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은 붓질이 끝났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생각하는 그림의 '완성'이란 이렇다.
- 그림은 무슨 내용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뿐 아니라
- 어디에서 작업하고 어디에서 전시하는가
- 누구에게 보여줄 것이며 누구와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가
- 만약 수익이 났을 경우 누구에게 판매했으며 수익금은 어디에 썼는가
까지 모두 '동등한 비율'로 미술을 구성하는 요소인 것 같다. 보기에 클리셰로 가득한 시시콜콜한 작품이라 할지라도 2 처럼 그 작품이 작업되고 전시되어지는 장소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를, 예컨대 그냥 꽃 그림도 장소의 맥락에 따라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의미를 충분히 획득할 수 있다.
3 처럼 보이지 않는 행위들도 한 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다. '이야기' , '대화'란 결코 작품으로부터 파생된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라 작품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 중에 하나다. 누군가와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작품도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또 작품으로 인해 '미술가'라는 어느 정도 대중적인 지위를 얻어냈다면, 그 후에 공적으로 내뱉는 발언과 행동 하나하나까지도 작품의 일부로 작용할 수 있다. 내가 만약 '숲' 그림으로 대중적으로 유명해져서 내 발언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나는 그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겉보기에는 숲 그림과 아무 상관없는 발언일지라도 이것 역시 내 작품의 일부로 여길 것이다.
4 역시 간과할 수 없다. 판매와 관련해서도 주로 어떤 계급이 내 작품을 소유하고 소비하는가, 작품의 수익금 전체를 무슨 항목으로 나누어 얼마나 쓸 것인가의 문제까지도 하나의 작품을 이루는 요소다.
우리는 너무 1 위주로, 그러니까 미술 작품이라는 것을 물질적인 시선으로만 바라봤던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은 미술이 꽤 오랜기간 모더니즘 미학과 그것을 작동케하는 화이트큐브 갤러리라는 제도 안에서 무비판적으로 지내왔던 탓은 아닐까.
이제 그림을 그리는 것 행위부터 시작해서 판매 수익금을 쓰는 행위까지 역시 나에겐 내 작품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로 만들 것이다. 그런데 이게 참 어렵다. 대부분 작가의 작품 판매 수익금은 본인의 생계를 겨우 유지하는데에 쓰이기도 힘들기 때문이다. 물론 작가의 생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장르 자체의 공공성을 떠올려봤을때, 수익금의 아주 작은 일부라도 작가 본인이 지향하는 사회적 의미를 획득하는데 쓰여야 하지 않을까. 그게 작품의 진정한 완성이라면.
P.S : 스팀잇 안에서의 얻는 부를 생각해봤다. 현재는 0.01도 올릴 수 없는 미약한 스팀파워이지만, 만약 내게 어마어마한 스팀파워가 있다면 내 보팅의 80%는 무조건 예술 창작인에게 돌아갈 것이다. 주변의 동료 미술 작가들, 동료 영화 감독들도 모두 스팀잇으로 불러와 성장시키고 싶다. 나중에 꼭 그렇게 할 것이다.
@thelum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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