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3. 메신저 by 로이스 로리 - 세상 어디에나 있는 그 마을

158.jpg


이 책은 <기억 전달자> 4부작 중 3편이다. 이 책만 따로 읽어도 되지만, 그 시대 배경이나 등장인물에 대한 이해를 높이려면 앞선 1, 2편을 먼저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1, 2편에 대한 독후감이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 글을 읽어보시기 바란다.

21. 기억 전달자 by 로이스 로리 -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두려움

22. 파랑 채집가 by 로이스 로리 -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아니, 우리가 바꿀 수 있어


1, 2편을 안 보신 분들을 위해 이 시리즈의 시대적 배경을 먼저 설명하는 게 좋겠다. 전쟁으로 모든 게 폐허가 된 후 다시 재건된 미래 사회. 살아남은 사람들은 각각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자신들만의 사회를 만들고 발전시켜 나간다. 각 사회들은 생활수준, 법, 과학기술, 의술 등 많은 분야에 있어서 큰 격차를 보이고 있는데, 이들 간에 교류는 거의 없는 편이다.


출처: 교보문고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이상향


이 책에는 과거 1, 2편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이 겹쳐서 나오는데, 2편으로부터 대략 10년 정도의 세월이 흐른 후의 이야기이다. 십 대가 된 소년 매티(2편에서의 맷)는 큰 걱정거리 없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자신이 나고 자랐던 고향과는 달리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은 평화롭고 화목하며, 서로가 서로를 돕고 사는 이상향이었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다른 사회들은 좀 더 엄격하고, 과격한 곳들도 많았다. 법을 어겼다는 이유로 신체를 훼손하는 벌을 내리는 곳도 있었고, 매티의 고향처럼 장애가 있는 사람은 야수가 사는 마을 밖으로 쫒아버리는 곳도 있었다.

지리적, 사회적, 법적인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에 각 사회들 간에 소통은 거의 없는 편이지만, 그래도 흘러 흘러 풍문은 떠도는 법. 매티가 현재 살고 있는 마을에서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외지인도 다 반겨주고 잘 살 수 있게 도와준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이 마을을 찾아온다. 이렇다 할 교통수단이 없기 때문에 대부분 몇 달씩 걸어야 하고, 중간에 강도를 만나기 일쑤인 데다, 이 마을로 오려는 사람들의 특성이 그러하듯 장애인도 많아서 미처 마을에 도착하지도 못하고 죽는 사람들도 부지기수다. 그래도 그렇게 힘들게 도착한 이들은 마을 사람들의 따뜻한 환대 속에서 이 마을에 정착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매티도, 매티를 돌봐주며 함께 사는 아저씨도, 심지어는 이 마을의 지도자조차도 모두 그렇게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서서히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다


자꾸만 외지인이 많이 들어오자 마을 사람들은 그들을 돌봐주기가 힘에 부쳤다. 머물 곳도 마련해줘야 하고, 먹을 것도 나눠줘야 하고. 그들이 자립할 때까지 신경 써야 할 일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리가 먹고살기도 빠듯한데 언제까지 외지인을 받아들여야 할까?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들’은 ‘우리’가 아니라며 선을 긋기 시작한다. 외지인을 그만 받아들이자는 의견이 그동안 여러 번 나왔지만 번번이 마을 회의에서 소수의견으로 묻혀버렸었는데, 이번에는 기어코 그 제안이 의결을 통과해버렸다. 이제는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마을 입구에 문을 만들고 봉쇄하기로 결정을 내린 것이다.


언제까지 그들을 도울 것인가? 이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


변화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이 점점 이기적으로 바뀌어 가는 동안 마을을 둘러싼 숲은 사악하게 변해갔다. 이 마을 사람들이 나가지도 못하게, 다른 마을 사람들이 들어오지도 못하게, 점점 더 울창해지고, 거칠어지고, 독을 내뿜게 됐다. 숲에 잘못 들어갔다가 죽는 사람도 생겼다. 매티에게도 신기한 변화가 생긴다. 자신도 모르던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매티는 자신의 변화, 마을 사람들의 변화, 숲의 변화가 모두 낯설기만 하다.

날쌘 몸으로 마을 곳곳을, 때로는 다른 마을까지 다니면서 편지를 전해주는 ‘메신저(messenger)’ 역할을 해왔던 매티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이제 곧 마을 입구를 봉쇄하고 문을 닫을 거라는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리고, 그들이 헛걸음 하지 않도록 마을 입구 훨씬 밖에도 안내문을 붙여야 했다. 게다가 같이 사는 아저씨는 그에게 마을 문이 봉쇄되기 전에 이웃 마을에서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와 달라고 부탁한다. 매티는 과연 이 일들을 잘 끝마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새로이 생긴 신비한 능력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미처 파악하지도 못했는데, 숲은 점점 더 사악해져서 목숨을 위협하는데, 이 모든 임무를 마치고 아저씨의 소중한 사람을 데리고 마을 입구가 봉쇄되기 전까지 무사히 돌아올 수 있을까.


매티가 사는 마을은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책을 읽을수록 매티가 사는 이 마을이 미국을 형상화하고 있다는 (물론 미국이 이 책에 나오는 마을처럼 완벽한 이상향은 아니지만)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들이 힘을 합해 세운 나라, 이민자들의 천국. 어떻게 해서든 미국에서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불법 체류도 마다하지 않고, 배 밑에 숨어서, 트럭 짐칸에 갇혀서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 사람들. 하지만 이제는 그들을 더 이상 반기지 않는 미국인들. 멕시코 국경에 벽을 세우겠다고 공약을 내건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현재의 미국에서 이민자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 이 책의 내용은 더욱 깊게 다가왔다.

하지만 이 책은 미국에 대한 이야기만은 아니다. 나만 혹은, 우리 가족만 잘 살면 된다는 지역 이기주의, 소중한 가치를 점점 잃어버리고 헛된 것에 집착하고 있는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세태도 꼬집고 있다. 1, 2편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3편도 권해주고 싶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Where Matty had come from, flaws like that were not allowed. People were put to death for less.
But here in Village, marks and failings were not considered flaws at all. They were valued.

매티가 살았던 곳에서는 장애가 용인되지 않았다. 아주 작은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죽음을 면치 못했으니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반점이나 약점 같은 것이 전혀 장애로 인식되지 않았다. 오히려 인정해주고 있었다.

2.
학교 선생님이기도 한 자신의 아빠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 딸 진(Jean). 아빠는 항상 시, 언어, 문학을 소중히 여기셨었다.

It was so important to him and he made it important to me: poetry, and language, and how we use it to remind ourselves of how our lives should be lived…

그건 아빠한테 굉장히 중요한 거였어. 아빠 덕분에 그것들은 나한테도 중요하게 됐고. 시나 언어 같은 것들 말이야. 그런 것들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알려준다고 하셨어.

3.
태어나면서부터 다리가 불구인 키라. 그녀를 돕고 싶었던 매티는 키라의 다리를 고쳐주려 한다. 다리를 고친 후에는 온전한 두 다리로 걸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는데, 키라는 매티의 호의를 거절한다. 자기는 지금도 온전하기 때문에.

“You can use that time to become accustomed to being whole…”
“I am whole,” she said defiantly.

...

A lifetime of walking in that way had made it, as she had pointed out, part of her. It was who she was. To become a fast-striding Kira with two straight legs would have been to become a different person.

“그 시간을 이용해서 온전한 몸상태에 익숙해지면 돼요…”
“내 몸상태는 지금도 온전해.” 그녀가 반항적으로 대꾸했다.

...

그녀 자신도 말했지만, 평생을 그런 식으로 걸어왔던 게 이제는 그녀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 모습이 바로 그녀 자신이었던 것이다. ‘곧은 두 다리로 빠르게 걷는 키라’가 되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한국어판 제목: 메신저
원서 제목: Messenger
저자: Lois Lowry (로이스 로리)
특이사항: '기억 전달자(The Giver)'의 후속작. 총 4부작 중 3편.


Disclaimer) 본문에 실린 인용은 제가 직접 번역한 것으로, 한국에 출간된 번역본과는 다를 수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저는 책을 영어 원서로 읽고 있기 때문에 한국 출간본에서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책을 소개하기 위해 전반부의 줄거리만 일부 제공될 뿐 본 독후감에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독후감] 지난 독후감들 최근 5개 링크입니다.
@bree1042를 팔로우하시면 더 많은 독후감들을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

18. 모모 by 미하엘 엔데 - 느긋하게, 숨 한번 내쉬고
19. 이름 뒤에 숨은 사랑 by 줌파 라히리 - 이름을 바꾸면 행복해질까?
20. 잃어버린 세계 by 마이클 크라이튼 -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21. 기억 전달자 by 로이스 로리 - 내 인생의 주인이 된다는 두려움
22. 파랑 채집가 by 로이스 로리 - 사는 게 다 그런 거라고? 아니, 우리가 바꿀 수 있어


follow_bree1042.gif


[Ourselves 캠페인]
셀프보팅을 하지 않고 글을 올리시고
ourselves 태그를 달아 주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긴 젓가락으로 서로 먹여주는 천국이 이뤄지지 않을까요?

<= 함께 하실 분은 위 문장을 글 하단에 꼭 넣어주세요~

H2
H3
H4
3 columns
2 columns
1 column
3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