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강아지를 위한 부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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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강아지 짱돌이가 죽었다. 2015년 겨울이었다. 강아지로 태어나 살 만큼 살았고, 몸이 심하게 안좋았으므로 짱돌이의 죽음은 어느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그 당시 가족이 각자의 사정으로 흩어져 있어서 집에는 짱돌이와 나, 단 둘만 있는 시간이 많았다. 외출하여 집에 돌아올 때면 아파트 입구에서부터 내 발걸음은 점점 빨라졌다. 혹시라도 홀로 죽어있을지 모를 짱돌이의 죽음에 대한 대비와 상상을 매일 해야했다.

급하게 현관문을 열어 짱돌이가 살아있음을 발견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장면은 결국 오래가지 않았다. 상상속에서 매일 연습했던 짱돌이의 죽음이었지만 막상 가족같은 동생을 보내고 나니 슬픔보다는 세상이 멈춘 듯 정신나간 사람처럼 한동안 멍 하니 앉아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더 이상 움직이지 않는 짱돌이를 쇼핑백에 넣어 미리 봐두었던 뒷산으로 삽을 들고 올라가 나무 밑에 고이 묻어주었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껌껌한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윽고 울음은 터졌다. 눈물은 삼주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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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마를 무렵, 이미 죽은 짱돌이었지만 난 무엇이든 해주고 싶었다. 그를 위한 부적을 디자인했다. 부적에는 짱돌이가 평소에 쓰던 밥그릇 모양, 뼈다귀 장난감, 무덤의 형상, 영혼을 달래주는 세 명의 정령들, 봄에 자연으로 다시 환생할 새싹 등을 형상화하여 그려넣었다. 그리고 짱돌이가 묻힌 땅 바로 앞에 있는 나무기둥에다가 부적을 먹으로 새겨주었다.

나는 불교신자는 아니었지만 부적을 그려주면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으며 짱돌이의 환생을 강력히 믿었다. 그리고 매일 무덤으로 찾아가 인사를 나눴다. 계절은 바뀌어, 봄이 되었다. 짱돌이가 묻힌 나무는 목련나무였다. 나는 목련꽃으로 활짝 핀 짱돌이의 모습을 기대하면서 따뜻한 어느 봄날, 무덤을 다시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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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즈음에 바쁜일이 있어 일주일동안 무덤을 못갔었는데 그 사이에 목련꽃은 이미 다 바람에 날리고 떨어져버렸다. 실망을 감추지 못하며 무덤 주위를 배회했다. 그런데! 무덤과 가까운 나무기둥 아래쪽에 딱 한 송이의 목련꽃이 아직 지지않고 날 기다리며 기적적으로 피어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짱돌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사람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언제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현실 속에 자신을 몸 담을 필요는 없다. 이성의 역할이라는 것이 어떤 때에는, 인생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가령 내가 짱돌이의 부적을 그리는 행위도, 목련꽃을 보며 기뻐한 나의 행위도 합리적이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과학적 세계의 입장에서 보면 아주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그 한 송이 목련 꽃은 짱돌이가 죽기 한참 이전부터 그 곳에 항상 피어왔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그런 쓰잘데기 없는 진실 따위는 믿고 싶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다. 꽃피는 4월이 되면 나는 다시 짱돌이를 만나러 갈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세상의 모든 종교는 짱돌이의 목련 꽃처럼 탄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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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설엔 짱돌이 부적을 차례상 한 켠에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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짱돌이를 생각하며 쓴 시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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