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쯤 라다크] 비가 와도 괜찮아, 초모리리


음악을 들으면서 읽어보세요. 라다크가 더 가까워질거예요.



초모리리_5.JPG


written by @roundyround

친구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벽면에는 초모리리Tsomoriri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울 만큼 커다란 사진이었지만 호수의 전체 모습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호수의 표면은 하늘빛을 고스란히 머금어 애초에 하늘과 호수가 하나였던 것 같았고, 호수를 둘러싼 설산은 유유히 하늘과 호수를 가르고 있었다. 사진을 바라보며 막연히 ‘아름답다’라고 생각했다. 보석같이 반짝이는 사진 속 초모리리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같은 생각을 떠올렸을 것이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는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는 날 것의 자연을 보면 여러 미사여구가 불필요하게 느껴지니 말이다. 멍하니 서 있다가 다만 눈앞에 호수를 마주하기 전까지는 가늠할 수조차 없는 호수의 넓이를 어렴풋이 짐작해볼 뿐이었다. 그 사진을 보고 반드시 초모리리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파키스탄을 여행할 때였다. 우연히 흔한 관광 엽서들 속에 담긴 사진을 보게 되었는데, 그 속엔 분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핀 사막의 모습이 담겨 있었고, 사진 아래엔 ‘SKARDU’라고 적혀 있었다. 사진 한 장에 매료되어 무작정 그곳을 찾아갔지만, 엽서 속 사진에 담긴 모습은 스카르두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외국인은커녕 현지인 여자들조차 한 명도 보이지 않고 길거리에는 온통 남자들뿐이었다. 그곳의 분위기에 좀처럼 적응할 수가 없었다. 숙소와 음식들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관광 엽서 한 장에 낚여서 이 고생을 하는구나’ 하고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마음을 비우는 만큼 채워질 수 있다고 여행할 때마다 되새기지만 마음속이 여행지에 대한 온갖 기대와 환상으로 가득 차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초모리리에 가겠다는 다짐과 동시에 사진 속의 초모리리에 나의 모습을 겹쳐 보며 다시 한번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초모리리는 레에서 220km쯤 떨어져 있어, 여행자들이 방문하기에는 다소 먼 편이다. 친구들이 특별한 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상 레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여행을 떠날 엄두도 내지 못하던 나는 매번 다음을 기약하며 초모리리를 미지의 공간으로 남겨뒀었다. 초모리리를 경험한 사람들은 보통 판공초보다 초모리리가 더 아름다웠다고, 더 감동적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물리적으로 더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몰라도 이미 조금은 사람 손을 탄 판공초보다 더 매력적이라고들 했다. 나는 바로 초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초모는 델리에서 공부를 하다 휴학하고 고향에 올라와 지내고 있는 친구였다.

“초모! 초모리리에 가본 적 있어?”

“아니, 나도 아직 못 가봤어.”

“좋아. 그럼 우리 함께 초모리리에 가자. 나 정말 가보고 싶어.”

“하지만 초모리리는 꽤 멀어. 너희들 카페는 어떻게 하고?”

“이틀 문 닫고 가지 뭐. 어때?”

“좋아. 오빠한테 같이 가자고 해볼게.”

그렇게 해서 초모의 오빠인 싱게의 차를 타고 초모리리로 떠나기로 했다. 떠나는 날 아침,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이른 아침부터 출발하느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우리들은 마헤 검문소Mahe Check Point(초모리리로 향하는 길의 첫 번째 검문소로 초모리리 지역 여행 허가증과 여권을 검사한다)에 딸린 식당에 들러 간단한 식사를 했다. 가게 주인은 주문한 메기 라면을 내어주며 초모리리 가는 길의 날씨가 궂을 것이라고 했다. 창밖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다. 초모리리까지는 네 시간 정도 더 가야 했기에 길을 서둘렀다. 마헤 검문소를 떠나 얼마나 지났을까. 과연 하늘은 특유의 푸르름을 서서히 감춰가고 있었다. 벌판 한가운데로 난 길을 달리며 차는 위아래로 흔들렸다. 정말로 얼마 전에 비가 왔던 것인지 진흙탕이 된 길 위에 바퀴는 종종 헛돌았다. 초조해진 우리들은 연신 창밖으로 하늘을 확인했다. 한참을 요동치는 차 속에 있으니 끝없이 이어지는 벌판과 설산도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저기 초모리리다!”

운전하던 싱게가 소리쳤다. 벌판 저 너머에 호수의 일부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미 푸르름을 잃은 하늘을 담은 호수는 내가 상상한 모습이 아니었다.

“이게 초모리리라고? 너무 작은데?”

“아니야. 초모리리는 더 가야 할 거야.”

“그럼 이건 뭐야?”

“초모리리가 아니니까 싱게리리지.”

싱게리리_2.JPG

초모리리라고 착각했던 작은 호수에 ‘싱게리리’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두 시간쯤 더 달리고 난 후에야 진짜 초모리리의 모습이 나타났다. 땅이 물을 담은 것인지, 물이 땅을 품은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넓은 호수는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초모리리 호수 위의 하늘에는 옅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었다. 짙은 구름 아래를 지날 때는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졌다. 나는 사진 속에서 보았던 초모리리를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들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땅의 색을 더 진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검문소에서 여행 허가증과 여권을 확인받고 코르족 마을Korzok(초모리리 호수를 끼고 있는 마을로 대부분의 여행자가 이곳에서 머물며, 마을의 중앙에는 코르족 곰파가 있다)로 향했다. 왼편으로는 호수와 설산이 정지된 영상처럼 끊임없이 펼쳐졌다. 우중충한 하늘을 바라보며 우리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코르족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해가 구름 뒤편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함께 간 싱게와 초모 조차도 초모리리가 처음이었기 때문에 우리 중 누구 하나 마을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었다. 당장 비를 피해 짐을 풀 곳을 찾아야만 했다. 대충 둘러보아도 마을에는 여행객들을 위한 숙소가 그리 많지 않았다. 홈스테이를 하기로 하고 마을을 돌아다닌 끝에 제법 싼 값에 하룻밤을 머물 곳을 찾을 수 있었다.

주인이 보여준 방은 오랫동안 사람이 머물지 않은 듯, 생활의 냄새라고는 조금도 나지 않았다. 그는 담요 몇 채를 가져다주었는데, 삐걱거리는 침대 위에 담요를 펼쳐놓으니 노란 백열등 불빛과 함께 그제야 방 안에 온기가 도는 듯했다. 배가 고파진 우리는 짐을 풀어놓고 근처의 천막 식당을 찾아갔다. 두 모녀가 운영하는 천막 식당 안은 현지인과 여행객들로 붐볐다. 비 때문에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간단한 요깃거리부터 음료, 생필품, 맥주까지 거의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천막 위로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는 메기 라면과 밀크티를 주문했다. 쏟아질 듯 밤하늘을 가득 메운 별을 기대하고 이곳을 찾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아쉬운 표정이 역력했지만, 모두 둘러앉아 차를 홀짝이는 사이 천막 안에는 어느덧 낭만적인 분위기가 감돌았다. 날씨 덕분에 때아닌 대목을 맞은 모녀는 바삐 움직이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나는 대충 쭈그리고 앉아 라면을 먹으며 맞은편에 앉은 여행객들과 눈웃음을 나누었다. 나를 포함한 천막 안의 사람들은 일상보다 한참이나 부족한 이 상황 속에서 무언가를 즐기고 있는 듯했다. 적어도 라다크에서는 누구나 기꺼이 고생을 사서 했다.

초모리리 천막식당_2.JPG

허기를 채운 뒤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골아 떨어져 버렸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방안에서 나는 소리에 놀라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이불은 온통 물에 젖어 있었고, 심지어 이불 위로 물이 고여 웅덩이가 만들어져 있었다. 천장에서 샌 빗물로 방바닥은 이미 물바다였다.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얘들아. 일어나! 천장에서 비가 새고 있어!”

“으악, 차가워! 이게 뭐야!”

피곤함에 온몸이 빗물에 젖어가는 줄도 모르고 자고 있던 우리들은 일제히 일어나 소리를 질렀다. 밖으로 나가보니 비는 그쳐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은 지붕에 고인 빗물이 떨어지는 것이었다. 이곳까지 와서 비가 새는 방에서 잠을 자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지만 너무 이른 새벽이었기에 다른 숙소를 찾을 수도 없었다. 빗물은 여전히 방안을 적시고 있었다.

“최대한 물이 떨어지지 않는 쪽으로 붙어서 자자.”

“말도 안 돼. 밖에는 비가 오지도 않는데 방 안에서 비를 맞으며 자자고?”

“그럼 어떻게 해. 차에서 잘 수도 없고.”

“왜 안 돼? 난 여기서 못 자. 나가자.”

좁아터진 차 안에 앉아서 자는 것이 비를 맞으며 두 발 뻗고 자는 것보다는 나은 선택이라는 것에 모두 동의했다. 그러고는 숙박비를 지불하지 않은 채 그 집에서 도망쳐 나왔다. 죄책감이 들긴 했지만, 비가 새는 방에 숙박비를 내는 것은 정말이지 억울했다. 우리는 좁아터진 차 안에 꾸역꾸역 들어가 앉아 잠을 청했다. 차창 밖으로 아주 희미하게 밝아오는 하늘이 보였다.

젖은 몸으로 벌벌 떨며 차 안에서 험난한 밤을 보내고 난 뒤, 우리는 완전히 지쳐 있었다. 엉망이 되어버린 서로의 얼굴을 보며 한바탕 웃고는 차에서 기어 나와 초모리리를 바라봤다. 야속하게도 하늘은 여전히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다. 구름의 농도는 더욱 짙어져 조금의 틈도 없이 빽빽하게 하늘을 메웠다.

도시로부터 식료품들을 가득 실어온 트럭들이 마을로 들어오고 있었다. 트럭에서 짐을 내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날씨와 상관없이 밝아 보였다. 간밤에 있었던 일이며, 예상치 못했던 날씨며, 온통 우울한 일들뿐이었지만 이 또한 우리를 위해 마련된 특별한 상황이라고 생각하며 아침을 맞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니 제법 신나는 기분이 되었다.

우리는 근처의 유목민 마을에 가보기로 했다. 차를 타고 십 분 정도 들어가면 천막을 치고 염소를 키우며 모여 사는 유목민들의 마을이 나온다. 사람들은 그곳을 ‘노마드 빌리지’라고 불렀다.

“유목민들은 철 따라 돌아다니면서 살잖아. 그런데 어떻게 ‘마을’을 만들 수 있어?”

“그러게. 잘은 몰라도 그곳도 그냥 유목민들이 거쳐 가는 수많은 곳 중 하나겠지. 그러다 우연히 흘러든 여행자들에 의해 발견된 걸 테고.”

‘마을’이라고 불리는 곳에는 허허벌판 가운데 대여섯 채의 커다란 천막이 드문드문 쳐져 있었다. 태양열 발전을 위한 전지판이 설치된 천막도 있었는데, 전기로 무엇을 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우리 외에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도 몇몇 눈에 띄었다. 고어텍스 점퍼에 모자를 뒤집어쓴 채 우산까지 쓰고 있는 여행자들은 박물관을 찾은 사람들처럼 이것저것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었다. 언제 빨았는지 모를 꼬질꼬질한 옷을 꿰입은 유목민 소년들은 벌판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다. 그들의 손에는 새총이 들려있었다.

“이까 용(이리 와봐).”

나는 최대한 상냥한 말투로 유목민 소년들에게 말을 건넸지만, 그들은 그 자리에 멈춰선 채로 가만히 나를 바라볼 뿐이었다. 소년들의 손에 들려있던 새총을 가까이 보고 싶은 마음에 재차 말을 걸어보았지만 소용 없었다. 함께 있던 라다크 친구들도 그들의 모습이 신기한지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유목민들의 삶이 낯설게 느껴지는 것은 레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서 공부한 라다크 친구들에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유목민 젖짜기_5.JPG

한편에서는 유목민 할머니가 염소를 죽 세워놓고 머리를 줄로 묶어 고정한 뒤, 젖을 짜고 있었다. 염소들은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입을 오물거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껌을 씹고 있는 것 같아서 한참을 웃었다. 마을을 찾은 여행객들은 그 장면으로부터 몇 발자국 떨어진 채, 셔터를 눌러댔다. 나는 가까이 다가가 할머니에게 속삭이듯 인사를 건네고, 손가락으로 사진기를 가리켰다. 할머니는 이런 일에는 이력이 난 듯, 손사래를 치며 나를 쫓아냈다. 그러고는 고개 한번 들지 않고, 말없이 젖을 짰다. 그 모습을 사진 속에 담고 싶었던 나는 어쩔 수 없이 여행객들 무리 속에 섞여 셔터를 눌렀다. 그들은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가 살아왔던 대로 염소를 키우며, 젖을 짜고, 때가 되면 이동을 하며 살고 있을 뿐인데, 어느덧 이들의 삶은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되어 있다. 마치 유리관 속에 보존된 움직이는 유물을 보듯 관광객들은 한 발짝 떨어져 그들의 삶을 관람한다. 나는 문득 젖을 짜는 할머니와 새총을 들고 뛰어다니는 소년들을 살아 있는 박제로 만들어버린 것 같아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일상이 누군가에게 신기하고 특별한 구경거리가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빗방울은 더욱 거세졌다. 초록 풀들은 빗방울을 머금고 더욱 진한 초록의 기운을 내뿜었다. 차를 세워둔 곳으로 돌아와 잠시 비를 피했다. 새총을 들고 한참을 놀고 있던 마을 소년들이 우르르 우리를 쫓아왔다. 소년들은 완전히 우리 곁으로 다가오지도, 그렇다고 저 멀리 달아나지도 않은 채 그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었다. 친구들이 라다크 말로 이리 와보라고 몇 번을 이야기해도 같이 선 친구들과 눈빛을 교환하느라 바쁠 뿐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그들에게 도시에서 온 라다크 사람이나 외국인이나 낯설고 어색한 것은 매한가지인 듯했다. 친구는 카스테레오의 볼륨을 잔뜩 높여 비틀즈의 음악을 틀었다. 우리는 풀밭 위에서 폴짝거리다가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기 시작했다. 비에 젖은 땅이 흔들렸다. 흙탕물에 바지는 온통 엉망진창이 되었다. 여벌의 옷은 전혀 챙겨오지 않았지만 이미 비에 젖은 옷이니 더러워져도 상관없었다. 비가 오는 날 이곳을 찾게 된 것은 제법 행운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우스꽝스러운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목민 소년들은 저들끼리 한참을 깔깔거리더니 주춤주춤 다가왔다. 그리고는 또 한참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계속 춤을 추었다. 한 소년이 조심스럽게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소년은 함께 춤을 추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있던 친구에게로 다가가 라다크 말로 무엇인가 물었다. 그제야 다른 소년들도 우르르 다가와 철컥철컥 소리를 내며 눈앞의 풍경을 찍어내는 시커먼 기계를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우리는 마침내 용기를 내어 다가온 한 소년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칙 니 숨(하나 둘 셋)!”

사진 속에서 우리는 소년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신나는 표정을 하며 웃고 있는데, 소년은 다소 경직된 표정으로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소년에게 보여주었다. 소년들은 까르르 웃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소년의 모습을 간직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하니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나와 다르게 이 소년들은 괴상한 춤을 추고 있던 우리들의 모습을 사진보다 더 생생하게 간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나의 기억력은 사진기 덕분에 점점 퇴화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곳의 유목민들은 이제는 완전한 유목민이 아니라고 했다. 옛날에는 그야말로 풀이 나는 곳을 따라 동물들과 함께 이동하는 생활을 했지만, 이제는 코르족 마을에 집을 갖고 정착한 상태이고 가축들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서만 걸어서 한 시간 반 거리의 벌판으로 나와 천막을 치고 당분간만 생활하는 것이라고. 유목과 정착의 삶을 반반씩 사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전해준 라다크 친구는 그들을 ‘세미 노마드’라고 불렀다.

우리는 마을을 빠져나와 다시 초모리리 호숫가로 왔다. 구름은 호수 가까이로 내려앉았고, 설산은 구름 뒤에 가려 보이지 않았다. 구름 덕에 하늘과 호수는 하나가 되어 분간이 되지 않았다. 젖은 몸은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래의 라다크 햇볕 아래에 있다면 이십 분이면 바짝 마르고도 남았겠지만, 초모리리를 둘러싼 공기는 축축하기만 했다. 호숫가엔 언제 죽었는지 모를 동물의 뼈가 나뒹굴고 있었다. 스산한 분위기에 온몸이 부르르 떨려왔다. 뼈의 크기로 보아서는 야크나 소 같은 커다란 동물의 뼈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죽은 동물의 뼈는 호수의 물에 모든 찌꺼기가 씻겨져 나가 온전히 하얀 뼈만 남아 오히려 깨끗하고 성스러운 무엇처럼 보였다. 죽은 생물이 남긴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초모는 동물의 머리뼈를 들어 올리더니 제 머리에 얹고는 포즈를 지어 보였다.

“초모! 뭐 하는 거야. 징그러워. 내려놔!”

“뭐가 징그러워. 그 무엇보다도 깨끗한 거야.”

나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사진을 찍어주었다. 동물의 뼈를 머리에 얹은 초모의 모습은 구름 낀 하늘과 회색 호수와 꽤나 잘 어울렸다. 빗방울은 여전히 호수 표면을 두드리며 크고 작은 원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나의 초모리리는 그렇게, 비와 구름, 젖은 옷과 비가 새는 방, 유목민 소년의 희미한 미소, 죽은 동물의 머리뼈와 비명으로 기억되었다. 사진 속에서 보았던 초모리리와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초모리리_9.JPG



스팀문학전집 첫번째 작품 - 「한 달쯤 라다크」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Join the conversation 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