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에도 많이 패러디되는 이집트 벽화 그림을 볼 때면 항상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아니 왜 얼굴이랑 발은 측면으로 그렸는데 나머지 팔, 몸통, 다리는 다 정면으로 그렸지? 역시 원근법을 몰랐던 시대라 입체에 대한 감각이 부족했나? 라는 물음과, 내가 저 시대로 돌아간다면 한 수 알려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라며 오만방자한 생각까지 하게 되는 것이다.
불변의 삶을 꿈꾸다
모든 문화는 그 사회적인 맥락 안에서 보아야 한다. 이집트 예술가들은 저렇게 그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해마다 범람하는 나일강은 모든 것들의 경계를 지워버렸다. 그러다 또 다시 비옥해진 땅에서 수많은 생명들의 창조를 목격했던 이집트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삶과 죽음, 죽음과 삶. 생명의 반복되는 부활 속에서 어떤 '영원함'을 느꼈을 것이다. 때문에 그들은 사후의 세계를 믿었으며 영원한 삶처럼이나 불변적이고 변하지않는 것들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았을까?
오천년을 버텨온 피라미드나, 머리카락까지 보존되어 발견되는 미이라를 보면 말이다. 하지만 육체의 보존만으로는 부족해서 그들의 형상을 그림이나 조각으로도 역시 표현했다.
영원한 인간
일단 이집트스타일의 이 조각을 보자. 면회 온 여친과 한 컷일까. 군 훈련소에서 볼 법한 이등병의 각잡힌 차렷 자세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너무나 생생한 그리스의 조각들과 비교해보면 포즈가 너무 정적이다. 그리고 마치 레이져빔이 나갈것 같은 저 눈도 엄청 경직되어있다. 이집트 왕들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아님 얼음땡 놀이라도 했단 말인가.
이 조각은 사실 모델로서의 '한 인간'을 만든게 아니다. 그들이 만든건 인간이라는 '개념'이다. 개념은 영원하다. 가령 우리집 개 짱돌이는 언젠간 죽지만 개라는 '개념'자체가 죽을 수 없는것과 마찬가지다. 그들은 현실에 살아있는 특정 인간을 모사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예술로 박제했다.
왕과 사제의 권력이 막강했던 이 시대에는 조각이나 회화로써 자신과 권력의 영원함을 나타냈다. 예술가들은 조각과 회화로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불어넣어줄수가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이집트말로 조각가라는 뜻이 '계속 살아있도록 하는자'(He-Who-Keeps-Alive)란다. 이 조각이 부자연스러운 이유는 만든 목적 자체가 미적인 감상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계속 살아있도록 하기 위한 것, 즉 불멸을 염원하는 이집트인들의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정면성의 원리
위 그림은 마치 아이들의 그림같다. 일곱살에게 수족관을 그리라 하면 꼭 이런 그림 비슷하게 그릴 것 같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은 대대로 내려져 오는 그들만의 단단한 철학을 가지고 작업을 했다. 어떤 사물을 그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는 시점으로 그리는 이런 방식. 바로 '정면성의 원리'라 한다.
수족관은 위에서 보았을때, 물고기는 옆에서 보았을때, 나무는 똑바로 보았을때 그 사물의 시각적인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 사람을 그린 그림을 보자. 이 또한 마찬가지. 얼굴은 측면으로, 눈은 정면으로, 다시 몸은 정면을 향하다가 다시 다리와 발은 측면이다. 원근법이나 단축법따위는 무시하고 사물의 본질적인 특성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의 시점으로 나타내었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어서도 영혼(Ka)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영혼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보존된 육체가 뒤따라야만 했다. 만약 인물을 옆 모습에서 그려 한쪽 팔이나 한쪽 다리가 없는 포즈를 그대로 그린다면 어떻게 영혼이 팔다리없는 인체로부터 깃들수 있을 것인가?
능력이 아닌 의지
이집트는 이렇게 영원함을 소망하고자 엄격하고 규격화된 양식(style)을 요구했다. 예술가들은 양식화된 '기준'만을 습득하면 끝이였다. 가령 남자의 피부는 여자보다 검게, 좌상을 조각할 시에는 양손을 무릎위에 포개야하는 등의 기준. 누구도 그들에게 독창적인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모든 것들은 변하지 않는 규격에 의해 철저하게 지켜졌다.
때문에 이집트인은 사물의 우연적인 동작이나 개별적인 특성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로지 불변을 추구했다.하지만 왕 같은 존재가 아닌 중요하지 않는 인물을 묘사할때는 때론 과감히 정면성의 원리를 파괴한 작품들도 발견할 수가 있다. 그들이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지 않았던 것은 능력이 아니라 의지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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