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25.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by 노희경 - 독서가 끝나고 독후감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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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도빠가 된 사연


십 년도 더 된 일이다. 토요일에 엄마 집에 놀러 갔는데 마침 <무한도전>을 보고 계셨다. 뭐 이런 유치한 걸 보고 그래요? 나는 리모컨을 잡았다. 하지만 다른 채널에서 하는 것도 별로 재미있진 않았다. 어차피 그게 그거니까, 엄마라도 좋아하는 거 보시라고 다시 <무한도전>을 틀었다.

역시나 유치했다. 조롱박으로 머리를 때려 깨뜨리며 몸개그를 했고, 수능 시험을 본다며 책상 앞에 앉아 백치미를 뽐냈다. 그들의 저급함에 혀를 차며 고개를 내두르던 나는 곧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웃느라 숨이 가빴기 때문이다. 너무 웃겨서 손뼉을 치며, 말 그대로 박장대소했다. 분명 유치한데, 머리가 뭐라고 핀잔을 날리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며 낄낄거렸다. 그날 이후 난 무도빠가 됐다.


그래서 이상하다


최근에도 내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경험을 했다. 바로 노희경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을 읽었을 때다. 난 신파를 싫어한다. 눈물을 쏙 빼려고 작정한 감성팔이도 혐오한다. 아무리 좋은 메시지를 담고 있어도 글이 감성적으로 흐른다 싶으면 덮어버린다. 처음부터 그런 낌새가 있으면 아예 읽을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상하다. 내가 왜 이 책을 골랐는지. 왜 이 책을 읽었는지.

친절하신 @chocolate1st 님께서 내게 책 선물을 해주겠다고 하셨다. 이런 거 받아도 되나 싶긴 했지만, 감사한 마음에 넙죽 고맙다고 쐐기를 박아버렸다. 원하는 책을 고르면 선물로 주겠다고 하셨는데, 내가 이 책을 골랐다. 이 책이 읽고 싶었다고. 이미 20여 년 전에 드라마로 방영됐던 책, 최근에 또다시 드라마화되며 화제가 됐던 책, 그 내용이 슬플 거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아는 책.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쪽대본만 읽고도 눈물을 줄줄 흘렸던 내가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출처: 교보문고


이 책에는 한 평화로운 가정의 '엄마'가 나온다. 자신이 시어머니가 될 나이이건만 치매에 걸린 당신 시어머니를 지극정성 보살피고, 무뚝뚝한 남편 뒷바라지하고, 자기 삶을 헤쳐나가느라 엄마는 보이지도 않는 딸내미와 아직 사춘기 끝을 잡고 있는 삼수생 아들까지 신경 써야 하는 엄마. 여기에 여차하면 터져버릴 시한폭탄 같은 난봉꾼 남동생까지. 엄마의 삶에 그녀 자신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드디어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 죽겠다고 신호를 보내니까, 괜찮을 거라고 무시하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니까, 그제야 마지못해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랐다


난 이 책이 싫었다.

미련하게 참으면서 혼자만 당하고 사는 엄마도 싫고, 늘 그러려니 살아와서 이젠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하는지도 잊어버린 아빠도 싫고, 슬픈 제 사랑에 갇혀서 사리분별 못하는 헛똑똑이 딸도 싫었다. 평생 누나와 마누라 등 처먹고 살았으면서 막판에 누나 덕에 사람이 된 척하는 못난 남동생도 싫고, 뭐 볼게 있다고 그런 놈이랑 이혼도 안 하고 살고 있는 올케도 싫었다. 온통 싫은 사람 투성이었다.

그래서, 더 이상하다는 거다. 이렇게 슬픈 내용이라는 걸 다 알면서 난 왜 이 책이 읽고 싶었을까? 등장인물 중 누구 하나 마음 줄 사람이 없다는 걸 잘 알면서 왜 끝까지 다 읽었을까?

속으로 욕을 욕을 하며 읽었건만, 끝내는 왈칵 눈물을 쏟아버리고 말았다. 이건 무슨 눈물일까? 가여워서? 슬퍼서? 안타까워서?

책을 읽는 내내 엄마, 아빠가 떠올랐다. 돌아가신 것도 아니고, 책 속 주인공들과 닮은 구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계속 떠오른 것일까?


독서가 끝나고 독후감이 시작됐다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독서체험이었다. 보통 머리가 거부를 하면 책을 아예 안 읽거나, 읽다가도 덮어버리는데 이 책은 끝까지 읽어버렸다. 그것도 엉엉 울면서. 머리를 이겨버린 그것, 내 마음이 반응한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답은 알아내지 못한 채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올랐다.

책을 읽고(讀) 난 후(後)에 느낀 감정이나 감상(感)을 글로 적는 것이 독후감이라면 나는 아직 독후감을 쓸 수 없다. 이 책에 대한 내 '감상'을 - 아니, 머리와 몸이 따로 노는 나 스스로를 -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 나는 앞으로도 계속 질문을 해나갈 것이다.

독서는 끝났는데, 독/讀/후/後/감/感/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를 깨우는 책 속 몇 마디

1.
저자의 머리말 중에서

참 묘하다. 살아서는 어머니가 그냥 어머니 더니, 그 이상은 아니더니, 돌아가시고 나니 그녀가 내 인생의 전부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녀 없이 세상이 살아지니 참 묘하다.

2.

연수는 발악하듯 소리쳤다. 엄마가 그 지경이 되도록 수수방관만 하고 있었던 모든 사람들, 연수는 그들 모두를 향해 절규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증오의 대상은 고통스럽게도 자기 자신이었다. (p. 239)

3.

"우리 부모님은 차 사고로 한 순간에 돌아가셨어. 장사 치를 땐 모르겠더니, 묻고 집에 오니까 그때부터 눈물이 나더라. 그게 꼬박 일 년을 넘게 갔어. 밥을 먹다가, 일을 하다가, 잠을 자다가, 그렇게 아무 데서나 눈물이 났어. 받은 건 태산 같은데 해드린 건 하나 없는 내가 미워 눈물이 나더라구." (p. 242)

4.

"... 전요, 아줌마, 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다, 한 번은 다 죽는데, 우리 엄마가 죽게 될 줄은 정말 몰랐고, 딸들은 다 도둑년이라는데 제가 이렇게 나쁜 년인지 전 몰랐어요. 지금 이 순간두 난 우리 엄마가 얼마나 아플까 보다는 엄마가 안 계시면 난 어쩌나,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엄마가 없는데 어떻게 살까, 어떻게 살까, 그 생각밖에 안 들어요. 나, 어떡해요, 아줌마?" (p. 243)


책 제목: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저자: 노희경
특이사항: 1996년에 드라마로 제작되었음. 이후 소설, 연극, 영화로 제작되다가 2017년 다시 드라마화 됐음.


이 책은 친절하신 @chocolate1st 님의 선물로 읽게 됐습니다. 다시 한번 고맙다는 말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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