹 붙어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우리는 덕분에 온몸이 홀딱 젖고 말았다. 우리도 웃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웃고, 스피툭 스님들도 웃었다.
그 후로 스피툭 곰파에서 만달라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곳을 찾았다. 사람들은 더 볼 것이 뭐가 있다고 매번 보러 오느냐고 했지만, 내게 만달라는 인연의 끈 같은 것이다. 아마도 나는 만달라를 통해 그 인연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예정된 인연 따위가 정말 있다면 말이다.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 다음 이야기 - 죽음을 연습하는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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